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대형급 몬스터 2
* * *
에이번 프란츠는 실제 전쟁의 시대를 살아왔던 남자다.
어렸을 때부터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 경험은 지금의 에이번 프란츠를 만들어냈다.
프란츠 가문의 황금 사자.
황금의 프란츠.
승리와 번영을 이루어내는 자.
에이번 프란츠의 아버지부터 시작한 정복 전쟁은 브람스 왕조와 결전에 패배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에이번만이 아닌 그의 아버지부터 그랬다. 프란츠의 혈통은 애초에 권력을 탐하는 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은 전쟁이며, 승리이다.
난폭할 정도로 야만적인 프란츠의 혈통.
성욕의 문제, 2세의 문제도 있는 탓에 혈통 자체가 멸족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통제하기로 했다.
먼저 검을 뽑지 말아라.
백성들을 지켜라.
귀족의 의무를 다해라.
야만적인 프란츠 일족은 그리하여 존경을 받고, 외경심을 받았으며, 신앙을 손에 얻었다.
그 후계인 에이번 프란츠는 그 혈통을 진하게 받았다.
전쟁터에서 태어나 전쟁터에서 자라왔다.
혈통에 담긴 야만성을 억제하기 위해 귀족의 의무를 지켜왔으며, 그 욕망을 풀기 위해 주변 영지들을 항상 주시해왔다.
명분이 있으면 검을 뽑아도 되니까.
뮐러 전쟁은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의 전쟁은 약간의 해소에 도움이 됐다.
그래서 방심한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에이번 프란츠는 다시 한번 고찰했다.
귀족들은 상시 마력으로 자신의 육체를 강화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강화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시녀나 하녀들은 근처에 서 있지도 못하며, 가구를 비롯한 집 자체가 엉망이 될 거다.
강화의 강도는 그렇게 강하진 않지만, 주변 상황에 따라 곧바로 추가로 강화할 수 있을 정도를 유지한다.
그리고 프란츠에서 온 보고서도 확인했다.
은밀 타입의 대형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보고.
주변에는 병사와 기사들도 있었고, 에이번 프란츠 역시 본인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 사실을 기반으로 어쩌면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주변을 경계했을 터이다.
단지, 하필이면.
“백작님!”
“에이번님을 모셔라!”
“방어 태세를 갖춰라!”
“의무병!”
에이번 프란츠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으며 마력으로 감각을 차단했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앞을 바라봤다.
그것은 검었다.
검고 길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나타났다.
“허어.”
뚝, 뚝!
어깨에서 흘린 피가 땅을 적셨다.
아주 잠깐의 방심을 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생각보다 더 유능한 저 포식자를 칭찬해야 할 것인가.
“좋구나.”
에이번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오랜만에 느낀 고통이 자신을 탓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방심하지 않았다? 경계는 했다?
“변명에 불과하군.”
“에, 에이번님!”
그레이스의 시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시녀의 손에 느껴지는 마력의 파장은 헤밀리언 가문의 흔적이 보였다. 비키라고 손짓하자 멈칫거리던 시녀가 곧바로 뒤로 움직였다. 치유는 도움이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시간이 없다.
“크르르르!”
대략 20m인가. 가늘고 길다란 신체. 비늘로 뒤덮은 몸과 특유의 찢어진 눈동자. 그것의 입에 삼켜진 에이번의 오른팔의 마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에이번님! 물러나십시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대부분 병력을 뮐러에 놓고 왔지만, 자신을 따라온 금사자 기사단이 곧바로 방어 태세를 갖추며 몰려 왔다.
“되었다.”
“……알겠습니다! 전원 후퇴! 에이번님의 방해를 하지 마라!”
“후퇴!”
에이번의 말에 곧바로 물러나는 기사들.
그들이 기사단장만큼 도움이 되었다면 모를까, 유감스럽게도 방해만 되겠지.
곧바로 시녀와 하녀를 비롯한 비전투원들을 포함해 기사들과 병사들이 순식간에 후퇴해간다.
“……흠.”
그동안 여기를 노려다 보는 그것은 조용히 에이번을 보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혀로 입가에 묻은 피를 핥아 먹는 모습은 마치 진미를 음미하는 미식가 같았다.
“호. 미식가. 딱 좋군. 미식가로 하지. 그래. 내 혈육이 그리 맛있더냐?”
뚝뚝 떨어진 피가 흐르는 어깨 부분을 마력으로 지혈을 끝낸 에이번은 그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
“하하하. 평화에 물들지 않았다고, 여타 얼간이들이랑 다르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 역시 평화에 노망이 난 늙은이에 불과했군.”
에이번의 전신에 금빛 마력이 솟구쳤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금빛 잔향을 남기며 휘날리며, 에이번의 금빛 눈동자가 타올랐다.
스으으윽!
그와 동시에 미식가로 붙인 대형급 몬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번의 움직임에 반응한 걸까. 20m나 되는 기다란 신체가 움직이면서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완전한 무음. 에이번의 시야에 있으면서도 서서히 그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마력의 기척조차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허. 안 되지, 안돼.”
도망은 아니겠지.
식탐이 강한 놈이다. 자신의 육신을 탐하는 눈빛을 보면 다시 자신을 노리겠지. 그러니 여기서 끝내야 한다. 만약 여기서 놓치고, 프란츠로 돌아가면 저놈은 도시까지 따라올 놈이다.
에이번의 몸에서 솟아난 마력은 그의 뒤에서 뭉치며 거대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프란츠 가문의 황금 사자.
자신의 주인에 난 상처에 분노하듯이, 금빛의 사자는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 * *
대형급 몬스터는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다.
제일 약하다고 평가받는 흑마저 역시 그 거대한 체구, 끝없는 체력. 단단한 가죽은 수많은 기사가 뭉쳐야 상처를 내며, 목숨을 걸어 자신을 미끼로 삼아 공격을 유도하고, 집단 공격으로 간신히 죽일 수 있을 정도.
귀족 역시도 쉽게 상대는 하겠지만, 한순간의 방심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이 대형급 몬스터다.
그렇다면 그런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는 대형급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천재지변에 도달한 귀족의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몬스터 두 마리가 충돌하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폭음이 그 일대를 덮친다.
이미 멀어진 병사들은 그 진동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어서 도시로 돌아가서 레오릭님을 모셔와라!”
비전투원을 호위하기 위한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기사 중 달리기에 자신 있는 기사들이 자신의 갑옷을 벗은 후 곧바로 달려나갔다.
나머지 기사들 역시 사람들을 이끌며 곧바로 움직인다.
전해지는 충격을 통해 아직도 자신들의 주인인 에이번 프란츠의 보호를 느낄 수 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방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서 물러……!”
쿠우우우웅!
“꺄아아아아!”
“으아아악!”
거대한 진동이 그 일대를 덮쳤다.
마치 지진이라도 온 것일까. 많은 사람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그들을 지탱하면서 기사는 주인이 있는 곳을 뒤돌아봤다.
괴물이 금빛 사자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 * *
콰아아아앙!
거대한 육체가 곧바로 사라지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은신의 영역이 아니다. 공간 그 자체를 접어 이동하는 방식은 선 딜레이와 후 딜레이가 없다. 자연스럽게 공간을 접어 이 근처 일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미식가.
지금도 그 거대한 몸통으로 금빛 사자를 후려친 후, 금빛 사자가 휘청이는 순간 허공에서 나타난 미식가의 거대한 입이 금빛 사자를 물어뜯었다.
“한 마리로는 부족한가보군.”
아무리 마력으로 지혈을 했다고 해도, 신체를 구성하는 부위의 일부가 뜯겨나갔다. 안색이 창백해진 에이번이지만 익숙하다는 듯이 여유를 가지며 말하더니 자신의 손을 기묘한 형태를 취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근처에 또 다른 금빛 사자가 나타났다.
“물어라.”
“크르윽!”
또다시 나타난 다른 금빛 사자를 보며 곧바로 물러나려고 하는 놈의 몸통을 물어뜯기고 있던 금빛 사자의 앞다리가 강하게 내려쳤다.
쿠우우웅!
“크롸아아아!”
“숨으려고 하는 찰나의 순간, 마력이 희미해지는 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숨으려고 하는 찰나, 미식가의 전신을 감싸는 희미한 마력의 움직임.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려 내려찍은 일격. 몇 번이나 숨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인식할 정도로 은밀한 마력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일격을 받은 미식가는 곧바로 대지에 처박혔다.
“크롸아아!”
거대한 몸체가 꿈틀거리는데, 소리 하나 없다. 미식가가 처박혔을 때의 충격만 크게 울리는 이상한 현상. 그러나 에이번은 냉정하게 마력을 컨트롤했다. 그의 손짓에 또 하나의 황금 사자가 미식가를 그대로 덮치려는 순간.
“크륵!”
파충류처럼 날카롭게 찢어진 눈동자가 반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금빛 사자의 시야로 그것을 지켜보던 에이번은 곧바로 마력의 감각을 극도로 높였다.
이거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평화에 노망이 났다고 해도. 은신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무언가가 있다. 이놈이 가지는 고유의 능력이. 단순히 몸을 숨기고,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능력.
에이번의 추찰대로, 물어뜯긴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던 미식가의 몸이 찰나의 순간에 사라졌다.
“…….”
조용해지는 그 일대.
기척을 비롯해 마력의 흐름까지 조용해진 공간 속에 어느새 에이번을 중심으로 두 마리의 금빛 사자가 호위한다.
“…….”
처음의 기습은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그 기습으로 머리가 그대로 먹힐 수도 있었으니까.
에이번은 철저하게 대비했다. 갈수록 창백해지는 얼굴과 다르게 점점 감각이 날카로워져가기 시작했다.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저 멀리 떨어진 기사들의 보호조차 이번에만큼은 해줄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집중하였고,주변을 살피는 금빛 사자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점점 거대해졌다.
에이번 프란츠는 방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형급 몬스터라는 놈들은 가끔가다가 한 번씩, 상식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추는 객체가 존재한다.
미식가의 거대한 입은 에이번 프란츠를 노리지 않았다.
에이번 프란츠가 있는 공간.
그 공간 자체를 잘라 먹으려는 듯이 거대한 입이 공간 채로 찢어먹으려는 찰나.
“이 도마뱀 새끼가!”
하늘에서 태양의 빛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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