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01화 (101/143)

〈 101화 〉 뮐러 ­ 2

* * *

도시를 내려다본다.

내 몸에서 피어오르는 광휘.

빛이 난다는 것이 보이고 느끼고 있지만, 내 시야는 뚜렷하기만 하다.

오히려 이 도시에 숨어있는 곳 따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 직관 능력이 올라갔다.

이것이 그때 이후로 전력을 다한 태양화(太?化).

원리는 모르지만, 아니. 원리도 적당히 알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원리. 자연의 이치는 보조 바퀴에 불과하다. 조금 더 마력을 판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상식을 조금 더 버리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받아들인다. 감각이 분화되는 느낌.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되는 것 같은 감각.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뭔가 오감에 새로이 추가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쨌든, 도시를 바라보면서 마력이 뭉친 곳을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는 자들, 고개를 조아리는 자들, 그들의 공포심, 신앙심을 느낀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몸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제 이 도시의 지배자가 뮐러가 아닌 것을, 나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도시 전체를 훑어봤지만, 대대적인 공사는 힘들더라도 고쳐야 할 부분을 미리 파악하면서 알아야 할 부분을 한 번 훑어보는 것을 끝내고 도시의 중심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뮐러의 성. 대부분 뮐러의 방계와 기사들이 있는 곳이다.

내 존재감으로 인해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 익숙한 마력도 느껴진다.

그 내성에서 느껴지는 기척 중 낯선 마력인데도 상당한 힘을 보유한 누군가의 기척에 시선을 돌렸다.역시나.내가 제대로 존재감을 나타내기 전에 이쪽을 알아차린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시력을 강화하면 시선의 주인이 보였다.

“아…….”

남색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이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과 질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뮐러의 직계인가. 혹시 그녀가 트리아나 뮐러?

서로 시선이 마주친다.

떨어져 있는 거리가 무색할 만큼 서로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클로에들의 기척에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물러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녀를 바라본다. 흠. 나이는 이리나랑 비슷하던가?

이쁘긴 하네.

* * *

“왜? 뭐?”

“아니, 아닙니다….”

소곤거리는 지크와 클로에를 바라봤다.

불쌍하다니, 앞으로가 걱정된다니.

뭐가 어째서?

“기선 제압을 한 것뿐이라니까?”

“기선 제압을 하다못해 짓눌렀으니까요. ……어쨌든 상당 부분 걱정한 건 괜찮아질 것 같네요.”

“그렇군. 저 모습을 보고 반항할 놈들이라면 진작에 처형당했겠지. 그래도 일단 감찰은 예정대로 진행해야겠어.”

“그렇네요.”

흠.

다시 서로 업무 내용을 떠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습을 숨기면서 도시를 비롯한 주변 일대를 둘러도 봤다.

뮐러의 외성에 전쟁의 흔적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대부분 수리하고 있는 상태였고 내부에는 큰 흔적이 없었다.

시민들의 상태야 평범해 보였고. 내성 역시 별다른 피해 없이 깔끔한 상태. 큰 피해 없이 정복했다는 말은 사실이었나보다.

뮐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칙칙했다.

뭐,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화려한 디자인, 이런 느낌이 없다.

고풍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프란츠보다 더 딱딱하고 침착한 느낌?

“흠. 나쁘진 않지만.”

좀 더 위엄있는 것도 좋겠는데.

이왕 얻은 태양의 마력에 어울리는……. 뭐가 있지? 태양신이여 몇 개 알긴 알지만, 자세히 아는 건 없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신전도 흰색 기둥이 전부가 아닌가?

­똑똑!

“음?”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클로에와 지크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건 알겠지만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보면….

­한스입니다.

“한스님이시네요.”

“한스님입니다.”

동시에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떡였다.

지크가 곧바로 문에 가까이 가서 문을 연다. 예상대로 문 너머에는 오랜만에 보는 할아범의 모습이 있었다.

“할아범.”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보는 한스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나를 보는 따뜻한 눈빛도 그대로다.

“남자, 칼을 들면 다시 봐야 한다는 말이 있죠. 훌륭해지셨습니다. 둘째 도련님. 아니, 레오릭님.”

“그, 그렇게 말하면 여기가 쑥스럽군.”

한스가 들어오자마자 칭찬하는 소리에 머리를 긁적였다.

할아범에게 들으니 부끄럽군.

“태양의 마력, 대단하군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 태양이잖습니까.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태양의 마력을 손에 얻다니. 그야말로 신화의 강림이라고 할 수 있죠.”

한스는 예전 사람이니까.

고유의 마력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르다. 평민들처럼 일종의 신앙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많다. 뭐,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지겠지.

“이렇게 되면 저희에게 불만이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도 바뀌겠군요.”

“그렇지?”

역시 하길 잘했다니까.

뿌듯한 얼굴로 클로에와 지크를 봤다.

묘한 얼굴을 왜 해?

“아이단님의 통치는 훌륭했지만, 과연 이 시기에 자리를 비우는 건 좀 위험한 행위였죠. 장남, 차남파를 가리지 않고 남의 지배자에 대해 불만을 가진 자가 있긴 있었습니다만.”

“훗. 나의 압도적인 힘 앞에 굴복해라.”

“그렇습니다. 레오릭님의 태양 앞에서 굴복하겠지요.”

농담 삼아 말했는데,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스의 말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음. 아직 그리 큰일은 없네.”

한스의 보고는 간단한 것들뿐이라 그리 크게 신경 쓸 건 없었다. 불만이 있더라도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하고, 해봤자 금방 진압될 정도라. 나중에 시간 날 때 정리해주기로 하고.

“가주님께서는….”

“으음. 알고 있겠지만, 역시 이번 년이나 내년 안에는 물러나시겠지.”

“그렇습니까.”

허탈한 표정의 한스의 모습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전장에서 계속해서 함께 해오면서 아버지를 지켰을 텐데. 이렇게 떨어진 사이에 물러날 정도로 은퇴했으니까.

“나 때문…….”

“그건 아닙니다.”

내 말을 곧바로 막으면서 한스 할아범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장에서 방심한 것은 자기 자신의 책임입니다. 가주님 역시 최소한의 방비를 했다고 해도 방심한 것은 사실. 그분도 나이를 먹어 늙었다는 증거죠.”

“그건, 아버지에게 말하면 혼날 것 같은데?”

“하하하. 실제로 당한 분은 그분이니까, 혼내야 하는 건 접니다.”

나이나 원래 할아버지 밑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인지, 사적인 공간에서는 아버지를 꾸짖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그런가, 아버지를 꾸짖는다는 말을 하네.

“가주님도 은퇴하신다 하셨으니 저도 슬슬 물러나야겠군요.”

“뭐?”

한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나뿐만 아니라 클로에와 지크도 놀란 얼굴로 할아범을 바라봤다.

“아직 정정하잖아?”

“하하. 이제 나이가 나이입니다. 저랑 동기는 이미 죽었거나 은거하고 있죠. 제가 질리도록 해 먹은 것뿐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이제 세대 교차의 시기가 찾아온 거죠.”

으음. 그 말은, 맞다.

이제 슬슬 세대 교차에 들어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씁쓸해진 분위기에 한스만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뮐러, 잠깐 지냈지만 그리 나쁜 도시는 아닙니다. 토지도 괜찮고, 멀지 않은 곳에 강도 있죠. 주변에서 탐내기 좋은 땅입니다. 단점은 대산맥과 프란츠와 가깝다는 것뿐일 정도로.”

“하하하. 그건 딱히 단점이 아닌데?”

내 말에 한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후의 일에 대해선 모두 레오릭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이 늙은이는 돌아갈 준비를 하죠.”

“그래. 그동안 프란츠를 위해서 힘을 써준 것에 대해 고마워.”

“그건 가주님에게 들어야 할 인사입니다. 그럼, 레오릭님. 부디 레오릭님 앞에 영광과 승리와 번영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고마워.”

한스는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으며 나를 위한 말을 해주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언제나 듬직했던 그 등이 오늘따라 여위어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온 사람과 거의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일 거다. 마지막까지 날 위해주는 그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스가 물러나고, 이제 뮐러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됐다.

짙은 갈색이 가득한 집무실에 있는 두 명을 봤다. 클로에야 그렇다 치고, 지크는 애들 잡을 생각가득이네.

힐끗, 방 너머의 기척들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기척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애들 소집시켜.”

필요한 이야기는 다 들었고.

이제 이 땅을 통치할 놈들의 볼 시간이다. 내 부하가 될 놈들. 이제 내가 다스릴 놈들.

“뭐가 쓸만하고, 뭐가 버릴만한지. 옥석을 가려야지.”

“알겠습니다.”

* * *

뮐러의 회의실.

예전부터 이 땅의 지배자만이 앉을 수 있는 상석에 있는 것은 금발금안의 남자. 이전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와는 다르다. 닮았지만, 더욱더 뚜렷한 이목구비. 그 강렬한 인상에 뮐러의 수많은 사람은 고개를 조아리며 눈치를 보고 있다.

그 충격적인 등장.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광경을 봤다.

압도적인 장면. 그야말로 신화에서나 나올 듯한 모습. 마력을 가진 자는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지, 실감 나지 않았던 사람에게 또다시 고유의 마력을 가진, 영토를 가진 고위 귀족의 무서움을 한 번 더 깨달았다.

“그럼.”

그리고 겁먹은 뮐러를 바라보며 레오릭 프란츠는 회의를 시작한다.

“인사부터 할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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