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81화 (81/143)

〈 81화 〉 임신 ­ 2

* * *

주변 모든 풍경이 이전과 같다.

임신 초기인 그레이스 누나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지 않기 위한 환경. 아무리 마력으로 신체 강화를 한들, 임신은 그런 거와 관계없이 사소한 이유에도 유산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 음. 괜찮으세요?”

“후후. 왜 그렇게 긴장을 해요?”

따로 책을 찾아봤다.

이 세계의 의학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크다. 애초에 지식의 공유를 하는 세계도 아니고. 평민의 경우 민간 신앙을 의존하고 영지에서 내리는 명령에 따라 매일 씻는 등 기초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귀족도 그다지 차이는 없지만, 마력의 힘으로 질병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하지만, 그….”

“자, 이리로 와요.”

침대에 있는 그레이스 누나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짓으로 자신의 옆을 가리킨다.

침대 위에 앉아야 할 정도로 가까운 위치다. 그 상태가 돼서야 자신이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후후.”

조금 삐걱거리는 듯이 움직이는 팔다리를 보고 내가 얼마나 긴장한 걸 알아챈 걸까, 귀엽다는 듯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그레이스 누나를 바라보자 나도 조금은 긴장이 풀려 천천히 누나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자 누나가 웃었다.

“왜요? 왜 그렇게 봐요? 이상해요? 얼굴이 부었나?”

두 손으로 얼굴을 살짝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말없이 고개를 흔들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누나를 보고 침대 곁에 앉았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모습은 그녀의 나이가 전생의 나보다 더 어린 나이라는 걸 실감이 났다.

그 나이에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교육을 받고, 시집을 와서 임신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그레이스 누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조금 거칠어졌나?

“정말, 갑자기 왜 이럴까요. 레오.”

볼을 쓰다듬던 내 손을 그레이스 누나가 자신의 손으로 감싸 안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체온이 높아진 걸까.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몸은 괜찮아요?”

“아까부터 계속 그 질문이네, 후후.”

“걱정될 수밖에요.”

“음, 입덧이 조금 심하긴 한데, 아직 크게 힘든 건 없네요.”

“그래요….”

레나에 보고는 계속해서 듣고 있지만, 그레이스 누나에게서 직접 들으니 걱정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작게 잡담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시선이 내려갔다.

평소와 같은 풍만한 가슴 아래로 보이는 작고 홀쭉한 허리에 내 아기가 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이 복잡한 기분.

내가 애 아빠라.

귀족 저출산 시대에 애국하는 건가?

“한 번 만져볼래요?”

“괜찮겠어요?”

“후훗. 레나엔 비밀이에요.”

아기를 접하는 건 정말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의학이 현대를 따라잡지 못한 이 세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고, 특히나 귀족의 경우에는 더하다. 마력이 관련된 부분인데, 복잡한 이야기는 넘어가고.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레이스 누나가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기 시작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생각하기도 어려운 편안한 옷차림. 화장도 없는 얼굴도, 평소라면 느껴졌던 향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그녀.

형님조차도 이런 누나를 모르겠지. 남모르게 느껴지는 우월감을 참으며 누나의 날씬한 허리에 손을 뻗었다.

“어때요? 무언가 느껴지나요?”

“저라도 이 시기에 그런 거 없는 거 압니다. 놀리지 마세요, 누나.”

“후후후. 사실 저도 몸 상태가 나른한 것 빼고는 아직 잘 모르겠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배 위에 올린 내 손을 감싸는 누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임신. 언젠가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빠르다고 해야 하나요…. 아직 얼떨떨 하네요.”

“저도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나요.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살짝 진하게 풍겨오는 살 냄새. 그러나 평소보다 더 예뻐 보이는 눈에 콩깍지가 껴서 그런 걸까. 내게 안겨 온 누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기뻐요, 누나.”

“……정말요?”

“네. 물론이죠. 누나와 저의 아이잖아요. 실감이 적긴 한데, 정말로 기뻐요.”

당황하기는 했다.

피임한 것도 아니니 언젠가 임신을 할 거라고 생각은 했고.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빨랐다.

그래도 싫다는 건 아니다. 정말로 기뻤다.

­꽈악.

품 안에 안겨 온 누나를 가득 껴안는다.

내 등을 감싼 누나의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누나의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분명 건강하겠죠? 잘 출산할 수 있겠죠? 병이라던가, 그런 건 없겠죠? 마력은, 마력은 충분하겠죠? 아뇨, 마력이 없어도 괜찮아요. 저랑 레오의 아이인걸요. 이 아이가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누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누나도 아직 어렸고, 첫 임신이다. 그 불안감이 어느 정도일까. 나도 짐작할 수 없었다.

조금씩 축축해지는 가슴에 누나의 등을 토닥거려줬다.

“아빠 소리를 듣는 건 힘들겠지만, 그래요. 누나와 저의 아기인걸요. 분명 건강하고 이쁘게 자랄 거에요.”

“흐윽, 레오, 레오……!”

“정말. 이제 엄마가 되는데,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야.”

가슴에서 떨어진 누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준다. 내 아이. 내 아이를 밴 여자. 나의 형수님.

그러나 지금은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연인.

조금씩 고개를 기울여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코가 스친다. 간지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서로의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따스한 숨결이 느껴진다. 누나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눈을 천천히 감으면서 다가간다. 누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줬다. 가벼운 입맞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만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입맞춤.

“사랑해요, 누나.”

“…………저도, 저도 사랑해요. 레오.”

* * *

“아버님이 돌아오신대요.”

“들었어요.”

딱히 섹스한 건 아니다.

정말로.

임신 초기에 불안해하는 여자 상대로 성욕에 미쳐서 발정하는 미친놈도 아니고.

입맞춤을 비롯한 가벼운 스킨쉽을 통해 누나가 진정할 수 있게 기다려줬다.

살짝 부어오른 눈으로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누나는 귀여웠다.

“레오는 그거로 좋아요? 가주 대리잖아요. 아버님이 돌아오시면 그것도 끝나는데요?”

“에이. 가주 대리라는 귀찮은 직책, 버릴 수 있다면 진작에 버렸어요.”

“후후훗! 레오답네요.”

그런 누나를 품 안에 안은 상태로 누나의 침대 위에 누웠다.

내 품 안에 기대며 누나는 그때야 불안이 많이 해소됐는지 평소보다 조금 더 발랄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렌도 아버님이랑 같이 온데요. 제가 임신했다니까 편지에도 느껴질 정도로 당황한 게 느껴지더라구요. 정말, 사렌도 참. 언제까지 날 동생으로 보는 건지.”

“다 누나가 걱정돼서 그런 거겠죠.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녀가 온다고 하니.”

레나가 아무리 정성스럽게 시중을 든다고 해도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렌보다는 불편할 거다. 내 말에 그레이스 누나도 웃는 걸 보니 말은 그렇게 해도 사렌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다른 불편한 건 없으시죠?”

“정말로 괜찮다니까요. 아까는 그……. 갑자기 울컥해서 그런 거에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내 가슴을 토닥거리는 누나. 아무래도 눈물을 흘린 것이 부끄러운 듯했다.

“물론 임신이 중대사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과보호 받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요? 보통 이렇지 않나요?”

“그건 그렇긴 한데, 프란츠 가문은 특히 더 심한 것 같아요.”

수도에서 온 누나가 말하길 한 가문에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엄중하게 보호를 받는 건 드물다고 한다.

물론 왕족은 예외로 친다고 해도.

“프란츠 가문은 대대로 손이 귀하니까요.”

“으음. 듣긴 했지만…….”

제대로 실감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겠지.

프란츠 가문의 직계인 형제를 제외한 나머지 혈족.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사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프란츠의 사람들도 아이가 적다. 그렇다 보니 방계라고 해도 임신을 하면 직계 수준으로 호위를 해줄 정도다.

“갑갑하더라도 참아야 해요.”

“알고 있어요.”

“정 못 참겠으면 말해주세요. 제가 직접 같이 움직여줄 테니까.”

“으으으. 거절하진 못하겠네요. 방에서 뭐 하고 있는지 지도 다 보고 계시니까.”

솔직히 너무 과보호인 건 우리도 알고 있지만, 하필 아버지나 형님도 안 계시고 있는 직계가 후계자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차남인 나다.

형식상의 문제라는 것도 있으니 별수 없다.

“그래도 조금 안정되면 같이 산책도 함께해요. 혹시 먹고 싶은 거라도 생겼어요? 말만 하면 구해드릴 테니까,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알겠어요. 다른 사람보다 레오가 더 과보호하는 거 알아요?”

내가?

깜짝 놀라서 누나를 바라봤다.

누나가 눈을 흘기며 웃었다.

“가끔 이쪽을 찾아오는 걸 모르는 줄 알았어요?”

“으음.”

들켰나.

크흠.

“……산삼이라도 구해드릴까요?”

“그런 거 함부로 먹으면 큰일 나요.”

“아, 죄송합니다.”

그렇겠지.

……아씨, 쪽팔려.

“귀여우셔라.”

날 귀엽게 보는 눈빛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대화를 하면서 한 번도 형님을 주제로 올린 적이 없네.

내가 있으니 일부러 그런 걸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지금도 순진하게 웃는 누나를 보면 그런 것 같진 않고.

일단 형님도 임신 소식을 들었지만, 뮐러 문제 때문에 역시 오는 건 좀 늦는 듯했다.

형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진짜 뻘쭘하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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