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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15화 (115/143)

〈 115화 〉 전초전 ­ 3

* * *

* * *

“내성 중심은 그다지 손을 안 보는군요.”

“거기는 워낙 잘 되어 있으니까.”

내성 중심은 방계나 기사, 돈 많은 부호가 사는 곳이다 보니 애초에 딱히 손 댈 구석이 많이 없다. 중세라고 우습게 볼만한 곳이 아니다. 현대의 유명한 외국 관광 지역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과 품격이 있었다. 물론 거기도 나중엔 손을 봐야겠지만, 거기까지 순위가 높지 않다.

“일단 일반 구역부터 먼저 손 보고 어느 정도 새로운 방식에 익숙했다 싶으면 해야지.”

새로 구상한 건 많다.

유감스럽지만 내가 건설, 건축에 대해 아는 건 쥐뿔도 없는 탓에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형태만 던져주고 나머지는 실제 업자가 직접 해야 하니까. 시행착오가 없을 순 없겠지.

“이렇게 보면 공사가 얼마 없군요.”

이자벨과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감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사람도 시간도 부족한 지금 일을 벌여서는 안 되니까. 일단 가능한 부분만 먼저 처리해야지.

“그래도 그럴싸하지?”

“네. 하나의 도로가 아니라 도로를 넓혀서 인도와 차도로 구분을 하다니. 이걸로 사고도 많이 줄어들겠죠.”

일단 중앙 거리에 먼저 작업을 하다 보니 꽤 그럴싸하다. 새로 땅을 다진 후 깔끔하게 깐 차도와 그 양옆에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만든 인도로 구별했다. 거기에 가로등까지 설치하니 여기만 별세계처럼 보이네. 그래도 양옆의 건물 자체는 이전이랑 똑같으니 별로 화려하진 않지만. 일단은 당장 좁은 도로를 약간 개조한 거에 불과하다. 나중에는 옆 건물까지 철거한 후 더 크게 만들어야지.

그래도 당장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은 여기까지다.

“초대장은?”

“남부 지방의 귀족에겐 전부 보냈고, 답장도 받았습니다. 대부분 참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 귀족은 하나둘씩 답장이 도착하고 있지만, 다른 지방의 귀족들에게는 이제야 도착할 겁니다.”

“응. 준비 똑바로 해. 우리의 명예만이 아닌 이리나 양은 물론 보랭 백작 가문의 명예도 걸려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이자벨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익숙하진 않겠지만, 원래 관리직으로서 나름 잘 하고 다닌 탓에 실수 없이 하고 있다. 모르는 건 제대로 물어보고 있고.

“이제 곧이군.”

물론 먼 거리에 오는 귀족도 생각하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이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얼마 남지 않았다. 곧바로 돌아가는 귀족도 있겠지만, 머무는 귀족을 위한 곳부터 시작해 음식이나 음악까지. 지금 준비한 로미와 줄리도 그 일환이다.

“별일 없을 겁니다.”

“그래야지.”

나름 처음으로 진행하는 일이라 위로하는 듯한 말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둘이서 내성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쿵!

“음?”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공사 현장인가요?”

“아니.”

애매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잔향이 있었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레오님?”

“이야, 이게 이런 부작용이 있네.”

이전이라면 조금 더 잘 느껴졌을 건데.

밤이라서 그런가 감각이 둔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떠 있었다. 물론 웬만한 마력 보유자보다 날카롭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감각이 둔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니 새삼스럽게 느껴지네. 근데 애초에 달빛도 엄밀히 말하면 태양이 반사된 빛에 불과한데 이럴 거야? 반대로 말하면 그걸 알고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나는 건지…….

“부작용? 괜찮으십니까?”

“음. 이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긴 하지.”

이자벨의 걱정에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당장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어쨌든 마력 보유자랑 엮인 것 같다. 가볼까?”

“병사들을 시키는 게…….”

“이게 더 빨라.”

평상시라면 나도 당연히 병사나 기사를 시키겠지만, 이왕 나들이 나온 거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탓!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그대로 대지를 박찼다. 가볍게 건물 위로 올라온 채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느껴지는 마력의 여파에 방향을 틀었다.

“저기는…….”

곧바로 따라 올라온 이자벨도 본격적으로 마력을 일으키고 감각을 강화하자 느끼기 시작했는지 나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유흥가네요.”

“유흥가면 모험가 때문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는 건…….”

­쿠우웅!

그때 한층 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시야에서 건물 하나가 무너졌다.

“레오님!”

“하. 이거 참.”

입가가 비틀렸다.

어떤 놈이 사고 치는지 모르겠지만, 뒤졌다 이놈.

* * *

“이런 시발.”

품에 넣은 종이를 살펴본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종이를 구기며 다시 품에 넣었다.

뭐?

지하에 있는 그걸 풀라고?

그럼 그게 어디에 있었고, 그 장소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이 들킨다.

“이대로는 위험해.”

말은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버린 패다.

거기에 지원? 최근 강화된 검문으로 몰래 숨어들기도 어렵다. 뇌물을 받던 병사들도 대부분 바꿔치기 당했고, 경비 대장인 트리아나 뮐러가 상당히 엄하게 병사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지원이든 뭐든 어쨌든 도망쳐야겠다. 이제 조직은 답이 없다.

애초에 밑에 있는 저것이 뭐든 그 태양을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도시에 숨는 것도 한계가 있다. 최근 수상한 기색이 많다. 도망치면 조직이 쫓아올 수도 있지만, 이대로 있어서 잡히는 것보다 좋다. 최대한 돈 되는 것만 들고 도망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조직원들은 이미 알아서 돌아갔다. 이제 여기에 남아있는 건 자신뿐.

­끼익, 끼익.

허름한 지하실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들리는 소리에 침을 삼켰다.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그도 자세히는 몰랐다. 몇 번 보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그의 윗사람이나 조직에서 왔다는 사람들만 알았다.

“비장의 무기는 무슨…….”

그랬다면 진작에 썼어야지.

다 뒤지고 난 후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즉, 지금의 자신처럼.

“이 새끼를 풀어준 후에 숨어있다가 타이밍 보고 도망치는 거야. 그럼 돼…….”

조직도 이 새끼 뒤처리나 뮐러의 움직임에 곤두설 것이고, 이 새끼의 일 때문에 영지도 바빠질 테니 도망치는데 문제없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도망친다고?”

“우와아아아악!”

아무도 없어야 할 집. 등 뒤에 갑자기 들린 소리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창백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 거기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언제부터 붉은 피가 그렇게 쉽게 들어오고 떠날 수 있는 조직이 된 거지?”

“히, 히이익! 누, 누구십니까?!”

힐끔.

주저앉은 남자를 본 사내는 흥미 없다는 듯이 집 안쪽을 바라봤다. 잠깐 주위를 둘러본 그는 이내 바닥을 내려다본다.

“여기에 있군.”

작게 중얼거린 그가 팔을 뻗는 순간, 푸른 마력 빛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 마력! 귀, 귀, 귀족……!”

“하.”

깜짝 놀란 남자가 그렇게 외치는 걸 듣자, 그는 짜증 난다는 듯이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력을 쓰기만 하면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멍청한 놈.”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보던 그는 마력을 두른 팔을 휘젓는 순간,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숨기기 위해 고정했던 바닥이 통째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안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한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직, 조직에서 오셨군요! 사, 살았습니다!”

그때야 정신을 차린 남자는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갔다.

“여, 여기의 영주는 인간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대지의 축복에서 그 귀족은 정말로 태양을 불러왔습니다! 어,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

시끄럽게 굴면서 따라오는 남자를 무시한 채 내려가는 그는 이내 지하실에 도착했다. 마치 연금술사의 공방인 것 같은 수많은 약품으로 가득 찬 공간 속,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이전 담당자도 허무하게 죽었고, 이젠 정말로 저밖에 없습니다!”

“그럼 다른 조직원들은 어디에 있지?”

“주, 죽은 놈들을 제외하고 남은 놈들은 이미 자기들의 은신처로 돌아갔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남자에게 필요한 것만 물으며 발견한 무언가를 주운 남자는 아직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공간에서 푸른 눈동자만이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 다른 조직원은 자신이 붉은 피인지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저랑 같이 도망쳐야…… 윽!”

콜록! 시끄럽게 떠들던 남자가 목을 붙잡았다.

목이, 목이!

뭔가가, 목을 조르고 있어!

“사, 살려…! 살려주……!”

부들부들 몸을 떨며, 털썩 주저앉은 남자를 향해 그는 무심히 내려다봤다.

“붉은 피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건가? 그렇게 쉽게 도망을 입에 올리다니. 그리고 그런 멍청한 붉은 피들을 계몽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사명이다.”

그래.

그리고 그 증오스러운 푸른 피야말로 우리들의 대적자이니.

“이것이 위대한 사명을 위한 우리들의 첫걸음이다.”

그는 손에 넣은 약품의 뚜껑을 열고 남자의 입을 강제로 열기 시작했다.

“읍! 으으읍!”

“너의 희생으로 우리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간다. 위대한 계획의 밑거름이 된 것을 축하하지. 드디어 너에게도 쓸모가 생겼구나.”

비록 귀족과의 격차가 아직도 크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기에 탐구하고, 연구한다. 그것이 인간의 힘이기에. 인간이 가진 가능성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에.

“너 역시 그러한 맹세를 하고 붉은 피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으읍, 으으읍!”

남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 속에 그려진 붉은 색의 문양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다행이구나. 맹세하지 않은 조직원밖에 없었다면 실험을 못 할 뻔했는데. 아직 남아있어서.”

그의 행동에 공포에 질린 눈동자로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국, 숨을 참지 못하고 벌린 입에 천천히 약품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력은 평등해야 한다.”

붉은 피는 어리석고, 푸른 피는 오만하다.

마력은 모두가 가져야 할 가능성의 힘. 평등하게 손을 얻어야 할 힘이다.

­고오오오오오오!

퍼플의 나인(9)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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