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10화 (110/143)

〈 110화 〉 수도에서 온 손님 ­ 3

* * *

대지의 축복을 하는 날도 정해졌다.

축제 준비가 빠르게 진행됐다.

원래 이쯤에 할 생각이기도 했다. 뮐러가 아닌 도시나 마을은 지방 축제 같은 느낌으로 이미 하고 있을 거고, 제일 크게 하는 뮐러 축제 역시 미리 준비했으니 별문제는 없다.

애초에 일이 있다고 해도 내가 직접 할 일은 평소 업무랑 마찬가지고 아랫사람들의 일이 많이 늘어난 것뿐이지.

거기에 추가된 거라면.

“허어. 이게 바로 그……!”

데자뷴가?

아니 그보다 더 강하다.

마정석을 가공해 안이 비치는 투명한 통에 담가진 거대한 크기의 산삼. 그렇다. 아멜리아 공주에게 줬던 그 산삼이다. 솔직히 이젠 몇 개 없어서 아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어스레인 공작이라면 줄만 한 가치가 있지. 거기에…….

내 생각대로 공작은 그 통을 두 손으로 받들면서 받은 후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오오.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아멜리아 공주보다 반응이 더 격하다. 뱃살이 덜덜 떠는 것이 보일 정도로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도 연기라면 속아도 인정이다. 저 나이쯤에는 역시 대산맥의 산삼이지. 마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정력에도 좋고, 피부 미용에도 좋고! 나중에 프란츠로 가서 더 없나 기웃거리기나 해야겠다.

“이런, 이런 귀한 것을 폐하께 헌상하지 않아도 되오? 온전히 내 것으로 삼아도 되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을 꽉 껴안으면서 날 애절하게 보는 공작의 모습에 고개를 끄떡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하하. 폐하께 드릴 선물은 따로 챙기겠습니다. 그건 친히 이곳까지 찾아오신 공작 각하께 드리는 제 작은 성의입니다.”

그래. 작은 성의(뇌물)다. 성의로서 만점짜리 성의지. 프란츠 가문이 아닌 이상 어떻게 구할 수 있겠나?

그러니 잘 부탁합니다, 공작 각하.

“하하하! 역시 뮐러 영주요. 성인식 때부터 느꼈지만 요즘 청년답지 않구려! 아, 이건 그대를 깎아내리고자 말하는 것이 아니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오, 뮐러 영주는 배포가 크군. 브람스 왕국을 대표하는 청년다워!”

영주를 단순한 청년 취급하는 건 예의가 아니긴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흔들면서 말실수를 사과하는 행동. 꼰대도 이렇게 행동한다. 그것이 바로 대산맥의 산삼.

근데 내가 언제부터 왕국을 대표하는 청년이 된 거지?

“제 나이에 영주라는 직함은 과분하죠.”

어린 편이긴 하지. 성인식을 늦게 했다고 해도 이제 막 성인을 넘어선 나이다. 뭐, 이건 현대인의 기준인가? 그렇다고 해도 한 땅의 주인이라고 하기엔 젊지.

“음! 아니오! 그럴만하오! 젊은 나이에 영주가 된 귀족이 드문 일이긴 하지만 전례가 없지도 않은데, 그 젊은 나이에 혈통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고유의 마력을 깨닫기까지 했으니, 실제로 그대의 업적은 훌륭하오. 아마 뮐러 영주, 그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도에서 뮐러 영주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오.”

“그렇습니까?”

그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어머니가 비슷한 내용을 적긴 했지만….

“후후. 프란츠 백작 부인도 지금 사교계의 스타로 활약하고 다니고 있소. 어느 연회에서도 백작 부인을 초대하기 위해 수도의 모든 귀족이 프란츠 가문의 저택에 사람을 보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오.”

어스레인 공작의 과찬에 고개를 숙였다. 역시 이럴 때는 점잖은 모습을 보여야겠지.

“그래! 그대, 결혼은 아직이오?”

“……네?”

“천만에!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 같이 열정과 근성이 부족하오. 나 때는 설사 마력이 부족해 밀리고 있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정신이 있지만 요새 애들은 그저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포기하는……!”

아.

계속 대화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못 가도록 막고 있었는데, 결국 기회를 주고 말았다.

어스레인 공작이 또다시 라떼를 시전하고 말았다. 이번이 3번째다. 이 사람 보기보다 말이 엄청 많다. 성인식 때는 얼굴만 비추고 금방 돌아갔기 때문에 몰랐는데, 공작 가문이라서 조심했던 게 허무해질 정도로 수도 사정이라던가 공작 가문의 일까지 술술 말하고 있다.

내가 오히려 계속 들어도 되나 걱정될 정도다.

시선을 돌려 옆에 문 근처에서 대기하는 기사가 있는데 공작 가문의 기사라서 그런가, 작위급 마력을 가진 기사 아저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들었소? 최근에는 젊은 애들이 모여서 현 왕국의 정치에 관한 토론, 사상과 이념에 대해 비판하는 일이 잦소. 뭐, 그건 좋소. 젊은 혈기도 있고, 가진 꿈이 있다면 서로 이야기하며 재능을 피우는 건 좋소만 현실을 모르고 그저 감정만 해소하며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는 것이 정말 보기 싫을 정도요. 우리 아들은 그런 거에 참가하지 않고 가문의 일을 돕는 걸 보면 자식 정말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하하. 그렇군요.”

열렬히 외치는 어스레인 공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떡였다. 위험한 모임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런 모임 하나하나 태클 걸면 끝이 없다. 예전부터 비슷한 건 있었다고 하고. 모임도 그런 모임만이 아니라 예술이나 취미에 관한 모임도 있고 인맥을 도모하는 모임도 있으니까.

“그대는 모임에 참가하지 않소? 그대를 알아봤을 때 영지에 거의 칩거하는 수준이더군. 그대의 소문이 다양하게 난 이유도 그 이유 때문이겠지.”

사교계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귀찮을 뿐이다.

애초에 이 세계에 사교계라는 건 영지를 떠나는 일이 잦다. 아니면 자기 영지에 모임을 개최해야 하는데 얼마나 귀찮은지. 초대에 손님 맞이할 준비에…….

다만 지금은 뮐러 영지를 정리한다고 손님이 없을 뿐이지, 아마 지금부터는…….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떡이며 어스레인 공작이 말했다.

“그래. 알고 있으니 다행이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이곳에 온 것도 있고 아마 이제부터 주변에서 연락이 올 것이오. 잠깐의 시간이지만, 그대라면 충분히 잘할 거로 생각하오.”

“절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겠지. 이전 만났을 때부터 뮐러에서 성인식을 해달라고 한 이리나를 생각하면 할 일은 많다.

“그리고…….”

사소한 잡담을 이어가는 중, 어스레인 공작이 갑자기 말을 흐렸다. 나도 분위기를 보면서 공작이 입을 여는 것을 기다렸다.

어스레인 공작이 여기에 온 이유. 사실 브리네어 왕이 보자고 하는 거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왕이 보자고 한 말을 굳이 공작이 직접 올 이유는 없으니까.

“짐작은 했겠지만 사실 그대를 보고자 한 이유는 또 하나 있소. 이번 대지의 축복 말이오, 그대도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허어.”

이건 예상치 못한 주젠데. 갑작스러운 말에 말이 막혀서 공작을 바라봤다.

“굳이 제가 말입니까?”

하라면 할 수 있지만, 어스레인 공작이랑 같이하라는 건 나도 좀 그렇다. 일단 면적이라던가 효과도 비교당할 수도 있고, 애초에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어스레인 가문이 해왔던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영역을 건드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건데.

“흠. 뭐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어스레인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농사꾼이었소.”

“유명한 이야기죠.”

아주, 아주 먼 옛날이야기다.

그땐 왕국도 없던 시절, 한 농사꾼이 마력에 각성했는데도 계속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만난 것이 두더지다. 지렁이를 잡아먹긴 하지만, 땅을 갈아엎기도 하는 동물. 현대에서야 농약부터 시작해서 여러 방법이 있어서 해수 동물 취급이긴 하지만…….

“농사를 짓던 조상은 그 두더지를 보고 마력을 농사에 쓰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오. 연구라고 할 것도 아니지. 까막눈인 농사꾼이 자손을 대대로 보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그걸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아들은 또 자기 아들에게……. 그렇게 계속해서 농사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에 불과했다오.”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대단한 것은 마력의 양 자체는 적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연구해온 결과, 요즘 시대의 남작, 자작 정도의 마력으로 고유의 마력에 각성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지의 마력…….”

땅 위에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종족의 특성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고유의 마력. 한 나라의 왕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아니오.”

그러나 공작은 내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대지의 마력에 한없이 가까운 무언가요. 그저 칭할 것이 없어 대지라고 칭했지.”

“네? 무언가라니….”

공작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 만난 것이 그대요, 뮐러 영주. 아주 우연이었지. 그때 그 성인식에 참가할 때, 그대를 만나 설마설마했소. 그리고 소문을 들었을 때는 꼭 다시 한번 만나고자 했지.”

“저를 말입니까?”

그렇소.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대는 알고 있소? 태양의 중요성을.”

태양.

모든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에너지를 얻는다. 생물도, 동물도, 땅도, 바다도, 인간도.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 지구의 대부분의 에너지 순환이 정지한다.

“내, 그대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요. 그대라면 우리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소.”

그렇게 말하는 공작의 눈은 한없이 진지했다.

* *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