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게오르크 평야 회전 2
* * *
예전에 본 판타지 영화에서 여러 종족이 세계의 운명이 걸린 전쟁 장면이 있었다. 엄청난 모습이었다. 지금도 다시 보면 지릴 정도로 멋진 영화였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만.
그거에 비교하면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리 대단하지 않게 보인다. 영화처럼 수백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평야에 서로 마주 바라보는 군대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력을 느끼는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병사들조차 가지고 있는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된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는 현대에서 본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한다.
그런 그들이 군대처럼 뭉쳐있다.
그런 그들 앞에 나 혼자 말을 타며 걸어갔다.
거대한 평야 속에 홀로 나서는 내 모습에 아슬란 남작 진영 쪽에서도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걸어 나온다.
얼굴을 본 적이 없으나, 초상화로 묘사된 그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 많다. 그가 바로 아슬란 남작이겠지.
서로 얼굴이 보일 때까지 가까워지자 말을 멈췄다.
“반갑소, 아슬란 남작.”
“으득!”
태연히 건네는 내 말에 이가 씹힐 정도 악문 남작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방자하구나. 백작.”
“하하. 존칭을 쓰시오, 남작. 우리는 브람스 왕국의 고귀한 귀족이잖소?”
이거 참.
날 노려보는 눈빛만으로 사람 죽이겠네.
실제로 그를 중심으로 바닥의 먼지와 돌멩이들이 덜덜 떨리며 마력이 은근히 퍼지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명분이 먹힐 줄 알았나?”
“으음. 하지만 어쨌든 실제 있었던 일이오. 뭐, 백여 년도 이전의 일이라고 들었소만.”
실제로 게오르크 혈통이기도 하다. 문제라면 방계이고 실제로 이어진 핏줄도 아주 약하다는 것?
내 말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아슬란 남작의 모습을 보고 시선을 돌려 평야를 바라봤다.
“거, 전쟁하기 참 좋은 날씨군. 그렇지 않소?”
“네놈이 흘릴 눈물이 평야에 비처럼 내릴 것이다.”
오오.
시적이네.
“괜한 피를 흘릴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얌전히 분지를 넘겨주셔도 됩니다만?”
“헛소리를! 패배하게 된다면 결코 가벼이 넘어가지 않겠다!”
“하하하. 좋습니다.”
“어린놈에게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보여주도록 하마.”
내 말을 씹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며 곧바로 돌아서는 그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남작 자신도 전쟁한 적이 있을까? 뭐, 좋아.
“자, 가자.”
부우우우우우우!
전쟁이 시작한다.
* * *
전장에 귀족이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병사와 기사의 싸움에 패배할 때 귀족이 손을 쓸 경우를 대비해서다. 실제 모든 전쟁에 참여하는 건 아니고, 지금처럼 영지전의 경우엔 주로 참가한다.
갑옷을 입고 말에서 내린 클로에가 창을 높게 치켜들며 외친다.
“돌겨어어어어억!”
부우우우우우!
나팔이 울린다.
동시에 한 몸이 되어 돌격하는 기사단.
말보다 빠른 돌격.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마력이 하나로 뭉친다.
거대한 푸른빛의 포탄처럼 돌격하는 기사단은 마치 하나의 생물체다.
서로의 마력이 연결되고, 하나로 뭉친다. 천지를 울리는 소리. 서서히 멀어지는 지금도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 귀족조차도 방심하면 방어가 뚫리는 강대한 일격.
그대로 성문에 돌격하면 성벽 자체가 허물어질 정도의 일격. 전장에서 기사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영주의 지원이다.
파아아아아앗!
나의 부대가 위치한 곳, 허공에 거대한 태양이 떴다.
태양의 가호가 함께한다.
그 기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틀리지 않는다.
쿠우웅!
“우리를 비추는 저 태양이 있는 한 우리에게 패배란 없다!”
“전워어어어어어어언!”
“거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푸른빛이 선두에 맺힌다.
아니, 그 빛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빨라지고, 뜨거워지고, 태양에 물든 기사의 돌격. 거대한 빛이 되어 돌격하는 기사단의 돌격은 내 진심의 일격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로봇 만화에서 가끔 나오는 장면이 있다.
우주에서 지구로 낙하하는 장면이 나올 때, 그 모습이 나온다.
붉게 물든 선두. 마치 신화에 있던 태양을 노리는 예의 화살처럼 쏘아나간다.
그것은 적군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검이 수호하는 아슬란의 기사들이여!”
스릉!
그들의 돌격 형태는 우리의 군보다 더욱 좁고, 더욱 날카롭다.
아슬란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
거기에 그려진 것은 푸른 검.
그 검처럼 그들이 든 창이 서서히 푸르게 물들기 시작한다.
“어찌하여 우리가 브람스의 검인지를!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한다!”
쿠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들 역시 진격한다. 하나의 검처럼 쏘아나간다.
“전워어어어어어언!”
적군의 중심.
그 속에 있는 아슬란 남작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슬란 남작의 전신에서 퍼지는 마력이 허공에 일렁이며 푸른빛의 검이 드러났다.
“발거어어어어어어어어엄!”
화살과 검 끝이 마주친다.
선두와 선두의 충돌.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평야. 곧바로 그 충격이 평야를 휩쓸기 시작한다.
키이잉! 콰아아아앙!
평야를 휩쓸기 시작한 마력의 폭풍.
그 중심에서 터지는 거대한 충격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있는 곳까지 퍼진다.
“보병 부대!”
“돌격한다!”
곧바로 이자벨의 지휘를 시작으로 대기 중이던 보병 역시 움직인다.
거대한 평야. 기습도 할 수 없는 이 땅의 전투는 아주 간단하게 시작한다.
기사단의 돌격. 그리고 이어진 보병들의 싸움.
움직이기 시작하는 보병들에게서 시선을 떼어 기사단이 충돌한 곳을 바라봤다. 후폭풍으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치솟는 곳에서 두 개의 거대한 물체가 먼지를 뚫고 나타났다.
“유효한 타격은 없습니다.”
“그래?”
옆에서 날 보좌하는 가신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실제로 내 눈으로 봐도 서로 그리 큰 피해는 없는 것 같다.
“원래 기사들의 싸움은 보기보다 오래 걸립니다.”
“그렇군.”
주군의 마력으로 강화된 기사들의 싸움은 어느 누가 먼저 지치냐, 서로 선두에 선 기사가 제대로 버틸 수 있는가에 따라 걸린다.
그 선두, 다른 기사보다 체구가 작은 기사가 눈에 보였다.
“트리스탄 경은 강합니다. 무엇보다 마력을 흘리는 기술은 저도 지금까지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 걱정하지 않았어. 걱정하지 마. 제대로 집중하고 있으니까.”
“실례했습니다.”
참모가 무얼 걱정하는지 알겠다.
클로에가 나의 성은을 자주 받는 것은 유명하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한눈을 팔다가 태양을 유지하는 것에 실수가 일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귀족이 강화하는 아군은 기사들만이 아니다.
지금 거의 슈퍼 솔져처럼 이동하는 병사들도 그 강화의 대상이다.
“어떻게 보지?”
“기초적인 신체 능력의 강화는 당연히 있습니다만, 잘 보니 다른 곳보다 더 무기의 빛이 날카로운 것 같습니다.”
“과연. 검의 아슬란이란 말이지?”
강화의 비율을 조절한다.
여기서 귀족들의 싸움이 나타난다.
단순히 군대의 지휘만이 아니다.
서로 병사들에게 강화하는 마력의 비율을 조정한다.
이때 단순히 강화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 기사단들과 합이 필요하다. 막무가내로 강화해봤자 오히려 방해되고 자멸한다.
저런 속도로, 저런 힘을 유지하고 돌격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갑자기 신체 능력이 바뀌고, 감당 가능한 충격량이 바뀌고, 적에게 가하는 충격을 계산해야 한다.
“금성 깃발.”
“네!”
병사가 곧바로 금성이 그려진 깃발을 들기 시작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깃발. 이 깃발을 보고 강화의 비율이 바뀌는 것을 알려준다.
이들이 딱히 금성을 아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려진 건 금성인 것도 아니고. 이 세계에 금성이 존재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내가 이러한 형태는 금성이라고 칭했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깃발을 든 이후 평야를 돌고 있던 우리 기사들의 형태가 조금 더 날카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강화의 비율이 바뀌고, 그것을 받아들인 기사들이 다시 한번 돌격하기 시작한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평야를 휩쓴다.
이 기사들의 싸움은 보기보다 엄청난 집중력, 판단력이 필요하다.
엄청난 속도로 평야를 가로지르며 서로를 노린다. 마치 전투기의 도그파이트처럼 서로의 뒤를 노리고, 측면을 주지 않기 위해 항상 움직이고, 결국 정면으로 충돌할 때를 대비해 상대의 타격을 흘려야 한다.
부대를 나눌 수도 없다.
아예 압도적으로 기사의 수가 많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엇비슷할 때 부대를 나누게 되면 한 부대가 얻는 강화의 비율이 낮아지고, 낼 수 있는 출력도 줄어든다. 상대를 감당할 정도의 부대를 구성하는 것도 일이다. 상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차라리 하나로 뭉치는 것이 좋다.
만약 귀족의 강화에 실수하고, 부대를 이끄는 선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상대의 충격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기사단은 곧바로 적군의 보병 부대에 돌격하고, 그대로 적의 방진은 그대로 붕괴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서로 상대를 노리는 기사단과 보병 부대를 강화하고, 그들에게 주는 강화의 비율을 바꿔가면서 항상 상대를 노려야 한다.
마치 게임 같군.
“영주님!”
그때 후방에서 병사가 달려왔다.
급한 숨을 몰아쉬며 품에서 꺼낸 서신을 건네준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펼쳤다.
“움직였답니다!”
“역시.”
병사의 말과 서신에 적힌 간단한 문장에 미소를 지었다.
“퍼플 새끼들.”
노릴 줄 알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