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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24화 (124/143)

〈 124화 〉 절벽 위의 꽃은 ­ 2

* * *

프란츠 차남의 성인식이 열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갑자기 개최된 성인식이고, 원래 이런 이야기는 사전에 알려야 한다.

사교계에선 당연한 매너고, 특히나 여성들의 경우 드레스를 새로 맞춰야 하므로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에녹은 가지 않았다. 애초에 초대가 오지도 않았지만, 타트라 가문이 속한 파벌에서 다른 사람이 참가하기도 했고, 가문의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식을 알아차린 것이 늦은 걸까.

그 성인식에 참석한 이리나 보랭이 돌아오고 나서 열린 교류회. 오랜만에 만난다는 생각에 신난 에녹이 참가할 때는 이미 그 소문이 퍼져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습니까? 어찌 보랭 가문의 영애이신 이리나양의 성인식을 다른 영지에서 개최한다는 망언을 하십니까?”

“그렇지만 실제로 사교계에서 그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가문에서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까?”

“으음. 최근 가문의 다른 일에 바빠서……. 그럼 이 이야기가 진짜라는 소립니까?”

에녹의 말에 눈앞의 청년 역시 고개를 끄떡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랍니다. 듣기론 성인식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프란츠 가문의 차남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런…. 보랭 백작님께서는 별다른 말씀이 없답니까?”

“제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아직 어른들이 별말씀을 없는 걸 보면 그렇단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에녹은 상대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어른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애송이라고 여기는 건지, 이런 이야기는 모두 정해지고 나서야 통보해주는 식으로 끝난다.

자신들만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들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서 속닥거리고 있는 것이 대부분 그 이야기겠지.

인맥을 위한 자리이긴 하지만, 제일 큰 목적은 역시 이리나 보랭이다.

“성인식을 굳이 뮐러에 한다는 건 역시…….”

“아니,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남자의 걱정 어린 얼굴을 보면 무슨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있다.

보랭 가문과 프란츠 가문은 이전부터 가까웠던 사이. 사실상 남부를 대표하는 가문 중 하나이다. 이전부터 서로 자식을 보내서 결혼시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매번 그런 것도 아니고, 특히나 이번에는 서로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했고, 보랭 가문 장남의 경우엔 자식까지 봤다. 두 가문의 사이에 대해선 유명하다. 굳이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질 이유가 없다면 딸을 프란츠가 아닌 다른 가문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레오릭 프란츠.

이리나 보랭에 그 누구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남자.

에녹 역시 소문으로밖에 듣지 않았다.

그에 대한 소문은 남부 지방은 물론 수도를 비롯해 다른 지방에도 어느 정도 퍼질 정도로 수수께끼에 쌓인 남자다.

그들이 이리나 보랭을 노리는 것처럼.

백작 가문의 차남이라는 자리는 한없이 높다.

굳이 후계자라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그 혈통의 가치가, 작위급 마력 자체가 우습게 볼 자리가 아니다.

후작, 공작. 왕족까지 결혼해도 격의 차이로 문제가 생길 혈통도 아니다. 초대는 많이 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교 클럽 같은 모임이나 연회에 참가하지 않는다. 아니면 중요한 행사에만 참여하고 기껏 와도 곧바로 사라진다.

이번 성인식에 엄청난 것을 선보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런 건 백작 가문의 힘인 것이 분명하다!’

에녹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도 이거다.

애초에 지금 퍼지고 있는 소문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학, 예술, 의학, 건설, 건축 등등 가지각색의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고? 아무리 천재라도 한계가 있다!

물론 에녹은 아예 거짓된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천재고, 성인식에 그 능력을 발휘했겠지만, 그래도 소문이 너무 부풀어 올랐다고 판단했다.

에녹은 잠깐 주위를 둘러봤다. 같은 모임의 참가자가 아니더라도 얼굴 자체는 몇 번이나 마주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목적의 남자를 찾아냈다.

“크흠. 아르윈. 오랜만입니다.”

“아, 에녹. 그렇군요. 일 때문에 저번 승마 클럽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벌써 2달째군요.”

아르윈이라는 사내는 연한 갈색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청년이었고, 에녹이 알기엔 분명 레오릭과 같은 모임인 학술회에 참가하는 사내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확실히 아르윈은 이리나님과 같은 학술회 모임에 참석하고 계셨죠? ……프란츠 백작 가문의 차남도 소속된.”

“……아.”

에녹의 말과 동시에 아르윈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에녹도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그들을 한번 훑고 가는 시선들의 존재를.

역시나.

그들도 알고 있군.

은밀하게 보내지는 시선의 압력에 태연한 척 에녹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바깥 활동을 하시지 않은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소문으로밖에 듣지 못한 분입니다만, 어떤 분입니까?”

“으음.”

에녹의 말에 아르윈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반응에 에녹이 의아한 듯이 바라봤다.

뭐지, 이 반응은?

곤란한 것 같은, 당혹스러운 것 같은.

“확실히 레오릭님과 몇 번 만나보긴 했고 인사도 나눈 적이 있습니다만, 자주 참석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참석한 날도 곧바로 돌아가시던 분이라 어떤 분이라고 말씀드리기엔 곤란하군요.”

“그래도 뭐라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라도……입니까?”

에녹의 말에 아르윈은 잠깐 중얼거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서운 분이시죠.”

“네? 그건 무슨 뜻…….”

아르윈의 뜻밖의 말에 에녹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서운 분이라니. 성격이 나쁘다는 건가. 그 말에 반문하는 찰나 문에 서 있던 시종이 큰소리로 외쳤다.

“보랭 백작 가문의 영애, 이리나 보랭님이 입장합니다.”

이 사교 클럽의 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 * *

문이 열리고 그녀가 당당히 걸어왔다. 드레스 차림이라는 것이 대수롭지도 않은 듯이 당차게 걸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여전히 아름답다.

그 걸음걸이가 딱히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레이디 답지 않다며, 얌전하지 않다며 그녀의 뒷담화 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녀 앞에선 제대로 반론하지 못하는 녀석들뿐.

“긴 여행길 수고하셨습니다.”

“후후훗. 그리 긴 여행도 아니었어요. 유감스럽게도 프란츠 백작님을 뵙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프란츠 영지는 여전히 아름답더군요.”

“오오, 그렇습니까. 저 역시 그 유명한 프란츠 영지에는 한번 가고 싶군요.”

“호호. 좋은 땅이랍니다. 특히나 프란츠 영지에서도 보이는 대산맥의 풍경은 정말로 멋지답니다.”

“하, 하하하…! 그, 그렇습니까?”

마치 꽃에 꼬이는 벌들처럼.

그녀에게 모이는 사람들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봤다.

그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거나 만들어진 미소를 짓는 사람들. 이렇게 뒤에서 바라보면 자신 역시 저들과 같은 처지라는, 마찬가지인 것 같은 기분 나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에녹은 그 생각을 뒤로하고 헛기침을 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이리나님.”

“어머나. 오랜만에요, 에녹님.”

시선이 마주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대로 영원히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에녹은 애써 참았다.

“한 가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드문 일이네요. 네, 괜찮답니다. 무엇일까요?”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에녹은 표정을 다듬으며 이리나를 바라봤다.

“이리나님의 성인식을 뮐러에서 연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아……, 그 이야기 말이군요.”

에녹의 말에 이리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 순식간에 조용해진 연회장을 둘러보던 이리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이번 저의 성인식을 뮐러에서 열 생각입니다.”

“저, 정말이군요.”

“세상에…….”

“맙소사.”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연회장에서 에녹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르윈이 이리나에게 물어봤다.

“그럼 그 말이 사실이군요. 뮐러의 영주로 레오릭님이 되셨다는 것이.”

“네, 아르윈님. 이번에 뮐러를 통치하게 된 분이 바로 레오릭님이 되십니다.”

뮐러가 그리 큰 영지는 아니라곤 해도 그건 땅 대부분이 농지라서 그렇다. 물론 장남이 가문의 땅을 통치하고 차남이 속령이 된 땅을 통치하는 것이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걸 실제로 실행에 옮긴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으음. 프란츠 백작 가문의 영향력이 강해지겠군요.”

에녹은 아르윈의 중얼거림에 깨달았다.

사실상 남부 지방에서 대산맥 방향의 토지 대부분을 얻었다는 사실. 강한 군사력으로 유명한 프란츠 가문이 식량 보급에도 문제가 없어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째서 뮐러에서 여는 겁니까? 굳이 뮐러에서 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후후.”

그렇게 말하는 에녹을 향해 이리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당연하죠.”

“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에녹을 보며 이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레오릭님 때문이죠.”

“…….”

조용해진 연회장을 둘러보며 이리나는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마침 잘됐네요! 이번 저와 레오릭님의 성인식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겠어요! 정식적으로 서신을 따로 보내드리겠지만, 참가해주시면 기쁠 것 같아요!”

싱긋 웃는 이리나를 보며 에녹은 할 말을 잃었다.

* * *

저 멀리, 뮐러 영지의 도시가 보였다.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 속닥거리는 청년들, 특히나 그들의 중심에 있는 에녹 타트라를 보며 아르윈은 쓴웃음을 지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품은 모습이다.

머리가 깨부숴지지 않으면 다행이겠는데.

아르윈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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