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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87화 (87/143)

〈 87화 〉 대형급 몬스터 ­ 1

* * *

“흠.”

누가 은밀형이 아니랄까 봐 마력의 흔적이 조금도 없다.

아주 깔끔하게 도려내진 자국을 보니 삽으로 깔끔하게 판 모래사장이 떠올린다. 이거는 단단한 흙과 돌로 이루어진 거지만.

“이런 흔적을 본 적은 있어?”

“아, 아니요! 없습니다! 10년 동안 돌아다녔지만, 한 번도 없어요!”

내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대답하는 한스다.

날 살펴보는 눈치를 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나 보다. 하긴, 아직 몰랐다면 그건 좀 그렇지.

“끄아아앙!”

칠색 호랑이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도망치려는 것도 클로에와 이자벨이 능숙하게 대처한다. 서로 손을 맞춰본 적은 없지만, 할 건 하고 뺄 때는 빼는 모습이 전투에 숙련된 모습을 보여줬다.

나라면 못하겠지. 그냥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모를까.

“하지만 흔적 자체는 그놈의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그럼 테스트를 해봐야지.

품에 있는 마력 레이더를 꺼냈다. 인제 와서 레이더라고 하기에 어렵지만, 이미 이름을 그렇게 붙여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전부 레이더라고 해서 나도 그냥 레이더라고 부른다.

“이거, 이렇게…….”

꼼지락.

단순히 마력으로 움직이는 장치는 아니다. 급하게 만들고 예민한 마력파를 내는 장치다 보니 편의성까지 갖추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많은 부분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건 좀 빨리 고쳐야겠네.”

메모해놓자.

이번 일이야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하니 넘긴다 치고, 비록 마력에 한해서지만 주변을 기록하는 기능도 있다 보니 모험가에게 맡겨서 자료수집을 할 생각하면 수정해야 할 부분이긴 하다.

“뭐, 뭡니까, 이게?”

“궁금해?”

“아, 아닙니다!”

새끼. 겁먹긴.

알아선 안 될 거로 생각해서 닥치고 있는 건가?

“별로 위험한 건 아니고. 그냥 근처 마력을 탐색하는 도구야.”

“아, 그, 그렇군……흐익!”

­쿠웅!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한스도 깜짝 놀라서 곧바로 돌아봤다.

거대한 체구의 칠색 호랑이가 땅에 쓰러진 채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오, 끝났구나.”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클로에가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다가왔다.

“이자벨도 수고했어.”

“아닙니다. ……그게 마력 레이더입니까?”

이자벨도 작고 뾰족한 칼날이 돋아난 단검 두 개를 품에 넣으면서 다가왔다. 독특한 무기군. 뭐, 마력으로 강화하면 내구도 이전의 문제니까. 취향의 문제겠지.

“음. 맞아. 이제 이거로 끝.”

이자벨이 말한 대로 마력 레이더를 보여줬다.

1m 정도 되는 작은 막대지만 땅에 지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네모난 상자에는 작은 틈이 있다.

이 틈에서 측정된 마력의 파장이 기록돼서 출력된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 상태로 주변 일정 범위를 탐색해서 근처에 탐지되는 마력의 데이터를 측정하는 거지.”

“헤에, 대단하네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뭐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

약간 무덤덤한 표정에 나도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정확도가 높지 않다. 애초에 기록된 파장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고.

그러니까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말이지.

“시작한다.”

어느새 구석에 박혀서 구경하고 있는 한스의 존재감이 0이 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기계를 작동시켰다.

푸른빛을 낸다.

일단 은밀성은 포기한 상태라 기계에서 마력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사용되는 마력 자체는 적어서 그런가? 가까이 있지 않은 이상 알아차리긴 어려울 것 같고.

서서히 기계를 중심으로 모여진 푸른 마력.

내 눈에는 기계에 뭉친 물방울 같은 마력이 보였다. 기계의 진동이 점차 커질 때마다 파동치는 마력이 덜덜 걸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파아아아앗!

기계가 가리킨 방향으로 푸른 마력파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내 눈에만 보이는 푸른색의 마력이 허공에 퍼지면서 곧바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뭔가가 느껴지나?”

“……음. 뭔가 가볍게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

“확실히 집중하면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멀리 있었다면 알아차리기 어렵겠는데요?”

“그래?”

클로에와 이자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한스는 어떻지?

“네? 무, 뭔가 있었습니까?”

아예 모르는군.

이 정도면 은밀성을 포기했다고 해도 나쁘지 않은데?

생각보다 더 느끼기 어렵나 보군. 좋아.

­파아아아앗!

방향을 바꿔가면서 몇 번이나 더 터지는 마력파를 바라봤다.

아직 방향도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고, 퍼지는 마력파도 일정하지가 않다. 거기에 마력파가 전부 반사되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아니, 돌아오긴 하는데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 수정할 부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따로 수정해야 할 부분으로 점검해놓고, 종이에 출력되는 내용을 바라봤다.

분명 패턴 몇 가지는 말튼이 알려줬는데.

­지, 지지지직!

일정 이상의 격이 담긴 마력을 관측했다면 생기는 패턴이…….

­지, 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어?”

종이에 그려진 선들이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잘한 선들 사이에 한순간에 솟구치는 긴 선. 그것이 반복돼서 그려지고 있다.

뭐야 이거. 설마 첫날부터 바로?

잘됐군. 단숨에 처치하자.

* * *

절벽을 파먹으며 들어간 그것은 문득 기묘한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산에서 내려가는 선택을 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며 곳곳에 널린 먹잇감들을 노렸다. 먹을 것은 많았다. 적어도 이 근처에는 자신이 가진 힘과 비슷한 동격은 없었다.

그러나 사냥꾼은 영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허기의 고통이 몸을 괴롭히는 와중에도 그것은 이 근처 일대를 살피면서 먹잇감을 살폈고, 이내 위험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그것은 천천히 먹이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체내에 가진 힘은 자신이 있던 곳보다 작은놈들뿐이지만, 먹잇감의 객체 수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간을 보면서 한 마리씩 사냥해 먹다가 익숙해진 지금은 닥치는 대로 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신과 비슷하게 먹잇감을 사냥하는 동물을 발견했다.

이제는 익숙한 자연 속에 숨어 관찰했다.

그 동물, 동물들은 홀로 다니지 않고, 서로 같이 움직이며 먹잇감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다리로 걸으며 다른 손에는 이상한 것을 휘두르며 자신이 있던 곳과 마찬가지로 몸속에 있는 힘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단 저것을 사냥하는 것은 멈추기로 했다.

사냥하기에 적합한가, 그러한 리스크를 감당할 정도로 리턴이 있는가. 천천히 살피던 그것은 이내 사냥하기로 했다.

가진 힘도 자신과 비교할 때는 한없이 약했으며, 쉽게 지치고 가죽 자체는 두껍지도 않았다. 씹는 맛은 부족해 보이나 체내에 가진 힘을 탐하기엔 딱 좋아 보였다.

거기에 항상 무리를 이루며 움직이지만, 그 무리 자체가 적다. 서로 마주쳐도 곧바로 헤어지는 모습을 보아 작은 무리를 사냥하는 타이밍 자체는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정한 그것은 잠깐의 휴식을 취할 때,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느꼈다.

코가 벌렁 이며 후각을 느꼈다. 귀가 쫑긋거리며 소리를 듣는다. 몸을 둘러싼 비늘에서 느껴지는 것은 동물의 기척과 힘의 향기.

슬슬 다시 배고파지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눈을 뜬 그것은 움직였다.

경쟁을 포기해 내려오고, 내려온 지금.

그 끝자락에 도달한 그것은 평소와 같이 자연 속에 숨어 먹잇감을 노려 봤다.

이 근처 일대를 너무 먹어 치운 탓일까. 먹잇감이 부족해 내려온 칠색 호랑이를 한 차례 뜯어 먹은 그것은 자신이 먹은 동물과는 다른 기척들이 느껴지는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이는 작은 무리.

그 중심에 있는 기묘한 색을 가진 힘. 그것은 몰랐겠지만, 그 색을 금색이라고 한다. 그 금빛의 힘을 가진 먹잇감이 눈에 들어오자 눈동자가 돌아갔다. 그 먹잇감에서 느껴지는 힘의 질에 순식간에 갈증이 그것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저 힘은 자신이 원래 있던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힘이다. 양은 많아 보이지 않으나, 아주 탐스러워 보이는 먹잇감.

갈증과 배고픔이 이성을 태우고 본능이 신체를 지배한다. 그 감정, 욕망에 충실히 따르며 그것은 먹잇감을 한입에 삼켜 먹기 위해 어둠 속에서 뛰쳐나갔다.

* * *

“이런 시발.”

은밀 타입.

추정하기로는 대형급 몬스터.

그것이 먼저 움직였다.

가까이 가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무언가 은밀한 기척이 느껴졌다.

마력 제어 능력에 자신 있는 나도 집중해야 겨우 느껴질 정도로 은밀한 기척. 그 기척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내가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내가 접근한 것을 알아차렸나 싶었지만, 움직이는 방향이나 이동 속도를 고려하면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소리.

어차피 기척을 확실하게 파악한 이상 이제 놓칠 일도 없으므로 나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어디로 향했는지 파악하려고 했다.

……아버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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