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태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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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는 만유인력의 법칙. 사실 구라라지? 이제 와선 만유인력이라고 하면 뉴턴. 뉴턴이라고 하면 사과. 그리고 그런 사람도 망한다고 하는 주식.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쨌든, 지금 아멜리아 공주가 알려주는 것은 이 사회에서 그 값어치를 정하기 어려운 지식이었다.
특히나 공주가 말하는 지식은 대략적인 것이 많고, 아마 바흐니아 일족에서도 확실한 이론으로 구축한 건 아닐 것이다. 지동설도 실제 역사처럼 말 그대로 태양을 중심으로 이 땅이 도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저 추측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아멜리아 공주는 말하면서 어디까지나 참고하라며, 관점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귀하다면 귀하다고 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은 정말로 위험했다. 만약 바흐니아 왕족에게 알려지면 아무리 공주라고 해도 무사히 넘기기는 어려운 일. 그걸 말해준다는 것은 아멜리아 공주는 진심으로 나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솔직히 꽤 감명 깊었다.
뭐, 내가 조금 과하게? 그녀를 도와주긴 했지만, 이 정도의 대가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문제라면.
“……프란츠도 이런 연구를 하고 있었나? 프란츠는 금빛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마력으로 알고 있었지만. 태양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을 줄은……. 하긴 아무리 그대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벌써 저만한 태양을 구현하는 것을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긴가.”
공주가 시무룩해졌다.
정말로 위험하고 값진 보물이다. 만약 내가 일반적인 귀족이고, 그 마력의 격이 슬슬 백작이나 후작급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타이밍이고 때마침 태양에 관해 연구…… 아니. 설사 태양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지식은 그만큼 값졌다.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딱 보니까 알겠다. 공주를 무시하지 마라. 그대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아씨, 안 속네.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 이야기할 때 값진 것을 준다며 꽤 신나면서 이야기했다. 표정 변화가 드문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눈에 보일 정도로 웃으면서 이야기했으니까.
근데 문제라면.
현대인이라면 상식………은 아니다.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이 그때에도 있었지? 그렇게 치면 공주보다 못한 현대 사람의 상식이란 도대체…….
어쨌든, 일반적인 의미로.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지식은 내가 어느 정도 아는 것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지식은 왕족으로서 나라를 지배하는 일족에게 비전으로 내려올 정도의 지식이라는 것이 중요했고.
“하긴……. 아무리 그대가 천재라고 해도, 그 거대한 크기의 태양을 거의 반나절 정도 유지하는 것부터가 평범치 않았지. 아무리 재능이 있고, 태양을 만드는 것으로 외경심을 모은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특징이 발휘되는 시간이 너무 빨랐어.”
“으음.”
그렇다.
아무리 내가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기술이나, 실제 인공 태양을 구현했다고 해도 주변인들에게 그걸 보여준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에게 신앙심, 충성심 등, 어쨌든 사람들의 정신적인 힘을 모은다고 해도 그걸 단시간에 얻어서 태양의 힘을 낸다는 것은 단순한 날짜의 문제가 아니다. 짧아도 한 사람의 수명이며 보통은 거의 세대의 문제다. 한 가문이 계속해서 핏줄을 이어가면서 연구해야 하는 일이다.
“……공주가 괜히 실례했다. 나가겠다.”
“자, 잠깐.”
거의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듯한 아멜리아 공주가 그대로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는 것을 팔을 뻗어 잡았다.
나에게 붙잡힌 팔에 나가려던 자세로 멈춘 공주는 그 상태로 서서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진짜 아닙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 연구한 건 있지만, 도움이 되는 정보도 있습니다.”
“……거짓말.”
“진짜입니다. 평소 궁금했던 것도 이번 기회에 실마리를 얻은 것 같습니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이쪽이 미안할 지경이다.
그런 공주를 위로하면서 난 조금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별로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나에게 책이란 소설이나 만화가 전부였다. 그것도 나이 들어서는 거의 보지도 못했고.
그런 내가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일반 상식 수준의 지식이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지식인 건 분명하다. 예를 들면 원자라던가, 혹은 원소라던가. 영화에서나 그럴듯하게 설명되는 양자 역학. DNA 같은 건 그냥 서로 꼬인 모양만 알 뿐이다.
태양에 대해서는?
우주에 있는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인 태양계의 중심. 그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만 알뿐이다. 지구가 운 좋게 태양에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있어서 생명이 태어날 수 있게 됐으며, 태양이 있기에 낮과 밤이 있고, 태양 에너지가 지구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정도다.
그리고 태양계에서 유일한 스스로 빛나는 별이라는 것 정도?
이 정도의 지식으로 태양의 특성이 담긴 마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그렇다고 해도 먼 미래. 과학이 발달한 미래에선?아직은 모르겠다.
손끝에서 마력을 이끌어봤다.
“음. 역시.”
“역시?”
“색이 바뀌는 중이군.”
아주 희미하게, 색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거기에 아무리 프란츠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전부 똑같은 황금빛인 건 아니다. 개인의 특성이나 자질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지라 이 정도의 색은 그렇게까지 특이하진 않다. 거기에 아주, 아주 약간 바뀐 거라 정작 마력의 보유자인 나 역시 뒤늦게 알아차릴 정도니까.
“태양의 마력이라.”
“태양이란 그만큼 신비로운 존재다. 우리를 비롯해 수많은 혈통이 그것을 탐구하고 연구해왔지만, 아직 밝히진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어떤 일족은 하늘을 날아 태양을 향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지.”
“하하하. 그것참. 힘들 건데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카로스가 생각나는군. 애초에 날아가다가 마력이 다 소비되지 않을까?
“……그대는 정말로.”
그때 아멜리아 공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태양까지 날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군.”
“네?”
공주의 말에 멍하니 공주를 바라봤다.
아니, 진짜로 불가능하지 않나. 얼마나 멀리 있는데? ……아, 이런.
“그대는 태양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아는 건가?”
망했네.
입을 다물고 아멜리아 공주의 눈치를 살폈다.
날 보는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그야 뭐, 당연히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당연, 당연한가…….”
아멜리아 공주의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일단 모르는 척하자.
다행스럽게도 공주 역시 별말은 하지 않았다.
잠깐 조용한 침묵이 방을 채웠다.
이건 내 실수군.
내 상식으로는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인간 혼자서는 도착할 수 없을 정도로 멀다고 알고 있다. 따로 단위까지 있는 거로 알고 있을 정도로. 그 상식이 이런 실수를 불러왔다.
이제부터는 말조심해야겠군.
“……. 하지만 이건 선물이라고 할 수 없겠군. 그대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알려주는 것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이건 바흔 왕국에 들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그건 그대를 믿고 있다.”
으응?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잠깐 입이 막혔다. 믿고 있었다니. 내가 이걸 바흔 왕국에 알리는 것으로 자기 자리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건가.
내 시선에 아멜리아 공주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나를 위해서라도 그걸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보는 아멜리아 공주의 눈빛에는 이상한 신뢰감이 있었다. 그 눈빛을 보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도 귀족인 데다가, 타국의 귀족인데. 거기에 우리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씁.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비밀은 지켜주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순수한 그 시선에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나저나 곤란하다. 그대에게 줄 선물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닙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공주 전하의 진심을 느꼈습니다.”
진심이 전해지면 좋겠다. 더 이상은 부담스럽거든.그 생각으로 공주의 가녀린 손을 꽉 잡으며 시선을 맞췄다.
분위기를 맞춘다.
“……치사하다.”
“네?”
아멜리아 공주가 고개를 돌렸다.
잠깐 마주쳤던 눈이 구석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러면 다른 선물을 준비할 수밖에 없군.”
잠깐 고민하던 그녀가 다가왔다.
다가오고.
다가온다.
“잠깐, 공주님?”
아직 잡고 있던 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왜, 어째서…! 막는, 거지!”
“자, 잠깐!”
서로의 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다가오려고 하는 공주의 몸을 손으로 잡은 팔을 통해 억지로 막아냈다. 아니, 이 꼬마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거 알아?
“고, 공주님! 더 올라오시면 침대 위로 올라오시게 됩니다만! 알고 계십니까!”
“바흔, 의 여자를! 우습게 보지 마라! 한 번 노린 사냥감은, 놓치지…! 않는, 다!”
“제가, 무슨 사냥감입니까! 잠, 아직 성인도 아닌 애가!”
“이제, 곧! 성인이다!”
“거짓말하지 마십쇼!”
아니, 무슨 기마민족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언니라는 애가 사랑 문제 때문에 가출했다고 했지! 일족 특성이냐!
“무슨, 짓을 하려는……! 으악! 잠깐, 마력은 치사하게!”
“이기는 자가 결국 승리를 쟁취한다!
아멜리아 공주의 몸에서 마력이 슬금슬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미미한 힘에 불과했지만, 문제라면 나는 그 마력이 거의 떨어진 상태에 방 주위에 결계까지 치고 있어서 신체 강화에 쓸 힘이 없다는 정도?
망했네.
“결계는 부탁한다!”
“잠, 아멜리아 공주님!”
털썩!
공주가 그대로 힘으로 밀고 들어와, 결국엔 침대에 쓰러졌다.
거의 반쯤 덮친 상태. 공주는 결국 날 쓰러트린 채로 내 위에 올라탔다. 내가 이런 모습이 될 줄이야.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내 위에서 가만히 날 노려다 보는 공주를 보며 결국 포기했다. 일단 괜히 반항했다가 소란스러워져서 이걸 누군가에게 들키면…….
덜컥!
“레오님! 조금 전부터 아무런 말도 없…………!”
“읍!”
쪽!
누가 문을 열며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아멜리아 공주가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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