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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43화 (143/143)

〈 143화 〉 발악

* * *

“귀족이군!”

“그러는 당신도 귀족이 아닌가요?”

“닥쳐라!”

“당신이 먼저 말해놓고는……!”

콰아앙!

서로의 검에 깃든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자 후폭풍이 몰아쳤다.

푸른색과 남색의 마력.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물과 기름처럼. 트리아나와 에이트가 충돌할 때마다 거목이 부서지고, 땅이 파여간다.

“으아아아아아악!”

마력 방출을 이용한 고속 기동.

그와 동시에 검으로 뿜어져 나오는 일격 하나하나가 무겁다.

그 일격을 피하면서 뒤로 물러난 트리아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역시 아직 실전에 쓸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흡!”

짝!

트리아나의 손바닥이 마주친다.

남색의 마력이 트리아나의 전신에서 솟구치는 순간 하나의 방패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앙!

남색의 방패가 그대로 내려찍는다.

공방 일체의 마력 운용법. 대대로 뮐러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기.

뚫기 위해서는 방패를 부숴야 한다. 막기 위해서는 방패를 부숴야 한다.

“으극!”

에이트는 이를 악물며 검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내려찍는 방패의 압력, 순수한 물리력으로 바뀐 그 일격을 검으로 쳐냈다. 순간 제어가 풀리며 그 형태가 흐릿해지면서 날아가는 방패를 확인한 에이트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할 수 있다!’

물질화한 마력의 운용 방식의 단점이었다.

좀 전의 꽃잎과 같은 온전한 마력이라면 곧바로 소유자의 마력 제어로 인해 컨트롤 가능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물질화를 이루면 다시 컨트롤을 되찾아야 했다.

물론 장점도 있다.

“하아아앗!”

에이트의 마력이 검신을 불태우면서 트리아나의 가까이 다가가 휘두르는 순간.

짝!

트리아나의 손바닥이 또 한 번 마주쳤고.

콰아앙!

거대한 방패가 검을 막는다.

흔들리는 방패를 트리아나가 뒤에서 밀어내면서 막아냈다.

방패 사이로 서로 색이 다른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큭!”

남색으로 물든 큰 눈을 가진 여자의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무언가를 보는 순간 에이트는 곧바로 몸을 피했다.

쿠우웅!

방패가 날아왔다.

조금 더 늦었다면 방패들 사이로 찌부러질 수도 있었다.

‘방패 조종…. 거리를 벌려서는 안 돼!’

원거리 공격은 방패에 막히고, 남은 방패가 노려온다면 골치 아파지는 것은 자신. 그렇다면…!

에이트는 곧바로 움직이려는 순간 또 한 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쿵!

남색의 방패가 나타나 트리아나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제 방패는 3개.

그걸 바라보며 에이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나나 둘. 아니 3개라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늘어나는 건 위험하다.

‘해보는 수밖에!’

“흐아아앗!”

곧바로 달려드는 에이트를 향해 트리아나의 방패가 그 앞을 막는다. 동시에 곧바로 떨어져 있던 2개의 방패가 양옆으로 달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 타이밍에 기다렸다는 듯이 에이트가 검을 뒤로 빼면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일반인과 마력 보유자.

모험가와 기사.

기사와 준 귀족.

준 귀족과 귀족.

귀족과 작위 귀족.

작위 귀족들 사이에도 뚜렷한 벽이 존재한다.

그 차이는 뚜렷하지만, 그런데도 뚫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개개인의 재능에 따라, 단련함에 따라 아예 불가능하진 않았다.

에이트는 이를 악물었다.

마력의 질의 차이는 명확하다.

방패 하나하나를 노리는데, 일일이 집중해서 없애는 것보다 지금처럼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검이 울부짖는다.

단단하게 제련된 검. 마정석을 섞어 압축되는 마력에 버틸 수 있게 만든 명검이지만 이제 한계라고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귀족이, 순수하게 마력을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

애초에 일정 격을 넘어선 귀족의 힘을 감당할 ‘물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아아아아앗!”

3개의 방패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이 타이밍. 에이트는 검을 휘둘렀다.

그것을 트리아나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뮐러 가문에서 내려오는 파훼법에, 그 방식이 존재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짝!

박수 소리가 울렸다.

꽃잎처럼, 마력을 나누기에 반드시 생기는 마력의 배분. 그렇기에 방패의 강도가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더 큰 방패로 막으면 그만이다.

강한 일격은 방패가 겹치면 거대한 방패로 변환하여 막는다.

강한 일격이 필요하다면 거대한 방패로 뭉쳐서 내려찍는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기술.

“크윽!”

뒤늦게 알아차린 에이트지만, 지금 검을 내릴 수는 없었다.

거대한 철벽에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콰아아아앙!

마력과 마력의 충돌은 거대한 폭풍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주위 다른 자들도 이젠 전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물러났다.

먼지로 뒤덮인 숲속에서 에이트는 무리하게 출력을 높인 반동으로 머리가 하얘지는 고통 속에서 억지로 눈을 떴다.

‘지금, 방패를 날려버린 지금…! 지금 노려야 해!’

“끄윽!”

부들부들 다리를 떨면서 고개를 치켜든 에이트가 그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짝!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우웅!

마력이 공명하듯이 크게 우는 순간 한바탕 바람이 불어 먼지를 치운다.

어느새 어두워진 숲속.

달빛마저 가리는 거대한 방패가 드러났다.

“이…, 미친!”

그저 마력으로 인한 압도적인 물리력.

순수한 힘으로 상대해야 한다. 상대를 자신과 같은 씨름판으로 올리는 방식.

이미 에이트 주위에는 남색의 방패는 5개로 늘어났다.

이것을 뚫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힘으로 모든 것을 부숴야 한다.

“쿨럭! 이렇게 시간을 끌면 라슨 영지에서…… 사람이 올 것이다! 네놈들, 라슨 남작의 기사가 아닐 텐데!”

피를 토하면서 외치는 에이트를 보고 트리아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까의 일격은 그녀에게도 위험했다. 그 타이밍에 맞춰 방패를 하나 더 늘리지 못했으면 그대로 뚫렸겠지. 하마터면 제어에 실패할 뻔한 방패와의 연결을 견고하게 한 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확실히,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은 당신들이 라슨 남작과 커넥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겁니까?”

“뭐? 큭…!”

에이트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이미 주위의 조직원들은 하나둘씩 제압됐다.

이번 임무는 은밀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소수의 인원만을 데리고 출발했다.

그리고 동시에 희생양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조직에서 버려도 되는 인원만 데리고 출발했지만…….

그게 한이 되다니.

짝!

“미친 방패 성애자…….”

또 하나의 방패가 내려왔다.

방패로 만들어진 성벽이 더욱 두꺼워졌다.

“항복하시고 얌전히 포박되시죠?”

방패 여자 등 뒤로 꽃잎을 부리는 여자들까지 다가오기 시작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없어진다.

털썩.

몸에 힘이 풀렸다.

검을 땅에 박고 에이트는 숨을 토했다.

“빌어먹을…. 방패에, 남색 마력…. 뮐러군.”

“그렇습니다.”

“아슬란에 선전 포고했다고 했는데,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나?”

쿵, 쿵, 쿵, 쿵, 쿵!

방패가 그를 둘러싸며 떨어졌다.

사실상 완전히 끝난 싸움.

나머지 퍼플의 조직원들도 전부 사로잡혔다.

“자세한 이야기는 감옥에서 하시죠.”

“하, 하하!”

그 말에 에이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감옥이라, 감옥….

“이미 수십 년 감옥에서 보내왔다. 빌어먹을 귀족 놈들.”

지옥 같은 동부에서 탈출해서 왔다.

그 분노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에이트는 검을 쥐었다.

올바른 파지법이 아닌, 역으로 쥐는 자세.

그는 검 끝을 자신의 가슴 위를 겨냥하며 들어 올렸다.

“후, 후후하하하하하! 실패작이든 뭐든 좋다! 라슨 남작도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귀족! 전부 다 망해버려라!”

“무슨 짓을!”

트리아나가 곧바로 손을 뻗었으나, 늦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나있다.

원래 산 제물은 저들이었지만…….

“이 목숨으로 지옥을 불러올 수만 있다면!”

푸욱!

에이트의 가슴에 검이 꽂혔다.

마력이 깃든 푸른 피와 그의 가슴에 있던 몬스터 파우더. 그리고 마력 각성약이 섞이기 시작했다.

* * *

몬스터 파우더와 마력 각성약은 특이한 약품이다.

몬스터를 몰려오게 하는 가루와 사람을 몬스터로 만들어버리는 약.

그 연구의 기반은 서로 다른 것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절묘하게 섞여버린 그것들이 에이트의 몸을 중심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귀족의 피는 그들에게도 희소한 재능이다.

늘리고 싶어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

임신하여도 애초에 제대로 써먹을 때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기껏 출산 아기를 실험으로 써먹기엔, 그 용도가 너무 다양하다.

귀족들조차도 방계와 준 귀족, 기사를 대접하는 이유가 그렇다.

현대의 사회인처럼 계속해서 갈구면서 한 번 쓰고 버릴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의 피로 실험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에이트의 신체에 깃들어진 마력. 그 근원부터 흡수하기 시작한다.

일반인조차 기사급에 가까웠던 힘을 무효화시키던 괴물로 만든 약이, 준 귀족급 신체에 스며든다.

꿈틀

쓰러지며 피를 흘리는 에이트의 신체가 꿈틀거린다.

그것을 바라보며 트리아나의 안색이 바뀌었다.

“……이 마력의 파동은 대체.”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이 경고하고 있다.

지금 죽어가는 저 남자의 신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파동을.

그리고 살덩이가 그 남자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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