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003. 감히 날 상대로 밀당을 해?
* * *
경비대로부터 도착한 문자는 합격통지가 아닌, 신진우 교수 사건의 참고인으로서 경비대에 출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신진우 교수 사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경비대는 훌륭하게 교수의 범죄를 밝혀낸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나는 경비대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건물 정문에 다가가자 근무를 서고 있던 경비원이 내게 물었다.
“사건 참고인으로 호출받아서 왔습니다.”
“출입허가증은 받으셨습니까?”
“예. 여기요.”
전자문서로 도착한 허가증을 경비원에게 보여주자 그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으음.”
4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의 경비원이 허가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내, 그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힘내라.”
“예?”
갑작스러운 반말과 함께 그가 내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짓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면접 때 민채령 팀장님한테 한 방 먹였다며? 벌써 소문이 자자하거든. 다음 주부터 출근하는 신삥이 그 마녀한테 거하게 찍혔다고.”
“마녀요? 찍혀? 그보다 저 합격한 겁니까?”
“그렇다고 하던데. 왜, 기쁘냐?”
기쁘진 않았다.그저 특전 스킬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원래 세상에서 어디 기업 공채에라도 합격했다면 또 모를까, 아카데미 경비원은 스킬 때문에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무표정으로 입을 닫자 그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너도 그 팀장님 소문 정도는 들어봤나보군.”
“그, 민채령 팀장님께서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그러십니까?”
“뭐야, 모르고 있었냐? 하긴, 모르니까 면접에서 당돌하게 그런 말을 한 걸 테지만.”
경비원이 실실 웃었다. 내가 다시 한 번 민채령에 대해 묻자 그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민 팀장님이 여러모로 집착이 좀 심하시거든. 직장생활 평범하게 하고 싶으면 너무 관심 끌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경비원의 아리송한 충고를 들으며 나는 경비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곧 나를 알아본 다른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내가 향한 곳은 건물 3층에 위치한 응접실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더니즘적인 응접실. 그 한복판에 민채령이 소파에 앉은 채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직원이 나가자 그녀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앉아.”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온 반말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녀의 무표정 너머에 감춰진 감정이 내겐 뻔히 보였으므로.
민채령은 겉보기에는 무덤덤한 얼굴이지만, 이따금 눈을 흘기며 은연중에 이쪽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홍차는 마실 줄 아니?”
“마실 줄은 압니다.”
“정말 말 그대로 마실 줄만 안다는 말로 들리는데.”
“예. 다행히 알레르기는 없거든요.”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내 앞에 놓인 잔에 홍차를 따랐다. 은은한 주홍빛 액체가 잔 안에 넘실넘실 차올랐다.
“사실 나도 홍차 맛은 잘 몰라. 업무 특성상 정·재계 인사나 고위층 자제를 상대할 일이 많아서 대충 고급 브랜드로 갖춰두기만 한 거거든. 솔직히, 차 맛은 다 거기서 거기라 생각해.”
“동감입니다.”
서로 말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홍차를 들이켰다. 그녀의 말마따나 맛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좋을 맛이었다.
“서로 티타임이나 가질 사이는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그녀가 테이블 위에 서류 더미를 턱 올려두었다. 제일 위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의 사진과 ‘사건 파일 no. 1379' 따위의 글자가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간결한 물음. 동시에 민채령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미간을 꿰뚫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쪽 분야에선 아예 문외한인 나라도, 한눈에 그녀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치 주변의 공기가 그녀를 중심으로 얼어붙는 것 같은 압박감.
그 압박감에 정면으로 맞서며 나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분명 면접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출근하는 날 알려드린다고.”
“말이야 그렇지만 결국 면접 합격이 목적이었잖아? 그 건이라면 이미 해결했어. 내 권한으로 확실하게 합격시켜놨으니까.”
채용은 결정되었으니 이제 너의 비밀을 말해라. 민채령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경비대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일이야. 그 사건의 전모를 일반인인 네가 밝혀낸 거라고. 팀장으로서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잖니?”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 반응을 노리고 신진우 건을 말한 거니까.
민채령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옷자락이 타이트하게 당겨지며 몸의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말해줘. 분명 면접 때 기업비밀이 어쩌고 했잖아? 어떻게 신 교수의 범행을 알아차린 거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거야? 응?”
민채령의 뺨에 옅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어서 말해봐. 걱정하지 마. 남들에겐 비밀로 해둘게.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연신 답을 재촉하는 그 눈동자에선 호기심을 넘어 광기까지 느껴졌다. 1층에서 경비원이 어떤 의미로 집착이 심하다 말한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응? 어서 말해보라니까?"
잔뜩 기대감이 차오른 얼굴.
저 기대를 지금부터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입안이 씁쓸했다.
“혹시 불법적인 방법이라 그래? 괜찮아. 어지간한 일은 내 선에서 다 해결할 수.”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봤습니다.”
“……어?”
민채령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분홍빛 입술 사이로 벙찐 탄성이 슬그머니 새어 나왔다.
"…………뭐?"
이내 그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우연히 봤다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롭니다. 속초항에 갔다가 우연히 수상한 사람들의 거래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딱 봐도 불법 거래 현장인 것 같아서 숨어서 지켜보니까 글쎄, 한쪽이 신진우 교수더라고요. TV에 몇 번 나와서 얼굴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 다음엔?”
“그게 끝인데요.”
"지금 장난해?!"
민채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격양된 어조로 외쳤다.
“뭐? 그게 끝이라고? 그게 끝일 리가 없잖아!? 고작 거래 장면 하나 본 걸로 어떻게 전후사정을 다 파악했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자기들끼리 영화 속 악당마냥 더 설명해주던데요? 양쪽 다 일본어로 말하긴 했는데, 저도 일본어는 꽤 잘해서.”
대학에서 들었던 생활일본어 과목 성적은 A+. 어지간한 회화라면 대충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다만, 민채령이 지금 신경 쓰이는 건 내 일본어 실력 따위가 아닐 터.
“……정말 그게 끝이야?”
“예.”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뭡니까? 우연히 목격한 게 아니면, 일반인인 제가 불법 거래를 일삼는 놈들 상대로 무슨 첩보 활동이라도 펼쳤으리라 생각하신 겁니까? 진짜 우연히 알아낸 겁니다.”
내 말에 민채령이 뭐라 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처구니없는 변명이었으나, 딱히 꼬투리 잡을 부분이 없는 변명이기도 했다.
그야, 원작에서 주인공이 이 사건을 밝혀낸 계기도 나처럼 우연히 거래 현장을 목격한 거였으니까.
‘아무리 쉬어가는 에피소드라지만, 완전 날림 전개였지.’
그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의 내 감상이 곧 민채령의 감상일 터. 아마 그녀는 지금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조차 나오지 않을 것이다.
"……즉, 기업비밀이고 나발이고 없다는 이야기네?"
"굳이 있다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이 올곧음이라든가."
“하.”
민채령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더니, 이내 미간을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 입술 사이로 간헐적으로 끙끙 앓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기업비밀이니 뭐니 하며 기대감을 부풀린 건 나였으니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결국 내가 그녀의 기대를 짓밟은 건 맞으니까.
“모처럼 쓸만한 애 하나 들어왔다 싶어서 먼저 빼온 건데…….”
민채령이 작게 중얼거렸다. 누가 소설 속 캐릭터 아니랄까봐 혼잣말이 일품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작게 말했다.
“……이제 됐어. 그만 나가.”
칼같은 축객령에 내가 반문했다.
“예? 조사는 이걸로 끝입니까?”
“아니. 나가면 아까 안내해준 직원이 제대로 담당부서로 안내해줄 거야. 조사는 거기 가서 받도록 해.”
“담당부서가 따로 있다니. 그럼 여기로 불린 건 뭐였습니까?”
그 말에 민채령이 소파에 몸을 팍 파묻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말했잖아. 먼저 몰래 빼왔다고. 그런데 이제 됐어. 흥미가 팍 식었거든.”
그 말처럼 민채령은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아무리 내 대답이 기대 이하였다지만 태도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웠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원작에 나왔던 캐릭터라면 그나마 예상이 되겠지만, 경비대 인물인 민채령은 내가 빙의한 안수호와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캐릭터였다. 내게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내게 흥미가 식었다라……. 굳이 아쉬워할 건 없나.’
입맛을 다시며 나는 어제 봤던 퀘스트 보상을 떠올렸다.
경비율 증가와 함께 있던 ‘최종 퀘스트 보상 공개’라는 항목.
퀘스트를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지금은 알 수 없는 정보였으나, 예상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보나마나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게 마지막 퀘스트 보상이겠지.’
빙의물의 마지막 보상은 보통 그런 법이다.
가끔 그 세계를 진짜 세계로 만들어준다거나, 아예 그 세계의 신이 된다거나 하는 보상도 있지만, 쾌락천마가 그런 보상을 내걸 위인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하여튼, 집으로 돌아가려면 아마 그 최종 퀘스트라는 걸 깨야할 테고,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목표를 이루려면 초반부터 다양한 기연이나 인맥을 선점해야만 했다.
그리고 민채령 역시 그러한 ‘인맥’의 후보 중 하나였다.
작가가 내게 쥐어준 경비대라는 직장의 팀장. 게다가 면접관까지 맡을 정도면 그 권한이 남다르리라. 스토리 진행에 도움이 된다면 필히 가까이해야만 했다.
다만, 그게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다.
그녀가 내게 흥미를 잃었다 해도 아쉬울 건 없었다. 어차피 같은 직장이니, 가까워질 기회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팀장님 말씀이 그러시다면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남아있던 홍차를 전부 마신 뒤 미련없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민채령은 고개를 돌린 채 날 외면하고 있었다. 이쪽을 배웅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출근하는 날 다시 뵙죠.”
꾸벅 인사하고 응접실 문을 열고 나섰다. 민채령의 말마따나 바깥에는 날 안내했던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응접실 문이 닫히는 찰나.
문득 고개를 돌리자 문틈으로 민채령과 눈이 마주쳤다.
워낙 순간이어서 그 시선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시선은 분명하게 내게 향해 있었다.
***
안수호가 응접실을 나선 뒤.
홀로 남은 민채령은 차갑게 식은 홍차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내 그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기실 그녀는 흥미가 식었다며 안수호를 일방적으로 내쫓았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재미있는 애네.’
민채령은 턱을 괸 채 안수호가 했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백보 양보해서 그 밀반출 현장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치자.’
‘신진우 교수가 일본 아카데미 사람들과 거래하는 날은 매달 마지막 목요일.’
‘즉 안수호가 그 현장을 발견했다고 하면, 아무리 최근이어도 저번 달 마지막 목요일이라는 소리야. 거의 한 달 전이지.’
‘그런데, 그런 범죄 현장을 발견해놓고 한 달이나 입을 닫고 있었다고? 그것도 경비대 공채까지 넣은 사람이?’
‘최종 면접 때 던질 미끼로 아끼고 있었다……는 건 거의 가능성이 없지. 그럴 바에야 먼저 경비대에 신고하고 그 건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나을 테니까. 그나마 말이 되는 건 놈들이 벌인 짓이 범죄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거나, 혹은.’
우연히 발견했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고, 실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모종의 방법으로 신진우의 범죄를 알아차렸다거나.
민채령이 본능적으로 직감했다.안수호는 아직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패가 있다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어차피 끈질기게 물어봐도 계속 우연이었다고 잡아뗐겠지. 애초에 내게 말해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
민채령의 뇌리에 안수호의 면접 때 모습이 떠올랐다. 신진우 교수에 대한 모함에 어떤 근거가 있느냐 묻자, 기업비밀이라며 뻔뻔하게 말을 돌리던 모습이.
‘그래. 쉽게 알려줄 거였으면 기업비밀이 아니지.’
민채령은 그에 대한 흥미가 더욱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한 미소가 떠올랐다.
민채령.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2팀 팀장.
그녀는 경비대의 그 누구보다도 인재 욕심이 넘치는 여자였다.
흥미가 동하는 이는 붙잡았다. 유용하다 생각되면 어떻게든 자신의 팀으로 데려왔다.
한 번 물었다 하면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원하는 인재는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일개 개인이 경비대 전체의 수사력을 뛰어넘은 거야. 절대로 놓칠 수 없지.’
그리 결심한 민채령이 스마트폰으로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 뚝.
네! 채소연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팀장님?
전화기 너머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 역시, 민채령이 그러한 방법으로 영입한 ‘인재’ 중 한 명이었다.
“일 하나만 맡길게 소연아. 정규 업무는 아니고 내 개인적인 부탁인데, 당분간 사람 한 명만 감시해줄 수 있겠니?”
알겠다는 대답에 전화를 끊은 민채령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핫.”
이내 그 입술 사이로 나지막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감히 날 상대로 밀당을 해?’
안수호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민채령이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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