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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92화 (92/143)

〈 92화 〉 뒷정리 ­ 2

* * *

프란츠 성. 내성 중앙에 있는 거대한 회의실.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평소 아버지가 앉던 자리는 비어있고, 그 옆에 아이단 형님과 내가 있던 곳에는 나 혼자 앉아있고, 그 뒤에 클로에가 서 있었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회의실.

천천히 회의실을 훑어봤다. 중장년층의 가신들이 내 눈치를 보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흐음.”

나도 한숨이 나왔다. 상황이 좀 애매해졌다.

아이단 형님은 성인식은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성인식도 하지 않았고 애초에 대놓고 활동한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보랭이나 수도에 몇 번 나간 것이 전부고 그것도 이리나양을 비롯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나를 위해서 만든 예술이나 가족회의가 있었던 그 날을 중심으로 프란츠 공방에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부터 시작해 조금씩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그 영향력은 아주 작고, 애초에 영지에 관련된 직접적인 부서도 아니다. 공방 정도는 조금 중요하긴 하지만, 나오는 성과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요 며칠 사이에 조금 많이 바뀌었다.

성인식을 열어 보랭 가문의 이리나 보랭과 친분을 맺었다. 이건 원래부터 있었고, 결혼 이야기도 있던 사이다. 이거까지는 별문제가 없지만…….

서남부 지방에 있는 바흔 왕국의 왕족이며 왕위 계승권이 있는 2 공주인 아멜리아 바흐니아 공주와 친분을 맺었다.

성인식에 참석한 브람스의 공작 가문, 어스레인 가문의 공작 각하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거는 아멜리아 공주 때문이겠지만….

거기에 최근에 일어난 마력 각성.

난 태양의 마력을 얻었다. 물론 불완전하고 아직 미완성이며 이대로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다시 프란츠 가문의 마력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완전히 각성하지 않았다면 차세대의 마력이 태양의 마력이 될 일도 있지만, 어쨌든 나의 마력에 대한 것은 가문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게 문제가 되고 있다.

내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게 문제다.

내가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해도, 아랫사람이 후계자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불만을 품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거기에 후계 문제가 있다. 그레이스 누나가 임신을 한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나라는 것 또한 다들 알고 있다.

커지는 영향력.

마력의 각성.

후계자 문제의 해결.

이건 나도, 형님도. 그리고 아버지도 원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덜컥!

조용한 회의실.

아버지가 들어왔다.

* * *

“으음.”

펄럭이는 소매.

그걸 보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조금 더 빠르게 대응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뒤에 있던 클로에가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레오님…….”

“괜찮아. 고마워, 클로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 클로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깨 위에 올린 클로에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서로 손을 한 번 꽉 잡아 체온을 나눴다. 그녀의 애정을 다시 한번 느끼며 정면을 바라봤다.

팔이 없지만, 여전히 등을 꼿꼿하게 핀 채로 평소처럼 위엄있게 들어오는 아버지. 그 모습을 보는 가문의 가신들도 바라봤다.

아버지의 한쪽 팔이 없어졌다는 알고 있던 가신은 눈을 질끈 감고, 이야기는 들었어도 모습을 처음 본 가신들은 이를 악무는 모습이 보였다.

충격이겠지. 나이 든 가신은 젊었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전장을 함께했던 충신들이다. 무패 신화까진 아니지만, 금빛 사자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뚜벅, 뚜벅!

회의실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가운데 여전한 모습으로 중앙을 가로지르며 통과하는 아버지가 이내 중앙에 있는 제일 높은 상석에 착석했다.

“회의를 시작하지. 스벤. 진행하도록.”

“네. 그럼 현재까지 진행된 사업부터 보고하겠습니다.”

스벤을 시작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 * *

“서면에 올렸던 것처럼 바흔 왕국과의 일은 그렇게 정리됐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이 샤리네어 공작에게 받은 바흔 왕국에서 보내준 물건 리스트입니다.”

“음.”

내 말이 끝나자 클로에가 따로 준비한 서류를 제출한다.

이걸로 보고는 끝.

해룡의 비늘이나 공방의 발명품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물건들이고. 이걸로 대충 보고는 끝냈다.

조용해진 회의실을 아버지는 한 번 둘러봤다.

“알고 있다시피.”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내가 입은 상처는 복구하기 어려운 분류의 상처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 치유한 결과 마력의 양과 질의 저하를 확인했네.”

“그런! 다시 한번 진료를 해보시는 것이!”

“아아.”

아버지의 말에 잠깐 웅성거리는 회의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중에는 수도에서 사람을 구해보는 건 어떻냐는 말까지 나왔다. 정 방도가 없으면 그 방법밖에 없긴 하지만, 수도의 사람. 정확히는 왕족에 손을 빌리는 건 좋지 않다. 그들에 빚이 생기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아버지 성격이라면 당연히 거절할 이야기고.

“조용.”

아버지의 말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회의실.

그 속에 아버지가 잠깐 눈을 감은 후, 크게 숨을 쉰 후 입을 열었다.

“예정과는 어긋나지만. 이참에 아이단에 정식으로 가주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다.”

“음!”

다들 예상은 했겠지.

별다른 소란은 없었다. 다만 그중 몇 명이 날 보는 시선이 있었다. 나쁜 의도는 아니겠지만, 좋든 말든 분란은 일으키지 않은 것이 좋다. 모르는 척 아버지를 바라본다.

“뮐러의 통치를 통해 영지 일에 익숙해지는 것을 기다릴 생각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아이단을 불러 정식으로 가주 자리를 물려주겠다. 그리고 레오릭.”

“예. 가주님.”

아버지의 부름에 고개를 숙인다.

“뮐러를 맡기겠다.”

“알겠습니다.”

정해진 대로. 더 이상의 분란은 용서치 않는다. 프란츠 가문의 주인은 그렇게 고했다. 가신들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문득 그레이스 누나가 떠올랐다.

* * *

회의도 끝나고.

업무를 도와준 클로에도 잠깐이라도 쉬라고 보내준 뒤 홀로 집무실에 남아있는 시간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마저 서류를 살피던 도중, 누군가 집무실에 다가왔다.

­똑똑!

“레오릭님, 말튼입니다.”

“들어와.”

프란츠 공방의 연구소장 말튼이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다니.

또 예산을 달라는 건가?

“줄 예산 없는데.”

“크, 크흠. 제가 뭐… 매일 예산 달라고 찾아옵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크흠.”

“볼 때마다 예산 타령하지 않았나.”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하는 말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정치질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할 줄 모르고. 미련하게 연구만 하는 진성 공돌이라 예산도 제대로 탈 줄도 모른다. 아무리 공평하게, 공정하게 내정을 하려고 해도 예산은 제한되어 있고, 필요한 곳은 많다. 불법적인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서로 어떤 거래가 있어도 딱히 터치하진 않지만, 그래서 그런가 말튼 같은 사람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내가 공방에 관심을 들기 시작한 후로는 개인적으로 투자도 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어느 정도 숨이 트이는 것 같지만.

애초에 연구소에 예산 부족한 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음?”

말튼이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벌써?”

부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튼이 건네준 상자를 받았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보면 정말로 부탁한 물건이 맞는 것 같은데.

“레오릭님의 부탁 아닙니까. 제가 직접 가공했습니다. 제가 좀 미련해도, 바보는 아닙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인사입니다.”

“하하. 당장 가는 것도 아닌데. 과해.”

“이제 또 연구를 시작하니까요. 언제 공방에 나올지 모르니까, 지금이 딱 인사하기 좋을 듯싶어서 왔습니다. 하하.”

작별 인사에 가까운 말튼의 말에 콧등을 긁적였다.

내가 뮐러에게 가면서 공방의 인원 몇 명이 따라서 오지만, 말튼이 맡은 직위도 직위고 사람이 적어진 공방은 관리할 필요도 있다.

“유감인걸.”

“하하하. 따라가는 녀석들도 하나 같이 유능한 놈들입니다. 레오릭님의 기대를 실망하게 하진 않을 겁니다. 거기에 여기서도 계속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레오릭님이 깜짝 놀랄 물건을 만들겠습니다.”

말튼의 말에 가슴이 웃음을 지었다.

그라면 그 말대로 정말로 만들어내겠지.

“기대하겠어.”

“네. 감사합니다, 레오릭님.”

……. 너무 분위기가 엔딩 느낌인데.

잠깐의 침묵에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뮐러에 간다고 아예 여기에 안 오는 건 아니니까.”

“어.”

말튼의 작은 눈이 껌벅거렸다.

진짜냐.

“그, 그랬습니까?”

“……아니, 내가 프란츠라는 성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소리를.”

“그, 그랬군요.”

너무 진지한 분위기라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영영 이별한 줄 알았나 보네.

정말로 부끄러워하는 말튼의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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