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성인식 3
* * *
“와아아아아!”
“하하하하!”
“호호호호호!”
화려한 꽃잎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거리가 화려하게 꾸며졌다. 평소랑 다르게 여러 장식이 붙어진 거리는 화려한 색으로 가득 찼다. 그 화려한 색 중 대부분이 금색인 것은 프란츠여서 그런 것일까.
그렇게 꾸며진 도시에 여러 사람이 웃으며 화려하게 치장된 옷을 입으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놀고 있다. 도시 전체가 떠들썩하게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추수의 날이 이제 곧인데.”
지금 너무 날뛰면 나중에 또 축제할 텐데. 그건 괜찮나?
“후후후. 괜찮지 않을까요?”
발코니 너머, 그 긴 거리가 마력으로 강화되지 않아도 들려오는 환성 소리를 들으며 찻잔에 따라진 달콤한 향을 느낀다.
그렇게 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풍성한 금발과 아름다운 몸을 자랑하는 미녀가 눈앞에 있었다.
형수님이자 이미 몇 번 밤을 함께 지낸 여자, 그레이스 누나와 함께 오후의 다도회를 열고 있는 중이었다.
“프란츠령은 예전부터 축제가 얼마 없었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지금이야 세력도 크고, 기사단이 탄탄하지만, 예전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주 먼 옛날에도 그랬고, 할아버지 시대부터 시작된 전쟁에도 그랬다.
지금은 기껏해야 새해나 추수 같은 기념적인 날을 제외하곤 거의 없지.
다른 영지에는 성인식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큰 축제가 열리지는 않지만…….
“프란츠에서 성인식은 거의 없으니까요. 다들 기대하고 있는 거겠죠.”
“으음.”
아멜리아 공주에 대한 핑계가 있어서 한 것뿐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즐거워하는 것 같으니까, 상관없나?
“그럼 오늘 저녁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로 괜찮을까요?”
성인식의 날, 파트너가 필요하다.
여자라면 약혼자나 남자 가족이 하면 그만이지만, 나에게 마땅한 레이디가 없다. 클로에를 데리고 나오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클로에를 뭐라는 건 아니지만, 그만한 격이 있는 가문의 파트너를 데리고 와야 했다. 가족 행사라면 모를까.
“보랭 가문의 딸이 있지 않았나요?”
“이리나양 말입니까?”
그레이스 누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누나, 눈이 안 웃고 있는데요?
“이리나양은 정식적인 약혼 관계가 아니니까요.”
사실상 약혼 관계이긴 하지만.
아마 아버지와 윌리엄 백작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겠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윌리엄 백작님은 장난기 있는 모습은 둘째치고, 냉정할 때는 냉정하신 분이라 딸이라고 해도 보랭 가문을 위해서라면 이용하실 분이다. …어쨌든 딸을 사랑하시는 분이니 이리나양에게 그리 큰일은 없겠지만.
“그럼 아멜리아 공주 전하는?”
“그분은…….”
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타국의 왕족을 파트너로 해서 성인식을 하는 건…….
난처하게 바라보자 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농담이에요.”
“놀리지 말아줘요.”
입을 가리면서 웃지만, 정말로 즐거운 듯이 웃는 누나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그 제안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엄청 곤란해진다. 나도 나지만 아멜리아 공주 입장도 난처해진다.
“좋아요. 그럼 저녁에 다시 보기로 하죠, 레오.”
“고마워요, 누나.”
결국, 지금 당장 고를 수 있는 파트너는 그레이스 누나뿐이었다. 내 사정을 잘 아는 누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드르륵.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 가까이 다가온 누나는 작게 속삭인다.
“…다른 남자의 파트너로 공식 상의 무대에 오르다니. 정말 이렇게 될 줄은 결혼 전에는 상상도 못 했네요.”
“고마워요.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사랑해요, 누나.”
“……후훗. 저야말로 당신과 함께라서 기뻐요. 그럼 저 역시 준비해야 해서 이만 가볼게요.”
쪽!
서로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자리를 떠나는 누나를 바라봤다. 누나에게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사실 다른 대안이 없다.
“일단 중요한 건 끝났고.”
파트너 문제는 정말로 다행이다.
그레이스 누나가 있기에 그나마 넘어간 거지. 아니면 이리나양이나 아멜리아 공주에게 부탁할 뻔했다. 그럼 정치적으로 힘들어지니까.
와아아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영지민들의 즐거운 소리가 문득 귓가에 울렸다.
“……뭐, 평화로우면 됐나.”
* * *
새하얀 드레스. 잔뜩 달린 보석이 빛나지만, 그 주인보다 빛날 수 있을까.
이제는 완전히 숙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아름다워진 미녀.
즉, 이리나 보랭은 아름답다.
“근데 왜 제가 파트너가 아니죠?”
“아가씨…….”
난처한 얼굴로 자신의 주인을 기분을 살피는 시녀를 보지 못한 채, 이리나 보랭은 거울을 바라봤다.
푸른 머리카락. 하늘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색이 희미했지만 그러므로 더없이 아름다운 색이었다.
그 눈동자는 어떤가.
단단히 빛나는 중심을 가진 심지 곧은 눈동자. 푸른색의 눈동자는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났다.
“그레이스 님은 스치면서 만난 게 전부지만, 저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설마 레오릭님은 연상 취향일까요?”
“글쎄요….”
이리나 보랭은 드레스에 살짝 보이는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우윳빛 피부를 자랑하는 가슴은 또래의 여성과 비교하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역시 가슴?”
“그, 그런 말은 조심히 하셔야 합니다, 아가씨.”
이리나의 말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시녀가 기겁했다. 다 큰 처녀가 할 말은 아니었다. 물론 그걸 들을 사람도 없고, 설사 듣더라도 신경 쓸 여자는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몸을 확인하던 이리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그때야 몸을 돌려 시녀를 바라봤다.
“그보다 중요한 건 바흔의 왕족이에요. 어때요? 모습을 봤나요?”
“그,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아무래도….”
시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바흔의 왕족인 2공주가 있다는 곳 가까이 다가갔지만, 거기에 있던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이미 주변에서 초대된 다른 영지의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조차 그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 정식적인 직위를 가지지 못한 이리나의 시녀인 자신은 당연히 접근도 못 했다.
“큰일이에요. 외모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왕족! 거기에 갈색 피부의 미소녀!
이 주변 사람의 대부분 피부색이 하얗다. 물론 다른 지역의 핏줄이 섞인 사람이 많으니 그렇지 않은 피부도 많지만…….
“태닝을 해야 하나……?”
“안됩니다!”
이리나의 망언에 화들짝 놀란 시녀는 기겁하며 말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설마 귀족의 딸이 태닝을 해서 피부를 태운다는 사태가 일어날까에 대해 의문을 표하겠지만, 이미 몇 년 넘게 이 아가씨를 보살핀 시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아가씨의 행동력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절대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특별한 것은 유일하니까, 빛납니다. 지금에 와서 제가 태닝 해봤자 그리 특별하지 않겠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거울의 앞에 서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 포즈를 취했다. 두 손을 잡고 쫙 피면서 가슴을 강조하는 야한 자세를 취했다. 역시 자신은 미소녀다. 이리나 보랭은 다시 한번 확인을 끝내고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봤다.
슬슬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성인식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벌레처럼 모여왔네요.”
“아가씨이이이이!”
주변에서 느껴지는 마력.
그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풍겨오는 마력의 파동에 이리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이리나를 보고 시녀는 다시 한번 더 기겁했다.
“아주버님이 안 계시다고 해서 이렇게 대놓고 날뛰다니. 제가 레오릭님을 대신해서 혼내드려야 할까요?”
“절대! 절대! 안됩니다!”
“역시……. 레오릭님이 가만히 계시는데 제가 나서는 건 지아비 보기 어렵겠죠.”
남편의 체면을 살리는 것도 아내의 역할이라는 거겠지.
이리나 보랭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자! 먼저 회장을 둘러보죠! 현명한 군사는 전장의 파악이 우선!”
“저, 전장이 아닙니다, 아가씨!”
눈을 반짝이며 부채를 든 이리나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후회했다.
“이런! 보랭 백작가의 이리나양이 아닙니까! 저 기억하십니까? 저번 보랭에 있던 무도회에서 인사를 나눴었는데, 저 블레어 자작 가문의…….”
“오오, 이리나양. 오랜만에 뵙습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꽃처럼 갈수록 아름다움에 빛이 발하는군요.”
“반갑습니다, 이리나양. 윌리엄 백작님께서는 이번에 불참하셨나요? 저런, 유감이군요. 다시 한번 더 만나서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우글우글 몰려오는 벌레 새끼들. 다 죽여버릴까?
“아가씨이! 안됩니다! 참으셔야 해요!”
그런 속마음을 알아차린 건 시녀뿐이었다.
싱글벙글 미소를 띄우는 이리나 보랭의 뒤에서 시녀는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처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휘이이이잉!
“음?”
“지금 무슨 소리가…….”
이리나 보랭은 문득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하는 지고, 달이 모습을 드러내는 밤하늘.
그 밤하늘에 한 줄기 빛이 솟아올랐다.
“폭죽?”
“하하. 이런. 역시 시골의 영지입니까. 애초에 성인식에 겨우 폭죽으로…….”
멍청한 놈들.
이리나 보랭은 주변에서 떠들어 대는 남자들의 말에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참았다. 그래, 자신은 우아한 레이디.
함부로 욕을 내뱉어선 안 돼.
“이리나양,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시ㅂ…….”
“네?”
파아아아아앙!
때마침 터지는 폭죽에 이리나는 입에서 나오려고 한 욕을 참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폭죽이 터졌다.
마치 화려한 꽃처럼 터지는 폭죽.
그를 뒤이어 연달아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빛나는 불꽃. 그를 뒤이어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건…… 금사자?”
“세상에. 어떻게 저런 모습을?”
주변에 있던 사람들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빛나며 터지는 폭죽의 뒤를 이어 거대한 금사자가 나타났다.
하늘에 떠다니는 수많은 마정석들을 가지각색으로 빛내며 사자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만약 사자 형상 자체를 마력으로 띄우는 거라면 이렇게 경악하지는 않겠지. 이것은 예술의 문제다.
프란츠 도시를 배경으로 밤하늘이라는 거대한 도화지에 금빛 사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이 거기엔 있었다.
레오릭 프란츠가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그래. 중세 랜드 사람들아. 이것은 드론 아트쇼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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