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34화 (134/143)

〈 134화 〉 남부 귀족 회의 ­ 2

* * *

평소에 기사들의 훈련을 위해 마련된 연무장.

그 중앙에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우리 안에 개 한 마리가 있고 그 주위에는 만약을 대비한 기사들이 중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동물로 실험하는 건가?”

토트 백작의 말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사형수라고 해도 인체 실험을 할 수는 없다. 그런 거 한 번 했다는 게 문제가 되니까.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해도 겨우 이런 곳에서 꼬투리를 잡힐 수는 없지. 명분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니까.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참고로 실험 자체는 딱 2번 진행했습니다.”

“2번? 너무 적군.”

“약품의 양 자체가 적습니다. 이번 실험이 끝나면 이제 남는 건 지극히 미량. 남은 건 수도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토트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굳이 수도에 보낼 필요가 있는가, 뮐러 영주?”

전쟁의 판도가 바뀔 수 있는 약품.

마력을 무효로 하는 괴물을 만들어내는 약.

어쩌면 마력이 없는 자들에게 마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는 약.

그리고 혹시 어쩌면.

마력 보유자의 마력을 늘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수도에 넘기고 싶지 않다는 그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만큼 확실한 곳이 없죠.”

“으음.”

굳이 넘기는 이유는 일단 수도에서 그것을 원하는 것도 있다. 괜히 거절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애초에 그 약품을 연구하는 기반이 마련된 곳이 수도밖에 없다.

토트 백작도, 다른 가문도 그렇다.

이런 종류의 연구소 중 제일 확실하게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곳으로 수도 정도의 설비가 마련된 곳이 다른 곳엔 없다.

프란츠도, 뮐러도 아직 기초적인 수준이고, 내가 건네준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것만으로 벅찰 정도다.

다른 가문의 영지는 어느 정도지 모르지만, 기껏해야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겠지.

그나마 다른 곳이라면 크로체스 대공 정도겠지만….

그랑은 아예 인연이 없다. 신뢰도, 신용도 확실하지 않은 곳에 넘겨줄 순 없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습득한 약품의 양 자체가 적습니다. 이번에 넘겨준다고 해도 실제 결과물이 나온다고 확답할 수도 없습니다.”

이 세계의 지식인이 얼마나 유능한지 모르겠지만, 약품의 용량 자체가 적었다. 그 적은 약품으로 실험을 한다고 반 정도 썼고. 수도의 연구소로 넘어간다고 해도 실험하고 분석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넘긴다.

어쨌든 귀족들과 왕족이 실제 눈으로 봐야 이 사태를 실감 나게 느낄 것이고.

“흐음. 확실한가?”

크로체스 대공이 지나가면 흘리는 말에 웃었다.

“하하. 아니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하하.”

귀족들의 대화를 100%의 신용할 순 없다.

지금 이렇게 내가 설명하고, 건네준 문서에 적힌 정보가 정확한지 그들은 의심하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괴물은 실제로 보여준다.

실감 나게 하기 위해서.

“자. 이제 시작합니다.”

내가 손짓하자 기사 한 명이 앞으로 다가갔다.

“깨, 깽! 끼이이잉!”

불안한 기색을 느낀 건지 개가 신음을 내뱉으며 우리 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을 옆에 있던 기사가 마력으로 묶고, 입을 벌린다.

“끼이잉!”

기사의 마력으로 붙잡힌 채 벌려진 개의 입으로 약품을 들고 있던 기사가 천천히 약을 먹이기 시작한다.

“문서에 적힌 대로, 약은 동물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내 말을 시작으로 우리 속에 있던 개가 털썩 쓰러지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괴물로 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분에서 2분. 실험한 동물은 개, 돼지, 소입니다. 동물들 모두 약간의 오차가 있지만, 최대 2분이었고, 그 동물은 돼지였습니다.”

­꿈틀, 꿈틀…!

내가 말한 시간이 지나자 개가 꿈틀거리면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크기는 기껏해야 대형견 수준.

“보시다시피 개 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만, 기존의 체격보다 커지죠. 이처럼 돼지나 소에게 투여할 시 기존의 체형에서 조금 더 커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꿈틀거리면서 기묘한 살덩이처럼 변한다. 그 모습은 내가 봤던 것들과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저러한 살덩이 같은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살덩이 사이 사이에 원래의 신체 장기가 약간 남아있습니다. 이때 남은 장기에 대해 공통점은 아직 발견하지 않았습니다.”

살덩이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개의 손톱, 발톱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고, 살덩이 중간에 개털이 약간 남아있거나, 꼬리의 흔적도 보인다.

“마력을 무효로 하는 힘의 경우 동물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했으며, 제가 처음 확인한 인간을 소체로 했을 때가 제일 강했으며 그 자세한 내용은 조금 전 나눠준 문서에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기사들이 마력을 내뿜으며 무효의 힘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그 장면을 본 귀족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느껴지십니까?”

나는 괴물에서 눈을 떼 귀족들을 바라봤다.

크로체스 대공이 얼굴을 굳혔다. 그리누치 후작도, 토트 백작도, 알리나 어스레인 역시.

멍청한 두꺼비, 볼트론 백작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라슨 남작 역시.

모든 귀족이 얼굴을 굳혔다.

“여러분들은 제가 전한 소식을 듣고 여러 생각을 하시겠죠. 과장된 헛소문, 유용한 도구, 새로운 병기.”

­쿵!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철로 만들어진 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랄하고 있는 와중, 그것에게서 느껴지고 있다. 마치 인위적으로 빚어낸 듯한 불쾌한 마력이.

“보십시오. 저것이 우리의 적입니다.”

불쾌한 괴물은 서서히 그 몸을 일으켜 세웠다.

* * *

그것은 죽었다.

딱히 일부러 죽인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력을 잃고 허덕거리더니 죽어간다.

한 번의 전투는 가능할 정도의 지속 시간이지만, 전쟁에 사용하기엔 너무나도 적은 시간이다.

이 약을 얼마나 생산 가능한지 아직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많은 동물을 끌고 다니기엔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수를 이룬 동물을 제물로 해서 공격하면 피해가 없진 않겠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하기엔 전쟁마다 사람의 희생시키는 전법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알 수 없고, 그만한 사람을 구하는 것도 힘들겠지.

나와 부하들이 정리한 보고서. 그리고 조금 전 그 괴물을 실제 경험한 귀족들의 이후 회의는 꽤 진지하게 진행됐다.

아무래도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약품의 성능, 부작용 등 데이터를 따지면 아직 큰 위협은 아니지만, 퍼플이 그것을 대놓고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이 경우 문제가 됐다.

그들은 슬슬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결론 자체는 났다. 문제는 그 이후다.

“흥. 기껏해야 붉은 피. 그놈들이 움직임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군. 거기에 그 정도 수준의 괴물. 우리 영지의 기사들 정도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소.”

볼트론 백작, 킬리아스 후작의 반응.

평민인 붉은 피, 마력 보유자가 끼어 있다고 하나, 기껏해야 붉은 피라는 레지스탕스에 겁을 너무 먹었다는 등 이쪽을 겁쟁이라고 비난했다.

“앞으로 재미있어질 것 같군. 그렇지 않나?”

토트 백작, 크로체스 대공의 반응.

내심을 밝히지 않고 그저 재밌다는 듯이 웃고만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그것을 기회로 삼는 듯한 모습. 앞으로 이들의 행적을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이 혼란이 끝나기 전 분명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수도에서 온 그리누치 후작.

“여기, 차입니다.”

“감사하오, 뮐러 영주.”

“후후. 말 편하게 하십시오. 할아버지의 지인이시고 사적인 자리 아닙니까.”

“지인이라. 그 사람의 경우엔 주변의 모든 귀족이 전부 적이었던 것 같았다만……. 자네가 그래도 된다면 그럼 그렇게 하지.”

그리누치 후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차를 들었다.

“후우. 이제야 몸이 편해지는군.”

“하하. 회의가 길어졌으니까요.”

“아니야. 요즘 몸이 예전 같지가 않은 것 같아. 역시 은퇴해야겠군.”

은퇴라.

후작의 말에 그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누치 후작. 그에게는 자식이 없다.

그런 귀족의 수는 적지 않다.

“가문의 혈통은…….”

내가 말을 흐리자 후작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어쩔 수 없지. 이미 포기했고. 부인에게 미안할 뿐이지.”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웃음을 짓는 그 모습은 진심으로 보였다.

“내 이야기는 됐네. 일 이야기나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누치 후작은 한 번 눈을 감은 후 나를 바라봤다.

“수도, 정확히 말하자면 궁은 자네를 남부의 칼로 삼고자 하고 있어.”

“하하하.”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이면 그럴 말을 하는 걸까.

내 웃음에 그리누치 후작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평화가 너무 오래됐어.”

“그 말대로입니다. 저 역시 전쟁을 모르나, 이것은 선이 넘었죠. 수도는 남부와 전쟁을 하고 싶은 겁니까?”

“정확히는 토트 백작을 견제하고 싶은 것이겠지. 프란츠는 이전부터 사이가 나빴다고 하나 명분이 없는 이상 먼저 나서지 않고, 보랭 역시 남부와 수도 모두 친분을 나누는 자들이지만.”

“토트 백작은 그렇지 않다?”

웃음이 나온다. 즉. 남서부에 있는 뮐러, 내가 최남단의 토트 백작을 견제하라는 말이라.

“그것을 굳이 솔직하게 이야기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자네는 그게 안 통할 것 같거든. 이번 일도 그렇고 그들은 자네가 작위를 위해서 왕궁에 머리를 숙였다고 판단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야.”

그리누치 후작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오? 뮐러 영주.”

나는 웃었다.

“나에게 이를 드러냈으니. 그들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오. 그리누치 후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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