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89화 (89/143)

〈 89화 〉 대형급 몬스터 ­ 3

* * *

“아.”

멀리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평상시의 아버지라면 결코 볼 수 없는 흐트러진 머리카락. 이마에 흐르는 땀. 굳어진 표정. 그리고 붉게 물든 상체와 사라진 팔.

순간 열이 뻗쳤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표출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마력으로 만들어진 인공 태양이 등 뒤에 나타났다. 그 크기는 성인식 날 만들었던 거대한 크기와 맞먹는 크기.

“이 도마뱀 새끼가!”

아버지가 있는 언덕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희미하게 보이는 도마뱀처럼 생긴 무언가. 그리고 그것의 입이 벌리는 순간 아버지가 있는 언덕에 거대한 입의 형상을 하는 무언가가 그대로 공간 채로 뜯으려는 것이 보였다.

마력이 이글거린다. 끓어오르는 물과 같이 몸속에 담긴 마력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완성된 인공 태양과 부풀어 오른 나의 마력이 서로 연결된다. 체내의 마력이 동조하는 순간, 인공 태양이 숨을 쉬듯이 박동한다.

일렁이는 태양.

목적은 지금 당장이라도 공간 그 자체를 잡아먹으려는 저놈.

“뒤져라!”

나의 분노에 마력이 답한다.

금색으로 불타오르는 마력에 동조하는 인공 태양의 중심. 거대한 마력이 점으로 압축되는 것도 잠시, 압축된 거대한 마력이 거대한 광선이 되어 쏟아졌다.

“크라아아아아!”

그 속도는 찰나. 거대한 빛줄기가 그대로 관통하자 흐릿한 모습을 보이는 도마뱀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희미하게 보였던 거대한 입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쏴라!”

창백해진 얼굴의 아버지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두 마리의 사자를 움직인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금빛 사자는 아버지의 손짓과 동시에 입을 벌린 후, 금색의 광선을 쏘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이이잉!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

그리고 땅에서는 2개의 광선이 도마뱀을 강타했다.

“크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려는 도마뱀이지만 허공에 떠 있는 태양과 직접 몸을 움직이며 조준하는 광선을 피하기는 어려운 법.

도마뱀의 움직임으로 비늘에 흘리는 피가 허공을 수놓는 순간, 그 몸이 마치 허공에서 접히는 듯이 사라졌다.

“옆이다!”

아버지의 말에 곧바로 몸을 피한다.

­콰직!

공간이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면서 공간 자체가 뜯겨나간다.

이것이구나! 아버지의 팔이 저렇게 된 이유가!

“타올라라!”

태양이라면 빛.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세계의 기준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온도도 있다.

­화르르르륵!

불꽃이 이 일대의 허공을 불태운다.

아버지가 있는 공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태우는 순간, 어딘가의 공간에 숨어있던 도마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롸아아아아!”

그 긴 몸으로 그대로 나를 덮치려는 것이 보이자 곧바로 주먹을 뻗었다. 주먹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그리는 금빛 마력이 도마뱀의 머리를 노렸고, 밑에서부터는 아버지의 손짓에 따라 금빛 사자가 달려들었다.

그 틈.

몇 번이나 봤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도마뱀이 아버지의 상공에 나타났다. 애초부터 노렸던 건 아버지!

“모른 줄 알았냐!”

배고픔에 허덕이는 눈동자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걸 못 알아차렸으면 내가 불 속성 효자다! 이 새끼야!

나도 프란츠의 혈족이다!

태양을 이루는 마력에서 거대한 물방울처럼 마력이 한 움큼 떨어지는 순간, 그것이 곧바로 사자의 형태를 변화더니 그대로 도마뱀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크롸아아아아아!”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도마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버지의 사자들도 달라붙기 시작했다.

3마리의 사자와 1마리의 도마뱀이 몸싸움을 벌이는 진귀한 풍경을 무시하고 곧바로 아버지의 곁으로 내려섰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레오.”

날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창백한 얼굴을 보자 심장이 철렁거렸다. 이렇게까지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팔의 상처를 살펴봤다. 깔끔하게 뜯겨나간 팔이 보였다. 지혈은 했지만, 상처 자체가 워낙 크다.

잃었던 피도 피지만, 애초에 일격을 허용한 것 자체가 위험하다. 치료가 필요하다.

“곧바로 치료를…!”

“됐다. 난 괜찮다. 날 신경 쓰지 말고 저놈을 맡아라. 저놈이 산을 벗어나면 위험하다.”

“하지만…!”

시선을 뒤로 돌렸다.

아직도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는 도마뱀이 보였다.

저놈의 은신 능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버지조차 기습을 당할 정도라면 지금 놓치면 위험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망설이는 나의 어깨 위로 아버지의 손이 올라왔다.

“어서. 귀족의 의무를 다해라.”

아버지의 금빛 눈동자와 마주친다.

찬란했던 눈동자의 색이 어두워진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유일한 손에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고통을 참으면서도 내 어깨를 강하게 쥐는 아버지의 손에 억지로 고개를 끄떡였다.

* * *

“크르륵!”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고통.

미식가라고 불린 그것은 몸에 생긴 상처를 바라봤다. 단단했던 검은 비늘에 불타오른 흔적과 비늘을 뚫고 몸 안까지 파고든 힘이 느껴진다.

미식가의 커다랗고 찢어진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갔다.

선택해야 했다.

다리 하나를 뜯은 먹잇감이 보였다.

더 피가 흘리지 않았지만, 상처 입은 먹잇감을 여기서 놓치는 것은 아깝다. 이미 소화가 끝난 먹잇감의 다리 맛을 떠올리며 입가에서 타액이 흘러나왔다.

역시 놓치기는 아쉽다.

어떻게 더 기회가 없을까.

“크르르….”

미식가는 입맛을 다시며 먹잇감이 있는 언덕을 어슬렁거렸다.

그의 몸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소리도, 체형도, 마력의 기척마저도 사라진다.

새로 나타난 먹잇감의 동족을 시야에 담는다.

가족인가? 다친 동족을 내버려 두지 못하는 동물이라면, 새로운 먹잇감이다. 새로 나타난 먹잇감에도 느껴지는 마력의 질이 미식가의 후각을 간지럽히고 있다.

식욕과 탐욕.

그것은 미식가가 산에 내려온 이유다.

눈을 빛내며 어둠 속에 파고든 그것은 기회를 노렸다.

포식의 사용은 그에게 있어서도 도박에 가깝다. 사용되는 체력과 마력도 상당하다. 사냥에 실패한 포식자는 역으로 잡아먹히는 것 역시 미식가는 알고 있다.

천천히.

공간에 그 몸을 녹여가며 사라지는 미식가는 다시 그 타이밍을 노린다.

* * *

하늘에 떠서 대지를 내려다본다.

아버지가 먹힌 팔 부분을 붙잡은 채로 언덕에 홀로 남아있다.

아니, 금빛 사자 두 마리가 호위하듯이 어슬렁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 모두 아버지의 손으로 조종되는 힘에 불과하다. 사실상 미끼에 가까운 행동.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애써 눈을 감았다.

­지이이잉!

완벽하게 숨은 놈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이렇게까지 숨어버린 지금, 레이더로도 탐지가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정밀성도 없었으니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놈은 있다.

이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놈의 마력이 희미하게 머물다가 사라진다. 분명히 이 일대에 존재하나, 자세한 위치까지 파악할 수 없다.

“후우우.”

심호흡한다.

아버지의 말이 떠올렸다.

­너는 기묘한 아이다.

인공 태양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말했다.

­가르치지도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렁이는 태양 빛이 점점 강렬해진다.

­배우지도 않았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만든 인공 태양이 그 크기를 키우며 움직인다.

­그래서일까. 너는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면서.

인공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뜬 진정한 태양 아래로 움직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더구나.

태양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다.

태양을 뜻하는 건 수없이 많았다.

타로에도 태양 카드가 가진 의미는 많듯이.

나라마다 태양을 숭배하면서 그 태양에 대한 의미는 서로 다른 듯이.

그리스 신화의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면서도 예술을 비롯한 온갖 여러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신으로도 유명하다.

중국 신화의 신농도, 아즈텍 신화의 케찰코아틀도. 단순히 태양을 상징하는 것만이 아닌, 그것을 포함하는 개념이 더 많았다.

태양을 가리키는 것은 단순히 지식만으로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나 역시 알고 있었지 않았나. 프란츠 가문의 귀족 이전에는 황금 사자라는 신앙이 있었다고.

아멜리아 공주 또한 이런 이 세계의 기준으로 일반적인 상식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실제 내가 문화를 비롯한 온갖 예술에 손을 뻗었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에게 있어서 당연했던, 이 세계에선 아주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전’을 이야기한 거겠지.

그래.

나는 내가 아는 상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이 세계의 상식을 깨우치지 못했다.

“도마뱀아.”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시를 밝혔을 때보다 더욱 거대해진 태양이 박동한다.

그러나 그때보다 괴롭지 않았다.

느껴졌다. 나의 마력의 질이 바뀐 것이. 내 마력의 흐름이 바뀌며 그 흐름을 제어하는 것이 더욱 능숙해졌다.

태양 아래에 만들어진 인공 태양으로 인해, 어두워져야 할 언덕은 진짜 태양이 떠 있던 조금 전보다 아주 약간이지만, 더욱더 밝아지기 시작한다.

인공 태양에서 느껴지는 힘을 느끼며 금빛으로 물든 눈동자로 언덕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보다 마력의 질이 향상됐다고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감지되지 않은 도마뱀의 은밀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아주 간단한 진리를 떠올렸다.

빛이 비추어지는 곳은 밝아져야 한다는 진리를.

“내가 있었던 세계에서 제일 거대했고, 제일 유명했던 종교의 말을 알려주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사라졌다. 사라졌나?

아니.

내가 곧 태양이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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