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뮐러 7
* * *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무능한 자는 해고되고, 유능한 자는 거둬들인다.
트리아나 뮐러에게는 경비대장의 자리를 줬다. 성의 치안, 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권한은 생각보다 크다. 막말로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이 성의 경비를 담당하는 권한은 두 번째, 세 번째에 해당한다.
뮐러 일족의 남은 직계에 그 정도 권한을 준다. 뮐러 사람에게 있어서 그건 일종의 내가 말하는 이제 어느 정도 물갈이를 했다는 뜻인 듯했다. 실제로 그런 의미도 있었고. 애초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불만보다 공포로 일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지크도 어느 정도 확인을 끝냈는지 이젠 본격적으로 내정 업무에 집중한 듯하고, 클로에 역시 한 번 해체한 기사단을 새로 꾸미려고 하는 중인 듯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클로에가 집무실에 나타났다.
“한스님의 훈련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끔찍해요. 살려주세요, 레오 님.”
“응, 미안.”
날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으로 보는 건 멈춰줄래?
한스랑 싸우면 당연히 내가 이긴다. 아니, 한스도 실전 경험이 많고 아버지와 함께 다닌 전장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니 숨겨진 한 수 같은 게 있을 수는 있지만, 압도적인 마력과 기본적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방법을 직접 배운 내가 승률이 더 높겠지. 애초에 한스의 마력으로 공중에 있는 날 노리는 방법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의 강함은 어쨌든 기사단의 특징인 집단적 강함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가르침이라니?
“그냥 꾹 참고해야지.”
“참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기사단장이 될 거라면 이 정도는 다음부터 직접 시켜야 한다면서 분야별로 나눠진 지옥 훈련을 저만 다 하는 건 너무 불합리합니다!”
평소에 냉정한 편이고 공사구별이 뚜렷한 클로에치고 약한 소리를 하는 거 보면 진짜로 개같이 굴리나 보네. 거의 울 정도로 글썽거리는 걸 보면 웃음이 나왔다. 꾹 참자.
“다른 기사들은?”
“지금 집단 훈련 중입니다.”
“아…….”
프란츠의 사람이 이 정도로 굴리면 불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한스는 그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도 아직도 현장에 직접 뛰는 사람이다. 실력으로 굴복시켰을 테고, 기사란 족속들은 그런 명예와 힘을 존중하는 편이니까. 거기에 같이 프란츠에 온 클로에도 똑같이… 아니 더 굴리고 있다니까 불만이 나올 리가 없지.
“그럼 쟤들은 쉬는 중이겠네?”
“……그렇죠.”
클로에의 시선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녀의 시선은 문밖에서 호위 중인 쌍둥이 형제에 향했다.
“저, 저희는 업무 중입니다!”
“이거 쉬는 거 아니거든요?”
흐.
때마침 잘됐네.
“호위 업무는 지금부터 클로에가 한다. 너희는 훈련받으러 가.”
“네에에에에?! 저희 시프트인데!”
“그런! 이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술값을 냈는지 아십니까!”
“알 리가 있냐.”
술값이라는 말에 클로에의 얼굴이 굳어졌다.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클로에의 마력을 느낀 걸까.
“훈련은 기사의 본분!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충성!”
곧바로 자리를 떠나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클로에도 소란스럽게 떠나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저 모습을 보면 화는 풀린단 말이지. 어이가 없지만.
“대부분 성에서 살았을 건데 낯 가리지 않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나보다 자유로워서 성 아래에 자주 놀러 다녔단 소리는 들었지만, 저거도 성격인가?
“그렇네요. 뮐러 사람들하고 벌써 술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거 보면 확실히 사람과 사귀는 데는 도가 텄네요.”
클로에도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었는지 금방 표정을 풀었다. 입장이 프란츠가 위지만, 수가 부족하고 이제부터 함께 지내야 하니 저런 식으로 사람과 잘 지내는 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추천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니가 나 역시 클로에를 바라봤다. 내 시선에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그녀도 알아차렸군.
“트리아나랑은 잘 지내?”
“……으음. 사람과 사귀는 건 특기가 아닙니다. 거기에 일단은 귀족 분이잖습니까.”
나이도 비슷하고, 성별도 같으니까. 윗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잘 되진 않나 보다. 하긴. 일단 귀족이니까. 그녀의 마력도 날 제외하면 두 번째로 강하니까.
“그래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 어색한 표정이라 정말로 그런가 싶기도 한데. 피식 웃으면서 손으로 클로에를 끌었다.
“으음, 업무 시간입니다만?”
“그래. 내 호위 업무. 호위 대상이랑 가까워야 하는 거 아니겠어?”
“말은 잘 합니다. 그럼 쌍둥이 형제도 이렇게 가까이합니까?”
그건 좀 상상하기도 싫은데. 내 눈썹이 찌푸려졌는지, 클로에가 피식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작고 아담한 몸이 자연스레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제일 소중한 곳을 호위해드려야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클로에 경.”
내 말에 클로에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바지에 손을 올렸다.
* * *
“아가씨!”
“아, 체리.”
트리아나의 시녀이자, 보좌관이라고 할 수 있는 체리가 서류를 가져왔다. 트리아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 사소한 실수 하나 없게 조심하고 있다. 아무런 실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체리를 바라봤다.
“고마워, 체리.”
“아뇨, 이 정도쯤이야!”
분홍빛 머리카락의 체리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주변이 화사해진 것 같다. 마력을 떠나서 외모와 성격 때문에 인기가 많아 성내의 많은 남자가 노리는 상대다. 그런데 마력도 나쁘지 않으니 일등 신붓감이라고 할 수 있다. 체리도 이제 결혼해야 할 나이인데.
“아가씨께서 먼저 가신 후에야 갈 겁니다! 그러니 아가씨도 어서 배우자를 찾으셔야죠!”
“그래, 고마워. 나중에 찾을게.”
“정말!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미뤘으면서!”
체리의 투정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같은 귀족 중에 결혼할 상대를 찾는 건 어려울지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류를 들고 자리에 일어섰다.
“영주님에게 가시나요?”
“응. 오늘 안에 보고해야지. 오늘은 먼저 퇴근해도 돼. 그동안 일도 많았는데, 일찍 좀 쉬어. 가족도 만나고.”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아가씨도 빨리 쉬세요!”
마중 나온 체리에 손 인사만 하면서 복도를 걸었다.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니 금방 끝나겠지. 트리아나는 얼마 전부터 생긴 자신의 주군을 떠올렸다.
레오릭 프란츠.
프란츠 가문의 차남으로 태양의 마력을 가진 귀족. 가문 전체가 고유의 마력을 연구해서 그 힘을 손에 넣는 경우가 태반인 이 세계의 일련의 흐름에 그 남자는 분명히 돌연변이다. 다만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지만….
“옛날이야기에 나온 영웅들뿐이지만….”
트리아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나타났을 때, 태양처럼 고고히 하늘에서 떠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신과 같은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몇 번 마주치면서 이야기를 하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레오릭, 영주님의 측근이면서 그 성격을 알고 있음에도 클로에와 지크 모두 전에 자신이 말한 이 일대를 군림할 영웅이라는 말에 내심 고개를 끄떡인 것도 그거겠지.
“레오릭…… 프란츠…….”
짧은 시간이지만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본인이 하기 싫다고 하면서도 맡는 일은 거절하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능숙하게 해낸다. 자신의 사람에게 상을 주며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벌 줄 때는 누구보다 냉혹하게 해낸다. 하물며 마력은? 아직 20대면서도 고유의 마력, 태양이라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힘 중 그 누구도 손에 넣지 못한 힘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
영웅의 자질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할아버지의 말처럼, 최근 상황을 보면 무언가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고, 욕심 넘치는 영주는 근처에 산더미나 있다.
이게 다 남부 지방이라는 기름진 땅을 지배하면서 돈과 병력은 쌓여가기만 하고, 세대 교체가 일어나면서 이전 시대의 전쟁에 대해 모르는 영주가 늘어났기 때문이겠지.
“전쟁은 일어난다.”
그러니 지금 뮐러의 많은 사람도, 프란츠에서 온 사람도 재빨리 움직이고 있다.
또각, 또각.
복도를 걷고, 아직은 낯선 복도를 걸었다.
평소에 자주 찾아오지 않았던 이 길 끝에 있는 압박감을 주는 듯한 칙칙한 색의 문. 그 문 앞까지 걸어갔다가 문득 이상한 걸 알아차렸다.
“어째서 호위 기사분들이?”
평소라면 문 앞에 호위기사가 있어야 하는데……. 트리아나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잠깐 고민한 트리아나는 이내 심호흡을 하면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트리아나입니다.”
문을 두드리고 잠깐 기다린다. 평소라면 일을 하고 있어도 안에서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용하다.
트리아나는 뭔가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평소라면 성내에서 마력을 일으키는 일은 금지되어 있지만, 혹시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천천히 마력을 일으키려던 찰나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응. 들어와.”
“……네.”
영주님의 목소리다.
일단 괜찮은 건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내 문을 열었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면서 안을 살폈다. 어지럽힌 흔적도 없고, 마력도 잔잔하다. 정면에 있는 책상에 앉아있는 영주님이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괜찮아. 별거 아냐. 뭐 하고 있어서 그랬어.”
“아, 네. 죄송합니다.”
방을 훑어보던 걸 걸렸는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하는 말에 트리아나는 볼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츄릅…….
“응?”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트리아나는 조금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영주님의 모습에 곧바로 서류를 들고 책상에 다가갔다.
츕!
“……음?”
“왜?”
멈칫거리는 트리아나의 모습에 영주님이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아뇨,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음? 그래? 난 못 들었는데. 아, 이거 보고서?”
“아, 네! 보고서입니다.”
트리아나는 일단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렸다.
덜컹!
“어?”
방금 책상이 움직인 것 같은……?
트리아나의 시선이 책상에 향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