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준비 4
* * *
[잘 부탁하오!]
동그랗고 귀여운? 귀여운 빨간 상어가 두둥실 떠다니며 아멜리아 공주 곁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 사람이란 대체?
이 세상에 사람이나 인간이 가리키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되다니.
“꽤……. 유니크한, 모습이군요.”
현대보다 전체적으로 서적의 수는 떨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세계의 관점에서는 프란츠가 보유하고 만든 도서관의 책은 엄청나다.
그리고 나 역시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꽤 많은 책을 읽었다.
판타지 세계라면 흔히 생각하는 드래곤, 엘프, 드워프…… 등등.
그러한 종족을 안 찾아봤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다. 귀족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노예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은 당연히 해봤다.
하지만 아무 상식도 없는 어린애가 갑자기 엘프 있나요? 라는 질문을 하기엔 너무 어색했고, 프란츠 가문의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그 대부분 철학이나 병법서 혹은 정치, 내정에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라고 표현했으며, 인간과 그 외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었다.
아니, 하나 있다고 치면 그건 마력 보유자인 푸른 피와 붉은 피를 뜻하는 단어뿐.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을 때까지 까먹은 것도 많고, 그런 이종족이 없는 판타지 소설도 드물지만 존재는 하니까, 여기도 그런 세계라고 어렴풋이 짐작을 했었다.
그러나…….
이 눈앞의 생물은 대체…….
진짜로 상어인가?
주변 반응을 보면 이리나도 그저 귀엽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지만, 이리나도 원래 애가 좀 특이해서 이 세계의 기준으로 보기엔 어려운 애고.
일단 네리아는 깜짝 놀란 것 같지만, 평민들이야 도시 밖을 나서는 것이 드물다보니 애초에 모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크흠. 안내하겠습니다.”
일단 태연한 척 가장하고 그…… 그를 안내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으로 하늘을 나는 것 같지만, 확실히 보랭이나 우리가 하늘을 나는 방식이랑은 달랐다. 하늘을 난다는 표현보다 유영한다는 표현에 가깝다.
마치 하늘을 바다로 삼는 느낌이다.
일단 도시 안에서 비행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금지되어 있다. 조금 전은 당연히 그 일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일단 만난 이상 그리 급한 일이 아니라면 지상에서 이동하는 게 맞겠지.
탁!
4명…… 4명? 3명과 한 마리? 어류도 마리인가?
우리들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갔다. 이리나와 아멜리아 공주는 구름, 근두운을 탄 채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내려갔으며,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으로 곧바로 내려 왔고, 한 샤리네어 공작은…….
[위에서도 봤지만 도시 크기가 엄청나군. 과연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답군.]
조금 전까지 보여준 친근한 이미지가 아닌 한 나라의 공작으로서 도시를 살피면서 내려왔다.
다만 아기 상어 모습이라서 좀, 많이…….
어색하다.
“칭찬에 몸 둘 바가 없군요.”
[아니, 아니외다. 진심이오. 샤리네어 도시나 바흔의 수도도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이처럼 장엄한 도시는 처음이오.]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이전의 가주들은 딱히 아름다운에 집착한 것은 없다. 물론 고풍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긴 했지만, 특히 아버지처럼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그 때문에 도시 전체의 구조는 큰 대로를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편이다.
다만 감탄해주는 건 좋지만, 아기처럼 신나게 날아다니니 영 위엄이 살지 않는다.
[오오, 저건 중형급 몬스터로 보이는고. 참으로 맛있어 보이는군.]
“역시 공작님! 눈이 높으시군요! 저건 스테이크로 먹으면 참으로 맛있답니다! 대산맥에서도 드물게 잡히는 놈이라 구하기 어렵다는 점만 빼면요! 저건 참으로 실하네요!”
[그렇소? 그럼 나중에 하나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피 뚝뚝 떨어지는 레어로 먹으면 딱이겠어!]
“할배. 시끄러.”
…….
* * *
아직도 도시에 남아있는 귀족들에게 적당히 모습을 비춰주면서, 내가 성을 떠날 때 클로에가 알아서 준비해둔 가문의 마차가 때마침 도착해 마차에 오른 후 곧바로 성으로 돌아갔다.
샤리네어 공작은 도시의 풍경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듯 했지만, 그건 나중에 시간 낼 때 구경하면 되는 일이라 곧바로 귀환.
“실례하겠습니다.”
네리아가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걱정했지만, 곧바로 담당으로 붙은 레나가 응접실로 와서 손님을 맞이했다.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지금은 평소와 같은 표정이 믿음직했다. 그녀가 준비한 차는 생전 처음 맡는 차향이 느껴졌다. 약간 싸한 향이 특징적인 차.
듣기론 아멜리아 공주를 시중들면서 얻은 정보로 구한 거라고.
이런 일이 있을까봐 준비한 것이 레나다웠다.
[오, 여기서 이 차를 보게 될 줄이야.]
바흔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다는 차의 잎이라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특유의 맛에 호불호가 꽤 심하다고 하는데, 숙취 해소에 아주 좋다는 소리가 있다.
…어떻게 마시지?
후룩!
[음, 좋은 솜씨로군!]
“감사합니다.”
……아. 마력으로 마시는군.
하긴 바흔의 사람이니까. 액체 따윈 쉽게 조종하겠지.
찻잔에 있는 물이 쪼르륵 솟아나더니 한 샤리네어 공작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꽤 만족스러운지 칭찬하는 공작의 말에 레나가 짧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일단, 분위기는 차분해진 것 같고.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천만에! 그리 먼 길도 아니었소. 뭐, 중간 중간 돌아가야 하는 점은 불편했으나 어쩔 수 없지. 남의 집 위를 멋대로 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소.]
거대하고 고풍스럽게 꾸민 응접실에 한 샤리네어 공작을 맞이했다.
애기 상어 한 마리가 맞은편에 두둥실 떠다니는 묘한 장면. 일단 아멜리아 공주나 이리나도 옆에 있긴 하다.
…아니, 넌 왜 여기에 있냐.
[일단, 먼저 사죄부터 하겠소. 프란츠 백작, 가주 대리라고 했소? 그럼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진지한 표정? 표정으로 상어의 머리가 아래로 숙여졌다.
[바흔 왕국의 대표로서, 레오릭 프란츠 가주 대리. 아멜리아 바흐니아를 구해줘서 고맙소. 바흐니아 일족은 이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프란츠 가주 대리로서 받겠습니다.”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가주 대리로서, 동등한 위치로서 샤리네어 공작의 인사를 받았다.
응접실에 있는 자그마한 방이지만, 공식적인 대화가 서로 이어진다.
[내 개인으로 또 감사의 말을 전하겠소. 왕자도 그렇지만 아멜리아 공주 역시 어렸을 때부터 손녀처럼 아껴왔던 딸이오. 붉은 피라는 벌레 같은 놈들이 일으킨 일 때문에 알아차렸을 때는 정말로 놀랐소이다.]
“저 역시 그놈들이 아직까지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상어가 한숨을 쉬었다.
[내 젊었을 때에도 거의 박멸된 놈들일 텐데. 정말 끈질긴 놈들이군.]
붉은 피는 거의 전 대륙에 존재한다. 서로 교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피에 반역하는 느낌으로 그냥 붉은 피라고 칭하는 작은 단체들이 여러 있겠지.
한 샤리네어 공작은 상어 얼굴을 흔들었다.
[아멜리아 공주가 신세를 졌소이다. 서신에 적힌 대략적인 이야기로 상황은 파악했소. 급하게 성인식을 했다고 하더군. 정말로 민폐를 끼쳤소.]
“원래 할 생각도 없던 성인식입니다. 괜찮습니다.”
“……으음.”
한 샤리네어 공작과 나의 대화에 면목 없다는 얼굴로 아멜리아 공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차후 이야기는 왕국에서 따로 나오겠지만, 이건 개인적인 선물이오.]
“그런, 괜찮습니다만.”
내 말에도 샤리네어 공작은 곧바로 살짝 몸이 떠오르더니 작은 입을 벌렸다.
그 직후, 공작의 뒤에 거대한 상어의 입이 벌리는 환영이 나타났다.
그렇군.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인지는 알겠다.
상어라 하면 수면에 등지느러미만 드러내면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에서도 유명한 공포 영화에서도 그렇고, 여러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어쨌든 수면 아래로 몸을 숨기는 현상을 이용한 방식은 상어라 하면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것은 이 세계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것 같다. 공작의 방식은 그 현상을 이용한 마력 술식. 이 세상을 수면으로 삼아 작은 아기 상어가 등지느러미 역할을 해서 겉에 살짝 드러난 것을 표현하며 그 본체는 수면 아래에 잠수하는 현상을 이용한 샤리네어 공작 가문의 고유의 마력을 이용한 기술이겠지.
거대한 본체도 숨길 수 있으며 지금처럼 물건을 따로 보관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인벤토리라. 생각해보니 그런 건 딱히 연구해 보진 않았다. 나중에 시간 날 때 고민 좀 해봐야겠지만, 저 방식을 따라할 수는 없겠지. 이건 샤리네어 공작 가문의 고유 마력을 이용한 방식이다. 따라한다고 해도 같은 방식을 이용할 수는 없겠지.
파아아앗!
거대한 입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떨어졌다.
은은하게 빛나는 그것은 처음은 방패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거대한, 정말로 거대한 비늘이었다.
비늘 한 조각의 크기가, 내 상체만하다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그 비늘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이것은 대체?”
“맙소사. 엄청난 마력…….”
“으음.”
나와 이리나가 이 물건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아멜리아 공주의 표정이 흔들리며 그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의 비늘…….”
용?!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