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절벽 위의 꽃은 6
* * *
사실 보이는 도로만 화려할 뿐이다.
아직 중앙을 제외하면 이전의 도시랑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뭐, 걔들이 다른 곳에 갈 것도 아니고.
열심히 만든 거나 보여주자.
“대단해요! 마정석…은 아니고 마석인가요?”
마차의 창문 너머로 감탄하는 이리나의 시선 끝에는 가로등이 있었다.
마정석이 되지 못한 마력이 담긴 돌, 광석, 물체.
마석. 마석을 이용하긴 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프란츠에서부터 계속해서 연구해온 그 결과물 중 하나.
‘거리’가 중요하다.
무기의 개발도 점점 거리가 늘어나는 것처럼. 통신, 인터넷. 모두 세계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리나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가로등의 밑에는 선이 연결되어 있다. 지하 깊숙이까지 내가 직접 마력을 통해 만든 마력선은 가로등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시작점은 뮐러의 내성, 나의 집무실에 숨겨진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딱히 무언가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이것도 실험의 일환이다.
일단 들키지 않기 위해 은밀성을 높이고 실질적으로 마력선에 연결되는 마력 자체는 지극히 적지만……. 가로등의 설치한 또 다른 이유, 바로 태양열을 이용한 에너지 축적. 내 마력을 저장해놓은 마석의 특성을 바꾸기 위해 꽤 노력했다.
정확히는 공돌이들이지만. 충분히 보너스 줬으니까 괜찮겠지.
이것으로 나는 이 도시의 절반 정도 내 마력으로 커버가 가능해진다.
막말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어머나.”
이리나가 감탄한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시선을 돌렸다. 새로 지어진 화려한 분수는 분수 쇼를 위해 만들었다.
사실 기계로 그런 걸 다 표현할 수 없으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관리 사무소 같은 곳에 사람이 직접 조작해야 한다. 물론 매시간 할 수 없고 지금처럼 외부 손님이 오거나 낮 12시 저녁 6시 정도로 주기적으로 쇼를 하고 있다.
이 시대에서 이 정도로 화려한 도시는 없다.
나는 그것을 목표로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건물을 짓고 있다.
“빛의 도시.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시대든 그 무엇보다 화려한 도시. 그것이 나의 새로운 도시야. 물론 아직은 멀었지만.”
사실 도시에서 벌리는 수익의 절반은 프란츠나 보랭에,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은 다시 도시에 투자하느라 성의 자금 대부분이 텅 비었다. 일단 프란츠나 보랭으로 보내는 돈에 대해서는 내가 사정사정해서 금액의 비율을 낮춰주는 대신 그 시간을 연장했다.
이자는 그만큼 늘어났지만……. 역시 이자는 안돼. 빚은 나쁜 거다. 일단 귀족이지만 돈에 직접 관련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새삼 귀족이 가지는 돈의 크기에 대해 질렸을 정도다.
“대단해요……!”
이리나가 눈을 반짝거리며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지만 갈수록 화려해지는 빛의 거리. 가로등의 빛은 도시를 밝게 만들고, 분수에는 물과 빛을 이용한 화려한 쇼가. 성인식의 재탕으로 때때로 공중에서 터지는 화려한 빛과 마력의 폭죽 쇼.
어딘가의 놀이 공원이 생각날 정도로 화려한 도시.
당연히 드는 비용도 장난 아니다. 저거 다 마정석이니까.
그러나 한다고 마음먹었으니 한다. 지크가 매일 빠져나가는 돈에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이게 다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
매일 빠져나가는 돈을 생각하면…….
진짜 아예 날 잡고 대산맥 가서 사냥이나 해? 나도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이긴 한데.
“음, 도착했다.”
중앙의 분수도 지나고 내성이 가까워졌다.
아직도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이리나를 떼어냈다.
“앗, 싫어요!”
“싫기는. 빨리 옷이나 가다듬어.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으으. 오해해도 좋은데. 오히려 환영인데요?”
“맞을래?”
“칫.”
투덜거리면서도 이리나의 옷을 정리한다. 아니, 정말로 섹스는 안 했다? 진짜로. 근데 내 품에 안기거나 몸을 비비거나. 하여튼 옷이 흐트러진 것은 어쩔 수 없지. 얌전히 있는 것도 아니고 마차치고는 넓다고 해도 좁은 공간에서 막 돌아다녔으니까.
“영차.”
그렇게 옷을 정리하는 이리나를 보고 있을 때 이리나가 헝클어져서 삐져나온 가슴을 정리한다고 드레스 윗부분의 노출된 가슴에 손을 집어넣고 공간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가슴을 정리하고 있었다.
드레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 가슴을 주무르며 맞는 형태를 찾는 이리나를…… 이리나의 가슴을 바라봤다. 이전에 봤을 때보다 한창 더 커진 듯한 이리나의 우윳빛 피부와 적당히 풍만하게 자란 가슴이 출렁거리면서 이리나의 손길에 따라 모양이 자유자재로 바뀌고 있었다.
“흠.”
역시 보기 좋다. 막 폭유까지는 아니지만, 거유라고 불리기엔 충분하다. 좀전에 안겼을 때도 물론 일부러 몸에 닿기 위해 강조한 부분은 있겠지만, 내 팔이나 가슴에 닿는 감촉을 봤을 땐 역시 적지 않은 크기를 가진 건 확실하다. 모양도, 부드러움도, 탄력도 완벽. 그녀의 손짓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것도 완벽.
가슴 노출이 심한 드레스는 아니지만, 역시 요즘 시대의 유행은 윗가슴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는가, 그게 중요한 듯하다. 잘 모르지만. 이리나의 손짓에 따라 출렁이는 가슴이 점점 커졌다. 응? 원래 저렇게 노출이 심했나. 아니, 보는 쪽이야 고맙지만. 저거 이상으로 드레스 가슴팍 위로 올라오면 보여선 안 될 것도 보이게…….
“야.”
“앗, 들켰다.”
내가 부르자 이리나가 혀를 내며 눈을 찡그렸다. 귀여운 척하기는. 실제로 귀엽긴 하니까 용서할 마음이 드는 게 문제다.
“하지만 먼저 본 건 레오님이고? 저는 조금 더 잘 보이도록 보여준 죄 밖에 없고?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쪽이고?”
“맞는다?”
“헤헷.”
혀까지 살짝 내면서 애교부리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아니, 본 이쪽이 나쁘긴 하지만.
“똑바로 드레스 입어. 너무 그런 소문이 퍼지는 것도 안 좋으니까.”
“전 남의 평가 따윈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줘.”
진심으로 그럴 것 같아서 말을 돌렸다.
이리나는 그제야 혀를 차면서 드레스를 정리한다.
그런 이리나를 보고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이걸로 입술 닦아.”
“네에.”
“화장품은?”
“다른 마차에요.”
“그럼…… 뭐, 괜찮겠지. 밤이기도 하니까.”
이리나의 입술이 키스 때문에 좀 엉망이 됐다. 고치면 좋겠지만… 원래 입술 색도 이쁜 편이고, 살짝 붉은 타입이니까 그리 티는 안 나겠지.
“으응. 이러면 될까요?”
“그래. 나쁘지 않네.”
이리나가 어디서 꺼냈는지 손거울로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마지막으로 확인하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
쪽!
“꺄악!”
그래. 이쁘다.
그래서 키스했다.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노려다 본다.
“저, 정말! 하고 싶다면 미리 말해라구요! 자, 다시 한번 키스!”
이리나가 손을 활짝 편 채로 나에게 안기려고 하길래 이마를 툭 쳤다.
“이젠 정말로 도착했으니까, 내릴 준비 해라.”
“아! 정말! 일부러죠! 일부러 골탕 먹이는 거죠? 정말, 너무해!”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키스하고 싶어서 한 거고. 지금은 내려야 해서 준비하라는 거고. 근데 이게 재미있긴 하네. 공격도 방어도 나쁘지 않은데, 기습당하면 당황하는 걸 보면 귀여워서 더 그런가.
덜컹!
이제 진짜로 도착했다.
“자, 내리자.”
“흥. 다음엔 정말로 해줘야 해요?”
“그래, 해줄게. 이젠 자주 해줄 수 있잖아?”
“……헤헷. 이제 함께 사는 거네요?”
내 말에 히죽 웃는 이리나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렇게 좋냐.
“자, 레이디. 이제 내리실까요.”
“네, 감사합니다. 젠틀맨.”
활짝 웃는 꽃 같은 그녀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 역시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 * *
“장난 아니군. 이게 그 시골 영지라고?”
뮐러에 와본 적이 있는 청년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볼 거 없는 도시라고 했다. 딱히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깔끔하고 장식도 없는 진짜로 보통의 도시.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수도보다 화려한데?”
“어허.”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에녹은 주변을 둘러봤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건물 자체를 새로 짓지 않는 이상 오래된 흔적이 보인다.
다만 도로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빛이 강하게 밝혀진 탓에 화려해 보이는 건 사실.
그가 이 땅의 주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 도시는 바뀌겠지.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에녹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정말로 유능하다…. 그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그녀를 포기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성인식이 끝나기 전까지, 에녹은 어떻게서든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짐하며 드디어 도착한 내성에서 마차를 내리는 그녀를 바라봤다.
“윽!”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 듯이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는 가운데, 에녹은 주먹을 꽉 쥐었다.
“후후. 고풍스러운 성이네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차에서 그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린 그녀의 드레스. 다시 편 흔적이 있지만, 그녀를 눈에 새겨놓은 에녹의 시선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주름이 생긴 흔적을.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입술에 발라진 로즈윈 상단의 27호 립스틱. 그것이 더욱 엷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오늘 썼던 향수는 분명 테스툰 상회의 블루 쥬얼리 스트롱 트리거. 그 향수의 향이 그 남자의 몸에서 풍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으윽.”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하아, 하아…!”
“에녹? 에녹? 괜찮습니까?”
“응? 아, 괜, 괜찮습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몸이 피곤하군요.”
“저런. 그럼 오늘은 빨리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운데 그런 에녹을 아르윈의 말에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그 날은 초대된 손님도, 주역도 짐 정리로 바쁘니 연회는 없다.
그래….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다.
마지막으로 이리나와 레오릭을 바라보며 에녹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에녹의 고간 사이가 살짝 솟은 것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