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전초전 2
* * *
어두운 골목길 사이로 여러 도구를 파는 가게의 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나왔다. 주변을 자연스럽게 둘러본 그는 다시 묻을 닫으면서 안에 있는 남자에게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조심해라. 지금 상황 안 좋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괘, 괜찮겠죠?”
“당연하지. 가만히 여기에서 기다리기나 해. 지하엔 내려가지 말고.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허름한 가게로 위장한 곳에서 나온 사내는 안에서 쩔쩔매며 겁에 질린 얼굴을 조직원들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칫.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자기가 직접 명령할 일도 없었을 정도로 격차가 있었지만, 그 전쟁으로 마치 핀포인트처럼 죽어버린 조직원들 때문에 현재 뮐러에 있는 붉은 피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세력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진짜라고 할 수 있는 순수혈통인 붉은 피는 자신을 포함해 몇 명 되지도 않았고, 나머지는 하수인에 불과했다.
“빌어먹을.”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지.
이번 일만 잘하면 붉은 피 간부가 될 수도 있었는데. 윗사람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멍청한 놈들. 그런 무능한 놈들 밑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자신이 주도했다면 전혀 달라졌을 것을.
남자는 투덜거리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옷을 갈아입고 약속 장소까지 걷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그림자에 몸을 숨겨 그를 뒤쫒았다.
* * *
마셔라! 마셔라!
푸하하하하! 그년 엉덩이 참 탐스럽네!
네 거시기는 손가락만 하고, 새끼야!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득 찬 주점이다.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라 치안이 그리 좋진 않지만, 싼 편에 나쁘지 않은 요리 솜씨로 이 근처 사람들의 맛집 중 하나다.
그 근처까지 걸어간 남자는 마지막으로 한숨 쉬고 표정을 바꿨다.
“오, 있었군.”
“뭐야! 왜 이리 늦어?”
“일 마무리는 하고 와야지!”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서 미리 약속 잡은 모임에 합류한 그는 술을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약속한 대로 아직 안 왔군.
“이번 제이슨 그 사람 일 들었어?”
“제이슨? 농부의 제이슨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이번에 대박 났잖아!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위탁금도 받은 것 같더라고!”
“허어. 이번 농사는 그럭저럭 이라고 불평했던 것 같은데.”
예전에 한 번 술을 같이 마신 적이 있었다.
“이번에 의식이 엄청났잖아. 내년에 무조건 풍년에, 곡식도 엄청 질 좋아진다는 소문이 파다해. 제이슨뿐만 아니라 지금 상단들이 계속해서 내년 거래를 미리 계약하고 싶다고 다들 모이고 있잖아?”
“아, 그거 말인가.”
남자의 말에 문득 그날의 광경이 머리에 스쳤다. 맑은 하늘에 뜬 그 태양. 인간을 초월한, 정말로 인간인가 싶은 그 압도적인 모습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태양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뮐러의 영주. 금발과 금안. 화려한 외모와 그 마력은 이미 주변 다른 도시에도 소문이 퍼졌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뮐러에 오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였다.
“뭐야, 얼굴색이 안 좋은데?”
“크흠.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네. 거참, 사람 앞길 모른다고 제이슨 그놈도 그렇게 될 줄이야.”
“그러니까 말이지! 푸하하하!”
곧바로 말을 돌려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문이 열릴 때마다 몰래 시선을 입구로 향했다. 이번 접선은 전쟁 이후로 처음 가지는 일이라 평소보다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면서 긴장한 몸을 풀었다.
조직의 특성상 점조직이고, 서로 간의 연결도 희박하다. 간부를 비롯한 몇 명을 제외하면 자신이 붉은 피라는 것도 모르는 조직원도 있다. 예전이라면 귀족에 불만을 가진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간단했지만, 최근 영주가 바뀐 이후로는 그런 사람도 적어지고 있다.
지금 자신도 만약을 대비해 밖으로 놀러 가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다.
딸랑!
“사장! 여기 맥주랑 소시지 좀 주소!”
“알겠습니다!”
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나타나 자연스럽게 요리를 주문했다. 미리 약속한 복장과 주문, 그리고 장식까지 확인하고 그 남자가 조직의 사람 혹은 그 심부름꾼인 거까지는 확인했다.
“그래서 말인데, 최근 새로 생긴 창관은 알고 있냐?”
“창관? 최근 생긴 곳이면 붉은 꽃의 화원을 말하는 건가?”
새로 생긴 곳이라면 거기겠지.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최근 여러 서비스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 거기가 진짜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확실히 프란츠에서 왔다고 했던가?”
설마겠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같은 프란츠에서 왔다고 하지만, 창녀와 귀족이다. 둘이 엮일 리가…….
“특히 프란츠의 붉은 꽃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유명한 주인의 딸들이 여기 사장으로 왔다잖아. 와, 그 여자들이랑 하룻밤만 잤으면 좋겠는데.”
“하하하. 자네 전 재산을 넣어도 어림없겠는걸.”
“푸하하하하! 그거 맞아! 사실 소문인데, 여태 그 누구도 그 쌍둥이 자매랑 같이 잤다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호오.”
잡담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척하며 술을 마셨다. 뒤에 앉은 남자 역시 배고픈 척 식사를 하는 걸 지켜보고 손에 든 맥주잔을 내렸다.
“아, 벌써 두 잔을 비우니까 속이 찼나. 잠깐 물 좀 빼고 오지.”
“얼마나 마셨다고 그러는 거야? 요즘 자주 안 나와서 많이 약해졌나 봐?”
“말도 마. 최근 좀 숨통이 트여서 겨우 나온 거야. 전쟁 중에 장사가 안돼서 눈앞이 막막했다니까.”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에 맞춰서 따라오는 남자의 행동을 확인했다.
쪼르르르르.
실제로 오줌을 누면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선도 교환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 마력을 이용한 원격 감청을 대비한 거다. 그러면서 그가 먼저 자리에 벗어날 때, 그의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가 떨어졌다.
슥.
그 종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품에 넣은 후, 자연스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뒷자리에 앉은 그도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식사를 시작한다.
* * *
화려한 옷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에 눈이 돌아간 남자들이 모이는 화려한 건물. 아름다운 음악이 울리는 곳. 요즘 뮐러의 남자들 사이에서 화제의 장소가 된 곳.
붉은 꽃의 화원.
그 건물의 뒤쪽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는 남자는 곧바로 최상층까지 올라갔다.
최상층에 있는 이 화원의 주인이 있는 곳. 거기까지 올라간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간 남자는 안에 있는 화려한 여자에 잠깐 넋을 잃었다. 이 여자의 아래에서 일한 지 시간이 흘렀지만, 볼수록 아름다워지는 모습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금처럼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선홍색 보석이 떠오르는 눈동자. 예술품같이 아름다운 외모는 창관에서 일하는 다른 여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다. 잠깐 넋을 잃고 보다가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정신을 차린 후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목표물이 쥐새끼와 접선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쥐새끼는 도시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감시하고, 목표물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감시하세요. 그리고 이 정보는 바로 성으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보고를 받은 여자, 니냐는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목표물을 찾는 건 금방 찾았다. 그자는 자신의 용모가 알려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조심하는 것 같으나 애초에 원래 외모로 활동하고 있으니 변장하지 않은 것 같다.
“저기…….”
그때 보고한 남자가 머뭇거리며 니냐를 바라봤다.
“또 용무가 있나요?”
니냐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조아리며 남자가 말했다.
“목표물을 우리가 잡으면 어떻습니까?”
“……무슨 말이죠?”
눈살을 찌푸리며 니냐가 말했다.
“성에 연락해서 기사나 병사가 잡기 전에 저희가 먼저 목표물과 쥐새끼 둘 다 잡는다면 그분께서도…….”
탁!
니냐는 일하고 있던 펜을 놓고 남자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몸을 움찔한 남자는 고개를 조아렸다.
잠깐의 침묵. 니냐는 남자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착각하지 마세요.”
“네, 네!”
서슬 퍼런 모습은 레오릭이 알고 있는 니냐의 모습이랑은 달랐다.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 역시 뒷골목의 사람인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했다.
“저와 사샤가 그분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해서 망각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꿀꺽!
남자는 니냐의 압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분이 저희에게 빠진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그분에게 매달리는 것이죠. 이건 큰,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 옛!”
“명심하세요. 저희는 그분의 관심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영광을 받는 겁니다. 과한 욕심은 자신의 파멸을 당길 뿐입니다. 잊지 마세요.”
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순간, 파멸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당신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화원을 위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 드리죠. 물러나세요.”
“네, 네!”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방을 나서는 남자를 보며 니냐는 한숨을 쉬었다.
동서고금.
신화에 나오는 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의문을 품고, 욕심을 부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끝은 대부분 똑같다.
신은 용서하지 않는다. 오직 벌을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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