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왕족 3
* * *
바흔의 왕족. 바다의 마력을 가진 바흐니아 일족의 공주. 아멜리아 바흐니아는 당분간 손님으로서 프란츠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결정한 건 결정한 거고.
“하아.”
주변을 둘러봤다.
그저 마력을 일으키거나 몸을 지키거나 하는 정도로 직접 충돌하지도 않았지만, 여관은 이미 허물어져 갔다.
벽을 손가락으로 쓸어봤다.
축축하게 젖은 벽이 느껴졌다.
물기는 없으나, 마력으로 인해 마치 바닷속에 빠졌던 것처럼 여관이 흠뻑 젖었다. 이 여관은 수리하거나 리모델링을 해야 할 것이다.
바닷물로 썩어갈 것이니까.
“……음.”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던 공주가 우물쭈물하는 것이 보였다.
하긴 쟤가 무슨 죄가 있겠나 싶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공주를 향해 다가갔다.
어서 와. 프란츠는 처음이지?
* * *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알겠다. 그럼, 프란츠의 아들. 레오릭 프란츠. 내일 또 볼 수 있겠는가? 앞으로의 일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네. 좋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프란츠의 저택. 손님을 위한 방이 아닌 프란츠의 사람을 위한 고급스러운 저택에 아멜리아 공주를 안내했다.
상대가 상대다. 왕족을 상대로 평범한 시녀를 붙여줄 수 없는 법. 레나가 수고하기로 했다.
레나를 바라보니 시선이 마주쳤다.
믿는다. 알지?
네. 저만 믿으시죠.
실제로 이런 대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의 시선 교환이 된 것 같다. 고개를 숙이며 레나를 비롯한 레나가 신뢰하는 베테랑 시녀와 하녀들이 아멜리아 공주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
복도의 끝. 마지막 코너에서 돌기 직전, 날 향해 시선을 던지는 아멜리아 공주와 눈을 마주쳤다.
갈색 눈동자가 아닌, 진짜로 검은 눈동자. 특히 심해를 바라보는 듯한 끝없는 어둠을 보이는 듯한 눈동자가 날 바라보며 잠깐의 시간. 곧이어 고개를 돌린 아멜리아 공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마력의 기척에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 마력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멀어진 그때가 돼서야, 드디어 긴장이 풀렸다.
“으하아.”
아니.
왕족이라니. 왕족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식은땀이 나오는 것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창백하게 질린 지크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죽겠는데, 얘도 힘들었겠다.
“진짜 바흔의 왕족이겠지?”
“다른 건 몰라도 바다의 마력을 봐서는…….”
말끝을 흐리지만 지크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다.
마력을 훔칠 수는 없다. 설사 같은 바다의 마력이라고 할지라도 특유의 마력은 절대 중복될 수가 없다.
사람마다 바다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다른 것처럼. 같은 상징을 가지는 마력도 그 고유의 기척이 다르다.
물론 실제로 바다의 마력을 본 적이 없으니 그 바다의 마력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 근처에 바흐니아 일족 말고 다른 바다의 마력을 가진 귀족이 있을 리가 없지.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했던 말이 또 나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지크 역시 기진맥진한 얼굴로 똑같은 답을 할 뿐이었다.
잠깐 시간이 지나고 어쨌든 한숨을 돌리게 되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했다. 일단.
“아버지에게 편지 보내.”
“네.”
당장 아버지에게 알리자.
* * *
똑! 똑! 똑!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졌다.
이 위에는 뭐가 있더라? 왜 물방울이 떨어지지?
“만약을 대비해서 설치한 하수로가 있습니다.”
“만약?”
치안대 소속의 기사가 말했다.
“마력을 봉인해서 감금시키지만, 아주 가끔 그걸 해제하는 죄인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경우 탈출하는 과정에 다툼이 일어날 때 천장이 무너지면 물이 쏟아지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 과연.”
아무리 마력을 가지고 있어도 수 톤의 물이 쏟아지면 한계가 있다.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특이하다. 바흔의 죄인에게는 무의미하다.”
“……그렇습니까?”
우리들의 뒤, 바흔의 공주 아멜리아 바흐니아가 따라 오고 있었다.
공주가 나타난 다음 날.
아버지에게 사람은 보냈고, 대머리 상인의 심문을 위해 그를 심문하기 위해 감옥에 찾아가는 길 도중, 아멜리아 공주가 나타났다.
이쪽으로 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침부터 혼자 나타났을 때는 진짜 심장이 철렁거렸다.
무표정하고 로봇 같은 레나가 창백한 얼굴로 달려오는 모습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바흔의 사람들은 물에 대한 간섭이 뛰어나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
이건 죄인에 대한 시스템이라 그런 걸 말해봤자.
일단 웃으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야 하나?
“약간의 마력으로 오랫동안 잠수도 가능하고, 폭포를 거스르는 것도 가능하다.”
“대머리 상인은 마력이 없는 평민입니다.”
“……그런 자를 우두머리로 삼은 집단이 날 납치한 건가?”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이 느끼기 어려운 말투를 사용하지만. 지금 이 소녀가 조금 시무룩해진 것 같은 것은 알겠다.
내 옆에서 안내하던 기사 역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제가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수단이었습니다. 마력 없는 자, 평민을 이용하는 계략은 자주 쓰는 수단이죠.”
실제 마력 없는 일반 평민을 이용한 계략은 자주 쓰인다. 알아차리기 어려우니까. 다만 반대로 이쪽이 감시하는 것도 알아차리는 것이 어려우니 일장일단이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일을 벌인 놈들도 놈들이지만.
“그놈이 가지고 있던 마정석. 거기에는 공작급 혹은 왕족급 마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바흐니아의 것인가?”
“알 수 없죠. 마정석에 저장한 마력을 자주 교환하지 않는 이상 격을 비롯해 질적으로도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음.”
만약 바흐니아 일족의 마력이라면. 직계는 몰라도 방계의 핏줄이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바흔에 피바람이 불겠지.
그걸 알고 있는지 아멜리아 공주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두워진 것처럼 보였다.
“도착입니다. 냄새가 좀 납니다만…….”
“괜찮다.”
끄떡이자 기사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안에는 나름 씻겨놓았는지 깔끔한 대머리 상인이 보였지만, 희미한 혈향과 지린내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히, 히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까, 대머리 상인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비명을 질렀다. 그 눈이 향한 건…….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아무리 봐도 저놈에게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마정석의 경우에도 거의 접촉할 때쯤 돼야 터지게 설정된 것을 보면 미끼 같은 거라고 봐야겠지.
“그럼 목적이 뭐였지?”
내 말에 기사가 답했다.
이미 고문은 끝났다. 애초에 얼마 버티지도 못했다고 들었다.
“그게.”
기사가 머뭇거렸다.
답하는 것을 꺼림칙한 모습이다. 아예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감히 입에도 올리기 어려워하는 모습은…….
“추정한다. 붉은 피인가?”
“……그렇습니다.”
혐오에 가까운 눈으로 대머리 상인을 바라보는 기사의 모습에, 그 집단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나 역시 대머리 상인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3명의 마력 보유자의 시선에 대머리 상인이 멈칫거리더니 이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들, 너희들 같은 괴물 놈들 때문에!”
인류의 자유를 위한 조직.
귀족의 푸른 피와 반대되는, 붉은 피.
마력을 가진 지배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는지 알고 있나!”
마력이 없는 지배 받는 자들을 위하는 조직.
대머리 상인의 외침이 지하 감옥에 울렸다.
즉, 이 대륙 모든 귀족에게 대항하는 현제의 시스템을 반하는 레지스탕스……라고 해야 하나.
“그게 아직 있나?”
“네. 저도 놀랐습니다. 아직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니.”
“점조직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이미 몇십 년 전에 멸망했다고 들었지만.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나 보군.
“이게.”
아멜리아 공주가 대머리 상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나도 처음인데, 왕족인 그녀도 처음 봤겠지.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이 사라지고 호기심이 언뜻 보이는 눈동자로 대머리 상인을 바라봤다.
“실망했다. 붉은 피. 책으로 봤는데, 이 정도인가?”
“뭐, 말단…… 크흠. 심부름꾼이겠죠.”
“……나, 날 무시하지 마라!”
공주와 잡담하는 모습에 열이 났는지, 대머리 상인이 뭐라고 외쳤다.
얘는 고문에 잠시도 못 버티고 불었다면서 뭐 이리 당당하지?
기사를 보니 목에 손날을 가져다 댔다.
죽여버릴까요? 하는 신호다.
“아니, 아직 죽이진 마.”
“히, 히익!”
내 말에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는지 대머리 상인이 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으음. 그나저나 혁명 집단이라. 처음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이 세계에 그런 게 있을 줄은.
지구랑은 다르게 문제가 하나둘이 아닐 텐데?
당장 생각하는 것만으로 대형급 몬스터를 비롯한 마력을 가진 괴물들과 천재지변이 있다.
“왜 귀족들을 전부 죽이려고 하지?”
“그들이 있기에 마력이 없는 수많은 평민이 괴로워하고 있다. 우리 붉은 피들은 푸른 피에서 자유를 되찾아 평등한 세계를 이루어낼 것이다.”
뭔가 막히는 것도 없이 술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게 이들이 밀고 있는 주장인가?
그나저나 평등이라. 평등.
마력이 있는 판타지 세계에서 평등이라.
“마력 보유자들을 죽이면 평등해지는 건가?”
“그렇다!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낙원이 다가오겠지! 너희들 괴물이 없다면 말이지!”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낙원. 하하.
“그럼 마력을 가진 귀족들을 죽였다고 치자.”
“뭐?”
내 말에 멍한 표정으로 날 보는 대머리 상인.
뒤의 기사와 아멜리아 공주 역시 나를 바라봤다.
“그럼 그다음은 누구지?”
“누, 누구라니?”
이해 못 한 상인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 별생각은 없다. 내가 딱히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상식은 있지만, 마지막으로 본 역사책은 이미 수십 년 전이다.
그런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상인을 바라봤다.
“마력. 마력 또한 힘이지. 그럼 다음은 권력인가? 아니면 재력? 지식은 어떻지? 외모는?”
“……뭐?”
세상은 마력이 없더라도.
불평등한 세계다. 공평하지 않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태어난 가족이 어느 정도 벌고 있는가. 가진 재산으로도 생기는 것이 차별이다.
외모에 의한 차별. 자신의 피부색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도 존재한다. 차별을 칭하는 단어는 이렇게 많다.
그 세계에서 온 나는 알고 있다.
혐오와 차별의 세계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