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90화 (90/143)

〈 90화 〉 대형급 몬스터 ­ 4

* * *

에이번 프란츠는 고통으로 지끈거리는 팔을 붙잡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금빛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금빛 눈동자가 불타오른다. 초월적인 아들의 모습. 그런 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이 이 일대를 비추고 있었다.

금색의 광휘(光?).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에이번 프란츠는 과거 그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전해오는 이야기가 떠올렸다.

아주 먼 과거.

사람이 인간이 아닌 시절.

지금보다 더욱더 소수의 인간만이 마력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던 시대.

그때의 인간들은 마력을 가진 자들. 푸른 피를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 진정한 사람이라 하여, 그 외의 인간은 그저 노예에 불과했던 시대.

마력을 가진 그들은 스스로 신이라 칭했고 실제로 많은 인간이 그들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인간을 초월한 그들의 모습에 공포를 품고, 때로는 숭배하며. 신앙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그들을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손짓, 말 한마디 하나로 자연이 붕괴하고, 새로운 자연이 창조된다. 그 모습은 신이라고 하기에 마땅하겠지.

그렇겠지.

에이번 역시 그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보아라.

저것이 바로.

태양이다.

* * *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의 빛이 느껴진다. 내가 만든 태양 같은 인공적인 빛 덩어리가 아닌, 나 자신이 태양이 된 것이 느껴졌다. 물론 진짜 태양에 비하면, 아직 허술한 점이 많다.

이 모습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태양이 가지는 힘을 단순한 상식으로만 재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가진 힘, 마력이 바로 판타지 그 자체가 아니었나.

내가 가진 지식, 전생의 상식만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이 문제였다.

시선을 내렸다.

어둠 속에 숨은 도마뱀이 보였다. 내 의지에 맞춰, 빛이 내리쬐자 세상이 밝아진다.

“크아아아아악!”

이 일대에 내리쬐고 있는 빛에 도마뱀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태양 앞에 숨는 것은 불가능하다.”

빛이 있으라 하자 낮과 밤이 나타나 7일에 걸쳐 세상을 창조했던 전생의 신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밤이란 것은 어둠 속에 몸을 숨겨 잠을 자는 것을 의미한다면, 태양이 비추는 낮이란 빛 아래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의미.

태양이 내리쬐는 지금.

빛으로 가득 찬 이 영역에 숨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다만 그 영역은 지극히 작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번 깨달음……?으로 꽤 많은 사실을 알아차렸기에 알 수 있다.

내 마력으로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은 이 언덕 정도의 넓이. 적당히 넓다고 할 수 있지만, 상대하는 놈이 대형급 몬스터면 불안한 크기다.

그걸 저놈이 눈치채고 도망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손가락 끝을 까닥거렸다.

그것이 신호로 빛이 출렁거린다.

유감스럽게도 난 빛의 마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태양과 빛. 그 둘에 차이가 있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이용하면서도, 빛 그 자체를 이용할 수 없다. 어째서 그런 걸까.

상식을 뒤집어봐도 내 머리로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분명 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단순한 상식이 아닌, 이 세계의 기준으로 한 개념의 문제겠지.

그래서 빛을 이용하면서도 유감스럽게 그 명대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적어도 비슷한 것은 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도마뱀을 가리킨다.

빛이 출렁이며 내 의지에 답한다. 손가락 끝에 압축되는 태양의 빛. 눈부신 그것이 내 의지에 답해 도마뱀에 향한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차여본 적이 있나?”

한 줄기.

태양의 에너지가 뭉친 빛 덩어리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도마뱀을 노린다.

그 속도는 한없이 빛에 가까운 속도.

도마뱀이 자각하기도 전, 공간 속에 숨어있던 거대한 몸이 빛의 충격에 출렁거리는 순간 바닥에 처박혔다.

­쿠우우우웅!

“크롸아아아아악!”

무슨 공격에 당했는지. 어째서 숨어있는 자신이 공격당한 건지. 당황하는 도마뱀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맞은 부위를 보면 타격 당한 흔적만 있을 뿐, 빛줄기에 뚫린 흔적이 없다.

그 찰나의 순간에 놈의 마력이 비늘을 강화하는 것을 느꼈다. 역시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계속하면 그만.”

지금은 낮이고.

진짜 태양이 하늘에 떠 있다.

하늘에서 전해지는 태양의 에너지를 마력으로 치환한다. 태양열 발전소처럼 태양 에너지를 마력으로 삼는 것은 아직 먼 이야기지만, 태양열로 작은 에너지라도 훔쳐오는 것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된다.

­지이이이잉!

빛이 떠오른다.

주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의 구슬들이 하나, 둘, 셋……. 그 수가 늘어난다. 실제 광속이냐 하면 나도 잘 모르지만. 그 빛 덩어리 하나하나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면서 놈을 타격한다. 그뿐인가. 주변의 대기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빛의 구슬 하나, 하나에 느껴지는 대기가 끓어오를 정도의 고온.

하늘을 올려다보는 도마뱀이 움찔한다. 공포에 물든 그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거대한 빛 덩어리에 둘러싸인 내 모습이었다.

웃었다.

“죽어라.”

더는 시간 낭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후우. 괜찮아. 괜찮다.”

한 차례 격전이 끝난 다음. 도마뱀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지상에 내려와 아버지 곁에 다가갔다.

창백해진 안색은 여전하지만, 조금 전보다 편안해진 것은 체내의 마력을 치유에 돌려서 그런 거겠지.

그런 아버지의 팔을 바라봤다. 어깨 밑으로 흔적이 사라진 그 모습에 가슴이 지끈거렸다.

하나의 기대를 걸고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어깨에 접했다.

“……마력이.”

“그래.”

눈을 질끈 감았다.

떨리는 입으로 애써 입을 열었지만, 차마 끝까지 흘러나오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에 아버지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이 나와요?”

나도 모르게 투정 부리는 듯한 어조가 나왔다.

그런 나를 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아니. 그렇군.”

아버지가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모습이다.

이내 고개를 끄떡이며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버지의 두꺼운 손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장하구나. 레오.”

“……정말.”

아버지의 눈빛과 따스한 말에 나도 모르게 목이 막혀왔다.

태어났을 때부터 달랐다. 어쩔 수 없지. 난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났다. 환생이다.

눈앞의 이 사람을 비롯해 난 어머니라고 불렀던 여자도, 형님이라고 불렀던 남자도. 모두 진짜 가족처럼 대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족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 컸군.”

평소보다 풀어진 얼굴로. 엉망이 된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울컥거렸다.

그렇군.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역시 이 사람들은…… 내 가족이다.

* * *

“레오님 무사하십…………!? 세상에, 가주님?!”

나타나자마자 비명을 지르는 클로에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 뒤에 아버지만큼이나 창백해진 이자벨의 모습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멀리서 달려오는 여러 기척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함께 귀환하던 병력이겠지.

“하아.”

한숨이 나왔다.

피해도 피해지만, 아버지의 팔이 문제였다.

예전처럼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먹힌 팔을 재생할 방법은 없다. 특히나 단순한 물리로 끊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순수한 마력으로 잘린 육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문제였다.

놈과 같은 마력으로 몸을 구성하는 마력의 흐름과 함께 뜯긴 팔. 특히나 도마뱀이 완전히 소화해버린 팔은 설사 재생한다고 해도 그건 겉모습에 불과했다.

“너와 아이단에는 미안하군. 예정이 전부 엉망이 됐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버지의 말은 이해가 됐지만, 당장 할 말은 아니다.

주변에서 서서히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레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창백해진 안색.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런데도 눈빛은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단에 뮐러의 안정을 맡기려고 했다만, 내가 이런 꼴이 된 이상 그럴 순 없다.”

“아버지.”

아버지의 부상은 아무리 소문을 막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언젠가 터진다.

프란츠의 최대 전력이 다쳤다는 소문은 주변 다른 영주들이 다른 마음을 품기엔 충분한 이유다.

“그러기 전에 정식으로 가주의 자리를 아이단에 물려줘야 하겠다.”

자리를 물러주는 타이밍으로 나쁘지 않다.

전쟁에서 형님은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해냈다고 했다.

지금 당장 가문을 물려받아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가신들 역시 형님을 따를 준비는 끝났다.

“그럼…….”

하지만 형님은 원래 뮐러를 수습하면서 내정 실력을 키우는 도중이다. 그런 형님에게 당장 가주 자리를 물려준다는 소리는 프란츠로 다시 부른다는 뜻이고.

그 말은 즉.

“뮐러의 땅으로 가라.”

전쟁이 끝난 땅. 아직은 혼란스러운 그 땅. 이제는 프란츠의 땅이 된 그곳으로 가라.

그리고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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