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18화 (118/143)

〈 118화 〉 빡침 ­ 2

* * *

“어처구니가 없군.”

시간이 흘렀고, 사용했던 마력도 작다.

컨트롤도 조직 내에서 절대 낮은 편도 아니고, 임무의 특성상 은밀 작업에는 도가 텄다.

그런데도.

태양이 다가온다.

금빛으로 물들었고 태양처럼 스스로 빛내면서 차가운 시선으로 지상을 내려 보는 그의 손이 휘둘러지고.

빛의 기둥이 내려찍었다.

­쿠우웅!

거대한 빛의 광선은 그대로 그를 덮쳤다. 마력이 아무리 만능이라고 해도, 특성을 가진다고 해도 거리에 따라 그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 거리조차 별거 아니란 듯이 거대한 빛의 기둥은 그를 내려찍었다.

“쿨, 럭! 쿨럭! 하, 하하하!”

저항이란 저항은 할 수 없다. 마력이 있었다면?

“쿨럭! 쿨럭!”

사지가 부서지고, 전신을 덮친 고통이 무감각해진다. 피부가 타오르는 고통은 신경이 망가졌는지, 혹은 고통에 뇌가 망가졌는지. 퍼플의 나인은 희미해지는 시야 끝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빛나는 괴물을 바라봤다.

마력이 있더라도 도망은 무리겠지.

역시 아직 붉은 피는 귀족을 상대할 수 없다. 저 프란츠의 차남, 태양신이라는 별명으로 남부 지방에 명성을 얻고 있는 레오릭 프란츠도 아직 미각성인데, 공작은, 왕족을 상대할 방법은 없다.

“흐, 흐하하하하!”

속이 울컥거리는 느낌과 함께 피가 주르륵 입가에 흘러나온다. 이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 속 밝게 빛나는 무언가만이 겨우 보이는 가운데.

­덜그락.

차고 있던 팔찌를 풀었다.

희미하게 주변을 감도는 마력의 감각이 느껴진다. 하지만 먹은 약과 부상으로 인해 치유는 힘들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지.

“시, 시허음…….”

나름 중요하게 보관한 튼튼한 상자가 거의 부서져 있다. 아니, 이런 충격이 덮쳤는데 주변에 겨우 저 정도의 피해를 낸 것이 더 대단한 건가? 하지만 그러므로.

“시허음 개……시…….”

넘버 나인. 붉은 피의 여러 파벌 중 하나. 퍼플의 간부.

귀족의 사생아. 마력 보유자.

“부, 붉은 피에 주입한 약품은…….”

붉은 피가 인체 실험을 한다고 악평이라지만.

힘에 대한 탐욕은 붉은 피만이 있지 않다.

뮐러의 장남 티르손 뮐러가 하려고 한 강제 교배 명령도 결국 인체 실험이랑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실… 험…쿨럭!성공적…… 그렇… 쿨럭! 기에…….”

마력 보유자에게 직접 약품을 주입하겠다.

아주 약간 남은 마력을 조작한다. 떨어진 약품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고.

­콰직!

나인의 얼굴 위에서 병이 깨져, 액체가 떨어졌다.

* * *

“방심하지 않는다. 할 때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냉혹하게다. 그것이 귀족이라는 존재이며 이 땅을 지배하는 자의 의무다.”

떨어지는 액체가 공중에 멈췄다.

진작 알고 있었다.

당연하다. 전장을 지배하는 건 전투의 기본이다. 유리한 곳에서, 유리한 타이밍에 전쟁하는 것이 전략 전술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다. 전투라고 해도 다른 건 없다.

자신에 유리한 전장을 만드는 것.

그건 귀족들도 똑같다. 특히나 주변 자연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는 자라면 더욱더.

“쿨럭! 쿨럭!”

액체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놈이 기침하면서 피를 토한다.

“하, 하하하. 대단해, 정말 대단해.”

“뭐가 그리 즐겁지?”

공중에 떠 있는 액체를 주변 유리 조각을 뭉친 후 마력으로 꽉 뭉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있겠지. 그 상태로 한구석에 던져놓은 후 쓰러져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옷은 대부분 타 있고, 사지는 부서졌고, 전신의 반은 화상으로 엉망이 됐다.

지금도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부상. 제대로 말도 하기 어려운 모습에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 치유를 시작한다.

“흐, 흐흐. 쿨럭! 어이가 없지 않나…. 이게 정말로 인간이란 말인가……? 형태와 말이 통하는…… 쿨럭! 빼고는 몬스터랑 별 차이가 없지 않나……. 허억! 쿨럭!”

희미하게 뜬 눈동자는 초점이 이상했다. 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그런데도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놈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화상과 상처로 엉망이 된 얼굴에 푸른 마력이 미묘하게 묻어 있었다.

귀족이군. 적어도 작위급 귀족의 피를 이어받았다. 지금의 클로에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를 정도다. 막말로 당장 도망쳤다면 쫓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이유만으로 푸른 피를, 귀족을 증오하는 건가?”

“흐, 흐흐!”

내 말에 그자는 웃음을 흘렸다.

침을 흘리며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에 이대로 그냥 데리고 갈까,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개인이 가진 힘이…… 쿨럭! 별다른 절차도 없이… 오직 귀족의 의무라는 이름의 제대로 된 억제 장치도 없다……. 뭘 믿으라는 거냐…….”

“흐음.”

틀린 말은 아니지.

프란츠 가문은 그게 빡세지만, 다른 가문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막말로 내가 지금 여기 모든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 명분으로 주변 영지의 주인, 나와 같은 작위급 귀족이 직접 나설 때까지 제대로 된 저항도 할 수 없겠지.

“여기는…… 남부 지방은 평화롭지……. 하지만… 쿨럭! 일 년, 내내! 눈이… 내리는… 쿨럭! 북부…는? 제대로 된… 작물도 기르지 못하는…… 황폐한 동부는……!”

쿨럭!

그는 피를 토했다.

죽은 피다. 내장은 어느 정도 복구했다. 서서히 안색이 가벼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가 한계다. 제대로 된 치유를 받으려면 긴 시간 안정이 필요하다.

“그들은…… 명예도 모르는…… 쿨럭! 잔인, 하고……! 잔혹한… 짐승이, 다! 쿨럭! 쿨럭!”

“뭐, 이해는 되지만.”

하긴.

남부 지방이야 풍요에 정평 났지만. 딱히 이 나라가 아니더라도, 북부와 동부는 제대로 된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서부 역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긴 하지만, 그 면적은 적다.

그런 곳에서 강한 힘을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것 따윈,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뻔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땅에. 내 백성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고, 변명도 되지 않는다.

“뭐, 일단 자라. 일어나면 고문이 기다리니까.”

“크, 흐……! 재미, 있……군. 최…대한 버텨……볼까……. 괴… 물…!”

내 말을 끝으로.

입가를 비틀며 웃는 그의 눈꺼풀이 서서히 닫혔다.

축 늘어진 채 가는 숨소리만이 겨우 들릴 정도. 주변을 둘러보면 그의 물건으로 보이는 짐들이 있었다.

­영주님!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들을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도시를 둘러봤다.

서서히 빛이 줄어들면서, 다시 어두워지는 도시 속.

파괴된 몇몇 건물들과, 다친 사람들이 보였다.

“……시발, 진짜.”

* * *

급하게 열린 회의에서 필요한 사람만이 참석했다.

내 호위 기사이자 최측근이며 현재 기사단의 임시 단장을 맡는 클로에.

마찬가지로 최측근이자 내정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지크.

내 보좌로서 내 업무를 비롯해 클로에와 지크의 연락책을 하는 이자벨.

그리고 뮐러의 딸이자, 현재 성의 경비 대장이자 치안 부대의 대장인 트리아나 뮐러.

그 외에도 쓸만하다는 평가와 충성심으로 뽑은 몇 명의 가신들.

이게 현재 뮐러의 주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제가 뭐 아는 건 없습니다만, 급할 때일수록 침착하게 움직여야 하는 건 압니다. 여기, 영주님이 선호한다고 하신 차를 준비했습니다.”

“……그래. 고맙군.”

전 뮐러의 집사장이자 현 뮐러의 집사장이기도 한 세바스찬은 준비가 끝난 적막한 회의실을 돌아다니며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말은 맞지. 나도 굳은 얼굴을 풀고 차를 한 모금 삼켰다. 달콤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내심 긴장된 신체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그래. 그렇지. 어차피 일은 일어났고, 수습도 끝냈으니.”

­달그락.

차를 책상 위로 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복수해야지.”

내 말이 조용한 회의실을 채웠다.

날 보며 얼굴을 굳힌 다른 가신들도 모두 한 모금씩 마시는 것을 기다렸다.

“어떻게 됐지?”

“붉은 피가 벌인 테러라는 것으로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영주님께서 직접 해결했다는 걸로 됐습니다.”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미 내가 나섰다는 것 자체를 숨길 수도 없다.

제일 좋은 건 별다른 피해 없이 기사들이 해결했다는 거겠지만.

“쥐새끼는?”

“잡아서 감금 중입니다.”

지크는 이어서 보고서를 살피면서 말했다.

“다만 쥐새끼는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미끼겠죠.”

“그놈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자신도 인체 실험으로 삼으려고 한 독종이다. 철저한 감시를 명했지만.

“현재 치유 중입니다. 고문을 하기엔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치유하면서 상태를 지켜보는 중이며, 현재 기사들이 조를 바꿔가며 감시 중입니다.”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겠지만 귀족급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집념도 강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경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주의시키겠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떡인 지크는 다른 종이를 펼쳤다.

“마지막으로 괴물…… 사샤양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흔적이 있었다고 하는 괴물 역시 우리에 가둬둔 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마력을 무효하는 성질이 있는 것이 판별됐습니다.”

마력 무효라.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붉은 피에 의해 만든 인공적인 힘이라는 것이 문제겠지.

그 불길한 마력의 정체가 마력을 무효로 하는 힘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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