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성인식 1
* * *
어쨌든 흥미로운 이야기로 충분히 시간을 보냈겠다.
선물도 줬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아멜리아 공주 전하.”
“……음.”
찻잔을 내려놓고 아멜리아 공주를 바라봤다.
그녀 역시 진지한 내 분위기에 맞춰서 조금 들뜬 기분을 가라앉혔다. 친목은 다졌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푸른 피의 시간이 다가왔다.
“정보는 통제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수긍한다. 오히려 여태까지 별다른 말이 없다니. 꼬리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구나.”
“프란츠의 사람들이 유능하기 때문이죠.”
내가 한 게 있겠나. 평소 수상한 사람들을 감시하던 프란츠의 사람들이 유능한 거지. 그리고 그걸 유지한 아버지가.
어쨌든 문제는 바로 아멜리아 공주가 일으킨 바다의 마력 때문이었다.
숨기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다.
도시 한 복판에서 일어난 그 사건은 주변을 몰아쳤던 아멜리아 공주의 마력은 그 근처 일대를 바닷물로 푹 젖게 만들었다.
바닷물에 빠진 듯이 땅이 젖었고, 건물에는 소금기가 가득 묻었다.
못 느끼는 평민조차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릴 정도다. 당연히 모험가부터 시작해 마력을 가진 모든 사람이 눈치챘다.
평소 감시하고 있던 타 영지에서 합법적이나 비합법으로 영지 내에 있는 모든 연락책을 일시적으로 막았지만, 이 이상은 한계였다. 물론 이제 가주 대리가 되었으니 강제적으로 계속 막아낼 수 있긴 있지만…. 이미 주변 영지에 정보가 퍼졌다. 최근 업무를 빨리 끝마친 것도, 다 이것을 위해였다.
“서신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또한 수도에 연락할 때가 됐습니다.”
“……이해했다.”
타국의 왕족이 갑자기 백작령에 나타난 거다.
이 나라를 통치하는 브람스 왕국의 수도에는 알려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었다. 몰래 찾아왔다면 몰랐을까.
날 바라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저희는 해명해야 합니다.”
“이해했다.”
우리가 해명해야 한다는 건, 바흔 왕국의 왕족 바흐니아 일족의 사람이 붉은 피에 납치당했고, 그것을 우리가 구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멜리아 공주가 서신을 썼다지만, 바흔 왕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를 일이다. 나라의 일이다. 공주는 중요한 직위지만, 이득을 위해서라면 버릴 수도 있다. 다만 현재 공주가 프란츠의 땅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나는…….”
아멜리아 공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서로 시선을 마주하며 또렷하게 쳐다봤다.
“나는 괜찮다. 이 이상 폐를 끼치는 건 바흐니아 일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짓이겠지.”
“흠.”
아멜리아 공주가 여태 유지하던 무표정한 얼굴에 금이 갔다. 평소에도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듯이 말하며 아주 작게 열리던 입에 자그마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나잇대의 소녀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아멜리아 공주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상 프란츠에게……. 나의 은인, 그대. 레오릭 프란츠에게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
“과연.”
일단 아멜리아 공주의 의견은 들었다.
평소라면 여기서부턴 아버지의 일이겠지만, 지금은 내가 가주 대리로서 결정해야 했다.
프란츠를 위해서라면 지금까지 있던 일들을 적당히 각색해서 바흔 왕국의 왕족이 갑자기 나타난 일에 관해 설명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에도 연락해서 프란츠에 일어난 일을 알리는 것이 옳다.
아무리 남부 지방에서 제일 큰 세력을 유지하는 프란츠라고 해도 주변 모든 영지가 덤벼들면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명분이 생긴다면.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멜리아 공주 전하의 후계자 직위는 박탈됩니다.”
“…그렇다. 알고 있었는가.”
살짝 크게 떠진 눈동자를 바라봤다.
사정이 어쨌든, 바흐니아 일족의 공주가 납치되어 프란츠에서 구해졌다는 일이 타국에 알려진다. 왕국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다. 그 원인이 되는 아멜리아 공주의 자리가 위태롭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다른 후계자가 없는 거라면 모를까.
“현재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왕자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죠.”
즉 이대로라면 후계자 자리 박탈. 아멜리아 공주의 역할은 이제 정략결혼을 위한 미래밖에 없다는 소리.
“그러고 보면 장녀이신 1 공주께서는? 이미 결혼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도망쳤다.”
음?
도망?
시집갔다는 건 들었는데. 당황한 얼굴에 아멜리아 공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엄밀히 말해서 도망이다. 자기 취향의 멋진 남자를 발견했다고 궁에서 도망쳤으니까. 대외적으로는 시집간 것으로 공표했지만.”
대박이네.
“일단 어느 정도 수를 쓰기도 했고. 바흔 왕국에서 머물고 있으니까…. 어머니께서도 임신할 때만이라도 궁에 들어오라고 사정사정했으니까. 어렸을 때도 몇 번이나 언니에게 휘둘렸는지. 오라버니 역시 언니를 피해 도망치고 다녔을 정도였다.”
지친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인 게 분명한가 보네.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가에 그려진 미소를 보면 나쁜 관계는 아닌 듯했다.
후계자 경쟁은 하지만, 가족 사이 자체는 나쁘지 않군. 하긴 설사 왕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목숨이 위험한 그런 삭막한 관계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핏줄 하나하나가 전력이 되는 세계니까.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자는 느낌?
물론 질척이는 곳도 많다. 뮐러가 대표적이고 브람스로 치면 아버지 세대에 일어난 반란부터 시작해서…….
“크흠. 이야기가 바뀌었지만, 이대로라면 공주 전하께서는 후계자 직위가 위험해지고, 저희 역시 현재 계속해서 주변에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음.”
결국, 프란츠로선 현재 상황을 발표하는 게 옳다. 옳다만.
“거기서입니다만.”
“음?”
잠깐 말을 멈춘 날 보는 아멜리아 공주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일단 아예 소문이 퍼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대충이나마 이유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그건, 좋지 않은데.”
내 말을 아멜리아 공주가 곧바로 이해했다.
즉, 핑계를 준비한단 소리. 다만 그게 완벽하게 먹힐 리가 없다. 소문이 퍼지고, 소문은 의심을 불러온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대가 얻는 것이 있는가?”
있다.
하나는 뮐러.
“저희는 현재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뮐러 영지. 알고 있다. 프란츠의 옆에 있는 영지……. 그렇군. 브람스보다 바흔에 더 가깝군.”
뮐러 영지는 프란츠 옆에 있는 영지. 그러나 지도를 보면 상황이 조금 이상해진다.
브람스의 땅에 속해 있으나 그 땅은 국경에 가까워 브람스의 수도보다 바흔의 수도가 더 가깝다.
“이후 그 땅의 관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제가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억울해하는 눈빛으로 말하는 거지?”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귀찮다, 정말.
형님이 땅을 안정시킨 후, 내가 관리한다.
바흔 왕국과 브람스 왕국의 국경은 대산맥에서 흐르는 거대한 강과 호수, 라이니아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즉, 강과 가까운 뮐러는 강을 이용해 이후 바흔과 교역하는 일도 가능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뮐러의 영주가 될 확률이 높은 나로서는 바흔의 왕족인 아멜리아 공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 거기에 만약 공주가 여왕이라도 되면? 개이득. 설사 후계자 경쟁에 탈락해도 바흔 왕국 자체가 나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비싸게 먹힐 거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그렇게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뭐?”
당황해하며 바라보는 아멜리아 공주를 바라보며 웃었다.
“솔직히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굳이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프란츠니까.”
만약 싸움을 건다?
옳다구나, 전쟁이다.
그게 아버지의 스타일이다. 정당한 명분이 있다면 그걸 놓치지 않고 사냥개처럼 물어뜯는다. 먼저 시비를 걸면? 명분이 없어도 전쟁할 수 있다니. 아버지는 좋아하겠지.
프란츠 가문의 피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여러분.
물론 보랭 가문을 비롯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정보를 풀어야겠지만.
실제로 현재 도착해있는 보랭 가문의 서신에는 이번 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과 함께, 현재 주변 다른 영지를 비롯해 수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이건 빚이겠지. 사람 좋은 윌리엄 보랭 백작님이지만, 그 또한 푸른 피의 소유자. 영지의 주인으로서 얻어야 할 것이 있다면 냉정하게 움직인다.
뮐러의 이득을 더 양보하는 것은 힘드니까, 그만큼 바흔에서 땡겨와야 한다.
“나로서는 그렇게 해주면 살아난다. 그럼 마땅한 핑계는 있는가?”
“있습니다.”
그거라면 딱 좋은 핑계가 있지.
“레나.”
“네.”
내가 부르자 문밖에 있던 레나가 들어왔다.
“성인식의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네. 시간은 촉박하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 현재까지 등장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래, 스벤 집사장이다.
“스벤 집사장이 현재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초대장은?”
“남부 지방을 비롯해 수도의 귀족들에게까지. 모두 서신을 붙였습니다.”
거의 반 은거하고 있던 내가 성인으로 인정받고 활동을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 파릇파릇한 막 어른이 된 성인.성인식을 해도 문제없다.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다. 외부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사람 만나는게 얼마나 귀찮고 짜증나는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귀족으로서, 프란츠 가문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건 해야하는 법.
“단지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돈은 신경 쓰지 마. 가주 대리 권한으로 창고 대방출이다.”
“알겠습니다. 스벤 집사장에게 미리 말해놓겠습니다.”
레나의 표정이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성인식을 하는 것으로 준비를 급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겠지. 내 말에 기색이 바뀐 걸 보면 프란츠에 어울리는 성인식을 급하게 준비하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진 않겠지.
“갑작스러운 성인식이라도 문제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믿음직하게 끄덕이는 레나에 끄덕이고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아멜리아 공주를 웃으며 바라봤다.
“성인식? 아직 하지 않았나?”
“저희 프란츠는 성인식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생일이 되면 알아서 주변에서 선물을 보내니까.
“그럼…….”
“네.”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지키며 인사한다.
“환영합니다. 아멜리아 공주 전하. 저의 성인식에 갑작스러운 초대에 이렇게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는, 말이 나올 거다.”
“하하하.”
나지막히 말하는 아멜리아 공주의 말에 그저 웃어줬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는 아멜리아 공주가 잠깐 눈을 감더니 그녀 역시 자리에 일어서며 입고 있던 드레스를 살짝 들으며 인사한다.
“바흐니아 일족을 대표해서 제 2공주이자 바다의 무녀인 아멜리아 바흐니아가 인사드립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릭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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