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04화 (104/143)

〈 104화 〉 뮐러 ­ 5

* * *

“표정이 안 좋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 아닙니다. ……크흠.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제부터 이 땅의 영주가 된 레오릭 프란츠입니다.”

“그런가? 어쨌든, 반갑군. 트로윈 뮐러라고 하네.”

작은 정원이 있는 저택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허름한 곳은 아니지만, 귀족이었던 자가 머무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검소했다.

그러나 안에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차린 건 없지만, 내 소소한 일거리 중 하나네. 괜찮은지는 모르겠군.”

“향이 좋군요.”

작은 밭이다.

찻잎만 키우는 듯하다. 그 차를 직접 따라준 트로윈의 안내를 따라 정원이 보이는 곳에서 차를 마셨다.

“어떤가?”

“흠. 좋네요.”

차는 적당히 맛이 좋았다. 녹차에 가까운 맛이지만, 입맛에 그리 나쁜 것도 아니라서 마시는 데는 좋았다.

그런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눈앞의 노인을 바라봤다.

“그런가? 다행이군.”

나이가 든 흔적은 역력하다.

젊었을 때 남색 머리카락이었을 머리카락도 하얗게 물들었고,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는 주름도 가득하다.

아픈 건 사실인지 안색이 좋지 않고, 약간 마른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원래부터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체격 자체는 컸다. 다만 느껴지는 마력의 쇠퇴는 확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보라색 눈동자 하나는 생생하네. 방심할 수는 없겠어.

“그래. 레오릭 프란츠라. 에이번 그놈의 둘째라고? 자식 복은 넘치는군. 에잉, 쯧쯧.”

“하하.”

그 자식 복이 없어서 망한 가문의 전대 가주이자 이 땅의 주인이었던 자. 나이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의 세대다. 즉 할아버지와도 부딪혀봤고, 아버지와도 부딪혔다는 소리다.

듣기로는 실제로 전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지금 이렇게 말을 놓는 것도 사실 잘못된 건 아니다. 난 정식적인 작위는 없고, 프란츠 백작에게 이 땅의 주인으로서 전권 위임을 받은 것뿐인 차남에 불과하니까.

“에이번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다.”

“그렇습니까?”

“몸은 노쇠했고, 마력은 쇠퇴했다. 예전처럼 만족할 만큼 싸우지도 못하는 이상 전면으로 나설 필요도 없고. 마지막 선택으로 이런 난장판을 만든 이상 그 책임만을 질 생각이다.”

흠.

트로윈의 뒤에 서 있는 트리아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뭐, 이 사람이 나선다면 적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겠지.

트로윈은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그냥, 마지막으로 하나 확인할 게 있다.”

“확인?”

종이를 한 번 훑어본 트로윈 뮐러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내가 왜 그놈에게 후계자리를 건넸을까?”

“흠. 보는 눈이 노안으로 흐려졌습니까?”

“흥! 늙은이게 못할 말이 없군.”

날 노려다 보면서 말하지만, 트로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 망할 놈의 자식은 확실히 멍청했고, 제 동생 놈이랑 비교되는 것도 싫어한 쓰레기지만, 티르우스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읏.”

트리아나의 입이 살짝 벌려졌다가 다물었다. 입술을 깨물면서 시선을 피한다. 아버지의 험담을 하는 모습이지만 그 상대가 할아버지다. 말리지도 못하고 시선만 피하는 뒤의 기색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트로윈은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느 쪽이 괜찮냐면 그래. 그나마 티르우스가 괜찮았지. 하지만 생각해 봐라. 그 망할 놈이 제 동생에게 후계자리를 건네준다고 하면 잘도 납득하겠다.”

“그래서 티르손 뮐러에게 후계자리를 준 겁니까? 괜한 분쟁을 피하고자 티르우스 뮐러라면 이해하고 그를 도와줄 거라고?”

“티르손 그놈은 그거만으로 우월감에 차서 만족했겠지. 티르우스는 적당히 참을 줄 아는 녀석이고, 티르손을 적당히 달래주면서 영지를 다스리는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그 판단은 틀렸다. 티르손 뮐러의 폭주는 그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생각보다 더. 차라리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부추기는 놈이 있었다.”

“호오.”

그건 처음 듣는군.

트리아나를 보니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도 몰랐나?

트로윈이 꺼낸 종이를 던졌다.

“확실한 건 아니다. 당시 연락이 가능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집사장이 전부였고, 그조차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다만 낯선 놈 몇 명이 티르손 근처에 목격했다는 정보는 확실하다.”

“낯선 놈.”

종이에 있는 건 한 남자가 그려진 그림이다.

“우리가 몰랐을 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번 싸움에서 대부분 다 죽었고, 남은 놈은 이놈뿐이다.”

수상한 놈들. 그리고 티르손 뮐러가 한 명령. 강제 임신은 그것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붉은 핍니까?”

“그렇지 않을까. 내 감으로는 확실히 그놈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트로윈은 기분 나쁘다는 걸 숨기지 않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놈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좇같은 건 바뀌지 않았어.”

“호. 그 정돕니까?”

책이나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렇게 신경 쓸 놈이 아니라고 했지만.

“붉은 피는 점조직이다. 다수의 파벌이 다수의 점조직을 운영하고 있지. 그것도 지역에 따라 아예 협력하는 놈들부터 서로 적대하는 놈들까지 있어.”

“그건 조직으로서 굴러갑니까?”

엉망진창인데?

내 지적에 트로윈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히 안 굴러가서 대부분 망했지.”

“……멍청한 겁니까?”

“반대다. 거대한 조직 몇 개가 아래의 여러 조직을 미끼와 실험용 제물로 삼는 거다.”

“실험?”

트로윈의 눈동자에 서린 건 분노다.

“인체 실험이다.”

* * *

“흠.”

인체 실험이라.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겠지.

“붉은 피라고 해서 전부 마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겠죠.”

가진 자를 증오하는 건 없는 자뿐만이 아니다.

같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 차이를 알고 좁힐 수 없으므로 더욱 증오한다.

“붉은 피 중 위험한 놈들은 진짜로 위험하다. 남부 지방은 이전 전쟁 때 깔끔하게 청소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습니까?”

“그때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시대였으니까. 귀족들의 권력 투쟁부터 시작해 왕가의 반역자부터 시작해 혁명가까지.”

으. 듣기만 해도 좇같음이 전해진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럼 인체 실험은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놈들은 이전부터 여러 실험을 인간끼리의 교배는 물론 마력을 가진 몬스터들의 교배, 혹은 그 몬스터와 인간의 교배.”

켁.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기분이 더러워진다.

트리아나도, 뒤의 클로에나 지크 역시 상태가 안 좋다.

그리고 실험에 교배밖에 없는데?

“그 이외도 있지. 마력이 깃든 광석을 전부 마정석이라고 표현하지만 바흔 왕국의 진주 같은 몬스터가 가진 생체 기관에 담긴 마력도 마정석이라고 하는 건 알겠지만, 그 마정석을 이용한 각종 실험까지.”

트로윈이 말한 과거 붉은 피의 행적은 꽤 흥미로웠다.

실험도 실험이지만, 각종 도시에 테러 행위에 암살까지. 귀족 암살의 경운 대부분 실패했지만 도시나 마을에 일어난 테러까지 전부 막을 순 없었다.

애초에 그 대부분 피해자는 평민들이다.

“앞뒤가 바뀌었군요.”

“그러니까 그 시대에서 붉은 피는 공공의 적이었다. 평민들조차 붉은 피에 대해 알고 있고, 알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지. 애초에 붉은 피끼리도 서로 싸웠으니까 말을 다 했지. 온화하다고 할 수 있는 온건파는 귀족 가문과 협력까지 해서 같은 붉은 피와 싸웠으니까.”

“그런 조직도 있습니까?”

“음. 마력의 힘 그 자체를 연구해서 마력 사용자를 더 넓히는 것이 목적인 조직이나 마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신분을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는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지. 사상 그 자체는 어쨌든 조직 자체는 학문적인 연구가 주를 이루는 단체들이니까. 싫어하는 귀족도 있으나 목숨 걸고 외치는 놈들에 감화되거나 그 깡이 마음에 들어 하는 귀족도 많았지.”

마력 보유자를 넓히는 거야 그렇다 해도, 신분을 나누는 것도 마음에 들어 한 다라.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신분 자체보다 강한 마력, 일족의 핏줄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신분이 없어진다고 해도 강한 힘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마 마력이 더 넓게 퍼진다 해도 기껏해야 모험가, 기사 수준이 한계겠지. 아주 먼 미래가 된다고 해도 솔직히 백작급 마력까지 퍼트릴 수 있을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조직이 있군요.”

“말만 붉은 피인 조직도 많고, 붉은 피라는 이름으로 평민들에게서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뜯어먹는 놈들도 많았다. 도적처럼 상인들을 습격하는 놈들까지. 그런 놈들의 토벌도 했었지.”

잠깐 이야기를 하다 지쳤는지 트로윈은 차를 마시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이놈들이 지금도 뮐러에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남부 지방에 어느 정도 깔렸는지 알 수 없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내 사람도 없는 지금, 여기까지가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정보다.”

붉은 피라.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트로윈이 넘겨준 종이 다발. 거기엔 유일한 생존자의 모습과 뮐러에서의 각종 행적이 적혀 있었다.

“바흔의 공주도 납치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요즘 정세가 안 좋아지는 이 상황에 나 같은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트로윈은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뮐러를 부탁하네.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이여.”

“……뭐, 힘내보겠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프란츠와 보랭 지분이 가득한 바지사장이지만.

그가 건네준 정보는 잘 쓰기로 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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