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64화 (64/143)

〈 64화 〉 성인식 ­ 5

* * *

성인식이라는 이름으로 귀족들의 사교계가 시작된다.

특별한 건 없다. 결국, 정식적으로 외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일종의 사교계 데뷔 같은 거니까.

경악의 눈빛으로 이쪽을 보는 귀족들을 바라본다.

남부 지방에 자리 잡은 귀족들을 빼더라도, 남부가 아닌 다른 지역의 귀족들도 그 모습이 보인다.

기본적인 귀족의 교육의 목적으로 여러 지방의 귀족 가문에 대한 지식을 쑤셔 받는다. 지금도 초대된 귀족들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얻고 있다.

남부 지방의 세력은 주로 우리 프란츠와 보랭 가문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지만 그보다 작은 규모의 다른 영지 귀족도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 공식적인 자리에 참여한 횟수가 적은 나도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귀족이 보이니까. 그러나 그들을 제외해도…….

동부 지방, 서부 지방, 북부 지방. 그리고 수도의 귀족들.

브람스 왕조 아래에 통일되어 간신히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결국 수십 년 전까지 전쟁했던 가문들이 여기에 모였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며 웃음으로 포장하지만 그 안에 담긴 차가운 긴장감이 연회장을 감돌고 있다. 풍요의 땅이라고 불리는 남부 지방에서 지배자라고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은 결국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전쟁을 이겨냈다는 의미. 가주 대리로서 현재 이 땅의 주인인 나는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서로 떠들고 있는 저들을 보며 초대된 가문의 인사가 누가 있는지 파악한다. 과연 각 지방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의 사람은 없다. 애초에 보통 이런 식으로 연회를 하면 한 달은커녕 더 이전부터 미리 연락해놔야 하니까. 급하게 열리는 성인식에 이 정도로 참가 인원이 많은 것은 내가… 우리가 프란츠이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대가문의 사람들은 없어도 그들의 부화라고 할 수 있는 하위 가문의 귀족들을 확인했다.

“그레이스 누나. 이제 괜찮아요.”

“…그래요. 하지만 아직 정상은 아니에요.”

저들이 들리지 않게 마력 차단을 이용해 누나에게 작게 속닥거렸다. 계속되는 폭죽과 태양에 쓰이는 마력을 비롯해 제어하는 것에 속이 꼬여오는 고통을 그레이스 누나가 잡아주고 있는 손을 통해 어느 정도 진정시켜주고 있다.

그레이스 누나의 혈통은 그런 혈통이다.

상대와 동조하는 것으로 부담을 나누고, 힘을 공유하는 고유의 마력. 헤밀리언 후작 가문. 가문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혈통이 가진 고유한 특성은 반감되었지만, 그래도 그 잔재만으로 충분한 힘이 된다.

누나의 손에서 전달되었던 마력이 내 속을 치유한다. 그 힘의 유도를 온전히 나에게 맡긴 누나의 의사가 전해져온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고 거기서 느껴지는 눈빛에 애틋한 감정이 실려 온다. 마지막으로 잡은 손을 꽉 잡아줬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서로의 몸 안에 느껴지는 마력의 잔향을 느끼며 서서히 손이 떨어졌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누나에게 인사하고,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태연한 척 바라본다. 솔직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정말로 싫었다. PPT 발표도 싫었는데, 이걸 좋아할 리가 없지. 하지만 이제는 홀로 설 때가 된 것 같았다.

“하, 하하하. 역시 황금 사자의 가문답군요! 엄청난 솜씨였습니다!”

“그 거대한 태양. 엄청난 마력이군요.”

“……으음, 프란츠 가문. 역시 소문 이상의 저력이다.”

“조금 전에 밤하늘에 펼쳐진 한 편의 이야기는 정말로 인상적인 연극이었습니다!”

“그것을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부터가…….”

그레이스 누나와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순간부터, 순식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나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서로 속닥거리는 이야기. 그리고 밤하늘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까지.

귓가에 들려오는 저들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듣고 웃으면서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누나 역시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 귀족들과 인사를 하며 인맥을 다지는 시간이지만,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아멜리아 공주 전하. 오늘 이렇게 저의 성인식에 참석해 빛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국이긴 하나, 이 자리에서 제일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면 바로 아멜리아 공주다. 사실 나라보다는 혈통에 더 가치가 있는 이 세상의 관점으로 봐도 먼저 인사를 올리는데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녀를 향해 예를 갖추며 인사하면, 아멜리아 공주 역시 흠잡을 곳 없는 자세로 맞이한다.

“레오릭 프란츠님.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전 봤던 밤하늘의 연극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이날을 위해 레나가 도시의 디자이너들은 물론 그레이스 누나나 자리에 없는 어머니의 옷장을 비롯해 영지에 있는 어느 정도 격이 있는 가문의 모든 옷장을 다 뒤집어 다니고 괜찮은 드레스를 찾아 꾸며낸 아름다운 공주가 거기에 있었다.

평소와 같이 무표정하고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아름다운 소녀였지만, 평소와 다르게 약간 상기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말투도 바뀐 것은 공식적인 자리라서 그런 것이겠지.……아니, 근데 왜 평소에는 나한테는 말을 편하게 하는 거지?

“발리우드도 그랬지만, 프란츠의 문화, 예술은 정말 엄청난 것 같습니다.”

“과찬입니다. 프란츠의 예술인이 힘내서 그런 것이죠.”

어쨌든 마치 처음 본 듯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

나와 공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다. 아멜리아 공주 역시 그 시선을 느끼지만 태연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레오릭님이 예술에 투자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발리우드를 시작으로 많은 음악과 연극에 투자한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하하하. 그저 취미일 뿐입니다.”

사실 누가 봐도 수상한 장면이다. 프란츠와 바흔 왕국은 큰 교류가 없던 곳인데 갑자기 왕족이 나타났다는 건 수상한 일이었다. 원래 성인식을 하지 않던 프란츠 가문이 갑자기 성인식을 열었다는 것도 수상하다.

주변에서 서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제도 없는 가벼운 잡담이 대부분이지만 서로 교환하는 목소리에 담긴 마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몰래 대화하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네. 감사합니다, 레오릭님.”

마치 무언가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듯이 서로 떡밥만 남기고 이야기를 끝낸다. 마지막에 시선을 교차했을 때,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서로 고개를 끄떡이며 헤어졌다. 그리고 아멜리아 공주가 자리를 벗어난 다음은.

“오랜만에요! 레오님!”

“이거 참. 급한 초대에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리나양.”

눈을 반짝이며 걸어오는 모습이 여기가 무도회장이 아닌 마치 기사들의 일기토를 보는 것 같았다. 얼마나 당당하게 걸었으면 주변에 있던 다른 귀족들이 자신도 모르게 물러날 정도였으니까. 근처에 따라 다가오는 시녀의 표정을 보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그나마 익숙한 얼굴에 조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즐기고는 계십니까, 이리나양?”

“물론이죠! 특히 조금 전에 본 밤하늘은 정말로 멋졌습니다!”

“급하게 준비한 영화입니다만,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그렇군요! 그걸 영화라고 하는군요.”

서로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아직 어린 모습이 남았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완전히 커버려서 이제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대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저 역시 성인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꼭 참석해주셔서 그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렇죠.”

사실. 내가 성인식을 비롯해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거다.

성인식으로 사교계에 데뷔한 지금, 이제까지랑 다르게 완전히 은거하기 어렵다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바로 이런 초대가 날라온다는 거다.

“하,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거절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거절하기도 어렵다. 적당한 사유가 없다면 참석해주는 것이 평판에 좋을 거고…. 그런 나를 보며 이리나양이 걱정하지 말라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지금 여러 사정 때문에 영지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

“그래서 그런데, 레오님!”

두 손을 모으며 날 올려다보는 이리나양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꼬마 숙녀는 결코 악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호기심이 워낙 많고 자신이 벌이는 일을 감당할 능력도 있는 애라서 어쨌든 엮이면 피곤해진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인데 괜찮겠지?

“이제 곧 있을 저의 성인식을 뮐러에서 열려고 하는데 허락해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이번 밤하늘에 펼친 영화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기 때문에 저는 그걸 준비하신 레오님께서 이번 성인식이라는 무대 위에 설 저를 빛내주시는 데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호오.”

마력 차단도 없이, 은밀하게 보내는 비밀 메시지도 아니다. 주위에 들리는 연주 소리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귀족들도 은밀하게 이쪽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다.

그런 자들이 순간적으로 흠칫거리며 우리를 보는 시선이 증가했다.

“어떠신 가요?”

“흠. 그렇군요.”

이리나양이 웃으면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이리나양이 파격적인 아가씨라고 해도 공과 사는 구별하고, 어느 쪽이냐면 아주 똑똑한, 현명한 귀족의 딸이다.

즉, 이 이야기 역시 사전에 보랭 가문에서 준비했다는 이야기.

지금 귀족들 사이에 중요한 화제가 뭐냐고 하면 바흔의 왕족이 프란츠 영지에 나타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이전부터 떠들어 왔던 것이 바로 뮐러와 영지전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당사자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해 별다른 지시를 받은 적이 없지만…… 흠. 과연.

나는 손을 뻗어 이리나양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춘다.

­쪽!

“당신이라는 보석이 찬란하게 빛날 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제게 맡기시다니. 그 기대에 응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나. 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무척이나 감사드려요, 레오님. 그럼 그 날만을 기다리겠습니다!”

기쁘다는 듯이 인사하는 이리나양과 시선이 마주치며 서로 웃음을 그렸다.

결국, 이 대화는 주변에 있는 귀족들에게 알리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진행 중인 전쟁은 당연히 프란츠의 승리로 끝날 것이며, 그 땅의 주인은 바로 프란츠의 차남인 이 레오릭 프란츠라는 것을.

날 바라보는 시선의 압력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리나양과 작별한 후 나머지 귀족들을 바라보며 정치질을 대비했다.

후. 그래도 날 서포트할 그레이스 누나도 있고, 아멜리아 공주와 이리나양이 있지. 괜히 등장하고 나서 그녀들과 친목질을 한 것이 아니다. 자, 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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