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대산맥 3
* * *
그것은 호랑이였다.
아니, 호랑이 같은 무언가였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게 변해가면서 내가 아는 노란색에 검은 무늬의 호랑이로 변했지만, 그놈이 튀어나온 숲과 같은 색으로 몸의 색을 변하고 날카로운 발톱과 거대한 이빨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호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력을 가진 동물, 몬스터.
일반 마력 보유자가 상대할 수 있는 소형, 중형 크기의 동물은 소형 몬스터로 분류. 그 크기가 대형차 수준으로 커지면 중형으로 취급한다. 물론 크기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체내에 있는 마력이 중요하다.
“우와아아악!”
갑작스러운 습격에 한스가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몸을 숙였다. 꽤 날렵한 판단이다. 10년 경력이란 거 허튼 말은 아닌 것 같다. 문제라면 처음은 운 좋게 피했다고 해도 한스로는 저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무리라는 것.
“물러서십시오.”
“음.”
이자벨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곧바로 한스의 목덜미를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꿰엑!”
개구리가 지르는 것 같은 신음을 내는 한스를 질질 끈 채로 뒤로 물러났다. 모험 도시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랑 같이 염색한 이자벨과 클로에가 곧바로 짐에 있던 무기를 꺼내더니 능숙하게 상대하기 시작한다.
“오오.”
클로에야 그렇다 쳐도, 이자벨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더욱 빠르다. 마력의 제어도 프란츠 가문의 기사와 비교해도 뒤처진 부분도 없고, 오히려 약간 거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더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같다.
“제가 어그로를 끌겠습니다.”
“네. 그럼 옆에서 치겠습니다.”
클로에와 이자벨이 곧바로 포지션을 잡더니 움직인다.
클로에의 검은 기사 시절에 쓰던 예전 무기. 튼튼함을 자랑하는 검을 들고 몬스터의 눈을 노리며 시선을 끌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이자벨이 마력의 기척을 함께 줄이며 놈의 시야에서 벗어나 간격을 재기 시작한다.
“뭐, 뭐야!”
옆에서 보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둘을 바라보는 한스가 보였다.
“오, 괜찮아?”
“괘, 괜찮…지, 아니지, 괜찮습니다!”
곧바로 한스가 고개를 숙이며 외친다.
갑자기 존댓말?
“뭐야, 좀 더 편하게 대하지? 왜 갑자기 말을 높여?”
“……아니, 아무리 봐도 상급 모험가로 보이는 여자를 2명을 데리고 가는 분이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잖………습니까?”
“오, 그건 그렇네.”
한스의 말에 씨익 웃었다.
굳이 부정하지 않으마.
크와아아아앙!
호랑이의 포효가 들려온다.
대산맥 초입부에선 먹이 계층의 위에 있는 자신이 이렇게 당하는 것을 부정하는 걸까. 도망치지 않고 더욱 맞서기 시작하는 놈을 상대로 클로에와 이자벨이 능숙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대, 대체 어째서?”
그걸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옆에서 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라니?”
“저, 저를 왜 고용하신 겁니까?”
아, 그거.
한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게 있지.”
이유야 몇 가지 있다.
이야기는 일주일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 * *
“레오님.”
클로에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레이스 누나의 임신 이후로 성을 비롯한 도시 전체에 감시 체제를 강화했다. 나 역시 그 일로 집무실에서 대기하면서 성의 보안에 한 몫 거두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심각한 표정.
또 일이 터졌구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아버지 혼자면 금방 돌아오겠지만, 체면 없이 혼자서 돌아올 수도 없고, 군대와 함께 이동하니 느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가주 대리 업무를 해야 하는 것.
이제야 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자벨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자벨?”
의외네.
붉은 피를 비롯해 여러 용건 때문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연락할 일거리가 있었나?
……아, 그것 때문이군.
“몬스터 관측 수가 적다는 그거?”
“네. 그거에 관해서 여러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이자벨이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클로에가 건네주는 보고서를 받았다.
음.
“대형급 몬스터로 추정?”
여러 모험가나 길드 관측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직접 현장에 길드 소속의 모험가를 파견해 조사를 시작.
관측되는 동물이나 몬스터가 적어지는 이유는 도망치거나 숨은 것이 아닌, 먹힌 것으로 추정한 다라.
“그 많은 동물이 전부 잡아먹혔다고?”
“네. 처음에 그렇게 예측하지 못한 것은 그렇게 해서 사라진 범위가 너무 광범위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그 정도 범위라면 적어도 중형급, 아니면 대형급 몬스터의 마력이 관측되어야 하지만…….”
“그런 마력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이 말이지? 그럼 은밀형으로 생각해야겠네.”
모든 대형급 몬스터가 강대한 마력을 휘두르면서 다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점잖게 있는 놈도 있고, 그걸 체내에 숨기면서 숨어다니는 놈도 존재한다.
중형급이 이렇게 깔끔하게 속이기는 어렵고, 그 정도로 은밀에 치중된 놈이라면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먹어치우는 것도 이상하다.
즉…….
“근데 이런 경우에는 모험가에게도 피해가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보고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물론 모험가들이 대산맥에 가서 죽는 거는 흔한 이야기고, 그대로 미아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통계란 거 괜히 있는 이유도 아니고, 수상한 점을 발견하면 나름대로 조사도 한다.
전에 이자벨을 만났을 땐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건 정말로 그 점에서 특이한 걸 발견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므로 대형급 몬스터로 곧바로 추정하지 않았겠지.
“네. 모험가의 피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최소 중형급이지만, 아무리 봐도 대형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 대산맥 초입부까지 내려온 상태인데, 그놈이 식탐이 강하고. 은밀형에 아직 인간을 건들지 않은 지혜가 있다?”
“……네.”
하아.
보고서를 책상 위로 던졌다.
두통이 생기는 것 같다.
“길드는?”
“아직 결정적인 증거도 없는 데다 모험가들의 피해가 없다 보니 통제할 명분이 없습니다. 저희가 직접 명령을 내린다면 괜찮습니다만.”
“됐어.”
딱히 그들을 제물로 바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아직 피해도 없는데 그들을 굳이 통제할 필요는 못 느끼고 있다.
애초에 대산맥을 가는 건 항상 목숨을 내놓고 간다는 거고 그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니까.
“이자벨에게 한 번 보자고 연락해. 그리고…….”
흠. 은밀형이라.
잠깐 고민했다.
“……연구소장도 불러.”
* * *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털썩!
중년의 남자가 집무실에 들어와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아이씨, 깜짝아.
뭐야?
진심으로 놀랐네. 뭐 알고 있나 싶어서 클로에를 바라봤지만, 걔도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연구소장 말튼 폰.
폰씨 성을 가진 마력 보유자. 내가 아는 폰씨 성을 가진 그분처럼 천재성을 발휘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마력 보유자로 마력은 평균 이상을 가진 그는 마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든 사람이 기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마정석을 이용한 여러 도구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가문이 직접 관리하는 공기업이라고 해야 할까? 그 프란츠 공방 소속으로 내가 처음 공방을 찾아갔을 때 흘렸던 몇 가지 단서를 듣고 여러 물품을 발명한 사람 중 하나로, 꽤 유능한 공돌이이다.
이전에 발명한 프로토타입 카메라도 그의 작품인데.
“뭐야, 말튼. 예산이라도 꿀꺽했어?”
“그, 그게…….”
내 말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던 말튼이 고개를 들어 올려 내 눈치를 봤다.
“……역시 조금 더 철저하게 감사했어야 했습니다.”
클로에가 곧바로 그를 노려봤다.
그녀가 딱히 말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연구소에 예산을 필요 이상으로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현장 사람들은 약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다만 말튼을 바라봤다.
마력 보유자에 성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더벅머리에 옷도 제대로 정리를 흐트러진 상태. 정말 진성 공돌이의 모습이다. 도저히 횡령하거나 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는 타입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속아서 예산을 잃어버렸다거나 부하 중 한 명이 들고 튀었다고 하는 게 더 이해가 되는데.
“아, 아닙니다! 제가 횡령을 할 리가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부정하는 것을 보면 진짜겠지. 내 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할 배짱도 없는 남자다. 클로에가 의심스럽게 바라보지만, 그녀도 설사 횡령이 일어나도 그가 직접 주도할 거로 생각하진 않을 거다.
“그, 그렇지만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변명은 죄악이라는…… 아. 크흠.”
“죄, 죄송합니다!”
“레오님?”
클로에가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말을 돌렸다.
너무 익숙한 대사라 나도 모르게 그 대사를 말해버렸다.
“예산은 풍부하게 주는 편인데 거기에 더 필요하다고? 아니, 그게 아니지. 죽을죄를 저질렀다는 게 무슨 말이지?”
“어, 그…….”
내 말에 뭔가 어긋났다는 것을 느꼈는지 말튼이 잠깐 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일어서려고 했다.
“말튼 연구소장님.”
“아, 네.”
클로에가 이름을 부르자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사정을 설명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크흠! 그……. 프로젝트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닙니까?”
“프로젝트?”
무슨 프로젝트?
공방에서 지금 하는 프로젝트가 뭐가 있었지?
“……어, 카메라랑 무전기 프로젝트입니다. 진행 보고서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닙니까?”
“……아니.”
내가 실제로 그 사람도 아니고.
공밀레, 공밀레라고 하지만 과학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니, 그거 시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무슨 반년도 안돼서 성과를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지.
“오, 오오……!”
말튼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니,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에 실제로 반짝거렸다.
우웩. 남자가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다니. 속이 메슥거렸다.
“젠장! 역시 레오릭님!믿고 있었다구!”
“…….”
“크, 크흠! 믿고 있었습니다! 레오릭님 만세!”
찌릿.
클로에의 시선에 곧바로 말을 돌리는 말튼을 바라봤다.
쟤도 나이가 꽤 되는 거로 아는데 가끔가다가 한 번씩 애처럼 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