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00화 (100/143)

〈 100화 〉 뮐러 ­ 1

* * *

이 세계의 도로가 정리된 도로일 리가 없지.

프란츠를 비롯한 좀 큰 도시의 경우에는 유통을 위해서라도 손수 작업을 해놨지만, 그 외엔 당연히 불편하다.

­덜컹!

도시보다 불편한 마차의 탑승감에 인상을 찌푸리지만, 어쩔 수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산맥과 숲속들. 처음에야 신기한 풍경이라 구경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지겹다.

“레오님. 집중해주시죠.”

“아, 미안.”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돌려 다시 손에 든 내용을 봤다.

요즘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도 봐라.

“흐음……. 일단 이 내용은 도착 후 확인해야 할 것 같네요.”

“그렇군. 세율도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클로에와 지크는 뮐러로 가는 길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눈 밑이 검었다. 복장이야 새로 입성하는 날이니까 깔끔한 옷이지만, 안색이 죽었다. 보는 내가 미안할 지경이네.

“역시 사람이 부족하네요. 뮐러의 사람을 쓰는 건 믿기 힘듭니다.”

“이자벨이 온다고 했으니 그땐 좀 나아지겠지만. 그래도 힘들겠는데.”

이자벨의 합류는 미리 말해놨다.

말했지만, 당장 올 수는 없다. 갑작스럽게 정한 일이고, 차기 길드장을 뽑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누나 역시 지금은 없다. 지극히 위험한 임신 초기. 아니, 사람에 따라 다르고, 임신한 줄 몰라서 평범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은 시기니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기도 하지만, 결국 조심해야 할 시간인 건 분명했다.

특히나 임신한 아기는 앞으로 프란츠의 주인이 될 아이니까. 아마 누나가 뮐러에 올 때 만날 수 있다기보다는 내가 다시 프란츠로 돌아갈 때가 더 빠르겠지.

“당장 가서 해야 할 일은?”

딴 생각하는 것도 멈추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 두 명을 바라봤다. 내 말에 두 명의 말이 멈추고 날 본다.

“치안을 담당하는 부대를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내정, 특히 감찰 체제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한 명은 기사로서, 한 명은 문관으로서 의견인가.

우선 클로에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받은 클로에가 말하기 시작했다.

“뮐러의 무력을 담당하는 강철의 기사단은 해체당했습니다만, 기본적인 무력 부대는 아직 있습니다.”

“한스 할아범이 관리하는 곳인가?”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한스님이 아무리 유능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뮐러에 체재 중인 한스님은 어디까지나 뮐러의 무력 봉기를 감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현재 뮐러의 상황에서 프란츠의 사람에게서 빈틈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물론 뮐러가 멍청하게 봉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때로 사람은 멍청한 선택을 하고 만다. 현대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떠오르면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번엔 정말로 그냥 끝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긴. 주변 영주가 헛바람을 넣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 무력 부대는 치안부대인가?”

“네. 성의 경비대입니다.”

경비대는 필수지.

전쟁이 끝난 지금에는 더욱더.

“한스님도 어느 정도 사정을 살펴보고 계신다는 서신은 있습니다만, 한스님이라고 할지라도 타지의 부대에 자세히 파악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가자마자 해야 할 것이 바로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의 확보입니다.”

“치안은 중요하지.”

“만약 프란츠에 불만을 품고 있는 뮐러의 주요 인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치안은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성의 경비 대장이라면 뭔가, 부하 중에서도 아래에 있는 느낌이지만, 사실 좀 직위가 있는 편이다. 긴급 시 권한도 꽤 높은 편이고.

“그럼 성에 들어간 후, 클로에 네가 경비 대장을 맡을 생각이야?”

“그 경우도 생각했지만, 저보다는 한스님이 맡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스 할아범은 아마 곧바로 돌아가야 해. 이제 프란츠는 뮐러를 도와줄 여유는 없거든.”

“그 말은…….”

“큰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나 프란츠의 손길을 받을 수는 없지.”

형님의 계승 문제도 있고, 그레이스 누나의 경비도 있다. 소란스러워질 프란츠를 보면 밖에까지 손을 뻗을 여유는 없다. 아니, 있지만.

“한스 할아범까지 그럴 수는 없지. 그렇다고 해도 그보다 아랫사람을 보낸다면 반대로 그건 그것대로 쓸 수 없고.”

“그렇군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제가…….”

“아니, 그 누구였지? 뮐러의 딸.”

관심이 없으니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분명 트, 트리 뭐시기였는데.

“트리아나 뮐러입니다.”

“아, 그래. 걔한테 시키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 자시고.

뭐 문제 있나?

내 말에 클로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뮐러의 직계를 중요 인사에 내정한다는 것은….”

“그녀의 목적은 뮐러의 이름을, 뮐러의 땅을 되찾는 거지.”

그리고 그 땅을 지배할 나에게 있어서 별로 좋은 처지의 입장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허락했다. 살아서 뮐러에 있을 수 있게.

그럼 일을 시켜야지.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지.”

“그런 말이 있습니까?”

“아, 응. 있어. 책에서 봤어.”

“오호. 과연.”

뭔가 묘하게 감탄한 지크를 내버려 두고, 말을 이었다.

“자기 백성에 못된 짓 하려는 놈이라면 살릴 가치 없고, 열심히 잘하면 그걸로 됐지.”

“그렇습니까?”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이긴 한데.

아무래도 뮐러 사람을 고용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아래에서 잘 관리한다면 굳이 터치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래도 뭐, 만약 문제가 생기면.

“쓸어버리면 되지.”

“네?”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우리가 무슨 봉사 하러 온 건가? 말 안 듣는다면 한 번 꿇려야지.”

숙청이다, 숙청.

“…….”

“…….”

종이를 보면서 적당히 말했는데, 날 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클로에와 지크 모두 날 보는 표정이 이상하다.

왜?

“아닙니다. 그럼 감찰단은….”

“그건 지크가 도맡아서 해. 어쨌든 뮐러의 사람들을 아예 배척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네가 맡아서 적당히 조였다고 풀어줬다가 알아서 조련해.”

“알겠습니다.”

내 말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지금 뮐러의 직계는 트리아나 뿐인가?”

“직계는 그렇습니다. 티르손 뮐러의 가족은 그때 전부 처형당했습니다. 티르우스 뮐러는 트리아나 뮐러를 제외한 자식은 없습니다.”

“흠. 아내는?”

“없습니다. 트리아나 뮐러를 출산했을 때,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

출산이 위험하긴 해.

그레이스 누나 때는 레나를 비롯한 전문 인력이 움직이겠지만, 괜찮겠지?

“이자벨이 오면 내정부터 무력까지 전부 할 줄 아닐까. 그때는 숨통이 트이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도착하면 우선 나부터 입성하지.”

“네?”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보는 두 명을 보며 피식 웃었다.

“원래 위에 님들은 퍼포먼스를 잘해야 하거든.”

내가 좀 위엄 쩌는 능력도 있고.

있는 건 써야지.

* * *

“아가씨. 준비됐습니다.”

“그래. 고마워.”

시녀의 손길이 남색의 부드러운 비단 같은 아름다운 머릿결을 정리한다. 어머니를 닮았다면서 칭찬해준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느새 희미해진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서도 서서히 잊히는 기억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참아야지.

트리아나 뮐러는 그렇게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흐린 하늘 아래 도시의 모습은 어느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도시 전체에 우울한 분위기는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이죠?”

“응.”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시녀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전쟁 때, 이 성을 지배한 에이번 프란츠 백작. 그분은 정말로 무서우셨지만, 여태 봤던 여러 사람 중 제일 귀족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엄격한 분이셨다.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뿐만이 아닌, 자신에게조차 엄격한 고귀한 귀족.

그분과 함께 이 땅을 잠시나마 통치했던 아이단 프란츠 역시 부드러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런 엄격한 부분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이 땅의 혼란은 빠르게 잠재워졌고, 겉일 뿐이지만 평화가 유지됐다.

“어떤 분이실까요…? 무, 무서우신 분이시려나?”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이단 프란츠의 귀환. 그리고 정명한 이 땅의 지배자가 찾아온다.

레오릭 프란츠.

프란츠 가문의 차남.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프란츠 성에만 머물며 그 때문에 여러 소문이 돌았던 귀족.

보랭 가문의 행사나 수도의 행사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조차 잠깐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없어졌다고 한다.

후계자 분쟁 때문일까, 아니면 밖에 드러낼 수 없을 정도의 인물인가. 소문이 자자할 수밖에 없다.

프란츠 가문의 차남이란 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활동을 시작했다.

그 원인은 뮐러 때문이라는 것과 전쟁 때문에 제대로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확실한 건 모르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겠지.”

시녀의 걱정도 이해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녀 앞에서는 태연한 척 굴고 있지만, 자신도 걱정하고 있다.

쉬운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유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 프란츠 가문의 사람이 쉽게 당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백작이 그런 사람을 보낼 리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트리아나 뮐러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오늘 찾아올 차남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싹!

“어?”

뭔가.

뭔가 있다.

“아가씨?”

시녀가 왜 그러냐는 듯이 바라보지만, 답하기도 전에 트리아나 뮐러는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테라스로 나왔다.

그녀의 시야 비치는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뮐러의 풍경이다.

“뭔가, 뭔가 있어.”

트리아나 뮐러의 감각이 날카롭게 세워졌다.

마력으로 강화된 그녀의 감각이 이 도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눈으로도, 귀로도.

이 도시 밖까지 확인했지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맑은 하늘 아래 도시는 평화로워 보였다.

“아가씨? 착각이 아닐까요? 저는 아무것도…….”

“……그, 래?”

시녀의 말에 트리아나 역시 착각일까, 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오싹한 느낌은 뭐지?

테라스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트리아나는 기묘한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날씨가 어땠지?”

화창한 하늘이 보였다. 기묘한 감각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네? 어, 조금 흐렸던가요? 하지만 비가 올 정도로 흐리지는 않았어요. 어머나. 그러고 보니 날씨가 맑아졌네요?”

맑아졌다?

트리아나 뮐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주변을 살피는 시녀와는 달리, 무언가 낌새를 느낀 트리아나가 하늘을 올렸을 때, 그 시야에는 그것이 존재했다. 그 존재를 눈치챘지만, 늦었다.

“허락하마. 고개를 들어라.”

그 순간.

뮐러의 모든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다. 이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그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허락이 내려왔다. 그 허락이 있어서 고개를 들 수 있다. 그 눈 부신 빛을 눈동자에 담는다.

“나의 이름은 레오릭 프란츠.”

하늘에 두 번째 태양이 있었다.

금색의 광휘가 피어오르는 그 사람.

아니, 정말로 사람인가? 저것이 진짜로 인간인가? 그 존재의 목소리가 도시를 울렸다.

“이 땅의 지배자다.”

태양의 레오릭.

무심한 금빛 눈동자에 비치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그가 나타났다.

신 앞에서 사람은 무릎을 꿇는다. 그 법칙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침묵이 도시를 지배하는 가운데 레오릭 프란츠가 도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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