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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79화 (79/143)

〈 79화 〉 준비 ­ 5

* * *

용.

이 세계에서도 전설이나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

다만 현재 그 존재를 실제로 본 존재는 없다.

용처럼 생긴 존재는 많으나…….

진짜 용은 아직 없다.

“흠.”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비늘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빛이 나는 허공에 둥둥 뜬 상태로 돌고 있는 비늘.

그 속에 담긴 힘은 진짜 용의 힘일까?

느껴지는 건 강대한 마력이 잠들어 있다는 것 정도지만, 바꿔 말하면 그 정도.

[진짜로 용의 비늘인지는 모르오. 바흐니아 일족과 샤리네어 일족이 오래전부터 보관해오던 것으로 두 가문에 내려오는 전승과 비늘에서 느껴지는 힘으로 그렇게 추측한 것뿐이오. 우리는 해룡의 비늘이라고 부르고 있다오.]

다만, 한 샤리네어 공작은 말했다.

[해룡의 비늘에 담긴 힘은 강대하오. 그 힘을 이용하면 가뭄이 오더라도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으며, 거대한 토지에 심는 것으로 거대한 호수도 만들어낼 수 있소.]

기후 조작은 이 세계의 귀족들에게 있어서도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거대한 호수조차 만들어내는 물건이라면 보물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겠지.

공작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대단한 물건이다.

이걸 가공할 수만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어떻게든 이용이 가능한 물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보관 중이지만.

“대단하네요.”

옆에 서 있던 클로에가 멍하니 비늘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비늘은 마치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력의 회복 속도가 빨라진 것 같네요?”

“음.”

워낙 강력한 마력이 비늘에 잠들어 있는 탓인지, 그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 마력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만 그 마력 자체에 물기 어린 느낌이 드는 것을 봐서는 아직 고유 마력의 격이 아닌 사람 상대로는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는 것 같지만, 불꽃이나 열에 관련된 고유 마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준비는 어떻게 됐어?”

“예. 프란츠 가문에서 준비한 장소에서 지금쯤 연회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원래라면 나도 참가해야겠지만.

지금 가문에 있는 나 혼자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이리나양을 비롯한 남부 지방의 대표적인 귀족 몇 명이 도착해서 바흔에서 온 아멜리아 공주와 샤네리어 공작을 만나고 있을 거다.

“연회가 끝나고 곧바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더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다고 하네요. 의식의 문제도 있다고 합니다.”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뮐러의 일도 마무리가 된 상태로 아이단 형님이 정리 중이라고 했다. 적당히 상황을 보고 난 뒤 돌아온다고 하는 전언을 보면 아버지도 이제 돌아오실 때가 됐다는 거고, 그 말은.

“우리가 뮐러에 갈 때가 됐군.”

“예.”

티르우스 뮐러는 죽었지만, 그의 부하들은 딸인 트리아나 뮐러를 모시면서 지금은 아이단 형님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곧바로 영지의 상황도 빠르게 정리되고 있다고 하니, 아마 그 시기는 얼마 남지 않겠지.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 * *

[오오! 이것이! 그 유명한 프란츠 산삼이로군!]

“프란츠 산삼?”

그런 호칭이 있었나?

내 말에 클로에가 옆에서 작게 소곤거렸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불린답니다.”

모험가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지 특성상, 프란츠만큼 산삼을 구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구한 것도 대부분 초입에서 얻은 거라 품질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고 한다.

[이 정도의 크기에 이런 품질이라니. 실로 대단하군. 여왕도 기뻐하겠어. 하지만 레오릭 가주 대리. 이러한 물건을 이렇게 건네줘도 괜찮소?]

“하하. 저희가 받은 물건에 비하면 그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 이 물건은 온전히 저의 것이니 제가 누구에게 선물을 준다고 하는 거에 뭐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과연, 프란츠 가문답군.]

뭐가 그렇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상어의 모습을 한 샤리네어 공작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그 커다란 입을 불러오더니 산삼 통을 집어삼켰다.

딱히 다른 짐이 없는 것을 보면 샤리네어 공작이 일행의 모든 짐을 보관 중인 건가.

“그나저나 괜찮습니까? 저건 아멜리아 공주님에게 드린 선물인데, 공작님에게 양도해도…….”

“괜찮다. 개인의 감사라고 하지만, 비늘을 선물했으니 이 물건이라도 할배에게 드려야 내가 불편하지 않다.”

그걸 지켜보던 아멜리아 공주에게 말하자, 그녀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공작이 오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바흔의 다른 일행들이 하나둘씩 도착하면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듣기론 떠나면서 몇 군데 더 들리고 간다고 했던가.

프란츠의 성에서 그들 일행을 지켜보면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저 산삼.

비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왕족에게 납품할 수 있는 고급품이다. 그 물건을 바흔의 여왕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이번의 일에 대한 조금이라도 위태로워진 후계자 자리를 위해서였는데.

[그 건은 괜찮소. 아니, 물론 위험하긴 하지만.]

한 샤리네어 공작이 말했다.

[바흐니아 일족의 후계자 경쟁은 일종의 점수제요.]

“점수제?”

[공헌도라고 하오.]

성인식에 가까운 시기, 지금의 아멜리아 공주의 나이쯤부터 시작해서 나라의 업무를 조금씩 보면서 활약하는 것에 공헌도를 채점하는 방식. 물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능력이 있어야겠지만, 왕족의 혈통이 그럴 일은 극히 드물긴 하다. 그리고 채점자는 여왕을 비롯한 공작부터 시작해 비밀리에 정해진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일은 아멜리아 공주의 공헌도가 어느 정도 깎이는 것은 부정할 순 없지만, 궁에 붉은 피의 일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흔 전체의 책임이기도 하오.]

“그렇군요.”

타국의 일이니 뭐라 할 순 없으니 적당히 맞장구쳐졌다.

[그러니 그리 크게 깎이진 않을 것이오.]

문제는 그 이후.

한 샤리네어 공작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붉은 피에 대해서 말인데, 그놈들 꽤 수상하오.]

“그렇습니까?”

지크의 말로는 프란츠에는 붉은 피들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마 공주를 납치한 이들은 바흔에서 주로 활동하는 놈들이라는 말이겠지. 문제는 어째서 서부 지방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냐는 거다.

[조심하는 게 좋소.]

공작의 충고는 정말로 바흔에게 무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제 프란츠의 일은 아버지에게 맡기고, 뮐러에 가서는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샤리네어 공작의 말에 잠깐 고민하고 있을 때, 공주가 다가왔다.

“아멜리아 공주님.”

“프란츠 가주 대리이자 태양의 업을 받든 자여.”

그 말도 오랜만이군.

쓴웃음을 지으며 공주의 말을 경청했다.

“머지않은 때에 다시 만날 것이다.”

“하하. 저도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이 정도의 인사쯤이야.

묘한 눈빛의 아멜리아 공주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꽤 친해지긴 했으니 이 정도의 인사는 주고받는 건 이상하지 않지.

“으으읏.”

“하아.”

옆에 있던 이리나는 이를 갈았고, 클로에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러지?

* * *

“저도 이만 가보겠어요!”

이리나의 말도 갑작스러웠다.

물론 귀족 대부분이 물러나긴 했지만, 꽤 오래 있을지 알았는데.

“성인식을 준비해야지요! 그리고 뮐러에 갈 준비도요!”

방긋 웃는 모습에 잠깐 말이 멈칫거렸다.

성인식 준비는 그렇다 치고, 뮐러에 온다는 말은 정말 따라올 생각이구나.

“그 일에 대해서 말인데, 정말로 백작님에게 허락은 받았지?”

“당연하지요. 아버님도 허락하신 일이랍니다!”

정말인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모르겠네.

그래도 웃는 거 보니 다른 말하기도 어렵고. 일단 환영하겠다는 말만 전했다.

“참고로 레오님!”

“응?”

내 말에 방긋 웃던 이리나가 다소곳하게 다가왔다. 주변에 있는 하녀나 시녀들이 전부 고개를 돌리고 이리나 전속의 시녀나 클로에 같은 몇 명만 보고 있는 가운데 다가온 이리나는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처와 첩은 몇 명이든 상관없습니다만, 제가 제일 아이가 많아야 해요. 왜냐면 정실부인이니까요!”

뭐라는 거야…….

할 말을 잃고 이리나를 바라보니 살짝 뺨을 붉히면서 배시시 웃고는 물러났다.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레오님!”

정말 못 말린다니까.

한숨을 쉬고 곧바로 사라지는 그녀를 배웅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쨍한 태양이 반겨주는 푸른 하늘.

아멜리아 공주의 갑작스러운 사태에 성인식까지 하느라 바빴던 일상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우욱.”

“……형수님?”

따로 식사하기 위해 만났던 그레이스 형수님이 갑자기 입을 막아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것을 빼고는.

“도련님.”

“으, 으응?”

레나가 곧바로 나타났다.

가주 대리라는 입장 상 거의 모든 일에 권한이 있는 지금의 나를 막는 건 설사 스벤이나 레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딱 하나 아버지 역시 어쩔 수 없는 권한이 하나 있다.

임신의 조짐이 보이면 가문에서 제일의 베테랑에게 주어지는 권한이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길 바랍니다.”

“어, 알겠어.”

나 역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멈칫거리며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입가를 막고 헛구역질을 하던 그레이스 누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나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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