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25화 (125/143)

〈 125화 〉 절벽 위의 꽃은 ­ 3

* * *

아르윈 카산드라.

카산드라 가문의 외아들이자 유일한 계승자로 그 역시 집 안 어르신들 권유로 보랭 가문, 특히 이리나 보랭의 사교 클럽에 참가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활동에 관심이 없었던 아르윈은 억지로 참가해야 하는 사교 클럽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고 그나마 관심이 있는 분야인 학술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물론 그 이외도 참가해야 했지만…….

“처음 뵙겠어요! 이리나 보랭이에요!”

“아,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그 모임에 참가했을 땐 꽤 마음이 편했다.

이리나 보랭이라는 소녀는 그가 들었던 소문 이상의 소녀였다. 귀족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드문 편은 아니지만, 그걸 생각하더라도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게 활발했으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주도적으로 펼쳤다. 그녀를 따라다니기 위한 많은 남자 귀족이 오히려 역으로 지칠 정도였다.

아르윈은 그걸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봤다.

그 역시 외모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호감이 없던 건 아니지만, 가문의 격의 차이도 있고,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그는 학술회 모임에서 고대 역사와 신화에 관한 토론과 마력의 본질에 관한 연구 등 생각보다 진지한 토론에 놀라며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여러분은 처음이시죠? 이분이 바로 프란츠 가문의 차남, 레오릭 프란츠님이세요!”

“반갑습니다. 프란츠 가문의 레오릭 프란츠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카산드라 남작가의 아르윈 카산드라입니다.”

그가 나타났다.

프란츠 가문의 특징으로 유명한 빛이 반사되며 빛나는 듯한 금색의 머리카락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황금색 머리카락. 보랭 가문도 마력의 질과 양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와는 한 단계 다른 격을 증명하는 듯한 외모.

그리고 보다 이질적인 건.

‘어째서 마력이…….’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귀족이라고 평상시에도 마력으로 주변을 압박하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기색이란 것이 존재한다. 거대한 무언가가 눈앞에 있다면, 설사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압박감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 자는 그게 없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티끌만큼도 흘리는 마력이 없다. 대체 뭐지?

“저 사람이…….”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는데…?”

“어머나. 멋진 남자.”

……주변에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건지 서로 속닥이면서 모임의 구석에 앉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는 레오릭 프란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거리지만, 그는 단지 학술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리나 보랭은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학술회 참가자들에게 고개를 돌려 외치기 시작했다.

“이번에 토론할 내용은 저희 보랭 가문의 마력에 대해서예요! 저희 가문의 마력에 대한 활용을 토론해봅시다!”

괜찮은 건가.

순간적으로 학술회에 참가 중인 사람들끼리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남의 마력을 연구한다는 건 예민한 일이다. 물론 대놓고 하지 않을 뿐이지, 남몰래 상대방의 가문을 연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하다니.

“괜찮…….”

“자! 그럼 시작하죠!”

주위의 만류를 무시하고 이리나는 곧바로 손을 펼치며 마력을 일으켰다.

일방적인 푸른색보다 옅은 느낌의 빛이 주변을 퍼지기 시작했다.

“자, 저는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학술회의 사람들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주제였다.

“무엇을 할 수 있냐는 거면…….”

“말 그대로예요. 보랭 가문은 하늘의 마력이라고 불립니다. 그럼 그 마력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사용법에 관해서 묻는 것이 아니겠죠. 음.”

당황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곧바로 토론에 빠져들었다.

이리나 보랭이 참석하는 모임 중에 인기가 없긴 하지만, 그만큼 활동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토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보랭 가문의 비행술은 특별하죠. 다른 가문의 마력으로 동일한 결과를 내놓기 위해서 드는 마력과 정신적인 피로를 비교하면 기이할 정도입니다.”

“비행술을 이용한 원거리 포격으로 보랭 가문을 뛰어넘는 가문이 드물 겁니다.”

“거기에 보랭 가문이 컨트롤하는 바람의 활용도는 엄청나죠.”

기존에 유명한 보랭 가문의 전법. 비행술, 바람을 조작하는 능력. 원거리 공격. 그런 주변의 말에 이리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라면 굳이 하늘의 마력이라고 불릴까요? 분명히 이 마력엔 다른 용도가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아르윈은 손을 들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일부러 가문의 비전에 대해 학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그건 당연해요! 왜냐하면, 보랭 가문이니까! 보랭의 마력은 예로부터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그 끝에 도달한 것이 바로 하늘!”

이리나의 팔이 펼쳐졌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기 시작하는 하늘를 떠올리는 푸른색 마력이 펼쳐졌다.

“하지만 듣기론 오라버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께서도 전부 선대에서 전해지는 기술만 사용하잖아요! 물론 그분들이 직접 만든 기술도 있겠지만, 결국은 가문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초에서 파생된 응용 기술!”

바람이 펄럭거리며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답니다! 선입견 없이 오직 저만의 하늘의 마력을 떠올리겠다고!”

너무나도 눈부시다.

단순히 운 좋게 좋은 가문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자신들과 다르다.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아르윈의 머릿속에 스칠 때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레오릭이 나섰다.

“그럼 이리나양이 생각하는 하늘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하늘? ……그건 자유입니다.”

이리나의 고개가 천장을 향했다.

천장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의 시선은 천장 너머의 하늘을 향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말에 레오릭의 고개가 흔들었다.

“말을 달리 말하죠. 그럼,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하늘입니까?”

“……그것은.”

하늘의 정의.

그 말에 학술회 사람들의 시선이 레오릭을 향했다.

“하늘. 정말 많은 의미가 담긴 단어죠.”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럼 그 하늘이 어디부터 시작합니까? 이리나양.”

“위, 저는 위라고 생각해요! 고개를 들며 보이는 푸른 하늘. 아무리 높은 건물 위에서 바라보든, 마력을 최대한 쥐어짜 높이 날아도 닿지 않는 하늘!”

이리나의 손이 허공에 뻗었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사람들은 몰랐지만, 마치 그만이 아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도 하늘이죠.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레오릭의 손짓에 허공에 금색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그 선 위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 평민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네요.”

“그렇네요.”

또 한 번 손짓으로 이번엔 더욱 높은 위치에 사람이 그려진다.

“이 평민에게 있어서 하늘을 날면서도 계속해서 하늘을 추구하는 이리나양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건.”

하늘에 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말이 막힌 이리나를 바라보며 레오릭의 손짓으로 그림이 바뀌었다.

땅을 표현한 선이 U를 그리며 깊게 패 간다.

“그럼 만약.”

그렇게 그려진 그것은 지하를 뜻하는 듯이 주변에 땅으로 묻혀있다. 그리고 밑바닥에 사람이 그려지며, 그 사람 역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하늘은 어디일까요.”

“하늘은, 하늘은…….”

“아직 지하이겠지만, 위를 바라보며 보이는 땅 위에 서 있는 사람들조차, 자유로운 하늘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겠죠.”

이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레오릭은 웃음을 지었다.

“저라면 우선 하늘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정하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무한한 하늘을 가두는 행위가 아닐까요?”

이리나의 말에 레오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 아닐까요?”

“그건…….”

“이리나양. 몇 번 대화하면서 느꼈지만, 당신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쇠사슬처럼 느끼고 있군요.”

“그, 그건…….”

이리나가 당황하며 레오릭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당신의 눈에 하늘은 아무것도 없는, 무한히 펼쳐있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이겠죠.”

“그, 그렇지 않나요?”

레오릭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저 하늘의 태양은, 달은, 별은, 구름은, 비는, 눈은, 우박은,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제 눈에 하늘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리나 보랭의 푸른빛 눈동자가 커졌다.

레오릭은 그런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상식과 편견에 얽매이지 마세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하게 당신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그대를 가두는 것은 가문이나 전통이 아닙니다. 당신을 옭아매는 것이야말로 상식과 편견의 감옥입니다.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기가 뭐가 나쁩니까. 그것 또한 보랭 가문의 사람들이 선택한 자유로움 중 하나죠.”

어느새 조용해진 학술회.

모든 사람의 시선이 레오릭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느끼며 레오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레, 레오릭님.”

먼저 일어선 그를 향해 이리나가 일어서는 것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본 그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모임입니다. 다음에도 참석할 수 있다면 참석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레오릭 프란츠는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야 사람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마력을 이용해 설명해줄 때도.

눈앞에서 보인 금빛 마력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힘을 단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을.

* * *

잠시 과거를 생각하고 있을 때, 소란스러운 주변의 소리에 아르윈의 시선이 옮겨갔다.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 저 멀리 뮐러의 도시. 작은 도시는 지나쳐 뮐러의 영주가 된 레오릭 프란츠가 직접 환영하기로 약속한 도시.

주변 다른 귀족들이 서로 불만을 나누는 한창,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멍하니 도시 위를 보고 있었다.

평범한 도시.

다른 귀족이 그 모습을 보고 역시 시골은 시골이다며 비웃는 와중에.

사람들의 시선이 도시 위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무서운 사람이야.”

아르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거대한 도시의 위.

고고히 떠 있는 태양을 감싸는 빛의 원이 있었다.

중간에 태양을 두고 십자 형태를 뻗은 거대한 빛의 십자가는 그저 빛을 고고히 뿌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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