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뮐러 4
* * *
“흐응.”
꽤 화려한 장식품이 많은데, 방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칙칙하다. 언밸러스한 방이다.
대대로 뮐러의 가주가 지내던 침실에 도착한 나는 한 번 둘러봤다. 한 번 주위를 훑어봤지만, 숨겨진 공간 같은 건 없었다. 아니, 비밀 통로가 있긴 한데 그건 성이라면 공통적인 부분이고.
“상당히 무기질적이군.”
화려한 가구들이야 최근에 들어온 것 같고 그걸 빼면 방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다. 대대로 뮐러의 가주는 이런 성향이었나 보군. 무인 기질이 강하다고 들었지만.
그런데 장남은 왜 그렇지?
“아, 아…….”
“어, 괜찮아?”
나랑 같이 들어온 샬롯과 네리아가 이 방을 보자마자 머리를 잡더니 휘청거렸다. 왜 이래?
“뭐, 뭡니까, 이런 악취미적인 방은…!”
“꺄아아아아아!”
“뭐, 이상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솔직히 악취미답긴 하다. 장남도 아예 인테리어를 새로 할 생각이 아니었을까.
방의 디자인은 올드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이다. 채색 자체도 칙칙한 채색이고. 그런데 새로 들어온 거로 보이는 가구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색상이라 서로 매치가 안된다.
“이, 이런 방에서 도련님을 재워야 한다니! 레나님이 아시면 저희는 바로 모가지에요! 해고에요!”
“꺄아아아아아악!”
방방 뛰어다니며 소란스럽게 꺅꺅 비명을 지리는 두 명을 보니 내 관점이 아닌 두 명의 관점으로도 영 아닌 듯하다. 아니, 이 부분에서는 나보다 이 두 명의 안목을 믿어야겠지.
“어서 빨리 정리해야겠어요!”
“지금 당장 창고를 개방해야겠어요!”
눈에 불을 켜고 옷 소매를 걷는 두 명을 보니 슬슬 저녁인데도 바로 일 할 생각인듯하다. 나도 솔직히 이 방에서 잠들고 싶진 않고, 일단 날 위해서니까 이 두 명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겠는데. 아, 맞다. 문밖에 서 있는 두 명이 있었지.
덜컹!
“야.”
원래 내 호위는 클로에지만, 이제는 젊은 기사 세력의 대표가 된 상태라서 할 일이 많다. 그 때문에 클로에가 없을 때 내 호위를 맡는 것이 이 쌍둥이다.
“레오릭님!”
“드디어!”
아, 남자 놈들이 징그럽게.
안 그래도 엄청 남자답게 생긴 놈들이다. 덩치도 크고, 얼굴도 굵직하고, 네모나고. 근육질이라 징그럽다.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래도 글썽이는 눈을 보면 강아지 같아서 귀엽, 귀엽……진 않네. 개뿔.
“얘네들 좀 도와주라.”
“네?”
탁!
날 스쳐서 두 명이 나타났다.
“알지? 샬롯과 네리아. 이쪽은 내 유모의 자식인 쌍둥이. 그냥 아무 일이나 시켜.”
“저, 저기 레오님? 저희는 레오님을 경호해야 합니다….”
“응. 괜찮아. 여기서는 안전해. 그리고 약속도 있거든?”
“……클로에님에게 걸리면 죽는데.”
“잘 말해주십쇼?”
휙휙.
클로에가 화나는 건 나도 모르겠고.
“저 두 명을 시켜서 짐 좀 옮겨달라고 그래. 부족하면 사람 더 부르고.”
“네! 알겠습니다! 프란츠 가문의……! 아니, 레오님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싹 다 바꾸겠습니다!”
응.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니까. 지금 시간에 그런 대공사 하면 아예 잠들 곳이 없어지니까.
“그냥 일단 당장 필요한 것만 정리부터…….”
“그럼 갑시다!”
“두 명! 따라오세요!”
내 말은 귓가로 흘리는 두 명은 곧바로 문밖으로 나가 쌍둥이를 데리고 떠났다.
“…….”
서두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달리기다.
그야 여긴 뮐러의 시종이나 하인들이 많으니까. 익숙해진 곳이라면 모를까, 당분간 트집 잡힐 일 없어야 하겠지.
그리고 애초에 여기 사람도 악취미라는 건 알고 있는지 안내할 때 얼굴 상태가 좀 안 좋더라.
“……놀랍네요.”
“그래?”
복도의 구석, 그걸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트리아나다. 세상 놀랍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가 놀랍지?”
“레오릭님이…….”
잠깐 말을 멈추던 그녀는 입술이 살짝 벌려지다가 닫혔다.
“영주님이 생각보다 더 인간적이시네요.”
“그건 업무 중이니까. 나라고 귀찮게 일 년 내내 그런 태도로 살라고? 어휴, 귀찮아서 영주하겠어? 때려치우고 말지.”
“…….”
내 말에 눈이 동그랗게 바뀐다.
그렇게 놀라울 일인가.
“그리고 나보다 더 놀라운 건 이 방 상태야. 뭐야 이 언밸런스한 방은.”
“……그건 저도 할 말이 없네요. 그 망할 놈의 취미입니다.”
나보다 이 방이 이상하다.
그 지적을 하니 그녀도 할 말이 없는지 시선을 피한다. 망할 놈이라는 거 보면 정말로 싫어하나 보군. 하긴 잘 지내는 일상이 그놈 하나 때문에 망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지.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성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을 겁니다.”
“어휴. 답도 없네. 형님도 이런 취미는 없을 건데, 이 방을 안 썼나?”
“아이단님은 잠시 머물고 가는 사람이라며 손님 방을 쓰셨습니다.”
굳이 안 그래도 됐는데.
아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이 방 쓰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겠군.
“레오님.”
“클로에?”
쌍둥이 형제가 떠나면서 연락했나 보군.
곧바로 찾아온 건 클로에뿐만이 아니라 지크도 함께였다. 두 명의 시선이 트리아나 뮐러에게 향했다.
뭐, 이 이상 잡담하기도 그런가.
“그래서 무슨 용무지?”
내 말에 심호흡하던 그녀가 말했다.
전대 영주, 트로윈 뮐러가 만나자고 한다고.
그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이전 영주라면?”
“네. 저의 할아버지가 되시는 트로윈 뮐러이십니다.”
뮐러의 전대 영주이자 전대 가주.
트로윈 뮐러. 자식을 늦게 봤기에 지금은 꽤 나이가 있다고 들었다. 원래 뮐러 형제 역시 형님과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아마 할아버지 소릴 들을만한 나이겠지.
그 전대 가주는 현재 주도 뮐러의 작은 정원이 달린 저택에 요양 중이라고 했다. 아이단 형님은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아버지가 한 번 만났다고 했던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들었지만, 만나보긴 해야지.
“좋아. 오늘이라도 괜찮다면 봐도 괜찮겠지.”
영주인 나에게 오는 게 맞지만. 아무리 나라도 전대 영주이자 병든 노인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양심이 찔리니까.
* * *
뮐러 내성의 고풍스러운 성과는 다르게 뮐러 성 전체의 분위기는 훈훈한 편이다. 넓은 땅과 그 땅을 이용한 농사로 인해 노을로 반사되는 풍경은 감성적인 마음을 품기 딱 좋으니까.
“…….”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맞은 편에 앉아있는 트리아나 뮐러의 시선이 나를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할 말이 있으면 말해야지.
“다른 용무도 있었나?”
“……그.”
멈칫거리는 트리아나.
뭐, 그거려나?
“뮐러의 성과 땅을 되찾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부탁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내 시선에 고개를 비틀며 대답하는 트리아나. 그런 그녀의 부탁은 패배한 일족이 말하기는 웃기는 이야기다.
“그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긴지는 알고 있겠지?”
“……네.”
나의 지적에 그저 고개만 끄떡인다. 내 옆에 앉아있는 클로에나 지크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그녀의 안색도 안 좋아졌다.
명분도 있었고, 선전포고도 했다. 차남파, 티르우스 뮐러의 딸인 그녀는 억울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창피를 무릅쓰고 애원한다. 어째서?”
“……. 저희 아버지를 위해서입니다. 영주님.”
트리아나는 마차 안에서 무릎을 꿇었다.
절대로 편한 자세는 아니겠지. 특히 마력도 강화되지 않은 몸으로는.
그런데도 트리아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아버지가 추구했던 것. 그런 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흠. 아버지의 삶의 흔적이라.”
스스로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건 딸인 자신만이 아니다. 뮐러 일족의 명예도 거기에 있었다.
작은 희망을 걸고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이름.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잊혀 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이름과 명예를 지키고 싶은 딸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흠.”
그녀의 부탁은 귀족을 존중하는 아버지라고 해도 확답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부탁이다. 이름은 그렇다 쳐도 땅을 돌려달라는 건 선을 넘었지.
내 표정은 물론 둘의 표정도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보며 트리아나가 계속 말했다.
“저 역시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이 도시뿐.”
아니, 이 도시가 이 영지의 주도인데?
“레오릭님께서는 이 작은 영지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음. ……응?”
잠깐?
뭔가 이상한 게 들렸는데.
트리아나의 얼굴을 바라보자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고유의 마력. 그것도 태양의 힘을 손에 얻으시려는 분. 그분이 이 땅에 만족하실 리가 없죠. 작고 있는 것이라곤 밭이 전부인 땅입니다.”
아니?
아닌데?
“태양의 마력을 얻으신 영주님의 행보에 적어도 저를 따르는 사람들은 각오했습니다. 이 앞, 어떤 일이라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저기? 트리아나양?”
뭐지?
이 분위기는.
“그러니까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그때, 수많은 땅을 정복하신 이후에.”
아니. 아니라니까? 정복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클로에와 지크를 바라봤다. 야. 얘 좀 말려봐.
“흠.”
“흐음.”
……너희들은 왜 고개를 끄떡이고 있는 거야?
“이 도시, 뮐러를 저희가 바친 충성의 대가로서 성은을 내려주시는 것만으로 부디…!”
고개를 조아리는 트리아나.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는 클로에와 지크.
덜컹!
마차는 정해진 곳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조용한 침묵이 주위에 머물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