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67화 (67/143)

〈 67화 〉 아수라장 ­ 3

* * *

그레이스 헤밀리언은 자신과 레오릭의 관계가 불안전하다는 것을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그의 파트너로서 무대 위에 올라와 있지만, 이 자리는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쉽게 빼앗기는 위치였다.

당장 눈앞에 두 명의 여자가 그러했다.

­스윽.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경계심이 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귀족으로서, 그의 옆에 있다는 것은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넘어서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도 그의 팔에 가슴을 닿게 하고 있다. 드레스로 강조된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풍만한 가슴. 딱히 신경 쓴 적은 없었다. 평소 생활에 오히려 불편했고, 새로운 옷을 맞출 때마다 가슴 때문에 더욱 신경 써야 했으니까.

“레오. 몸은 괜찮아요?”

“네. 고마워요.”

이 가슴이 지금은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그의 가슴에 닿은 가슴에서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팔을 자연스럽게 그의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에서 그의 바지 너머의 단단한 허벅지의 감촉이 전해진다.

“누……, 그레이스님?”

테이블 아래에서 구두가 그의 신발에 스쳤다. 단단한 끝부분이 그의 다리를 스친다. 그의 치료를 위해 마력이 연동된 지금보다 그와 연결된 감각이 마음을 충실하게 한다.

­힐끔.

“…….”

“……으읏.”

그레이스 헤밀리언은 우월감에 참을 수 없어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노려보는 두 여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을 느낄 때마다 그와의 사이가 더욱 좁혀졌다. 이젠 거의 반쯤 안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그에게 가까운 건 자신이다…….

정말로?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레이스는 냉정히 판단했다.

레오릭과의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물론 그는 임신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자신을 아껴주는 행동은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애무에서는 자신을 향한 사랑과 성욕 그리고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결국 자신은 레오릭의 형제인 아이단 프란츠의 아내다.

드문 이야기는 아니지만,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차기 가주가 아닌 그 혈족과 관계를 맺어 가진 아이를 후계로 삼는 것은 질척거리는 귀족 역사 속에서 간혹 들려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결국 비공식인 관계.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면 그레이스 헤밀리언은 아이단 프란츠의 아내로서 그의 파트너로 활동해야 했다.

결국, 언젠가 레오릭 프란츠가 정식적으로 약혼녀가 생겨 결혼하게 된다면 사교계에서 그의 파트너는 그 결혼 상대가 될 것이며 지금처럼 자주 자신에게 올 수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더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그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다른 귀족…. 특히 프란츠의 혈통이면서도 왕성한 성욕은 피를 더 늘려야 하는 귀족의 의무를 위해서라도 이 이후 설사 남편인 아이단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 만남을 계속할 이유로 부족하지 않다.

후계자 경쟁의 사이라고 해도 되는 형제 관계면서도 그 사이가 나쁘기는커녕 이상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부모 자식 관계도 나쁘지 않다. 직접 말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자신의 의향을 슬쩍 흘리기만 하면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안 된다고 해도 참을 수 있을지는 두 번째 문제라는 것은 지금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으으읏!”

하지만 지금 당장 약혼녀가 될 확률이 높은 이리나 보랭의 경우 딱 봐도 자신을 적대하고 있다.

다만 이것은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 이리나 보랭의 성격이나 인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지금 저렇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역시 약혼녀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것 또한 그녀. 그녀는 약혼녀가 되어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작은 외도?에 대해서는 그렇게 터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횟수가 자신의 횟수보다 넘는 건 용서하지 않겠지만. 거기까지는 자신 역시 바라지 않았다.

그러므로 역시 제일 위험한 것은 바로 그녀.

“너무 가깝지 않은가, 그레이스 헤밀리언.”

“후후훗. 하지만 그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게 제일 좋답니다. 그렇죠, 레오?”

“으, 응.”

손가락을 들어 그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얇디얇은 옷 너머로 탄탄한 그의 가슴 근육이 느껴진다. 그의 가슴에는 꽤 신세를 졌다. 그 뜨거운 밤이 문득 머리에 스쳤다.

“야, 야, 야…!”

“야?”

팟! 이리나 보랭이 손가락으로 그레이스를 가리켰다.

“야한 얼굴이에요!”

“야하다니…….”

“으, 음란해요, 음란해!”

꺄아아아! 하면서 난리를 떠는 이리나는 둘째치고,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아멜리아 공주에 향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고, 무기질적인 눈동자다. 사랑하는 레오릭은 그런 그녀의 감정을 어느 정도 알아차리는 것 같지만, 그레이스에게는 역시 무리였다.

“……그런가. 치료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는 아멜리아 공주가 침묵을 유지하자 그레이스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어디까지 하는지를 도저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분명 레오릭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알고 있고, 지금까지 반응을 보면 그것은 호의를 넘어 이성으로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귀족……. 특히나 왕족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자신의 감정으로 결정하는 일은 드물다. 분명 호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거기에는 바흔과 프란츠의 관계도 생각해야 한다.

현재 그레이스가 제일 고민하는 문제는 만약 시아버지이자 가문의 주인으로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결정으로 레오릭 프란츠를 아멜리아 공주와 약혼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타국의 귀족과 약혼을 성사시키는 것이 가능하냐는 두 번째고, 만약 그렇게 되면 과연 레오릭이 이 땅에 머물 수 있을 것인지, 그것에 제일 걱정이었다. 높은 확률로 그녀를 따라 바흔으로 넘어가겠지.

그것만은 안된다.

이리나 보랭까지는, 마음이 괴롭지만 참을 수 있다. 비록 그 횟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참을 수 있다. 함께할 밤을 기다릴 수는 있다.

그러나 아멜리아 바흐니아는 안된다. 그 거리는 너무나도 멀다. 물리적으로, 마음으로도. 어쩌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러니까. 공주에게는 미안하지만, 형수님이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에 생기는 욕심이 거기엔 있었다. 그 조금의 욕심을 위해서라도 거기까지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

“저기, 레오.”

“네?”

속삭이자, 레오의 빛나는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본다. 어색한 방 분위기에 당황하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가 자신을 바라보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아. 이거다. 수도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그 눈동자.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피곤하면 역시 조금 더 쉬는 것이 어떨까요?”

“음…….”

그래.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자신과 함께하자. 그렇게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몸은 더 가까이. 서로의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의 거리. 풍만한 가슴이 짓누르며 그를 압박한다. 느껴지는 그의 향과 체온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레이스는이 시간을 조금이라 더 함께하고 싶었다.

* * *

그레이스 누나의 말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알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죠.”

“그런가요. 하지만 누가 약하다고 할까요. 저 정도의 태양, 아직도 이 땅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의 소유자인 당신을.”

만약 저 태양이.

자신을 노린다면. 그것을 생각하고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그런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다.

그건 미친 놈의 생각이고.

“그래요, 레오님! 조금 더 같이 있어요. 성인식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군. 이리나양. 오랜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지금 사정은 저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이렇게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저로서는 기뻐요!”

그런 나를 만류하는 건 이리나양이었다.

나 또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된 대화하나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프러포즈에는 과연 좀 놀랬지만, 그걸 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윌리엄 백작님이나 내 아버지겠지.

나 역시 지금 계속 쉬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몸을 생각하면 그래야겠지만.”

그때 아멜리아 공주가 끼어들었다.

“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다른 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음……. 과연.”

아멜리아 공주와 정치적 문제도 있다.

어쨌든 핑계는 핑계.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속담도 있다. 그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멜리아 공주가 이 땅에 있는 이유가 정상적인 것일 리가 없는 것은 파악하고 있겠지.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서 그녀와 친분을 과시해야 한다. 역시 지금이라도 나가 봐야. 그레이스 누나와 아멜리아 공주의 시선이 마주쳤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건 착각일까.

­덜컥!

또다시 비밀 통로의 문이 열렸다. 이번엔 또 누구야 하는 심정으로 바라봤다. 솔직히 지금도 좀 속이 쓰리다. 왠지 모르지만, 방의 분위기가 안 좋거든.

“레오릭님.”

“오, 클로에.”

나타난 건 클로에다.

어쨌든 익숙한 사람이 나오니 기분이 편안해졌다.

클로에는 잠깐 방에 있는 세 사람을 보더니 기분이 안 좋아졌다. 클로에도 왜 그러지?

“왜? 무슨 일이지?”

“어스레인 공작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뭐? 어스레인 공작님이?”

수도에 있는 귀족으로 브람스 왕국의 두 명의 공작 중 하나.

갈색 두더지의 어스레인.

가문의 상징이 두더지라고 우습게 본 사람은 큰코다친다.

영토 하나를 그대로 엎어버리는 것도 가능한 사람이니까.

“여기까지 오셨어?”

“네. 곧바로 나가 보셔야 하겠습니다.”

“음. 그렇네.”

이건 좀 내가 감당하기 벅찬 손님이긴 한데. 나가봐야겠다.

곧바로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한다. 남은 3명은 조금 더 쉬게 해야지.

* * *

‘클로에 트리스탄.’

저 여자도 위험하다.

세 여자 모두 동시에 그 생각을 가졌다. 단순한 기사의 혈통으로 아직 귀족급에는 먼 것이 느껴지지만. 레오릭은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레오릭이 보였던 반응. 순간 스쳤던 표정과 눈빛. 평범한 가신에게 보여줄 얼굴이 아니었다. 내심 생각하고 있던 위험 등급을 올리면서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3명의 여자는 레오릭이 나간 후,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조용해진 방에서 침묵을 지켰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