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성인식 2
* * *
마력은 만능이다.
원하는 것을 간절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힘. 그렇기에 과거에는 신의 힘으로, 그 힘이 연구되어 인간의 힘으로 떨어진 지금도 고귀한 피를 가진 자들이 독점하고 있다.
문득 머리를 스쳐 가는 잡생각에 피식 웃으며 에이번 프란츠는 멀리 보이는 성을 바라봤다.
이후 자신의…… 아니, 못난 아들놈이 지배할 땅이다. 이곳을 스쳤던 작은 마을들은 굳이 건드리지 않고 지나왔다.
문득 그 아들놈이 생각났다.
“범상치 않은 태생이긴 했다만…….”
어렸을 때부터 마력을 제어하기 시작하고,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전력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마력을 키우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거나, 마력으로 훈련을 하거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외경심을 얻는다. 그게 현재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였다.
어렸을 때, 강대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휘두르는 힘으로 제대로 된 생활이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했다.
그래서 친모나 혹은 그와 동등한 혈족이 붙어서 관리를 했다. 실제로 아이단은 그렇게 키워졌다.
그러나.
“신기하긴 했지.”
“……흠.”
하늘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하늘을 떠올리는 옅은 푸른색의 마력빛. 조용했던 주변 대기가 요동치며 바람이 분다.
하늘의 보랭. 바람의 보랭이라 불리는 윌리엄 보랭 백작. 그가 나타났다.
“여기까지 굳이 왔나?”
“그래. 한 시간 걸렸나? 역시 나이가 드니 지치긴 하군.”
“엄살은.”
푸른색 머리카락이 거칠게 흐트러진 중년의 사내는 웃으면서 에이번 프란츠에게 다가왔다.
보랭의 땅에서 여기까지. 그 먼 거리를 하늘을 나는 것으로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는 이적을 보여주는 중년의 남자. 윌리엄 보랭 역시 프란츠의 차남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범상치 않은 꼬마이긴 했어.”
“그랬나?”
“음. 나름 똘똘하기도 했고.”
“……훗.”
친우라고 할 수 있는 남자의 말에, 에이번 프란츠 역시 웃음을 지었다.
“전에 만났을 때는 아예 마력이 느껴지지도 않더군.”
“제어 능력만큼은 이미 나를 넘어섰다.”
자신의 차남, 레오릭 프란츠.
아직 미숙했을 때의 마력을 생각하면 지금 아들이 가진 마력은 아이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짐작만 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조차 그의 전력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력을 완벽하게 숨기는 제어라니. 우리조차도 서른은 되야 가능했는데.”
“……인공 태양은 봤나?”
“그래. 봤지.”
마정석을 이용한 인공 태양.
자기 아들이 만들어낸 기술 역시, 특이했다.
“마정석을 이용한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조금 특이해. 기술에 쓰인 마력이 없어지지 않아.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은데?”
“레오릭도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태양과 연관된 것 같더군.”
“황금의 프란츠에서, 태양의 프란츠라.”
지나가던 말로 듣기엔 태양열이라고 했던 것 같지만. 차남이 때때로 흘리는 단어들은 그에게보 익숙치 않았다.
“특이해, 특이하단 말이지. 뭐……. 예비 사위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니까 상관없나?”
“예비 사위라.”
그 말에 에이번은 이니스 보랭을 떠올렸다.
보랭의 핏줄의 소녀는 어린 나이에 똘똘한 눈빛을 가진 소녀였다. 며느리로 삼기엔 부족함이 없는 아가씨지만.
“설마. 아니겠지? 응?”
골똘히 생각에 빠진 에이번을 보고 윌리엄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아버지로서 좋은 혼처가 생기면 고민하지 않겠나?”
“와, 너. 그건 좀 아니지 않냐?”
에이번의 말에 젊었을 때 말투가 윌리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이 없이 바라보는 윌리엄의 시선을 에이번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참나. 갑자기 바흐니아 일족이라니. 어이가 없군.”
“내 아들이지만 여자랑은 묘하게 엮인단 말이지.”
“프란츠의 핏줄인 놈이 말이지?”
프란츠는 대대손손 씨가 부족한 혈족이다.
자신조차 설마 차남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씨도 부족하고, 성욕도 엄밀히 말하면 거의 없는 편에 가까웠다.
지금의 아내랑 만날 때마다 생기는 의무 방어전은 그에게 있어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사랑은 하지만, 사랑과 그 사랑은 조금 다르다고 할까.
조금 핼쑥해진 에이번의 얼굴을 못 본 채, 윌리엄은 한숨을 쉬었다.
“성욕도 풍부해서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마력을 다루는 솜씨도 훌륭해, 그 프란츠의 마력도 황금의 마력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금빛 사자로 쓰는 것도 아니야. 태양이라는 자신만의 기술을 만들어냈다.”
핏줄에 담긴 거대한 마력은 사용자의 정신에도 영향을 끼친다. 프란츠 일족의 황금과 금빛 사자라는 상징. 아이단이 자신의 아버지인 에이번과 같은 황금 사자의 기술을 쓰는 건 아이단이 에이번의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얻게 된 것뿐.
그러나 레오릭의 경우 혈족의 특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건국할 생각은 아니겠지?”
“장담컨대, 그렇진 않을 거라네.”
“그런가?”
자식 놈이 얼마나 귀찮아하는 모습을 못 봐서 윌리엄이 고민하는 거겠지만, 에이번이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권력에 큰 욕심이 없어. 뮐러 땅조차 거의 반 억지로 받아들였으니까.”
“그놈 참.”
별난 놈이긴 해. 윌리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멀리 떨어진 뮐러의 성을 바라봤다.
“확실히……. 바흔과 가깝군.”
“그사이에 다른 영지도 있다. 강도 호수도, 거리가 있어. 그다지 좋은 여건은 아니지.”
“그렇긴 하지만……. 그건 그 영지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경우의 이야기지 않나.”
사나운 미소를 머금은 채, 윌리엄 보랭은 에이번 프란츠를 본다.
“요즘 주변 정세가 수상한 것을 느꼈나?”
“그래.”
세대 교체는 이루어진다.
지난 시대. 전쟁이 빗발치던 그 시대에서도 젊은 편이었던 에이번 프란츠 역시 나이를 먹은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을까.
“버릇없는 놈들이 설치기 시작했어.”
“……이번이 좋은 기회지.”
과거를 잊고 이를 드러낸다면, 역으로 잡아먹으면 그만일 뿐.
세대 교체를 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에이번 프란츠는 자신의 자식들과 그들의 부하를 떠올린다.
가문의 주인으로 세대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것도 의무라면, 에이번 프란츠는 훌륭히 그것을 이루어냈다.
“명분이 생긴다면 전쟁을 일으키면 그만일 뿐.”
“크. 다시 전장에 나서게 되는 건가?”
“아직 확실히 정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지.”
어디서 꺼냈는지. 술병을 꺼내든 윌리엄 보랭은 그것을 잔에 따른 후 에이번에게 넘겼다. 에이번 역시 천천히 술병과 잔을 받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성인식을 한다고 하더군.”
“그놈의 엿듣기는 매번 겪더라도 기분이 나빠.”
“하하하하. 아니, 이번은 정말로 우연이야. 하필 프란츠 위를 지나갔을 때 들려왔으니까.”
윌리엄 보랭이 주로 쓰는 기술, 엿듣기. 아주 먼 거리에도 수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그의 주특기였다.
상시 사용하던 그가 우연히 프란츠를 지났을 때 들었던 소리.
그 소리를 떠올리며 윌리엄은 웃었다.
“마력에도 예민해서 그런가, 레오릭 근처는 엿듣지도 못했어. 준비하고 있는 하인들의 소리로 알아차린 것뿐이네.”
“그래. ……성인식이라. 좋은 핑계를 댔군.”
“레오릭은 그 공주가 마음에 들었나 봐. 미인인가?”
“아직 어린 나이라고 들었지만.”
레오릭이 그 핑계를 댄 이유는 바흔의 명예. 정확히는 그 공주의 명예를 위해서 일으키는 일이겠지. 곧바로 사정을 파악한 두 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놈 아들이라 그런가, 대담해. 가주 대리라고 하나 프란츠로서도 중요한 선택을 곧바로 진행하다니.”
“음.”
몇 번 일을 시킬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하는 것도 재능이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못한다고 해도 시간만 투자하면 어느 정도 결과를 내는 것이 사람이지만.
아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런 집단에서 일해본 것처럼.
“그 공주가 여왕이 되면……. 아니, 설사 분쟁에서 탈락해도 상관없지. 바흐니아 일족, 바흔 왕국은 레오릭에 빚을 졌어.”
그 빚은 언젠가 크게 써먹을 때가 온다. 과연 레오릭이 어디까지 보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여왕이 되는 게 내 입장에는 좋은데. 우리 이리나, 이번 기회에 레오릭 보려고 얼마나 기대했는데. 그 옆에 공주가 있는 거 보면 열이 나겠군.”
딸을 걱정한다는 듯이 말하면서,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윌리엄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뭐, 레오릭 정도면 삼처사첩도 감당하겠지.”
“끔찍한 소리를 하는군.”
“아니, 그 정도는 다른 가문도 하는데. 자네들이 특이한 거야.”
진심으로 싫다는 듯이 질색하는 에이번을 보고 젊었을 적 여자에 고생한 기억을 떠올린 윌리엄은 피식 웃으면서 몸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마지막으로 에이번을 내려다 본다.
“이번 성인식에는 이리나를 보내야겠군.”
“자네는?”
“프란츠의 성인식이라, 꼭 가고 싶지만 나 역시 수도 놈들을 상대하는데 바빠서 말이지.”
수도라.
자신의 아내 역시 지금도 수도의 귀족과 왕족을 상대로 정치 싸움을 하고 있겠지.
프란츠보다 더 프란츠다운 여장부인 아내라면 웃으면서 박살 내고 있겠지만.
“시간이 나면 아들도 보내고.”
“아기가 생겼다고 하지 않았나? 조심하게.”
붉은 피.
그 단어에 윌리엄이 피식 웃었다.
“그놈들도 참 끈질겨. 그럼 수고하게.”
“음.”
그 말을 남기고 푸른 빛줄기를 내며 하늘로 사라지는 윌리엄을 보며 에이번은 다시 뮐러 성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영지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해낸 걸 보면 잘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남은 일은 전쟁뿐.
“성인식 선물로 영지라.”
차남에게 줄 선물로 딱 좋겠군.
에이번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든 술을 마력으로 소멸시킨 후, 몸을 돌렸다.
자, 전쟁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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