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76화 (76/143)

〈 76화 〉 준비 ­ 2

* * *

“부탁이라니, 무슨 부탁?”

트리아나 뮐러.

확실히 티르우스 뮐러의 딸이자, 뮐러 가문의 후계자이자 장남인 티르손 뮐러에게 19금 작품에나 나올 듯한 교배 명령을 받은 여자지?

클로에를 바라보자 클로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든지 하겠다고 합니다. 대신 언젠가 뮐러의 땅을 돌려받고 싶다고 하네요.”

“하하.”

간도 크다.

힘으로 유명한 프란츠 가문에 대놓고 그렇게 말한 건 어차피 뒤는 없다고 그런 건가?

어쨌든 전망을 생각하면 당장 고개를 숙여야 할 텐데.

“아버지는 뭐라고?”

“당연히 거절했습니다만, 그 대신 앞으로 레오님 밑에서 일을 할 수 있게는 해줬다고 합니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 보군.

아버지는 능력도 없는 놈이 입만 주절거리는 건 싫어할 거고, 마음에 드는 놈이 명예롭게 죽고 싶다면 죽여주는 사람이니까.

일단 내 밑에서 일을 시킨 후 공을 거두면 언젠가는 땅을 돌려주라는 건가?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텐데.

대체 뮐러 영지 정도의 땅을 줄 정도로 공을 세운다는 건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거야?

하긴. 땅을 돌려받고 싶으면 프란츠에 머리를 숙이는 방도밖에 없긴 하지. 명분도 있었고, 먼저 군을 일으켜 땅을 삼킨 것도 이쪽. 수도에는 보랭 가문과 함께 충분히 기름칠도 했다. 적어도 브람스가 이쪽의 일에 끼어들 명분이 없긴 하지.

그런 그녀가 뮐러 가문의 땅을 다시 찾을 방법은 상으로 땅을 받거나 다시 전쟁하는 수밖에 없긴 한데. 둘 다 가능성이 없다.

“…아버지가 오시면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듣기로 하고. 다른 일은?”

“성에 머문 대부분 귀족이 돌아간 것은 확인했지만, 상당수의 귀족이 도시 내 호텔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으음. 바흔 때문이겠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대충 무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귀족 놈들이 그리 쉽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은 없고.

누구 밑에 있을 법한 놈들은 도시의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건 파악했다.

“어쩔 수 없지.”

“네. 그리고 여기.”

그거까지 통제할 생각도, 방법도 없고. 괜히 소문만 나빠지니 내버려 두고. 있어봤자 별 상관도 없고.

대충 패스한 다음 용건으로 클로에가 품에서 서신을 한 장 꺼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서신. 거기에 찍힌 인장은…….

“바흔의 인장이군.”

“네.”

드디어 올 때가 됐나.

* * *

“그렇다. 이제 슬슬 도착한다는 서신을 받았다.”

아멜리아 공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흔에서 찾아오는 집단은 정식으로 왕국에 초대된 입장으로 이 땅에 머무는 것을 허락 받은 처지다.

아마 꽤 많은 지출이 있었겠지. 하지만 공주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바흔 왕국에 이 정도로 깊게 들어오는 일도 드물다. 주변 지리부터 시작해 꽤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지.”

“하하하. 저에게 말해도 됩니까.”

“음. 문제없겠지.”

그렇긴 하지만.

피식.

“이번에 찾아오는 붉은 상어의 샤네리어 공작님에 관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한 나라의 공작이란, 그 나라. 특히 왕족에 큰 문제가 생기면 대신할 정도의 위치다. 그 힘이 강대하면 아예 독립해도 될 정도로. 그런 공작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것은 브람스 왕국도 부담스러운 일.

특히 지금은 떠난 성인식에 찾아온 갈색 두더지의 어스레인 공작이 급하게 열린. 아무리 프란츠라고 해도 결국은 차남의 성인식에 불구하고 찾아온 것도 그 이유가 있었다.

“음. 괜찮다. 일단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전형적인 바다 사람이지. 호쾌하고 남자답다.”

“호. 과연.”

“괜한 정치 싸움보다 실질적인 무력 싸움을 좋아해서 문제가 일어날 정도다.”

“……좋은 사람?”

“사람은 좋다.”

그건 그다지 위로가 되어주는 말은 아니군.

그래도 타국에서 사고를 치진 않겠지.

“일단 알겠습니다. 어쨌든 이제 돌아갈 때가 됐군요.”

“…….”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꽤 여러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단지 아멜리아 공주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지 날 보는 시선이 엄하다.

“그렇게 좋은가?”

“설마요.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겠습니까. 언젠가 꼭 만날 겁니다.”

“그, 그런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여서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기회에 생긴 인연은 쉽게 없어지지 않겠지. 내가 그러기 싫어도 아버지가 내버려 두지 않을 거고.그래서 주변 다른 귀족도 예민하게 반응한 거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멜리아 공주님.”

“……음. 잘 부탁한다, 레오릭 프란츠.”

시선이 마주치자 아멜리아 공주가 아주 작게 웃던 것 같았다.

* * *

“붉은 피는 적출됐습니다.”

“생각보다 빠른데?”

오랜만에 본 것 같은 지크가 등장했다.

……아니, 가끔 만나서 일에 관해 이야기는 했지만.

어쨌든 오늘 본 지크의 얼굴은 꽤 수척한 모습인 게 피곤해 보였다.

“사실 확실히 끄집어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이상 찾는 건 어려우니까요.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계속 확인해야겠지요.”

“그건 그렇지.”

점조직이라는 게 그런 거겠지.

특히나 조직의 목적이 정치적 사상으로 모였다면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겠고. 그런 놈들은 이득보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목숨을 거는 놈들이니까. 다만 그런 놈은 소수겠지.

“사실 찾았다고 했지만, 실제로 확인해 본 결과 정확히 붉은 피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귀족까지는 아니지만, 마력 보유자들에 대한 불평을 주로 퍼트리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어느 영지에나 조금씩은 있는 놈들이지요.”

“흠.”

그런 불화가 없는 건 아니다.

마력 보유자에 대한 우월주의는 이 세계의 특성으로 어쩔 수 없고.

그런 범죄가 일어나는 것도 알고 있다.

당연히 중죄다.

“다만 원래 프란츠 영지 내에는 그렇게 활동한 흔적은 없었던 거로 보입니다.”

“그렇긴 하겠지.”

좋은 말로는 중앙 집권 체제라고 해야 하나.

상당수 아버지를 비롯한 프란츠 가문의 직계나 방계가 대부분 일을 처리하는 이상 중간에 비리가 일어난 기회도 없고, 가문의 사람들이 그런 거 하기엔 아버지의 카리스마가 워낙 막강하다. 적어도 아버지의 능력은 폄하할 부분이 없다. 프란츠 가문이 지금처럼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버지가 잘 나서 그런 것도 없진 않을 거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모험가와 뒷골목을 한 번 정리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붉은 피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귀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일단 민감한 문제다 보니 지크가 조금 고생을 했나 보다.

이제 일이 끝나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근데 미안하다.

쟤, 나랑 같이 뮐러에 갈 건데 거기서도 또 붉은 피를 색출해야 할 건데. 피곤한 얼굴을 보니 좀 안쓰러워졌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음. 수고했어.”

하지만 내가 하기 싫으니까 또 이 녀석에게 맡겨야지.

* * *

남은 귀족들의 뒷정리나, 성인식을 하는 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다시 처리하고, 시킨 일 몇 가지 확인하고 바흔에서 오는 사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또 바쁘기 시작하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괜찮았다.

급한 건 없다 보니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느긋하게 지켜보는 맛이 좋다.

그래도 일단 아버지가 올 때까지 대부분의 일은 정리되겠네.

“레오님. 여기 차입니다.”

“음, 고마워, 네리아.”

네리아가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

오랜만에 테라스에서 정원을 보고 조용히 마시는 차는 달콤하고,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이 조용한 휴식의 시간.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사아아아.

…….

“으응?”

뭔가.

뭔가 이상하다.

뭐냐, 이 어디선가 느꼈던 것 같은 소금기가 느껴지는 마력은.

“어머나. 저게 뭐죠?”

네리아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봤다는 듯이 혼잣말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그런 네리아의 말에 입이 뻐끔거렸다.

아니…….

아니 잠깐만.

아멜리아 공주가 뭐라고 했더라.

전형적인 바다 사람? 호쾌하고 남자답다?

“아니, 미친.”

하늘 저 멀리.

작은 점처럼 느껴지는 붉은색의 무언가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 시야에서 그걸 알아차리기 전에, 그 점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있다.

처음 느끼는 마력이지만, 대충 눈치챘다.

“호쾌한? 무식한 게 아니라? 어떤 미친놈이 타국의 영지에서 저런 마력을…….”

물론 마력을 억제한 건 알겠다. 느껴지는 마력은 거리가 있다고 해도 저런 거대한 것을 유지하는 마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잔하다.

하지만 어느 사람이 타국에서 저렇게 마력을 쓰는…….

아니.

“마력이, 아니네?”

하늘 멀리 붉은색의 점이 점점 가까워지며 거대해진다.

붉은색 비늘, 거대한 눈동자. 뻐끔거리는 아가미. 흔들리는 지느러미. 거대한 물고기가 구름에서 헤엄치는 듯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력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보였지만, 아니다. 저건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 살아있는 어류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모습에 알아차렸다. 저건 상어다. 그것도 붉은색으로 거대한 성벽과 비슷한 크기의 몸으로 하늘을 헤엄치는 상어.

“하지만 저런 거대한 상어라니.”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이긴 한가? 마력을 보유한 상어? 그 몬스터 놈들을 사육하는 방법이 저들에게 있는 건가?

조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영지의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지는 소리가 감각에 걸리는 것을 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영지민들을 다독이고 저들을 맞이해야겠지.

일단 저렇게 대놓고 돌아다닌다는 건 나라의 허락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맞이하는 처지에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저게 빠르니까 그런 거긴 하겠지만….

[실례하오!]

일단 맞이하기 위해 나 역시 일어서서 나가려는 찰나, 도시 밖의 성벽에서 멈춘 거대한 상어의 입이 벌려지며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흔의 붉은 상어! 샤리네어 가문의 한 샤리네어요!]

……저거 설마 상어가 말하고 있는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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