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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5화 (5/266)

〈 5화 〉 004. 삶이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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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달프다.’

경비대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고 정식으로 출근한 지 보름. 슬슬 이 세상에 적응해가고 있는 요즈음.나는 저 말을 입에 달다시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가 스스로가 이리도 비관적이게 되었는지곰곰이 생각해보니. 얼추 세 가지 원인이 떠올랐다.

일단 첫 번째 원인이자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세상의 원작자, 쾌락천마였다.

무릇 빙의물에서 원작자란 주인공을 적대하는 법이라지만, 놈은 그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옛 성현이 말씀하시길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당장 튜토리얼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만 봐도 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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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토리얼 퀘스트 클리어! ]

[ 당신의 당찬 답변이 면접관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최종 면접에 합격하여, 그토록 원하던 아카데미 경비원이 되었습니다!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카데미 경비원으로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

[ 퀘스트 클리어에 따라 보상을 지급합니다! ]

[ 퀘스트 보상에 의해 경비율이 0%→2%로 상승했습니다! ]

[ 퀘스트 보상에 의해 최종 퀘스트의 보상이 공개됩니다! ]

[ 이 세상에 안배된 마지막 퀘스트! 그 보상은 과연 뭘까요?!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

[ 짜잔! 최종 퀘스트의 보상은 바로 <귀환의 문="" 1회="" 이용권="">입니다! ]

[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나요? 저쪽 세상에 두고 온 부모님을, 가족들을,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나요? 그 평범했던 일상을 다시 되찾고 싶나요? 그럼 퀘스트를 깨세요! 깨고, 깨고, 또 깨는 겁니다! 그 끝에 마침내 최종 퀘스트에 도달하게 된다면 당신은 비로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

[ 그 여정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요! 아무튼 건투를 빌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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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받네, 시발.”

벌써 몇 번이나 읽었는데도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날 조롱하는 쾌락천마 놈의 악의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말본새도 말본새지만, 보상이랍시고 던져준 것들도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최종 보상이 귀환인 거야 얼추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고, 경비율도 고작 2% 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경비원 스킬의 효과는 경비율 10% 당 능력치 1랭크를 올려주는 것이었으니.

분명히 난 퀘스트 보상을 받았는데.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전과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째째한 놈.'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했으면 게임의 법칙도 따라야 응당 맞지 않겠는가. 내가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초반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초반용 아이템이나 특성이라도 주면 어디 덧나나?

참으로 인색하고 치졸한 처사였다.

허나, 놈이 인색한 건 비단 퀘스트 보상에서만이 아니었다.

“……상태창.”

혹시 누가 들을까 작게 중얼거리자 시야 가운데 캐릭터 ‘안수호’의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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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호’의 상태창 ]

이름 : 안수호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79.7cm/74.5kg/24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원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일반과

보유 초능력 : 검은 연기(D)

[ 능력치 ]

근력 E.

민첩 D.

내구 E.

마력 D.

기교 C.

의지 E.

행운 C.

[ 보유 스킬 ]

1. 아카데미의 경비원(유니크.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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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을 발견한 건 보름 전이었다.

경비원 스킬 설명에 적힌 능력치니 랭크니 하는 말들에 혹시나 해서 외쳐봤더니, 보란 듯이 이런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원작에는 상태창이 없었지만 수치를 알아보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작가가 작품설정란에 올린 등장인물 능력치가 딱 이런 양식이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기억하고 있는 다른 캐릭터의 능력치와 비교하여 내 몸의 객관적인 수준을 알 수 있었고.

그 결과, 내 신체능력이 벌레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아.”

현역 헌터는 물론이고 아카데미 낙제생에게조차 비빌 수 없는 최하위 능력치.

초인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끌려간 캐릭터 설정이 증명하듯, 안수호의 신체 스펙은 초인으로서 수준미달이었다.

‘이 스펙으로 당장 다음 달부터 스토리를 따라갈 수나 있을까.’

현재 날짜는 2월 14일.

2주 뒤 3월 2일에는 입학식이 예정되어있고 그때 주인공 세대가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초인들의 시대="">의 스토리는 주인공 류태현의 아카데미 입학으로 시작된다. 말하자면 지금은 그 스토리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였다.

그리고 이 비루한 능력치 때문에 나는 그 준비 기간을 통으로 날려먹고 있었다.

나는 <초인들의 시대="">에 등장하는 온갖 기연과 숨겨진 요소들의 존재와 습득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헌터물 세계관 특성상 대부분의 기연은 던전 안에 존재했다.

만약 내가 기연 좀 얻겠답시고 이 스펙으로 던전에 들어간다면? 아마 근처 지역 언론에 작게 이런 기사가 실릴 거다. ‘제 처지를 비관한 20대 청년 초인, 수준에 맞지 않는 던전에 홀로 들어가 자살...’이라고.

까놓고 말해 기연도 최소한의 스펙이 되어야 먹을 수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난 그 최소한의 스펙조차 달성하지 못한 상태고.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아무 것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매일 출퇴근은 뜀걸음. 퇴근한 뒤에는 직원용 훈련장에서 헬창마냥 쇳덩이를 들어댔다.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그리고 런닝 10km? 매일 그 두 배, 세 배는 되는 훈련량을 악바리로 버텨냈다.

다행히 아무리 약하다곤 해도 초인은 초인. 일반인이라면 바로 몸에 무리가 갈 훈련량이라도 이 몸은 어떻게든 버티는 게 가능했다.

허나 보름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능력치는 단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단 하나도.

'알파벳 랭크는 기껏해야 6~7단계. 그리 쉽게 단계가 오르진 않는다는 소리겠지.'

현실에서도 헬스를 시작하고 2주만에 몸이 바뀌진 않으니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었다. 이런 부분에서만 현실적이어서 문제지.

정리하자면 기껏 빙의했는데 능력치가 쓰레기에 심지어 성장세도 더디고, 그 능력치를 기연으로 커버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으며, 심지어 작가라는 놈은 공정해야할 퀘스트 보상에조차 인색한 치졸한 놈이었다.

때문에 나는 한창 미래를 대비해야 할 이 시기에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이것이 요즈음 내 삶이 고달픈 첫 번째 이유였다.

그래, 고작 첫 번째 이유다.

'빌어먹을.'

이어서 요즈음 내 삶이 고달픈 두 번째 원인에 대해 말하자면, 바로 내 일이 문제였다.

아카데미 경비원.

처음에는 아카데미 경비대라기에 뭔가 특별한 업무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 실상은 여타 아파트 경비원과 다를 바 없었다.

멍하니 지정된 경비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정된 시간에 순찰을 돌고, 혹시 시설물에 문제가 있으면 위에 보고하고, 남는 시간엔 이런저런 서류 업무를 보다 퇴근한다.

거기에 세후 2400이라는 초봉치고는 괜찮은 기본급에 사대보험 보장. 각종 수당과 상여금까지 지급하니, 아카데미 경비대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직장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고달픈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카데미 학생이란 새끼들이 싸가지가 더럽게 없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이거 쓰레기 좀 대신 버려줄래요?’

‘아 씨 뭐야, 더럽게. 남 지나가는데 빗자루질 좀 하지 말아주실래요? 먼지 다 날리게 뭐하는 짓이야?’

‘뭘 쳐다봅니까? 아, 금연구역? 참나. 거 탁 트인 곳에서 담배 좀 피우는 게 뭐가 어떻다고.’

'아저씨. 지금 제 다리 훔쳐봤죠?'

그간 학생들에게서 들은 온갖 모멸과 멸시가 빠르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본적으로 이곳 그린하우스의 학생들은 제 잘난 맛에 사는 족속들이다.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타고나는 ‘초인’과 그러지 못한 ‘비초인’이 구분되는 이 세상에서, 전국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이곳 그린하우스의 학생들은 선민의식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었다.

비초인에 대한 차별은 예사고, 같은 초인인 나조차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실정.

원작에선 간간이 차별 묘사가 등장하긴 했어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아마 주요 인물들이 유독 개념이 박혀있었던 거거나, 혹은 경비대 설정처럼 내가 빙의하면서 바뀐 설정 중 하나이리라.

하여튼, 그런 학생들에게 있어서 경비대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기껏 초인으로 태어났는데도 능력이 비루하여, 변변찮은 직업조차 가지지 못한 낙오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곳. 학생들에게 있어서 아카데미 경비대는 딱 그런 인식이었다.

덕분에 지난 보름간 온갖 음해와 모멸에 시달렸다.

딱 봐도 갓 스물이나 먹었을 놈이 대뜸 반말부터 하는 건 예사요. 청소하고 있는데 앞에다 대놓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나. 훈련장 사용 시간이 마감되어 나와달라 부탁하니 갑자기 욕부터 박지를 않나. 근무를 서고 있으면 뻔히 보이는 곳에서 날 조롱하거나 멋대로 사진을 찍어대기도 하고. 엊그제는 어떤 학생이 이것 좀 드시면서 일하라며 음료수를 줬는데, 알고 보니 유통기한이 반년이나 지나 있었다.

‘생각하니 짜증나네.’

원래 세계에서 가끔 아파트 주민의 갑질 논란 같은 게 뉴스를 타곤 하지 않는가. 그런 일들이 내게는 일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 일부라는 점이었다. 학생 대부분은 제 할 일이 바빠 경비원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니까.

'나랑 같이 면접 본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지? 이딴 취급 받는 건 알고 그렇게 열성적으로 면접에 임한 건가?'

“……시발.”

새삼 내 처지를 자각하니 절로 욕설이 나왔다. 경비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벌컥.

“수호야. 순찰 다 돌고 왔다.”

그때, 경비실 문을 열고 건장한 남성 경비원이 들어왔다.

내 직장 선배이자 나와 함께 이곳, 제3 기초훈련장으로 배정받은 경비원. 권창욱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하려 하자 그가 제지했다.

“됐다, 됐어. 그냥 편히 대하라니까. 나 없는 동안 특이사항은 없었고?”

“없었습니다. 선배님께선 뭐 있었습니까?”

“하나 있었지. 아까 들어오면서 봤는데, 저쪽 모퉁이에 그 여자 또 와있더라.”

“……또 말입니까?”

“그래. 한 번 나와서 보던가.”

그를 따라 경비실 밖으로 나선 나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경비실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모퉁이. 웬 작달만한 금발 여성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150도 되지 않을 작은 키에 앳된 얼굴.

얼핏 보면 중학생이 아닌가 싶은 외모였으나, 걸치고 있는 복장은 나와 같은 경비대 근무복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채소연.

경비대 산하 특수대책과 대원으로, 그곳에 팀장으로 재직 중인 민채령의 직속 부하였다.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모퉁이 너머로 몸을 숨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퉁이 옆으로 금색 머리카락이 삐죽 튀어나왔다. 이내 그녀가 조금 전처럼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

나와 곧바로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다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 과정이 약 다섯 번 정도 반복되었다.

학습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대놓고 어필하는 건지.

그 모습을 보던 권창욱이 멋쩍게 물었다.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까?”

“……내버려 두죠. 어차피 저희가 다가가면 또 도망칠 테니까.”

한숨을 내쉬며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런 나를 권창욱이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 여성의 존재가 바로 요즈음 내 삶이 고달픈 마지막 이유였다.

민채령에게 사정청취로 불려간 다음날부터 오늘까지 줄곧. 약 보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나는 저 어설픈 스토커에게 24시간 내내 스토킹당하고 있었다. 일하고 있을 때, 집에서 쉴 때, 외출할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저 여자는 내가 어딜 가든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주제에 제대로 몸을 숨기지조차 못해 시야 구석에서 알짱대는 꼴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또 발 하나만큼은 또 아주 빨라서, 내가 따지려고 다가가면 쏜살같이 도망쳐 모습을 감추곤 했다.

무슨 일이냐고 민채령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나, 그녀는 웃음으로 얼버무릴 뿐이었다. 부하의 사생활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면서.

대놓고 업무시간에 감시하러 오는 시점에서 이미 사적인 일이 아니라는 건 자명했으나, 민채령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보나마나 신진우 교수 사건 때문이겠지.'

우연히 알아냈다고 얼버무리긴 했으나 작정하고 조사해보면 이상한 점 한두 개 정도는 발견할 수 있었을 터.

허나 그 점을 캐묻고자 날 다시 부른다 한들,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리란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뭐라도 캐보고자 저렇게 감시를 붙인 거겠지.

왜 저런 어설픈 인원을 붙였는지는 의문이지만.

종합하자면 요즈음 내 일상은모처럼 주어진 준비 기간을 작가의 농간 때문에 허송세월로 날리며, 직장에선 매일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이상한 여자한테 24시간 내내 감시당하는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삶이 참 고달프다.

참으로 고달픈 삶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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