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70화 (70/143)

〈 70화 〉 태양 ­ 3

* * *

“…….”

“……읍!”

침묵이 방을 감돌았다.

진짜로 키스할 줄이야. 눈앞까지 다가온 아멜리아 공주는 꽉 눈을 감은 채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물론 입까지만이었다.

소녀처럼…. 소녀이긴 하지만. 마치 이다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듯이 눈을 꽉 감고 입만 맞추고 있다. 강제이긴 하지만 부끄러운 건 당연하겠지. 어두운 피부에도 보일 정도로 새빨갛게 물든 얼굴이 보였다.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 아멜리아 공주의 체온, 가벼운 몸의 무게가 느껴지며……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날 억누르는 힘은 풀려서 벗어나려고 하면 벗어나기 쉽지만, 여기서 벗어나면 공주가 큰 충격을 받으려나. 일단 최대한 배려해주면서 벗어나야겠고.

다음 문제는 누가 들어왔냐는 거다.

눈동자를 돌려도 각도 때문에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높은 확률로 시녀나 하녀겠지. 아니면 클로에라던가. 적어도 다른 영지의 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누가 왔는지도 살펴봐야 하는데.

“…….”

“…….”

침묵이 방안을 감도는 조용한 때,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꽉 감고, 붉어진 얼굴로 서서히 멀어지는 아멜리아 공주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신호를 보냈으면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나에게 일족의 지식을 알려주고, 이렇게 키스까지 하는 건 그렇다는 뜻이겠지.

문제는 그녀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거고. 성인식까지는 1~2년 남지 않았나? 이 세계는 나이를 묻는 문화가 아니라서 알 방도가 거의 없다. 그저 성인을 기준으로 미성년자인지, 아닌지만 주로 파악한다. 거기에 부가 설명으로 누구누구의 후계자, 어디 가문의 사람이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게 전부다.

일단.

겨우 고개를 돌릴 수 있어서 고개를 돌렸다.

제발.

“……나, 나…!”

“이리나양?”

나타난 건 이리나였다. 이리나는 문 앞에서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으로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며 보고 있었다.

“이리나양?”

“나, 나, 나…!”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장이 난 라디오처럼 말하는 이리나를 보고 일단 마음이 놓이긴 했다.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보단 괜찮겠지.

근데 아까부터 계속 나, 나.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다행히 비명을 지르진 않아서 다행이다.

일단 현재 상황을 보면 눈앞의 아멜리아 공주는 아까부터 계속 얼굴만 붉힌 채로 고개 숙이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고 있다.

이쪽이 부끄러울 정도의 순정 만화 같은 느낌에 일단 고개를 돌려서 이리나를 바라봤다. 다행히 이리나 말고 다른 사람은 나타나진 않았지만.

“나도 할 꺼야!”

“우와아아앗! 잠깐 멈춰!”

이쪽이 기겁할 소리를 내뱉으며 하늘색 마력을 사방팔방 뿌리며 두둥실 떠오른 채로 날아오는 이리나를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붙잡았다.

* * *

“처음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고! 셋째라니!”

겨우겨우 그녀를 달래고, 문을 닫고. 한 번 더 꼼꼼하게 마력으로 방을 차단했다.

그 사이 그녀는 깽판 치고 있었다.

“셋째! 세 번째라니! 제가! 제가요?”

“……이리나양. 제발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요, 레오님! 저 약혼자라구요!”

“아, 응.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 진정해.”

체면 따윈 개나 주라는 듯이 발버둥 치는 이리나를 달랜다.

결국, 입맞춤을 해주긴 해줬다.

다만 역시 아직 성인은 아니니까. 찐한 키스가 아닌 그저 입맞춤. 뽀뽀에 어울렸다. 솔직히 겉모습은 다 큰 여성이긴 하지만, 나라도 여자라면 발정만 하는 놈이 아니다. 거기에 곁에 아멜리아 공주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런 키스를 하는 철면피도 아니고.

본인은 그것도 불만족인가보다.

키스할 때는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한다고 거의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키스하고, 그 이후에도 30분 동안 히죽거리는 걸 기다린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는 지금은…….

“그래도 약혼년데!”

“보랭의 딸. 공주는 알고 있다. 진짜 약혼녀도 아니지 않은가?”

“캬아아악!”

고양이처럼 외치는 이리나의 모습을 보고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결국, 장소를 정리하고 어떻게든 테이블이 있는 곳까지 나왔다. 일단 단둘이 그것도 내 방이라는 곳만 아니면 괜찮지. 조금 한적한 곳에 있는 테라스에 나와서 차를 준비하고 있다.

조금은 진정됐는지 이리나가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는 아멜리아 공주를 노려다 봤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대체 무슨 일을 했던 겁니까! 역시 야한 건가요? 그런 건가요? 레오님! 저를 내버려 두고 이런 꼬마… 아니, 공주님을!”

“이리나양. 말조심하자, 제발. 타국의 왕족이야.”

날뛰는 이리나를 보며 이때다 싶은 아멜리아 공주의 입가가 비틀며 웃었다.

“……흐흠. 그렇다. 남들에게 말 못 할 것을 하고 있었지.”

“뭐, 뭐라고요!?”

“제발……. 아멜리아 공주님.”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된다.

결국, 서로 또 노려보는 두 명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별거 아니야. 나의 마력……. 그러니까 태양의 마력 때문에 조금 상담한 것뿐이야.”

“……음. 그거 말이군요.”

적당히 말해줘야지. 대신 아멜리아 공주가 바흐니아 일족에 전해지는 지식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치는 게 옳다.

어쨌든, 내 말에 이리나도 납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건 정말 대단했어요! 그렇게 거대한 빛 덩어리를 긴 시간 동안 제어하시다니. 역시나 레오님이에요!”

“아, 응.”

그나저나 빛 덩어리라.

이리나의 말에 잠깐 고민했다.

그건 인공 태양, 태양이라는 이름을 붙인 기술이긴 하지만, 실제 태양이냐면 그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리나의 말처럼 거대한 빛 덩어리에 불과하다.

다만 그 모습이 태양과 비슷한 모양이고, 높은 온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열을 중심으로 빛을 뿌리는 모습에 태양이라고 칭한 것뿐이다. 애초에 그렇게 유도하기도 했고. 그리고 마력이라는 힘으로 만든 거라 마력적인 효과도 있고.

내 고민에 상관없이 이리나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역시 프란츠의 마력을 벗어나시네요. 레오님이라면 자신만의 마력을 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역시라니?”

이리나를 봤을 때, 태양을 보여줬나?

내 말에 이리나의 미소가 짙어졌다.

“레오님이야말로 저한테 말했잖습니까. 상식에, 편견에 얽매이지 말라고.”

“……으음?”

그런 말을 했던가?

이리나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마력을 일으켰다.

그 두 손에 파란색 마력이…….

“색이 연해졌군.”

보랭의 마력은 분명 조금 더 짙은 거로 알았는데. 이제는 거의 하늘색이라고 불러야할 정도다.

이리나의 마력이 일렁거리며, 그 모양에 따라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주변에서 불기 시작했다.

“이게 진정한 하늘의 마력이에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늘의 마력…….”

아멜리아 공주 역시 진지한 눈으로 이리나를 바라봤다.

“보랭은 먼 옛날부터 하늘의 마력이라고 불리며 바람을 지배한 일족입니다. 하지만 이상하죠. 하늘의 마력이라면서 정작 지배하는 건 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을 나는 것이 고작 이라니.”

하늘의 마력.

단순히 중력을 거역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이 끝이 아니다.

땅에서 바라보는 위. 그 위가 전부 하늘.

“하늘에는 비가, 눈이, 우박이 쏟아집니다. 구름도 있죠. 번개도 내려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하늘을 떠돌고 있죠. 알면 알수록 거대하고 넓은 것이 저는 하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솔직히 힘듭니다만, 언젠가 저는 제 손으로 재앙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리나의 푸른 눈동자에 연파란 색의 마력이 물결쳤다. 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에는 태양이 있죠! 즉, 저와 레오님! 일심동체! 이건 완전히 결혼해야 하는 각! 그렇지 않나요, 레오님!”

“……아, 그래.”

“……으음. 태양 아래에 바다가 있다. 즉 나와 레오릭 프란츠는 서로 마주 보고 있지. 태양과 바다는 아주 예전부터 서로 순환되어 온 존재. 때려고 해도 땔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와 레오릭 프란츠다.”

“므믓! 쉽게 물러서지 않는군요! 역시나 왕족!”

“그대 역시 단순한 백작급이 아니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뭔가 대단한 걸 말해주는 줄 알고 기대했지만. 또다시 서로를 노려다 보는 두 여자에게 시선을 뗐다.

그래도 이리나의 말로 봐서는 그녀 역시 어느 정도 마력의 탐구에 진전이 있다는 이야기다.

보랭 역시 나름 연구를 하고 있겠지만. 그들이 아직 백작급인 이유가 역시 이것이겠지. 하늘의 보랭이라는 이름으로 비행과 바람의 연구가 어느 순간 막혔던 것이겠지.

다만 이렇게 보면 결국 자연 현상이란 서로 얽히고 얽힌 것이다. 이들이 서로 소통해서 발견한 것을 교류했으면 이 세계의 과학 수준은 엄청나게 발달했을 것인데.

“하지만, 그렇군. 상식과 편견에 얽매이지 말라….”

내가 예전 이리나에게 했던 말을 중얼거리다, 문득 태양을 생각해냈다.

그저 빛나는 태양을 떠올리며 만든 기술. 이름 그대로 태양처럼 빛나는 구체에 불과한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그저 배터리로 이용해왔다. 물론 그걸 그대로 박으면 그건 그것대로 강한 기술이 되겠지만.

태양이 떠 있는 것만으로 이쪽에는 이로운 효과가, 상대에게는 해로운 효과가 적용되면서 태양열을 흡수하는 것으로 나에게 역으로 마력을 공급해준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을 이용한 공격도 가능하며, 빛 그 자체를 조작할 수 있다. 이건 금빛 마력 때문에 익숙해서 자주 이용하고. 그리고 만약 위험한 상황에서는 인공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가적인 마력을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식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태양부터 시작해 연상되는 단어를 천천히 떠올렸다.

빛, 중력, 별, 우주. 상대성 이론.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력.

애초에 마력이란 뭐지? 이런 지식이 없어도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 구현시키는 마력이 제일 말이 안됐다. 여태까지는 그저 원료, 에너지로서 바라봤지만, 사실은 마력 그 자체를 연구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음, 아니다. 머리가 복잡하다.

나중에 생각해야지.

어쨌든 지금은 성인식도 끝났고, 당분간 푹 쉬자.

“캬아아아악!”

“……와아아.”

……아니, 이 두 명은 또 왜 이래요.

결국, 둘을 진정시키고 강제로 떨어트리고 차 한 잔 마시는 것을 끝으로 자리를 해산했다. 일단 이 둘을 붙이면 싸움이 나는 것은 알겠다.

지친다, 지쳐.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 때, 누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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