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성인식 4
* * *
“멋지군.”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에는 금빛 사자가 거대한 산맥을 돌아다니며 가지각색의 괴물들을 사냥하며 승리하며 쟁취한다.
끝은 그 거대한 땅을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장면인 거대한 산 정상에서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한 편의 영화가 끝이 난다.
그래. 영화다.
물론 모든 걸 내가 생각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난 예술에 재능이 없는 몸이고, 그림도 그렇게 잘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까.
“해, 해냈다!”
“와아아아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여러 사람이 울면서 기뻐 울음을 터트린다. 그들은 예술가와 예술에 뜻을 품고 있는 마력 보유자들이다.
처음엔 간단한 걸 보여줬다.
동그라미에 사람의 몸을 데포르메 해서 보여주는 졸라맨. 그걸 그린 종이를 빠르게 움직여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당연히 예술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나 같은 현대인이 보기엔 아주 과거이니까. 최근에 발리우드를 보여주는 것으로 수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은 이들이 또다시 그 쇼크를 받았다.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 후, 이번엔 마력으로 영상을 만들어냈다. 이건 좀 힘들었다.
오직 상상으로 모든 걸 구현화 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고, 거기에 들어가는 마력도 기사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니까.
이런 문화를 함부로 퍼트려도 되는가 싶은 마음도 들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후대의 문제다. 뭐, 어떻게 이 문명이 발전할까. 그건 좀 궁금하긴 하다. 어쨌든 당분간은 극장 위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연출까지는 가능하지만, 그걸 저장하는 방법이 아직 없으니까.
역시 지금 다시 생각하니, 저장 장치는 중요하다. 기록. 그것이 쌓아 오르는 역사라는 단어에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여하간.
간단한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걸 이용해 대규모의 극을 만들었다.
당연히 스토리나 연출 모두 예술가들이 힘써줬고. 그렇게 연출된 연극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레, 레오릭님! 대단합니다! 이런, 이런 것을 발명하시다니!”
“으, 음? 그렇지. 너희들도 수고했다. 어쨌든 다들 피곤하겠지만, 마지막까지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군.”
“레오릭님에게 영광을!”
“영광을!”
거, 무진장 부담스럽네.
다른 건 모르지만 역시 현대 지식 치트는 이쪽이 부끄러워진다. 공부도 잘 했던 것도 아니고, 머리가 똑똑했던 것도 아니라서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도 왜 그런지는 모르는 이상 떠오르는 것을 함부로 퍼트리기도 모호했다.
그래서 대충 아랫사람들에게 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지식만 적당히 퍼트리는데, 이게 문제는 어디서 알았냐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떠올렸다는 변명밖에 할 수 없고, 결국 난 무슨 세기의 천재가 됐다.
수수께끼의 과학력으로 스타킹 같은 것도 있는 세계라 간단한 물건은 이미 있고…… 예를 들면 그거, 말에 타는 등자 말이다. 그건 이미 있더라.
어쨌든 마음 편하게 지식을 퍼트릴 수 있는 건 결국 문화 쪽에 치우쳐졌다. 그래서 난 뭐, 예술에 뛰어난 세기의 천재라는 느낌으로 프란츠의 영지민을 비롯해 주변 다른 영지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발리우드가 특히 대단하다.
판타지 세계에 자주 나오는 바드 같은 음유시인들은 이미 존재하지만, 그런 음유시인들은 주점 같은 곳에서 연주와 노래 그리고 입담으로 재주를 펼쳐 돈을 버는데, 이 발리우드가 퍼지면서 그 사람들이 늘어나고 취직할 곳이 많아졌다.
그렇게 퍼진 발리우드는 각 땅의 전설이나 신화에 따라 변경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니까.
거의 탈진 상태에 가까운 예술가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나의 이전 행적을 보고 앞으로 조심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음?”
뭐지.
주변을 둘러보지만, 소란스러운 예술가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마력……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기분이 묘한데. 착각인가? 감기?
“레오릭님!”
“클로에?”
잠깐 넋 놓고 있을 때, 멀리서 클로에가 달려왔다. 클로에는 기사 예복을 입고 있었다. 이럴 때엔 드레스를 입어도 되는데.
조금 거친 숨을 몰아쉬는 클로에가 말했다.
“찾았습니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제 시간입니다.”
“음, 벌써?”
“네?”
“응?”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가?
슬슬 귀족들이 모여드는 타이밍에 맞춰서 극을 시작했고, 극이 끝난 후 우리가 준비한 장소까지 모여드는 시간을 생각해서 스케쥴을 잡았기 때문에 성인식까지는 2시간이 남았다.
“아직 성인식까지는 시간이 남았을 건데?”
“무슨 소리하시는 겁니까? 극이 끝나고 벌써 1시간이나 지났습니다. 어서 오셔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응? 응?”
1시간?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예술가들이 서로 떠들며 극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새로운 극의 이야기까지 하면서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근처의 예술가에게 다가갔다.
“레오릭님?!”
“잠깐. 나 언제부터 계속 저기에 있었지?”
“네? 아, 조금 전에 이미 가신 것 아니었나요? 안 보이셔서 저희는 이미 떠나시었는지 알았는데…….”
“뭐라고?”
갑자기 무슨…….
내가 한 시간 동안 넋 놓았다고?
귀신에라도 홀렸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무래도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클로에가 다급한 표정을 지우며 내 모습을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런 클로에를 보자 조금 혼란스럽던 마음이 안정됐다.
일단 몸 상태를 한 번 점검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고.
“아니, 괜찮아. 그럼 이제 1시간 남았어?”
“네. 지금 다들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그럼 어서 가서 나도 준비해야겠군.
화장부터 시작해서 정장까지. 준비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클로에와 같이 복도를 걸으며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를 듣는다.
“다른 귀족들은?”
“전부 도착해서 연회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레이스님이 손님들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면서 연회가 시작되지만, 이번에는 맞이할 사람인 내가 식의 주인이라는 상황이라 그럴 순 없어서 그레이스 누나가 그걸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문제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시비 거는 놈들은 있었나?”
“직접 말하는 분은 계시지 않지만….”
클로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대충 알겠다.
뻔하지. 아버지도 계시지 않고, 후계자인 장남도 없다. 맞이하는 건 장남의 아내이고 차남은 여태 외부 활동이 극단적으로 적었다. 우습게 보는 놈들이 나타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리고 지금도.
“이놈들이 진짜.”
은근슬쩍 성을 탐색하는 마력들의 기척에 눈이 찌푸려졌다.
물론 대놓고 하지 않고 아직 선을 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중요한 부분마다 기사들을 배치해서 견제하고 있지만….
“이리나양은?”
“다행히 안쪽에 얌전히 계십니다.”
조금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귀족 자제 한 분을 때려잡으려고 하는 걸 간신히 말렸습니다. ……평범한 분이 아니시군요. 이리나 보랭님은.”
상상한 모습과는 다른 듯한 말에 피식 웃었다.
“당찬 레이디지.”
“당차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신 분이던데요?”
진심으로 질린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보니 이리나양은 여전한 것 같다.
“아멜리아 공주 전하께서는?”
“아직 대기 중이십니다. 지금 나가봤자 머리만 아프다고…….”
“그렇겠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방에 도착했다.
이제 당분간 마네킹이 돼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럼, 나머지 일도 부탁한다. 클로에. 네가 수고가 많아.”
“아닙니다. 레오릭님. …조심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나에게 다가온 클로에가 내 목을 감싸며 품에 들어온다.
쪽!
“고마워, 클로에. 이걸로 힘이 나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키스하는 장면을 본 주변 시녀와 하녀들이 웃으면서 속닥거리는 소리에 클로에가 뺨을 붉히며 떨어졌다.
클로에가 꾸벅 인사하고 멀어져 간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한숨을 나오려는 것을 참고 문을 열었다.
“늦었습니다.”
“히익.”
레나가 눈을 빛내며 거기에 있었다.
무셔.
* * *
태양이라고 하는 단어에 일부러 의식하고 신경 쓴 적은 없었다. 그냥 마력이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고, 현대인… 특히 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힘을 가지고 여러 기술을 흉내 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물론 그 대부분이 쓸모없거나 효율이 나쁜 편이라 그냥 취미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해서 아예 얻지 못한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프란츠의 마력 자체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건 황금을 의미하는 물리력과 금빛 사자라는 마력이 사자를 형태로 나타나는 방식. 그렇게 쓰는 건 재미가 없었던 나는 그걸 이용해 여러 기술을 펼쳐 봤고 그나마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가 태양의 힘이며 인공 태양이다.
마정석을 이용한 이 기술은 최근 제어에 성공했다. 아직 미완성이라 미약하긴 하지만 태양열을 받으면 그 열을 에너지로 흡수하는 곳까지 성공했다.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뭐냐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태양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된 지금 그거에 대해 딱히 별생각은 없지만, 써먹을 수 있다면 써먹어야지.
영화가 끝나고 정해진 시간마다 폭죽이 터지는 시간.
그걸 알아차린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프란츠의 차남, 레오릭 프란츠가 입장하십니다!”
스벤의 외침을 끝으로.
파아아아앙!
폭죽 소리가 한 번 더 터지며 주변을 밝히고 떠들썩하던 연회장이 조용해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레오릭 프란츠가 나오는 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멜리아 바흐니아와 이리나 보랭은 문득 기묘한 상황을 확인했다.
파아아아아아앙!
폭죽이 터지면서 주변이 환해진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앙!
환해지고, 환해지면서.
왜 어두워지지 않는 거지?
“태양이…….”
태양이 떴다.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이리나 보랭을 시작으로 주변 귀족이 하나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들은 그때야 알아차렸다.
저 정도로 거대한 태양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마력과 그것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은밀하게……!”
“맙소사.”
“잠깐……! 여태까지의 폭죽들은 설마!”
여태까지 일어난 폭죽 모두 한 사람의 마력에 비롯된 것을.
나는 경악의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계단을 걸으며 등장했다.
솔직히 토할 것 같다.
이 정도로 마력을 뿜어내고, 은밀하게 제어하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지금 경악의 시선으로 날 보는 귀족을 보니 힘내기 잘한 것 같다.
남자는 허세라는 말이 있던 것 같았다.
똑같다.
귀족도 허세다. 죽창이라는 말이 있었다. 신분따윈 상관 없이 너도 나도 한 방이라는 죽창. 예전에 신으로서 군림한 귀족들을 봐라. 그들도 인간처럼 먹고 자고 싸야 하는 건 같았다.
결국, 중요한 건 그럴싸한 겉모습.
나는 웃음을 띄우며 마력 제어에 속이 꼬인 것 같은 고통 애써 참으며 그레이스 누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군중들 사이로 그나마 익숙한 두 명, 아멜리아 공주와 이리나양과 눈이 마주쳤다.
“와…….”
“존멋.”
……음?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내가 잘 못 들었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