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대산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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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 의뢰가 왜 이래?”
프란츠 성의 북쪽에 있는 모험 도시 트레슬.
대산맥에 제일 가까운 도시. 브람스를 비롯해 중앙을 중심으로 남부에 있는 모든 모험가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도시라고 하면 역시나 트레슬이다.
“크크. 한스. 의뢰가 없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있다고 해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
“시끄러워, 벤.”
대산맥 아래에 있는 도시라는 불안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프란츠의 기사들과 모험가로 인해 오히려 프란츠 다음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도시. 그렇기에 그 규모는 프란츠와 맞먹을 정도며 모험가 역시 엄청날 정도로 많다.
그런 모험가를 감당하기 위해 보통 한 도시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한 모험가 길드가 이 도시에는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스가 있는 모험가 길드는 그중에서 하급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길드로 그 의뢰 역시 대부분 하급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뢰뿐이다. 당연히 일도 쉽다면 쉽겠지만, 그만큼 힘들거나, 보상이 적거나 혹은 둘 다거나.
“아무리 그래도 요즘 대산맥 의뢰 통제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그래도 저번 달보다 나아졌을 텐데?”
“……킁! 그건 인마, 상층으로 들어가는 클랜이고. 나 같은 솔로나 소규모 파티는 그대로라고.”
벤의 말에 딴청 피우며 한스는 게시판에 붙어있는 의뢰를 바라봤다.
글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 중요한 건 그림으로 묘사된 의뢰는 대부분 보상도 적고, 더러운 데다가 귀찮은 의뢰들뿐. 한스의 마음에 드는 의뢰는 없었다.
“응? 좀, 그 뭐냐. 편한 데다가 보상도 두둑한…….”
“멍청한 놈. 그런 건 아침 일찍 사라졌지. 그런 의뢰를 원한다면 일찍 좀 일어나던가. 술 냄새 봐라. 너, 저축은 하고 있냐?”
“흥. 칼밥 먹는 모험가가 저축 같은 거 할 리가 없지!”
한스는 자신 있게 외치지만, 벤은 그런 한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모험가 경력이 좀 있는 한스는 객관적으로 보면 실력은 하위지만, 어느 정도 경험은 있으니 조금 더 노력하면 중급까지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천성이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니 실력이 쌓일 리가. 하는 일이라곤 쉬운 일을 노리려고 하니 길드 쪽에서도 그에게 좋은 평가를 주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뭐라고 하지 않는 건 여태 한스가 맡은 의뢰 중에서 실패한 의뢰도 그의 실력으로 할 수 있는 곳까지 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한스 같은 모험가가 그뿐만은 아니다.
하급 모험가의 대부분 다 이런 놈들뿐이다. 벤은 한숨을 쉬고 주변을 바라봤다.
술 냄새가 나며 피로에 찌들고, 더러워진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며 장비하고 있는 무기나 갑옷은 하나 같이 흠이 있거나 녹슨 무기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저들 중 반 정도가 죽을 것이며, 또 새로운 하급 모험가들이 들어오겠지.
여기는 그 정도로 떨어진 놈들이 오는 곳이니까.
이미 진작에 하급을 벗어날 놈들은 맡은 의뢰로 움직이고 있거나, 아니면 보다 먼 미래를 위해 단련하고 있는 놈들뿐. 여기에 있는 놈들은 올라갈 생각을 포기해 영원히 하급에 머무는 놈들뿐이다.
저축이라고 해서 미래를 대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하루를 술과 도박. 그리고 창녀에 쏟으며 살아가는 하루살이들.
차라리 수도나 다른 곳에 가면 조금 더 먹고살 만할 건데, 수많은 모험가 때문에 평균 실력도 그만큼 올라간 트레슬에 머물러 그런 생각조차 포기하고, 모험가를 유치하기 위해 발달된 카지노와 도박에 빠진 놈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불평하는 건 좋지만, 사고는 치지 마라. 요즘 분위기 안 좋으니까.”
“아, 알겠다고. 내가 신참도 아니고. 그런 분위기 정도는 파악하고 있지.”
그 말에 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행동이 게으르긴 하지만 눈치라도 있으니까 10년 동안 여기서 모험가 생활을 하는 거겠지.
“아, 오늘은 쉴까?”
“생활비는 있고 말하는 거냐?”
“전에 받은 보수로 아직 며칠 정도는 더 먹고 살 수 있…….”
딸랑!
한스와 벤이 잡담을 하는 사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관심도 없는 한스는 그저 구석에 박힌 채 멍하니 게시판만 보고 있었고, 벤 역시 이런 곳에 누가 들어왔는지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이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이런 곳을 담당하게 된 이유도 있는 것이지.
“음?”
그러다 이상한 것을 깨달은 건 벤이었다.
시간도 이미 오후. 일할 놈들은 일하고, 나간 놈들이 들어오지도 않은 어중간한 시간대. 이 시간에 길드에 있는 하류 인생을 살아가는 모험가가 당연히 매너가 있을 리가 없고, 서로 이야기하며 떠들썩하던 길드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벤과 뒤늦게 알아차린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봤다.
“와우.”
한스는 멍하니 들어오는 세 명을 바라봤다.
중간에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곱상한 남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양옆에 같이 들어오는 여자들의 모습에 눈이 돌아갔다.
한스가 평소 이용하는 싸구려 창녀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짧게 친 검은색 머리카락의 여자는 활동성을 중시한 듯, 몸에 달라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탓에 늘씬하게 뻗은 다리와 엉덩이에 달라붙은 가죽옷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얼굴을 가르는 흉터는 야성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 있는 하나로 머리카락을 묶은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성인 여성과 비교하면 작은 체구지만, 무표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그래서 더 시선이 끌리는 아름다운 얼굴과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나쁘지 않은 탓에 충분히 성인 여성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미녀의 모습에 여자는 가슴과 엉덩이 전부 커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는 한스 역시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빼앗길 정도였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이 천천히 걸어 다가왔다.
“여기, 담당자가 누구지?”
“어, 어서 오십시오. 모험가 길드 44지부입니다. 그,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급 모험가를 뜻하는 4와 그중에서 4번째라는 것을 알리는 뜻을 가진 44지부. 벤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그 모습에 세 사람의 시선이 벤에게 향하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찔 떨려 왔다.
평범한 모습이지만 묘하게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 역시 마력을 가지고 한때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상했다. 일단 느껴지는 마력이 없었으니까. 벤은 내심 이상함을 느끼며 세 사람을 바라봤다.
세 사람. 아니 정확히는 두 여자를 바라보느라 멍때리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한스는 남자에 시선을 돌렸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 흥미로운 기색으로 주변을 살피는 남자를 보니 부잣집 도련님이 모험가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온 것일까?
특히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는 평범한 여자 같지 않으니 호위를 겸하는 모험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벤을 바라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대산맥 초입부에 가고 싶은데.”
“네?”
자연스러운 하대도 눈치채지 못하고.
남자의 말에 벤이 당황했다.
일반 사람들에게 대산맥은 모험가가 아닌 이상 죽을 생각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아무리 모험가에 흥미를 느낀 부잣집 아들내미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벤의 시선이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두 여자에게 돌아갔다.
“흐음.”
은색의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벤을 보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만이 인상을 찌푸리며 길드를 보고 있었다. 딱히 말리지 않는 모습에 어떻게 할까, 벤은 조금 생각에 빠졌다.
이대로 의뢰를 받고 보수금을 받은 채로 보내는 것은 상관없지만, 아무리 초입부라고 해도 대산맥은 대산맥이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귀찮아지는 것은 벤이었다.
경력으로 경우 얻은 자리라 이대로 문제가 터진다면 어쩌면 해고당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들자 벤은 곧바로 거절하려던 찰나에 한스가 끼어들었다.
“오, 좋지. 견학인가? 안내라면 내가 해줄 수도 있는데?”
“어이, 한스!”
“왜 그래 벤? 의뢰인이 의뢰했으면 길드원은 접수해야지.”
당황하는 벤을 보고 한스가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인지 다 알고 있다.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벤은 거절하고 싶지만, 부잣집 아들내미로 보이는 남자의 의뢰는 나쁘지 않다. 진짜로 초입부만 돌고 나오면 그만이고, 만약 무슨 일이 터지면 도망치면 되는 일이다.
“넌?”
“한스다. 10년 경력이지. 초입부라면 상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부터 중간에 쉴 수 있는 지름길까지. 내가 이래 보여도 대산맥에서 자주 놀았거든?”
“호오. 10년. 꽤 오래 활동했는데. 그럼 노란 언덕도 잘 아나?”
“거기? 잘 알지. 거기 가고 싶구나? 얼마 걸리지도 않거든.”
한스에 흥미가 생겼는지, 세 명의 시선이 곧바로 한스에게 쏠렸다.
주위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무시하며 한스는 히죽 웃었다.
“거기를 포함해서 초입부라면 손바닥 안이지. 단 어디까지나 안내다. 작은 몬스터 따위야 상대할 수는 있지만, 나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놈들이면 곧바로 도망칠거다. 뭐, 노란 언덕이면 그리 높은 곳도 아니니 나오는 놈이야 작은 놈들뿐이겠지만.”
“도망친다는 것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도 되나?”
“어이어이. 난 죽고 싶지 않거든. 내가 괜히 10년 동안 활동했겠어? 만약을 대비해서 미리 말해놓는 게 좋다고. 그래야 길드도 뭐라고 안 하지.”
한스의 말에 남자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면서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서 보수는 어떻지? 물론, 나라도 안내 정도로 많이 받을 생각은 없다고. 적당히 돈만 준다면…….”
“1골드면 되나?”
“……오, 오. 1골드. 좋지.”
대박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한스는 내심 웃음을 참았다.
1골드. 나쁘지 않지. 엄청난 금액은 아니지만, 고작 하루 안내해주는 것만으로 1골드?
“어이! 벤! 당장 계약서 준비하라고!”
“수수료는 받는다.”
“크, 쫌생이. 좋아, 좋아.”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전에 곧바로 계약서를 준비한다.
계약서를 준비하는 둘을 바라보며 웃는 남자를 보며 두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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