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임신 1
* * *
“요즘 몬스터들이 이상합니다.”
짧게 친 짙은 붉은색의 머리카락.
눈가에 있는 흉터가 인상적인 미녀. 프란츠 지부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인 이자벨이다.
최근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로 인해 프란츠 성에 온다는 것을 말리고, 내가 길드까지 찾아왔다.
“이상하다는 건? 어떻게 이상하지?”
옆에 있는 클로에는 모험가 길드에 온 겸 밀렸던 보고를 점검하는 중이다. 그걸 지켜보는 길드 사무원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보고 있는 건 무시하면서 이자벨과 마주 앉았다.
문득 이자벨의 붉은색 머리카락이 눈에 보였다. 찰랑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은 염색으로 낸 느낌이랑은 다른 천연의 자연스러운 색이다. 붉은색이라고 말했지만, 와인색에 더 가깝지 않을까.
손을 뻗어서 머리카락을 만져 봤다.
“히익! 레, 레오릭님?”
“그래서 뭐가 이상한데?”
“그, 그것이…….”
관리하는 걸까, 생각보다 많이 찰랑거린다. 하긴 샴푸 비슷한 거 쓰긴 하지. 역시 판타지 세계답다. 하긴. 로맨스 판타지 같은 세계에서 기름에 떡진 머리카락이니, 비누 같은 거로 씻어서 푸석한 머리카락이 나오면 분위기만 망치고 이상하긴 하지.
슥슥.
“네, 네넷. 그것이 최근 몬스터의 활동 영역이 바뀐 것 같습니다.”
“으음. 단순한 영역 쟁탈이랑은 다르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아봤다. 생각보다 잘 말려 들어온다. 가늘고 부드러운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만지작거리는 머리카락 너머에 보이는 이자벨의 귓불과 목덜미가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네. 길드 관측원이 확인하고 있지만, 단순한 영역 싸움이라고 하기엔 평소랑은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어디 한쪽으로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흐음.”
조금 더 손을 뻗어 이자벨의 목덜미에 닿았다.
삐꾹, 이자벨이 움찔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체온이 서서히 오르는 걸까, 따뜻한 그녀의 피부 감촉이 느껴졌다.
“대형급 몬스터인 가능성은?”
“단순히 대형급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도망치는 몬스터의 수는 적었습니다. 오히려 최근 대산맥 초입부에 몬스터 관측 숫자가 적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관측원의 보고에 있었습니다.”
“보통은 대형급 몬스터를 피해서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영역에 숨었는지, 그 관측되는 숫자가 적다라.”
이자벨의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엉킨다.
“일단 자세한 보고를 더 기다리는 형태가 됩니다. 그래도 대형급 몬스터일 가능성도 고려해서 대산맥 관측원을 평소보다 더 파견하는 중이며 의뢰도 조절하고 있습니다. 일단 현재 관측되고 있는 몬스터는 전부 기존 생태계의 몬스터들 뿐입니다.”
“응, 잘했어. 단순한 은밀형인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 사람을 좀 더 보내서 고생 좀 하라고 해. 그 사람들에겐 영지에서 추가로 수당을 적당히 올려준다고 하고.”
“그런, 괜찮습니… 하으, 원래… 대산맥 관측은 길드의 업무이기도 하니까요.”
“아니, 나는 일을 잘한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으윽. 갑자기 전생의 일이 떠오른다.
빌어먹을. 망할 놈의 포괄임금제. 야근에 특근 수당도 없었던 걸 생각하니 짜증이 확 나네.
물컹!
“으읏!”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서 한참 만지고 있던 이자벨의 귓불을 눌렀다. 깜짝 놀라 경직된 이자벨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천천히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손에 걸리는 감촉에 시선을 돌리니 눈에서부터 이어진 상처가 보였다.
치유가 늦었거나, 아니면 그 방법이 없었던 걸까. 피부와는 다른 감촉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읏.”
내가 만졌을 때랑 다르게 몸이 경직된 것을 느꼈다. 트라우마인 걸까. 싫어하는 듯한 느낌에 곧바로 물러났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하아….”
그때야 겨우 긴장이 풀린 듯이 한숨을 쉬는 이자벨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최근에 고생 좀 했지? 모험가 관리하랴 붉은 피 때문에 지크에 협력하랴. 일한 만큼 보상을 줘야 하니 뭐가 좋을까.
볼을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검지 끝이 이자벨의 붉은 입술에 닿았다.
“하아…….”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이자벨의 숨결이 느껴졌다.
가까워진 거리에 이자벨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내 손길에 눈길을 아래로 내린 채로 그저 받아들이는 모습이 야생적 매력이 넘치는 누님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녀린 매력이 느껴진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느끼는 것과 동시에 흥분을 느끼고 있는 걸까. 홍조로 가득한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니 때때로 이자벨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면 곧바로 다시 아래로 떨어트린다.
귀엽네.
“너에게도 무언가 선물을 줘야겠는데, 뭐가 좋을까….”
“그런, 저는 당연한…, 당연한 일을 할 뿐입니다.”
기특한지고.
그 마음에 볼을 툭툭 친다.
“줄건 줘야지.”
“감사…하웃! 합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내 손짓에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녀의 목덜미의 선을 따라 천천히 손가락을 내려갔다.
부드러운 감촉과 머리카락의 느낌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졌다.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은 여러 여자를 만났을 때마다 느끼지만 왜 이리 기분이 좋을까.
“그, 저기…… 레오릭님.”
“응?”
손가락으로 만질 때마다 몸이 움찔거리는 이자벨의 반응도 좋다. 그 반응을 즐기며 적당히 시간을 보내던 찰나에, 이자벨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혹시 성에 무슨 일이라도….”
“어허.”
이자벨의 말에 살짝 인상을 굳혔다.
별로 난 신경 안 쓰긴 하지만. 클로에 쪽을 바라보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자벨도 곧바로 시선을 내리깐다.
“다른 일도 있어서 나온 거야.”
“그, 그렇습니까.”
성에 무슨 일이 있냐고?
있지, 그럼.
“흐음.”
성을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떠올리자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 * *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다니까.”
레나가 진짜로 드물게 잔소리를 끝없이 해왔다. 귀찮을 정도로 말하는 레나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안됩니다.”
“하…….”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한다는 것은 이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 그 이유는 바로 눈앞의 건물이었다.
나는 그레이스 누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크흠.”
나도 모르게 긴장돼서 마른 침을 삼켰다.
전생에서도 결혼은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인생 통틀어 첫아기라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엄밀히 말하면 내 아이가 아닌 형님 부부의 아이가 되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후우우.”
멀리 보이는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펴본다.
사람이 물러난 채로 아주 극소수로 가문의 인정을 받은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
나조차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여태까지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경계가 철저했다.
나 역시 주변 경계를 도와주고 있다.
물론 저택 근처가 아닌 성 주위에 대한 경계지만. 이 호위는 절대 과하지 않다. 차기 프란츠 가문의 주인이 될 아기다. 만약 이 아기가 잘못돼서 유산이라도 돼버리면, 아무리 아버지가 엄격하기도 하지만, 가신들에 대해 생각보다 더 배려심이 있는 분이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목이 날아갈 책임자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거기에 아기를 잃은 사건으로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두 번 다시 아기를 가지지 못한 몸이 되는 귀족은 꽤 있다. 안 그래도 일반 사람들보다 임신이 어려운데, 그런 난임 중의 난임인 귀족이 힘겹게 얻은 아기를 잃는다는 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레오릭님. 죄송합니다만….”
“아니, 괜찮아.”
거기에 내 위치도 애매했다.
후계자가 아이단 형님으로 정해져 있지만, 일단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내가 후계자이자 차기 가문의 주인이 되는 아이단의 자식을 만나러 간다는 건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접근 자체가 불가했다.
그게 내 아기가 아니었다면.
시녀들의 형식상 몸수색하는 것을 기다리며 긴장이 풀리는 것을 기다렸다.
“레오릭님. 아시겠지만 마력은 가능한 사용 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었어. 조심할게.”
“……알겠습니다. 그럼.”
레나의 마지막 잔소리를 듣고 드디어 문 앞에 다가갔다.
꿀꺽.
나도 모르게 또다시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문을 두드린다.
똑똑!
“레오릭입니다. 그레이스님.”
“……들어와요.”
안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문손잡이를 잡고 서서히 문을 연다.
그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속이 영원한 것처럼 슬로우 재생이 되는 것 같이 문 사이로 보이는 방 앉을 바라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방 안에 있는 침대에 앉은 상태로 올라가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건강하답니다.”
어느 때와 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레이스 누나는 나를 반겨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