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68화 (68/143)

〈 68화 〉 태양 ­ 1

* * *

태양이 비추는 프란츠.

끝나지 않은 낮. 언제나 이어질 것 같은 태양은 끝내 저물었다.

새로운 태양이 뜬 그 순간까지.

“끄으응.”

지쳤다….

이렇게까지 마력을 운용한 적은 처음이다.

중간중간에 대산맥의 특산품으로 만든 영양제를 먹거나 그레이스 누나의 도움으로 회복에 전념하기도 했다.

해가 저문 늦은 저녁부터 시작해 일출이 되는 시간까지 거의 12시간 정도 유지한 태양.

성인식 자체는 새벽에 끝났지만, 이왕 하는 거 최후의 최후까지 버티기 위해 일출까지 참았다. 마지막에는 거의 경악한 귀족들 앞에서 떨리는 하반신을 억지로 힘을 줘서 참은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는 그랬다.

이곳까지 온 귀족 중 갈 길이 먼 귀족은 아직 이 성에 머물고 있으니까.

그래도 일단 오전에는 푹 쉴 생각으로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덜컥!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어쓴 채로 반쯤 기절한 채로 누워있을 때,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반쯤 눈이 떠졌다. 앞이 컴컴해서 깜짝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지. 근데 이 시간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했는데…….

“으음…. 누구야?”

급한 일이 있으면 아무리 그래도 누가 방문했는지는 알려주는데. 갑자기 들어오더니.

다가오는 기척에 덮어쓴 이불을 내리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이불을 꽉 잡았다.

“아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방에 들어오는 건.”

“……부끄럽다.”

“……공주님?”

최근 들어 익숙해진 목소리가 귓속에 파고들었다.

멍한 정신이 깨어났다.

아니,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거죠?

“잠깐, 잠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안된다.

왕족의 공주가 남자의 방에? 이건 위험하다.

그리고 아무도 안 알려주는 이유도 알았다. 남몰래 들어왔구나!

“어느새 차단막까지! 진짜 위험합니다, 아멜리아 공주님!”

성에 머무는 귀족들의 수는 꽤 있다. 물론 거리가 있으니 알아차리기 어렵겠지만, 만약을 대비하면 진짜 위험하다.

나 역시 곧바로 마력으로 방 주위에 결계를 쳤다.

“하아….”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덮어쓴 채로 내 앞에는 공주가. 정말로 낯선 경험이다.

한숨을 쉬자 공주님의 몸이 움찔거리는 반응이 느껴졌다. 본인도 부끄러우면 하지 말지….

“그래서 공주님. 무슨 일입니까?”

“……으. 화, 화났나?”

“그야 당연하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보면 본인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무슨 생각이지?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도 해서 그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아직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지만, 왕족인 이상 당연히 그에 맞는 교육을 가르쳤을 것이고, 실제로 그녀는 이쪽과의 대화에 어울리는데 부족한 점 같은 건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제 이불을 내려도 됩니까?”

“으음…….”

이불을 잡던 힘이 약해졌다.

그 느낌에 덮어썼던 이불을 천천히 내렸다.

아멜리아 공주는 바로 옆까지 다가온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귀가 살짝 붉어진 것이 보일 정도니, 평소 무표정하던 모습에서 떠올리지 못했던 그녀의 나이가 그 행동을 보자 머리에 스쳤다.

“하아아. 다음부터는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미안하다….”

힐끔.

나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공주와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무슨 일이죠?”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은혜?”

멍하니 아멜리아 공주를 바라봤다.

조금 진정됐는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평소의 아멜리아 공주다. 다만 그래도 아예 가시는 건 아닌지, 조금 부끄러운 듯이 볼이 붉어져 있었다.

“그건 나중에라도 받으면 됩니다. 굳이 이렇게 몰래 찾아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

그녀를 구해준 일부터 시작해 받을 것은 많다. 악착같이 뜯을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까지 일했으니까. 받을 만큼은 받을 거다. 그것도 미리 말해놓았을 텐데.

그러나 아멜리아 공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호의다.”

“개인적인 호의?”

“나를 도와주는 것으로 얻은 이득이 없다고는 하지 않지만……. 그러나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므로.

왕족이나, 나라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호의. 그 보답.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갑자기….”

“……바흔과 가까운 영지를 통해서, 편지가 도착했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딱히 비밀로 한 건 아니다.

평소 호수와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역. 그 교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가 없을 리가 없다. 당연히 바흔과 인맥이 없을 리가 없고, 아멜리아 공주와 대화를 통해 진작 그들을 통해 서신을 전달했고, 우리 역시 그 답장을 받았다.

당연히 급하게 연락해야 했지만, 정보 통제를 비롯해 핑계를 위해서 비밀리에 편지를 전달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여러 정보를 교환한 지금.

“브람스의 왕족과 교섭도 끝났다. 바흔의 공작, 붉은 상어의 샤리네어가 직접 찾아올 것이다.”

“샤리네어.”

……솔직히 모른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타국의 공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리가 없잖아….

“내 호위도 겸하기에……. 그녀가 도착하면 이제 자유롭게 대화를 할 시간은 없겠지. 그러니까…….”

아멜리아 공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가 젖은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

“음…….”

이렇게까지 말하면 나로서는 다른 반응을 보이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은……. 뭐, 용서해주자.

“좋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은혜를 갚으실 겁니까?”

개인적인 은혜라고 했다.

귀족이니 왕족이니. 그런 거와 관계없는 은혜.

내 말에 아멜리아 공주는 잠시 눈을 갚고 심호흡을 하며.

눈을 떴다.

“그대는 태양의 마력을 가진 자들이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나?”

* * *

“지금까지 그 누구도 태양의 마력을 얻은 자는…… 태양을 지배하는 자는 없었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레오릭 프란츠?”

“그건……. 들어본 적 없군요.”

과거, 수많은 마력 보유자들이 태양의 자리에 도전했다.

당연하다.

언제나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존재. 압도적인 힘의 상징. 번개와 더 붙어 그 누구나 그것을 탐했다.

“태양을 꿈꾸는 자는 많았으나, 그 모두 태양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수많은 가문이, 백작을 비롯한 후작, 공작, 왕까지 그 모두가 그 자리를 노렸다. 그 정도로 태양이라는 위계는 드높았다.”

당연하다.

지구에서도 태양을 상징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존재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경우 최고신은 번개이지만, 태양신 아폴로도 그에 걸맞은 격을 가진 존재. 이집트 신화도, 일본 신화에도 그 위치는 일반적인 신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자리를 꿈꾸는 자들은 많았으나. 기껏해야 빛나는 불꽃에 불과했다. 신들의 시대에선 스스로 태양의 신이라 칭하는 존재는 많았으나, 과연 그것이 진짜 태양의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세계의 기술이 특이하게 발달하였다고 해도, 결국 제대로 된 과학 체계가 잡힌 것이 아니며 아직 대부분 지식은 고위층에 독점되어 있으며 어렵게 연구한 수많은 지식이 비밀로 계승하다가 핏줄이 끊기면서 사라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런 세계에서 이렇게 가문의 사람이 아닌 자에게 지식을 알려준다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멈춰야 할까?

“괜찮다. 애초에 우린 이미 바다의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으음.”

내 표정에 느껴진 망설임을 알아차렸는지 아멜리아 공주는 문제없다고 답했다.

“거기에 이미 그대는 그 씨앗을 가지고 있다.”

“씨앗?”

“그대가 펼친 그 태양. 그것은 설사 단순한 마력양의 한계에 도달하는 후작급이라고 해도 가능한 이적이 아니다. 설사 그 핏줄에 불꽃을 비롯한 빛에 관한 특성이 있다고 해도.”

인공 태양이 떠오른다.

그건……. 그냥 전생에서 본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것을 본떠 만든 것에 불과했다.

“그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대가 가진 마력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말에 떠올랐다.

조금 색이 변해가는 마력의 빛이.

“내가 보기엔 그대가 얻을 태양의 위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

“으으음.”

“내가 알려준 지식만으로 그걸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도움은 될 것이다.”

고유의 마력을 가질 때, 그 특징이 정해지는 것은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바다를 연구하는 바흐니아 일족. 황금 사자 신앙을 기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외경심을 가진 프란츠 일족. 혹은 일족의 태생이 가지는 특징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보랭이나 헤밀리언.

물론 연구만 한다고, 신앙을 얻는다고 한계가 있어서 어차피 겸해야 하지만.

“그대는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지는 이유가 뭔지 아나?”

아니 여기서 사과가?

내 표정이 이상해져서 그럴까, 아멜리아 공주가 당황해했다.

“그, 이상한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이것 정도는 그대도 알고 있겠지? 꽤 유명한 이야기니까.우리, 바흐니아 일족은 바다를 연구하면서, 파악한 지식 중 하나가바다의 썰물과 밀물에 얽힌 것이 단순히 바다만이 아닌 이 땅과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에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어, 설마 여기서 조수 간만의 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즉, 중력……이었던가? 아니, 뭐더라. 이거 언제 배우던 공부였지? 초중고에서 배웠던 과학 상식에 대해서도 이제 애매해졌다.

확실히 이 세계도 중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조수 간만의 차도 알고 있을 줄이야. 나도 이거 설명하라면 답할 수 없다. 이미 다 까먹었거든. 대충 해와 달의 중력 때문에 생긴거는 아는데.

“솔직히 이미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그대에게 과연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아멜리아 공주의 말은, 대략적으로 내가 아는 것과 비슷하다.

중력부터 시작해 천동설. 공전. 물과 대기의 순환…….

설마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당연히 대략적인 지식에 불과하고, 애매한 단어로 꾸며진 것도 존재했다. 아마 말하는 아멜리아 공주 역시 제대로 이해는 하지 못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연구가 진행됐을 줄이야.

“……으음. 반응이 나쁘다.”

“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 몰라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서 그런가.

아멜리아 공주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나?”

공주가 시무룩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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