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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09화 (109/143)

〈 109화 〉 수도에서 온 손님 ­ 2

* * *

“하하하! 이렇게 또 만나니 더욱 반갑군! 아니, 이제는 말을 놓긴 어렵겠군. 그렇지 않소, 뮐러 영주?”

“아직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그런 예는 과합니다.”

아주 예전부터 신앙의 상징이 되었던 갈색 두더지 문양은 이제 한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되었다. 그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나타난 건 어스레인 공작이었다.

얼핏 보면 이웃집 아저씨 같은 외모다. 숱이 없는 머리카락과 툭 나온 배. 그리 큰 키는 아니며 동글동글한 얼굴. 곱게 휜 눈썹과 인자한 미소까지. 그러나 외모로 우습게 보면 큰일 난다.

성문에서 그를 맞이한 후, 성내까지 어스레인 공작을 직접 안내했다. 성인식까지 참석해준 분이시니 소홀히 대할 수도 없지.

“말 편하게 하시죠. 어스레인 공작 각하. 전 아직 작위도 없는 애송이입니다.”

“작위가 무슨 대단한 거라고. 거기에 그것도 시간 문제가 아니겠소.”

그건 작위를 준다는 건가?

이건 아예 대놓고 흘리는 거다. 수도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대형급 몬스터도 홀로 토벌했다고 들었소. 귀족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이미 한 사람의 훌륭한 귀족이니 누가 그대를 애송이라 부르겠소? 거기에…….”

어스레인의 흙색 눈동자에 미묘한 일렁임이 느껴졌다. 대단하네.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봐야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한 마력 조작이라니. 마력 자체가 은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니 단순한 공작이라는 직위를 떠나 순수한 마력 조작 능력이겠지.

하지만 일렁거린 눈동자를 알아차리는 건 자각 능력이랑 다른 문제다. 갑작스럽게 바뀐 눈동자에 내 주위에 있는 기사들의 손이 검 위로 올라가자 반대편에 있는 어스레인 가문의 기사들도 손을 검 위로 올렸다.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분위기에 어스레인 공작이 먼저 손을 올렸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만. 진심으로 사죄하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허리를 펴시죠, 공작 각하.”

나 역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아무리 어스레인 공작이 직위가 높다고 해도 눈앞에서 마력을 움직이는 건 매너 위반이긴 하지. 그래도 곧바로 고개를 숙이다니. 그렇게 꼭 확인하고 싶었나?

“허허. 그때도 설마설마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마력의 질이 이렇게까지 바뀔 줄이야. 대단하오, 뮐러 영주. 이건 단순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거늘.”

“과찬입니다. 우연히 깨달은 이유에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소. 고유의 마력은 한 분야에 특화한 유에 만능성이 떨어진다오.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소. 이때 마력에 홀리는 것도 조심해야 하오.”

마력에 홀린다.

애초에 신앙심? 같은 사람들의 감정에도 관련이 있는 이상 소유자의 정신에도 밀접하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홀린다는 말은…….”

“고유의 마력에 홀려서 거기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오. 조금 다른 의미지만, 대표적인 것은 바흔 왕국의 샤리네어 공작이 있지.”

“……네? 그분이?”

그 상어?

내가 당황하자 어스레인 공작이 말했다.

“그 일족은 마력에 홀리는 것을 오히려 권장하는 것 같소만, 실제로 그렇게 홀린 나머지 그 끝이 그 모습이지 않소. 그 지경까지 가야만 하는가, 난 아직도 이해되지 않소.”

뭐? 그럼 원래는 인간이야?

아니! 확실히 외모에 놀라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아서 나도 그냥 넘겼는데. 그런 경우도 있구나. 나 역시 프란츠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봤지만, 온갖 비유가 섞인 글에 그러려니 했는데, 화(化)한다는 게 말 그대로의 의미였나.

놀란 얼굴에 그리 걱정될 건 아니라고 했다. 말 그대로 끝까지 가지 않은 이상 그 정도는 되지 않는다고.

“장단점이 있소, 장단점이.”

그렇게 말하는 어스레인 공작은 웃음엔 미묘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뮐러 영주, 만약의 이야기지만, 이대로 진정한 태양의 마력에 눈을 뜨게 된다면 새로운 가문, 새로운 혈통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그대의 선택에 따라 일족의 운명 자체가 달라질 것이오. ……훗. 이 분야의 선배로서 늙은이의 잔소리라고 생각하시오.”

“아닙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꽤 중요한 이야기이다. 좀 전의 사죄이기도 한 걸까.

수도는 어떻든 어스레인 공작 개인적으론 나를 좋게 보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잔소리를 하나 더 하면은 실제 백작, 후작의 직위가 있다고 해도 고위 작위보다 뒤떨어진다고 할 순 없소.”

“그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특화와 만능의 차이겠지.

내 말에 어스레인 공작이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게 당연한 거지만……. 그걸 착각하는 자가 많아서 곤란하오.”

“으음.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보군요.”

“다름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이…….”

요즘 젊은이…….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는데.

친숙하게 느껴지는 말이 나왔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자 어스레인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떼는…….”

“크흠.”

헛기침하고 곧바로 말을 돌렸다.

“그럼 이번 대지의 축복은 공작 각하께서 직접 하시는 겁니까?”

“아, 그렇소. 그럴 예정이오.”

내 말에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주제가 옮겨갔다.

휴. 다행이다.

“뮐러 영지에 공작 각하께서 직접 나서시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제 올지,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게 그런 부분만 신경 썼는데.

“하하하. 오랜만에 참가한 성인식의 주인공이 한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얼굴 정도는 비춰야 하지 않겠소?”

진짜로 그 이유일 리가 없지.

이 사람을 모시려고 얼마나 많은 영주가 뇌물을 바치고 있을지. 애초에 공작이 직접 대지의 축복을 하러 오는 일이 있긴 하나? 수도의 귀족도 얼굴 한 번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그쪽은 뮐러의 영애로군?”

마치 지금 알아차렸다는 듯이 어스레인 공작이 말하지만, 내 뒤에 서 있는 트리아나는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반갑습니다. 어스레인 공작님. 트리아나 뮐러입니다.”

“반갑소. 잘 지내는 것 같구려.”

“네. 영주님의 은혜가 있어서 지내는 것에 불편한 건 없습니다.”

“음. 그대의 아버지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선대 뮐러 영주와는 이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아직도 잘 지내오?”

“네. 요즘 몸이 편찮으셔서 요양 중이지만, 크게 위중하지는 않아 종종 산책도 하고 계십니다.”

“그렇소? 그거참 다행이구려.”

트리아나도 이런 고위 귀족을 보는 건 처음이겠지.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태연한 태도로 대하며 대화하는 어스레인 공작이지만 굳이 선대 뮐러 영주를 만나려고 하진 않는다. 그저 그녀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건가?

“그럼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좋겠소. 준비는 이미 끝났다고 연락을 들었소만.”

“네.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어스레인 가문이 자랑하는 대지의 축복은 꽤 장엄하다. 땅이 마치 파도치듯이 갈아엎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신앙을 엎기 딱 좋은 장면이겠지.

“그럼 일주일 후가 적당하지 않나 싶소만.”

“그날이면 나쁘지 않군요.”

뮐러에도 축제는 있고, 그 준비도 끝냈으니 빨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이렇게 간단히 정해지는 것이 불안해질 정도다. 그렇다면 공작이 직접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건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후후. 좋소. 이야기는 빠른 게 좋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어스레인 공작도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수도에 한 번 오는 것이 어떻소?”

“수도에?”

갑작스러운 말이다. 지금 수도에 행사가 있던가? 주요 행사는 없는 거로 아는데. 자잘한 연회야 많겠지만. 슬쩍 시선을 돌려 애들을 바라봤지만 작게 고개를 흔드는 걸 봐서는 내가 잘못 안 것도 아니다.

이 시기야 축제 같은 것도 많아서 업무가 많아 영지를 나설 정도로 일은 없을 텐데.

“음. 당장은 아니오. 이쪽도 아직 할 것도 있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지만 미리 이야기하는 것뿐이오.”

“허어. 무슨 일로 그러는 건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음. 아,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영지 문제는 아니오. 유감스럽게도 프란츠 백작이 깔끔하게 처리해 건들 구석이 없었소. 참 대단한 사람이오.”

아버지를 칭찬? 하며 미소 짓는 거 보면 그렇게 유감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잠깐 시간을 두고 공작이 말했다.

“브리네어 폐하께서 그대를 보고자 하시오.”

“…….”

순간 말이 막혔다.

브리네어? 브리네어가 누구였더라.

누구긴.

브람스 왕국의 왕족, 브리네어 일족이다.

순식간에 굳어지는 분위기.

우리 쪽 애들도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폐하께서 어째서 저를?”

수도에 몇 번 가보긴 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왕을 본 귀족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공식 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고 들었고.

불경한 소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일한 후계자인 왕자가 대신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계승에 큰 문제도 없다고 들었고….

“혹시나 폐하께서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브람스 왕국의 왕. 가르시아 브리네어.

정식적인 왕위 계승자이자, 반역을 저지른 형제를 직접 처형한 자. 수도를 비롯한 그 일대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수도의 주인.

“글쎄. 나 역시 자세히 모르오. 폐하께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뜻하시는지.”

“으음.”

무덤덤하게 말하는 공작의 얼굴에 의도를 읽을 수가 없다. 단지 여태 공작의 행동으로 봐서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뿐.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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