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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93화 (93/143)

〈 93화 〉 뒷정리 ­ 3

* * *

“니냐와 사샤는 먼저 뮐러로 출발했습니다.”

“벌써? 빠른걸.”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요. 대리인을 통해 계약해놨다고 해도, 집주인이 될 사람이 직접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

“후후훗. 고생 좀 하겠죠.”

장난스럽게 말하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하긴.

말이나 문서로 전달하는 건 한계가 있지.

­호록!

베아트리체가 준비한 차를 마셨다.

익숙한 달콤한 향을 맡으며 앞을 바라봤다.

여전히 성숙한 미모를 자랑하는 베아트리체는 내 앞에서 다소곳하게 자세를 정돈하며 앉아있었다.

“나랑 같이 가도 될 텐데.”

“후후. 너무 그 아이들의 어리광을 받아주시면 안 됩니다. 직접 겪고 때론 실패도 해봐야 어엿한 어른이 된답니다.”

모성애가 강한 여자지만, 할 때는 하는 여자. 베아트리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은 사정이 좀 바뀌었을 텐데.”

뮐러를 통치하고 있던 아이단 형님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프란츠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형님이 도착한 후 내가 출발하는 형태가 되는데.

“하하하. 점령군이 사라진 도시라.”

“그 부분은 조금 걱정되긴 합니다만….”

물론 모든 병력을 빼는 건 아니지만 보안에 불안해지는 것은 없지 않다.

우리도 만약을 대비하긴 했지.

기사단장 한스를 비롯한 정예 기사 몇 명이 뮐러 성에 머물고 있다. 그라면 믿을 수 있지.

근데 한스라. 모험가 한스가 떠올랐다.

한스라는 이름 꽤 많이 쓰나 보네.

“치안이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그래도 제 딸들이라면 괜찮겠죠. 거기에…….”

베아트리체의 가느다란 손끝이 턱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간다.

얇고 가녀린 매혹적인 목선. 주름 한 점 없는 새하얀 피부 위를 훑던 손가락이 서서히 내려간다. 풍만한 가슴 사이로 빛나는 보석이 있었다. 내려간 손가락이 툭, 목걸이에 닿았다. 푸른색 보석이 장식된 목걸이.

내 마력이 담겨 있는 마정석으로 장식한 목걸이.

“레오님의 은혜가 담긴 신물을 믿고 있답니다.”

“하하.”

만약을 대비해 목걸이에 마력을 담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감소하기는 하지만, 마정석에 담긴 태양의 마력은 그 특성 때문인지 다른 마력보다 오래 버티는 성질이 있었다.

그것을 제외해도 최상급 품질의 마정석에 담은 강대한 마력은 위험한 순간을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크게 위험할 때는 손을 쓸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물론이죠. 창관의 관리는 도시의 치안과 안전에 중요합니다. 오히려 딸들에게 너무 잘해줄까 봐 걱정이네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클로에가 안 해줄걸?”

“후후. 그분이라면 믿음직스럽죠.”

잠깐 조용해진 사이.

베아트리체의 걱정 어린 시선에 미소를 지었다.

“제가 걱정할 주제는 아니지만……. 영주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그래. 괜찮아. 아직도 정정해.”

이 도시에 그녀 정도로 인맥이 많은 사람은 드물 거다. 귀족이야 들리는 일은 없다 해도, 손님 대접이나 기사나 내정을 하는 사람들은 자주 접한다. 그뿐인가. 상인들도 유명한 프란츠의 붉은 꽃의 화원에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여러 소문을 자주 접하는 위치가 됐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는 것은.

“벌써 다른 곳에 소문이 퍼졌나?”

“지금은 아직 프란츠뿐이겠지만요. 그중에서도 극소수…. 하지만 다른 곳도 이제 슬슬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력이 있는 모험가나 기사급 사람이 탈진을 각오하고 달린다면 다른 영지의 주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지.

아마 짧아도 이번 달 안 정도.

“베아트리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저 말인가요.”

내 말에 베아트리체가 말을 흐렸다.

그녀가 화원의 주인인 것을 알고 하는 이야기다.

결코, 강제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함께 해줬으면 좋았다.

“저를 생각해주시는 레오님의 마음. 정말로 영광입니다.”

베아트리체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일어섰다.

나에 대해 품은 감정 중 믿음이 제일 깊고 강한 여자를 뽑으라면 그녀겠지. 거의 신앙 수준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는 화원의 주인입니다. 아직 제 손길이 필요한 연약한 꽃들이 많답니다.”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를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 아이들을 부탁드립니다. 레오님.”

깊게 허리를 숙이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고개를 끄떡였다.

* * *

“짐은 어떻게 할까요?”

“만약을 대비해 찻잎도 준비했습니다.”

눈을 초롱초롱.

강아진가?

칭찬을 바라는 듯이 머리를 쓱쓱 밀어붙이는 샬롯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환상이 아니라면 지금 샬롯의 엉덩이에 꼬리가 모터 달린 듯 휙휙 도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그런 샬롯의 모습에 네리아도 쓴웃음을 지으며 지켜보고 있다.

어쨌든 둘의 말을 듣자 하니…….

“짐이라면, 따라올 생각이야?”

“당연하죠!”

“설마…… 저희를 버리실 생각이셨나요?”

큰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물론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다만 강제로 데려갈 생각은 없다.

“가족은?”

베아트리체는 딸들이 뮐러로 갔다.

평생의 이별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만날 기회도 시간도 없을 거다. 그래서 제안했던 거다. 그녀들 두 명을 빼고는 그녀의 가족은 없으니까. 여기 홀로 있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나 역시 그녀가 곁에 있으면 적어도 뒷골목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수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물론 허락받았죠.”

두 하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오히려 따라가도 괜찮냐고, 민폐 끼치는 거 아니냐면서 걱정하던데요?”

“정말이지. 물론 평소 레오님을 모시고 있다고 말을 안 하긴 했지만, 설득하는 것보다 그걸 믿게 하는 게 힘들었다니까요.”

뭐어…. 보안의 문제도 있고. 성내의 업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성 밖에서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다만 확실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고,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긴 하다. 그래서 이쪽에서 딱히 먼저 찾고 다니진 않지만, 만약 들키면 확실히 벌을 내리는 편이다.

“물론 데리고 가실 거죠?”

“짐은 전부 다 챙겨놨습니다! 레나님의 허락도 받았고요!”

호.

레나가? 그 레나가 허락도 했다고? 네리아라면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샬롯까지?

내 놀란 표정에 샬롯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귀여워서 손가락으로 볼을 콕콕 눌러봤다.

­푸슛!

“꺄아! 아, 정말! 레오님도 참! 지금 네리아면 그럴 수도 있지만, 너까지? 하는 생각했죠?!”

“와. 샬롯 대단하네.”

­짝짝짝!

내 마음을 읽는 듯한 샬롯의 말에 손뼉을 쳤다.

곁에서 꽤 오래 보살핀 덕분에 잘 아는군.

“우아아앙! 네리아! 레오님이 날 놀려!”

“정말. 언제까지나 그렇게 애처럼 구니깐 레오님이 놀리는 거야.”

네리아의 품에서 우는 척을 하는 샬롯의 등을 토닥인다.

네리아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레나에 합격 판정을 받고 허락을 받았나 보네.

“정말로 허락받았답니다. 최근 레나님 밑에서 수행하느라 얼마나 바빴는데요.”

등을 토닥이던 네리아가 정말이라는 듯이 한다. 확실히 최근 모습이 보기 어려웠지만.

물론 업무 외나 밖을 돌아다닐 때야 모습을 못 보는 건 당연하지만 성내에서도 주로 내 주위에서 머물던 애들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모습이 안 보여서 이상하다 했는데.

“레나 밑에서 수행하고 있었다고?”

“네! 레나님의 엄격한 지도로 프란츠의 하녀로서 어딜 가도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수련했습니다!”

아담한 가슴을 펴면서 샬롯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네리아가 보충하듯이 말했다.

“직속 시녀를 구하기 전까지는 저희가 레오님을 담당할 것 같습니다. 일단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저희가 곁에서 보살펴야 한다고 레나님이 그랬습니다.”

“으음.”

그야 웬만한 암살 시도는 통하지도 않고.

독도 태양의 마력을 얻고 나서는 통하지 않겠지. 아직 실험한 적은 없지만, 태양의 마력으로 인해 독에 대한 내성이나 회복도 문제없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래도 방심할 때는 방심하니까 그런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선가.

“클로에님도 계시겠지만 클로에님은 클로에님의 일이 있으니까 항상 곁에 머무는 건 어렵다고 하셔서….”

“그렇겠지.”

어쨌든 두 명이 같이 간다니.

듬직하다. 어느 의미로 클로에보다 더 곁에서 날 보살피던 사람은 레나와 이 두 명이었다.

일어서서 두 명의 곁에 다가갔다.

“아….”

“레오님……!”

두 명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고마워.”

“후후후. 저희만 믿으세요.”

“평생 보살펴드릴게요!”

가슴에 손을 모아 싱긋 웃는 기운찬 두 명을 보며 나 역시 웃었다.

그 두 명의 머리카락 사이로 힐끔 보이는 귀에 있는 푸른 보석이 달린 귀걸이가 있었다.

이거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겠지.

* * *

유모의 자식, 쌍둥이들이 찾아왔다.

뭘 기대하는 거야?

“너희들은 무조건 따라오는 거다.”

“어?! 이게 끝?”

“레오님? 레오니이이임!”

그럼 수고.

훈련 잘 받아.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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