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아이단 2
* * *
형님의 눈치부터 봤다. 별로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듯한 얼굴은 여전했다. 곱상한 외모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한 가문의 주인이라기보다는 예술을 전공하는 청년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본성은 프란츠 가문의 직계 그 자체. ……이렇게 말하니 사나워 보이지만, 가족 사랑이 깊은 형님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 형님은 표정에 딱히 큰 변화도 없이 입가에 미소만 지은 채로 날 보고 있을 뿐이다.
“그, 크흠!”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 일단 임신 자체는 괜찮다.
아버지와 형님과 함께 이야기했던 그 날부터 정해진 이야기다.
“다행이다. 그레이스가 임신했다니.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지.”
“그, 그렇습니까?”
“음. 그래서 안심했다.”
눈썹이 반달처럼 휘었다. 누나를 말하는 아이단 형님의 말에는 정말로 걱정했었고, 이제는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마저 나왔다.
“어찌 됐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걸로 프란츠 가문의 혈통은 무사히 이어지겠지.”
“아, 그렇죠.”
“정말로 수고했다.”
“아뇨……. 수고랄게 있습니까. 오히려 이제부터 힘든 건 그레이스 누님이죠.”
“그렇겠지. 그녀에게도 신경 써야 하겠지.”
아이단 형님의 말에 적당히 답하면서 눈치챘다.
역시 형님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형님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래? 무슨 할 말이 있어?”
“형님. 그레이스님과 만나는 보셨습니까?”
“아니.”
내 말에 아이단 형님의 고개가 흔들렸다.
…자기 아내가 임신했는데도, 아직 만나지 않았던 걸까. 물론 그 아기가 자신의 아이는 아니더라고 해도.
“보고가 우선이니까. 아버지의 일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보고부터 시작해서 회의까지, 지금도 겨우 시간을 낸 거야.”
“그렇습니까….”
그 시간을 그레이스 누나에게 썼으면 더 좋았을 건데.
하지만 형님의 태도가 옳다, 틀렸다고 내가 탓할 수는 없다. 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의무가 있다. 그런 면에서 형님의 태도는 틀리진 않았다. 다만 후계자를 임신한 여자를 만나는 행위도 필요한데.
“형님.”
“음?”
아버지도 냉정한 부분이 있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분명히 있었다. 어렸을 때 지구와 비교하면 많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 거기엔 있었다.
하지만 형님은…….
“그레이스님을, 그레이스 누나를 사랑하십니까?”
“허어.”
형님이 그레이스 누나를 사랑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게 남자와 여자, 남녀로서의 애정인가. 아니면 귀족으로서의 애정인가.
그리고 그건 분명히 이 세계의 기준으로 봐도 틀리진 않겠지.
“그렇군….”
내 표정에 진심이라는 걸 알았는지, 형님이 드물게 미소를 지으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랑, 사랑인가.”
“네. 사랑입니다.”
나도 느끼하게 이러곤 싶지 않지만.
그레이스 누나에게 반지도 선물했다. 그건 진심이었고, 누나도 그런 마음으로 받았다.
“그건 남녀로서 그렇겠지?”
“네. 그리고 저는 남자로서 그레이스님을…. 그레이스 누나를 사랑합니다.”
“그래? 그렇군.”
내 말에 아이단 형님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날 바라봤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네.
“그레이스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네. 아뇨, 저의 망상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렇군. 그래도 남녀로서라….”
처음에는 불편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표정을 유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군.”
아이단 형님은 거짓이 아닌 진심인 것 같았다. 정말로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어머니도 사랑하고, 부모님으로서 존경해. 프란츠 가문을 이끄는 가주로서도 존경하고 있지. 객관적으로 봐도 아버지는 훌륭히 가문을 이끌고 있고, 어머니 역시 수도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시지.”
“그렇죠. 저도 부모님으로서, 가문의 가주로서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지난 일에 그것을 깨달았다.
비단 부모님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쑥스럽습니다만, 형님도 좋아합니다.”
“하하하하. 그건 나도 그래. 설사 너와 후계자 분쟁을 한다고 해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건 제가 사양합니다.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그래. 들었지. 생각보다 더 익숙하게 해낸 것 같아서 솔직히 계속 내 옆에서 일을 도왔으면 좋겠다만.”
“어휴, 싫습니다.”
형님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내 모습에 진심으로 유쾌한 듯이 웃는 형님은 그대로 차를 들었다.
“그래. 그녀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함께 가문을 이끌 사람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해. 마력의 소질도 좋고, 머리도 뛰어나지. 성격도 흠이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것은 가문을 이끄는 사람으로서의 의견이라고 형님은 말했다.
“네 말처럼 여자로서 그녀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음. 그렇군. 아니. 그건 아니야.”
아이단 형님은 생각보다 더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걸 듣는 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 그레이스 누나도 마찬가지겠지.
“사람으로서는 좋아해. 그녀도 그렇겠지. 딱히 서로에 불만을 느끼고 있지 않으니까. 아니, 그렇네. 임신을 시켜주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나에게 불만을 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군.”
“그건 아닙니다. 그레이스 누나는 형님에 불만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그레이스 누나와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형님에 대한 생각도 있다. 정말로 그 둘은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겠지. 내가 있지 않고, 부부 사이에 아기를 가졌다면 프란츠 가문의 주인으로서 훌륭하게 해냈겠지.
하지만 결국 만약의 이야기다.
둘 사이엔 아기가 없고, 내가 끼어들었다.
내 모습을 보던 형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형님.”
내 욕심 때문에 형님에게 미안한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욕심이 맞겠지.
“남녀로서 사랑은 없지만, 부부의 정은 있다. 이게 더 그녀가 행복해지는 일이라면, 나 역시 보내줘야 하는 게 옳겠지.”
하지만. 형님이 말을 덧붙였다.
“정식으로 그런 사이가 될 수 없다.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도 그건 반대할 거고, 아무리 그래도 나 역시 프란츠 사람. 그건 나도 반대다. 그레이스 누나 역시 그 정도까지 원하진 않을 거고.
아이단 형님은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계속 함께할 순 없어. 엄밀히 말해서 그녀는 나의 아내로서 가문의 여주인으로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거나, 혹은 내가 새로운 처나 첩을 맞이할 때까진 그래야지.”
“네, 이해합니다.”
“그리고 너랑도 공식적인 행사에 나오는 것은 안 돼.”
“네.”
그건 나도, 누나도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 함께 지낸다고 해도 가끔 프란츠로 떠나야 하겠지.
그리고 공식적인 행사 역시 성인식 때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누나는 나설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 외는 별로 없다. 형님도 그렇게 깐깐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이 있다. 이것만은 형님을 비롯한 아버지도 용납하지 않을 일.
“지금 그레이스가 임신한 아이는 프란츠의 차기 후계자다.”
지금 누나가 임신한 나의 아기.
그건 프란츠 가문의 정식적인 후계자로 자라야 한다. 아직 형님의 씨앗 문제에 대해서 이렇다 할 견해가 없지만, 지금 당장은 그래야 했다.
“그것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건 진짜로 양보할 수 없어.”
“괜찮습니다. 형님.”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쪽이 더 미안하다.
그리고 프란츠 가문의 후계자라고 해도, 아예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강제로 못 만나게 할 사람들도 아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남이어도,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간섭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외에도 앞으로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사무적으로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형님이 모습은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아버지가 말한 것도 이 이야기였군.”
“아버지가?”
“그래. 미리 이야기를 해줬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한 차례 이야기가 끝난 후, 사소한 잡담을 하면서 쓴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 역시 뭐라고 했나 보다.
“그나저나 그레이스가 진짜로 임신했다는 건, 정말로 나에게 씨앗이 없다는 건가?”
남녀의 사이나, 연애 감정 같은 것에 초탈한 모습을 보이는 형님이지만, 이 부분은 과연 조금 충격이었는지, 상당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직 뭐라고 확답하기는…….”
정말로 운이 나빠서 여태 임신을 하지 않을 확률도 낮지 않으니까. 애초에 나처럼 자주 섹스한 것도 아닐 거고. 그래도 같은 남자로서 형님을 위로할 수 밖에 없다. 지구에서도 두 명 정도 아기를 낳은 후에 묶은 사람을 본 적 있지만, 형님의 경우는 틀리니까.
내 위로에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힘내 봐야지.”
뭐를, 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형님의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어서 찻잔에 고개를 박았다.
“그레이스를 잘 부탁한다, 레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형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형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더 그 자리에 머물었다.
일단 급한 건 마무리 됐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