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찬란한 성인식 3
* * *
알리나 어스레인.
어스레인 공작의 나이가 떨어진 여동생.
귀족 사회에선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늦둥이가 귀여워서 오냐오냐하고 자랐다고 하기엔 다른 의미로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대산맥 단독 답파.
대형급 몬스터 ‘허니 비’ 단독 토벌.
영지 결투전 대리 참가 다수.
토벌전 참가 다수.
명예 훈장 다수.
왕족 직할 ‘수호 기사’ 작위 서임.
그 외 기타 등등.
솔직히 내가 아니었다면 이리나도 알리나 어스레인의 루트를 따라가지 않았을까? 아마 내가 알기론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여자로 알고 있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문학도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거기에 공작 가문과 별도로 그녀 자신도 많은 훈장과 작위, 기사 서임 등 어느 의미 여기에 모인 귀족 중 제일 신분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입장하시는 게…….”
“아니. 모여드는 귀족들 생각하면 귀찮은 일만 늘어나지 않겠나?”
히죽 웃으면서 거절하는 것을 보면 소문으로 듣는 것처럼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것 같다. 거기에 남성적인 말투. 특이한 여자였다.
“거기에 연적의 성인식이 아닌가. 그녀도 기뻐하지 않겠지.”
“……연적?”
기묘한 단어다.
연적? 사랑의 적?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알리나 어스레인의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역시 주홍색……인가?
“편지를 받지 않았나?”
“편지라면… 공작님의 그 서신 말입니까?”
여동생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엄청나게 대충 쓴 글이었는데. 마지막에 아주 작게 쓰인 한 줄이라서 장난인 줄 알았다. 물론 공작의 직필이니 허튼 글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애초에 알리나 어스레인도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다.
내 기묘한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겉멋만 잔뜩 든 놈이라면 당연히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만.”
칭찬인가……?
……아니, 정말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어차피 들어가도 내 피를 탐하는 짐승 놈들뿐이니. 그냥 얼굴만 보고 만족하려고 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뭐, 외모는 그럭저럭 괜찮군.”
칭찬?
알리나 어스레인은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허공에 뱉었다.
뿌연 연기가 어두운 밤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땅 아래에 뭐가 있군.”
“……그걸 눈치채셨습니까?”
어스레인 공작에게도 들키지 않게 꽤 은밀하게 해놨다고 생각했는데.
“난 미지의 대지에 가면 한 번 정도 주변을 훑어보거든. 아주 은밀하게.”
“으음.”
새빨간 혀가 입술을 핥는다.
알리나 어스레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언덕 위에 지어진 연회장. 그 테라스에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당장은 내성을 중심으로 한 십자가 형태가 전부지만, 언젠가 도시 전체에 설치할 생각인가?”
“그럴 예정입니다. 다만 역시 비용도 비용이고, 제가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요.”
설치 비용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지하 깊숙이 묻어놓은 마력선. 파악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설치해야 하니까. 이 부분은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마력선을 아는 자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 도시 자체가 그대의 새장이 되겠군. 강박증인가?”
“하하. 한 번 당해보니까, 기분이 아주 엿 같아서 말입니다.”
“아하.”
내 말에 무언가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그런 사람이. 권력, 지배, 정복…… 그런 단어에 연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것을 누군가 건드리면 아주 빡도는 그런 사람이.”
“그렇게 빡 돌지 않았습니다만.”
내 말에 알리나가 웃음을 지었다.
날 보는 눈빛이 매섭다.
“어느 영주가 영지의 평민이 건드려졌다고 해서 도시 전체에 저런 것을 설치하나? 인정하게. 자네는 맹수야. 아주 사납고 냉혹하고 무시무시한 맹수. 하찮은 것이 자신에 도발하는 것을 용서치 않지.”
“흐음.”
알리나 어스레인은 빛나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저들은 알려나 모르겠군.”
도시 밑에 깔린 마력선.
“한 사람의 선택에 따라 한순간에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누가 들으면 제가 미친 폭군인 줄 알겠습니다.”
아니, 내가 미쳤다고 내 영지민들을 죽이나.
내 말에 그녀 역시 피식 웃었다.
“하긴. 그건 그렇고. 대단하긴 하군. 아름다운 예술품이야.”
“뭐,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 좀 했습니다.”
이제 시간은 저녁을 넘어 밤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
밤이 빠른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다들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도시는 밝다. 아주 밝다.
중심을 가르는 길도 빛나고, 중앙의 분수도 아주 화려한 분수 쇼와 함께 많은 빛이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거는 퍼포먼스 용인가?”
알리나는 다시 연회장 안, 천장에 박힌 마정석을 바라봤다.
지금 한 번이 아닌, 앞으로 연회장을 사용할 일이 있다면 사용하기 위해 조금 비싼 걸 박아놨다.
“그렇죠.”
“다른 곳에선 부족하다고 하는 마정석을 이용해서 이렇게나 화려하게 꾸미다니. 그거 아나? 자네의 성인식 이후로 화려한 성인식을 설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그런 게 유행됐습니까?”
나 때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진짜 급하게 준비했으니까. 그런 식의 눈속임을 해야 했지.
알리나는 내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후작급 이상은 자신의 마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꽤 무리하기 시작했지. 우리 어스레인이야 당장 성인식을 할 사람이 없으니 괜찮지만, 아마 내 조카는 꽤 고생해야 할걸?”
“하하하.”
머쓱하게 웃었다.
길게 사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군. 유행을 선도하게 되다니.
“뭐….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벌써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후우우.
그녀의 담배 연기가 이쪽까지 날아왔다.
“그대의 얼굴도 봤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했으니. ……그리고 내가 있으면 그녀도 불편하지 않겠나?”
이리나를 말하는 거겠지.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이거 진짜로 정식으로 신청이 오겠는데.
하지만…….
“그럼 잠깐 기다렸다가 가시죠.”
“음?”
정말로 바로 사라지려는 하는 듯한 모습에 급하게 말렸다.
테라스에 떨어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거친 알리나는 고개만 돌렸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보고 가시죠.”
이제 슬슬 시간이다.
* * *
“여러분.”
중앙에 있는 계단.
거기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참가자들의 시선을 모은다. 그 사이에서 한쪽 테라스, 커튼으로 가려진 곳에 있는 알리나 어스레인의 기척까지 확인했다.
“바쁜 와중 시간을 내서 참가해주신 여러분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던 귀족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미리 약속한 대로 진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주인공, 하늘의 보석! 보랭 백작 가문이 자랑하는 남부의 꽃! 이리나 보랭을 소개합니다!”
하늘이 펼쳐졌다.
천장에 박아놓은 마정석에서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그리고 태양. 순식간에 연회장을 마치 하늘 한중간에 있는 것처럼 스테이지를 바꾸어간다.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안개는 하나로 뭉치더니 구름이 되었고, 그 구름 속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그녀의 드레스는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컨셉일 것이다. 화려한 드레스와는 다른, 고고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그 드레스를 상징하는 듯했다. 동시에 반대편이 비치는 듯한 투명한 비단 천은 하늘하늘 공중을 수놓아 구름 속의 이리나의 신비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속에서 이리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연회장에 참석 중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랭 백작 가문의 이리나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저의 성인식에 먼 길까지 찾아오시느라 감사합니다.
* * *
하늘 아래 내려오는 이리나를 보며 알리나는 생각했다.
“조금만 작위가 낮았더라면 파티 플래너가 됐겠는걸?”
이런 곳에 관심이 없는 그녀조차도 자신이 주최하는 연회를 디자인할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그를 선택할 정도로 욕심이 났다.
“레오릭 프란츠…. 낭군감으로 적당하군.”
잠깐 대화를 나눈 게 전부지만 아버지처럼 구는 오라비인 어스레인 공작의 감상이나 지금까지의 느낌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상식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지만, 그래도 슬슬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신비로운 모습으로 연회장에 나타난 이리나를 바라봤다. 외모로 꿀린다는 생각은 없지만, 역시 나이를 생각하니 약간의 시샘이 생기는 것에 그녀 자신도 놀라운 감정이 들었다.
“하.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다고 다른 계집처럼 굴다니. 나도 여자였나?”
그런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자는 찜했으니 이제 내가 유혹을 해야겠군. 유혹이라…….”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여태까지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자는 많았다. 전부 알리나가 찼을 뿐. 생전 처음으로 이성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어스레인 공작 가문의 신수, 어스의 충고가 문득 떠올랐다.
“밤에 덮치면 되나?”
뭔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그녀의 타고난 본능은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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