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26화 (126/143)

〈 126화 〉 절벽 위의 꽃은 ­ 4

* * *

뮐러에 있는 도시급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는 2개. 하나는 주도인 뮐러와 교역을 위한 도시, 호프만이다.

호프만 역시 그리 큰 도시는 아니다. 교역을 위한 장소로 넓긴 하지만, 반대로 그 정도. 여러 상인이 움직이는 공간이긴 하지만……. 그리 볼만한 곳도 없다. 애초에 그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거대한 도시가 아닌 이상 필요한 장소만 있는 것이 이 세계의 도시의 기능. 하물며 대부분 농부로 이루어진 도시니 다른 걸 기대해도 곤란하다 이 말이지.

“오는구나.”

그런 도시의 성문이 오랜만에 활짝 열렸다.

목적은 하나. 뮐러에서 열릴 성인식 주인공의 행차를 환영해주기 위해서다.

멀리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기척들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겠다.

난 미리 준비한 것을 꺼냈다.

“여전히 무섭구만.”

그 속에 담긴 물의 마력의 집합체.

딱히 억지로 꺼내지 않은 이상 조용하지만, 반대로 조용해서 너무나도 무서울 정도의 고요함. 이것 또한 바다를 상징하는 거라면 이해가 되는 이유다. 그건 그렇고.

해룡의 비늘을 꺼내 그 위에 손을 올린 채로 정신을 집중했다.

딱히 비를 내릴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더욱 세밀하게 조종해야 하는 마력 컨트롤이다.

내 마력이 태양의 마력으로 업그레이드? 아니지, 클래스 체인지라고 하는 게 옳겠다.

어쨌든 그렇다 보니 이런 물의 마력을 조종하는 것에 대해 이전보다 파워도, 컨트롤도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화아아악!

꽤 컨트롤이 필요한 힘이다.

하늘을 보면 미리 태양의 마력으로 맑게 해놓길 잘했다. 그런 하늘과 도시 위에 떠 있는 태양을 향해 물의 마력을 일으켰다.

이것도 어려운 이야기다. 사실상 몇 km 위의 상공에 있는 마력을 조작하는 일이다. 얼음 결정을 만들어내고 그걸 유지한 채로 원하는 모양의 해무리를 만들기 위해 얼음 결정이나 태양 빛의 방향 등 몇 번이나 연습했는지.

맑은 날 하늘에 빛기둥이 몇 번이나 반짝거리는 탓에 무슨 재앙이 아닌가 속닥거리기 시작한 평민들을 달랜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 때문에 꽤 솜씨가 늘어서 거의 아트라고 불릴 정도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일에 능숙해졌다. 물론 나는 그런 분야에 소질이 없으니까, 모티브는 지구 시절의 신화나 종교에서 따왔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보여야 하니 너무 결정을 많이 만들어내면 구름이 낀 것처럼 흐려지고… 물론 그래도 보이기야 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려고 일부러 이 근처 일대의 날씨를 맑게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파아아아앗!

“……와아.”

옆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당연하지.

단순히 해무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십자가 형태로 태양을 중심으로 빛이 나면서 이리나 일행의 방향에서 보면 마치 도시를 가리키는 듯한 형태로 만들었으니까.

후. 이것도 연습한다고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이 정도면 됐나.”

일단 마력으로 고정은 했지만, 자연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도 이 정도면 딱 맞겠지. 태양을 중심으로 빛나는 해무리를 보면 역시 장관이기 하다.

그래도 슬슬 소재가 떨어지네. 뭔가 개쩌는 자연 현상이 뭐 없던가. 해무리야 무지개처럼 태양빛을 이용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오, 보이나?”

저 멀리, 이쪽으로 오던 무리가 멈춰 선 것을 보면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손님맞이는 확실히 해야지.

일단 한 차례 숨을 가다듬고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녀석들을 바라봤다. 특히 트리아나.

“지금은 내가 했지만, 나중엔 너도 해봐야지. 언제까지고 내가 할 순 없잖아?”

“제가요?”

트리아나가 깜짝 놀라면서 나를 바라봤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고 있다. 왜? 그렇게 깜짝 놀랄 소리라도 했나. 두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내가 연습한 거 봤으니 할 수 있잖아?”

“………네, 네?”

트리아나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다들 시선을 피하고 있다.

이상하네. 트리아나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있지?”

“네, 넷!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음.

고개를 끄떡였다.

뭐, 그녀라면 태양의 마력은 없으니까 내가 마정석에 태양의 마력을 넣어주고 해룡의 비늘에 있는 물의 마력이랑 같이 이용하는 것부터 연습해야해서 수고가 2배 걸리겠지만, 노력하면 되겠지.

* * *

“뮐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화려한 마차만 수십 대. 그 뒤를 잇는 여러 짐 마차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귀족이 찾아오는 건지.

한 번 훑어본 후 태연하게 성문 앞에서 그들 일행을 맞이했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님.”

그런 귀족들의 무리 선두에 나타난 건 화려한 복장을 한 채로 어른스럽게 인사하는 여인, 이리나 보랭이 있었다.

눈을 반짝이면서 붉게 물든 얼굴. 뒤에서 보이진 않겠지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으로 부채를 꽉 잡은 걸 보면 아마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뛰어드는 것을 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나에게 덮쳐든 이후로 그런 식의 애정 표현에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에는 하지 않는 모습이다. 다행이다.

그나저나 서신으로 읽긴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왔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역시 가문의 대표로 왔다는 느낌보다는 이리나가 주최하는 모임의 참가자들, 즉 친구 같은 입장으로 찾아온 거겠지. 그렇다고 해도 꽤 많다.

역시 도시 건설 계획을 서두르기 잘했군. 일단 다른 건 둘째치고 VIP들은 넉넉히 맞이할 준비는 필수니까.

딱히 농업 사업을 축소할 생각은 없지만, 오페라부터 시작해 화려해질 준비 해야지.

“음. 처음 보는 분도, 이미 안면이 있는 분도 계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웃으면서 인사하자 한 명, 두 명씩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작위가 없다. 아직은 백작 가문의 차남이 정식적인 나의 위치겠지. 가지고 있는 영지도 프란츠랑 보랭의 지분이 좀 큰 편이라 애매하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영주는 나다. 그러니까 이리나의 얼굴을 봐서 적당히 잘 대해주려고 하고 있는데, 저놈은 왜 날 노려보고 있는 거지? 처맞으려고? 웬 놈이 인상이 살짝 찌푸려진 채로 다가왔다. 불만 어린 눈빛을 보니 이거 싹수가 노란 놈이구만.

“에녹 타트라입니다.”

그렇게 말하곤 손을 내밀었다. 허. 이름만 말해?

그래, 반갑다 새끼야. 눈 안 깔아?

“뮐러 영지의 영주, 레오릭 프란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싱긋 웃어주고 악수를 끝냈다.

위아래로 살짝 훑어보지만, 별거 없는 놈이다. 타트라, 타트라 가문이라. 어디 사람이지? 기억에 없는 가문이면 신경 쓸 필요는 없나. 슬쩍 이리나를 보니 그저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굳이 안 끼어든 거 보면 그렇다는 소리겠지. 무시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아르윈. 오랜만이군요. 뮐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레오릭님. 그때 이후로 꽤 오랜…….”

이번은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학술회에서 꽤 진심으로 연구하던 사람이었던가. 그에게 웃어주면서 악수를 했다.

그렇게 한 명씩 인사를 계속했다.

* * *

­부비부비!

“잘 지냈어?”

“네! 레오님이야말로 잘 지내셨나요?”

“뭐, 나야 여전하지. 그런데…….”

내가 특별히 마련한 마차.

꽤 큰 마차 안에 일단 둘만이 탔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남녀가 함께 마차 안에 있는 건 좋은 건 아니지만…… 아까 인사했을 때부터 날 보는 시선이 너무 장난 아니어서 포기했다.

­싱글벙글.

같이 올라타서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웃는 표정을 짓던 이리나가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

“흐헤헤. 보고 싶었어요.”

“흐헤헤가 뭐냐, 흐헤헤가.”

입고 있는 옷이 헝클어진다, 그걸 지적할까 하다가 정말로 울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한숨을 쉬고 이리나를 안았다.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면서 부비거리는 이리나의 푸른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 레오님 향기~”

“……무슨 향기야 그건.”

아예 대놓고 고백한 날 이후부터 감정 표현이 직설적으로 변한 걸 좋다고 해야 하나. 얼굴이 풀어지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 말도 쏙 들어가 졌다.

그래. 고작 이걸로 좋다면야. 옷이 헝클어지든 말든. 마차 내리기 전에 옷 정리만 제대로 하면…….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데리고 왔어?”

사람들을 초대했다는 건 알지만, 너무 많다. 아니, 수용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내 말에 이리나가 품에서 벗어나서 허벅지 위로 걸터앉으며 내 팔을 꽉 껴안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그녀의 눈동자가 바로 앞에서 마주쳤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 이리나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내 입술을…….

“아니, 멈춰.”

“칫!”

가까이 다가온 입술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이 흐트러질 정도의 스킨쉽은 아니지. 내 말에 아쉽다는 듯이 이리나가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이건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내 품에 안겨 왔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 잘록한 허리. 전신에서 느껴지는 매혹적인 향수까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니 과연 여자로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참았다.

“왜 데리고 왔냐니. 오빠 영지 어차피 사람 부족하죠?”

“오빠?”

“……레오님.”

네 맘대로 해라.

“사람이 부족하다니?”

“쓸만한 인재가 없을 거 아니에요? 기사들도 많이 죽었을 거고. 준 귀족들도 없을 거고. 저 사람들 대부분 할 일 없는 사람들이니까 적당히 찜해놓으라는 거죠.”

으음.

그건 괜찮은 제안이긴 하지만.

이리나를 내려다보니 바로 코앞에서 큰 눈을 반짝이면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잘했죠? 칭찬해줘요.”

“…………그래. 잘 했어.”

“헤헤.”

꽉 껴안아 오는 이리나를 마주 안았다.

이제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커졌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난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가슴의 압박…… 이젠 애가 아니구나.

……이거 마차에 내려도 향수 냄새 풍기는 거로 알아차릴 것 같은데. 설마 모두 계산해서?

“헤헤헷.”

이리나가 그저 좋다는 듯이 바보처럼 웃는 모습에 그냥 내버려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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