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대산맥 5
* * *
은밀형 대형급 몬스터.
그걸 관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로 출몰되는 지역을 찾아야 했다.
급하게 준비한 마력 레이더에 사용할 마정석에 마력을 충전시킨 후, 그 범위를 찾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놈은 지금이나 인간을 건들지 않지만, 아마 머지않아 건들겠지.
인간의 맛 이전에 대산맥에 들어가는 모든 인간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 마력을 탐하는 건 본능이다. 그걸 잡아먹고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 도시로 내려오겠지.
그러면 이 넓은 땅에서 막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모집했습니다.”
기사들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대산맥은 단순히 지도가 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의 공간은 기묘하게 왜곡되어 있다.
모험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자벨을 부른 이유가 그거다.
“기사와 모험가. 그리고 연구원으로 3인 1조로 행동시켜. 그리고 위험한 구역은 피한 후 레이더로 관측을 시도한다.”
그리고 무슨 일을 대비하기 위해 시야로 관측 가능할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 한 명 더 대기. 만약 운 나쁘게도 그놈과 만나면 곧바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
그 이외의 여러 수단을 준비하면서 최대한 빨리 조사팀을 꾸리는 것과 동시에 공방의 실험도 진행했다.
첫날부터 실험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위의 마력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정확한 반사파를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말튼이 들고 온 자료를 확인했다.
급한 일이니 나 역시 직접 나서서 현장에서 측정 패턴을 확인하고 있지만, 역시 현대의 레이더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대로 실험을 계속하겠지만, 만약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결국 내 마력으로 자극하는 위험한 선택을 해야 했다.
“고생 좀 해.”
“알겠습니다.”
사실 이대로 방법이 없다면 결국 사람을 직접 풀어서 찾아야 했다.
그리고 대형급으로 추정되는 것을 유인해야 한다는 것을 흔쾌히 받을 사람은 프란츠 가문의 사병들뿐. 모험가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것은 프란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겠지.
돈을 준다고 하면 받는 사람들도 없진 않겠지만 어쨌든 수는 적을 거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며.
* * *
“해냈습니다!”
“오?”
조사팀의 편성을 끝내고 실제로 파견하는 것만 남았을 때, 말튼에게 연락이 왔다.
클로에와 이자벨 그리고 말튼만 있는 집무실로 불러서 연구 성과를 확인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이지만, 눈 밑에 잔뜩 낀 다크 서클이나 눈이 충혈된 걸 보면 보고에 올라온 것처럼 계속해서 공방에 실험만 한 것 같다.
말튼이 건네준 자료를 받는다.
“반사파 측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보고서에 적혀 있는 건 주변의 마력에 대한 영향을 비롯해 마력 자체가 애초에 쉽게 특성을 바뀌는 것을 고려하면 신뢰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다.
특히나 문제는 마력에 민감한 사람. 나 같은 귀족은 물론이고 기사나 모험가조차 마력파에 대한 반응을 나타낼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플랜 B로 변경.
오히려 작정하고 마력파를 쏟아내는 것으로 바꾼다.
“은밀성에 너무 치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어차피 마력파가 인식된다면 그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거였죠.”
말튼의 말은 간단했다.
어차피 마력파를 숨기지 못한다면 쏟아낸 마력파를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해서 보낸 마력파에는 추가적인 기능을 하나 더 적용합니다.”
“채집이라.”
꿀을 채취하기 위해 날아다니는 벌의 몸에 묻은 꽃가루처럼.
관측하기 위해 쏟아낸 마력파가 타겟에 반사되는 순간, 마력의 흔적을 채집한다.
채집한다는 말도 이상하다. 아주 순수한, 투명한 마력을 쏟아내는 것으로 그 마력에 묻은 것을 확인하는 거니까.
“만약 마력파를 감지해서 전부 흡수하거나 조작한다고 해도 기존에 미리 설정한 패턴과 변화를 비교해 마력파의 패턴에 대한 신뢰성을 유지합니다.”
아, 이건 들어봤다.
통신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할 때 오류를 검출하기 위한 방식이다. 패리티 비트였던가?
말튼의 보고에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발상만 던져 주면 알아서 연구해온다.
“사람에게는 쉽게 간파될 수도 있지만, 그건 앞으로 성과에 기대할 수밖에 없고, 당장은 통하겠군.”
“네. 단지 은밀형 대형급 몬스터가 마력조차 통과시킬 수 있다면…….”
말튼의 걱정에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그런 놈이 실재한다면 그건 애초에 쉽게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다.
“거기까지 고민하면 아예 진도를 뺄 수 없어. 일단 조사를 시작하고, 성과가 없다면 사람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단순히 나만의……. 아니, 프란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란츠를 시작으로 이 근처 모든 영지가 그 타겟이 될 거다. 물론 제일 피해가 심해지는 것은 우리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단 형님도 불러야 한다.
“물론 이것도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 그렇지만 상관없어. 내가 직접 대산맥을 전부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까.”
갈수록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 타겟이 대형급 몬스터일 확률이 높아진다. 진짜 대형급이면 몸을 숨는 행위는 하지 않지만, 은밀형으로 종족으로 인한 태생적으로 은신을 자연스럽게 한다면 아예 가능성 자체는 적지 않다.
“곧바로 실전 테스트를 한다.”
“괘, 괜찮을까요?”
“그래. 어차피 마력 레이더가 완성되지 않아도 인력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테스트로 들고 온 마정석을 바라본다.
마정석에 각인된 술식을 바라본다. 이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분야다.
투자할 곳이 많구먼.
“양산을 서둘러.”
“네, 알겠습니다!”
마정석 자체는 프란츠의 창고에 넘칠 정도로 있다. 단지 그걸 쓰는 것에는 나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그 허가서를 작성해서 말튼에게 건내줬다.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는 말튼을 보내고 이자벨을 바라봤다.
“길드 직속의 모험가들. 파수꾼이라고 했나?”
“예. 범죄를 저지르는 모험가, 불법 밀렵 등 조사하고 체포하는 부대입니다.”
“그들에게 마력 레이더의 사용법을 숙지시키고, 대산맥 초입부에 대해 숙지시키도록 해.”
“이미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자벨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연락을 보면 다음 주쯤에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
“굴란 산 아래로 오는 거지?”
“네.”
굴란 산.
대산맥에서 뻗어 나온 산 하나.
대산맥이라고 하기에 모호하고,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산.
뮐러와 연결된 길목 중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쪽에는 내가 직접 향한다.”
“네?”
“레오님! 안됩니다!”
깜짝 놀라는 이자벨과 곧바로 반대하는 클로에.
그 둘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인력이 부족하고, 내가 직접 나서야 했어.”
“하지만!”
“거기에 은밀형의 습격에 아버지에게 큰일이 없다고 해도 아버지의 군대에 피해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지.”
아무 일이 없으면 그걸로 좋다.
어차피 굴란 산도 탐색을 할 생각이다.
이자벨을 바라봤다.
“트레슬에서 굴란 산 쪽으로 가는 길목이 어디지?”
내 말에 이자벨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이자벨이라고 해도 대산맥 길목 전부를 안다고 하긴 어렵다.
다행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는 길목은 여러 개 있지만, 그중 제일 가까운 초입부는 노란 언덕이라고 있습니다.”
“노란 언덕?”
특이한 지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라도 대산맥을 전부 모르는 건 아니다. 그중 유명한 지역 정도는 알고 있지만, 노란 언덕이라는 지명은 처음 들었다.
“초입부 중에서도 아래에 있지만, 아시다시피 굴란 산에 가까운 곳이라 대산맥 안쪽으로 향하는 길목엔 벗어나 있어서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노란 꽃이 일 년 내내 피어있는 곳이라 노란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좋아. 그럼 직접 가도록 하지. 길은 아나?”
“죄송합니다. 지도로 대충 파악은 했지만 직접 안내하고자 하면…….”
이자벨이 면목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혼자서라면 갈 수 있겠지만, 나를 모시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안내할 수 없다는 거겠지.
“……그럼 모험가를 고용하지.”
“네?”
이자벨과 클로에의 눈이 깜박거렸다.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데 파수꾼들의 수도 얼마 없다고 들었다.
3인 1조, 혹은 4인까지 구성해야 할 팀에 인원을 빼내는 건 힘들면 아예 이쪽으로 베테랑인 놈 하나 구해야지.
“어디든 다 그런 놈이 있지. 위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지만, 미련이 남아서 도망치는 것도 하지 못하는 놈이.”
그런 놈 하나 구해서 길 안내를 시킨다.
우선 개선해서 만들어진 마력 레이더가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되는지부터 살펴보고, 모험가들에게 나눠주면서 어떤 마력 패턴이 기록됐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특이한 패턴을 찾았다면 모험가가 이동한 길목을 다시 한번 정밀 조사를 한다.
미끼로 삼을 생각은 없으니까 레이더 성능을 계속해서 연구해야겠지만, 일단 만약을 대비해 직접 돌아다녀서 테스트해야겠네.
* * *
그런 사정으로 일단은 나도 이자벨도 클로에도 딱히 나설 생각은 없지만.
“허. 칠색호랑이라.”
주위 배경에 몸을 동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호랑이. 7색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불려서 지금도 칠색이라고 불리는 놈인데, 전생의 호랑이처럼 본능부터가 사냥꾼인 놈이라마력을 가진 놈들은 특히나 더 위험하다는 평가를 얻는 놈이 여기에 나타나다니.
“노란 언덕에도 저놈이 출몰하나?”
“서, 설마요! 중간부에나 목격할 놈입니다. 저, 저도 실물은 처음입니다…!”
한스의 마력은 정말 쥐꼬리만 하지만, 이 근처 다른 하급 모험가와 비교하면 나쁘지 않다. 나름 제어하는 거 보면 쌓인 경력에 맞는 것 같고. 그런데 저 호랑이는 그런 한스도 손 될 수 없는 놈이다.
그 호랑이를 상대하는 둘을 보니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흔적을 천천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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