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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53화 (53/143)

〈 53화 〉 그것? ­ 1

* * *

노예 상단이 자리 잡은 숙소는 대규모 상단을 위해 준비된 숙소다. 소규모의 일행이 아닌 그 크기에 따라 수백 명까지 커버가 될 정도의 거대한 여관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레오릭님. 여관의 손님들은 물론 근처에 있는 영지민들을 포함한 모든 평민의 피난이 끝났습니다.”

“음. 일단 여관에 머물게 하고, 그동안 드는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가신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람이 북적거릴 여관은 텅 비어버린 채 성의 사람들만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여관 주인에게 미안하지만, 나중에 따로 보상을 주는 거로 하자.

“상단의 짐들도 전부 뺐습니다.”

“그럼 준비하지.”

상단의 짐에 뭔가 단서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있으니 대머리 상인의 짐부터 시작해서 전부 빼냈다.

단, 한 가지 상자를 제외하고.

네모난 나무 상자. 그 크기는 꽤 컸다. 마차 하나에 들어가는 이 짐을 제외한 짐은 그 대부분이 마정석과 진주였다.

일종의 미끼.

근처……. 주로 상자 안에 있는 그것의 마력을 흡수하고, 밖에서의 마력 탐지를 방해한다. 그 목적은 안쪽에 있는 상자. 그 안에 숨어있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절묘한 비율이다.

조금이라도 비율이 어긋났다면 상자 안에 있는 마력이 퍼지겠지. 여태까지는 그걸 마정석으로 흡수하며, 흡수된 마정석을 매번 교체하고 있는 듯했다.

상자를 보다가,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면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기사들이 나타났다.

“레오릭님.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위치로.”

“위치로!”

내 명령을 복창하며 철갑옷의 기사들이 움직였다.

마력으로 강화된 인간은 상상을 초월한 능력을 얻는다. 그런 인간을 초월한 육체 능력과 내구력을 가진 기사들이 갑옷을 입는 이유가 있냐고 하면, 사람을 상대하는데 갑옷을 벗는 것이 더 좋긴 하다.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마력으로 강화해도 전신 갑옷을 입고 멀쩡하게 움직이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다. 그런데도 저런 갑옷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갑옷이 보통 갑옷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입는 건 얼마 만이지?”

“하……. 보자. 10년은 넘은 것 같군요.”

“골동품인가?”

“하하하. 너무하십니다. 그래도 수많은 전쟁을 함께한 전우입니다. 아직 현역이니 믿고 맡기시죠.”

“하하. 그럼 부탁하마.”

쓴웃음을 짓는 베테랑 기사의 말에 이쪽도 웃었다.

예식에 쓰는 갑옷은 따로 있다. 이처럼 마력을 강화해도 물리적으로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입는 이유는 단 하나.

탱커.

말 그대로 몸빵이 필요할 때다.

전쟁 중에는 공성전, 특히 성을 방어할 때 자주 썼다고 한다.

철과 마정석이 섞인 금속으로 제련된 갑옷은 단단함도 단단함이지만 마력에 의한 저항력이 엄청나게 상승한다.

일대일 같은 곳에는 강화된 순발력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고, 강화된 방어 능력도 쉽게 뚫리니 쓸모가 없지만, 원거리에서 포격이 날아오는 상황… 즉, 공성전 같은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제2의 성벽이라고 불리는 갑옷의 존재 이유. 그 갑옷을 꺼내왔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레오릭님.”

“음.”

옆에서 상자 속 마력을 측정하던 부하가 신호를 보냈다.

그에 맞춰서 갑옷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방패를 든 기사들이 위치를 잡고 사람 크기만 한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땅에 박았다.

“금사자 기사단! 전원 준비!”

“준비!”

프란츠 가문의 최고의 기사단.

황금 사자 기사단의 베테랑 중 베테랑. 대부분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나섰지만, 그 중에도 영지에 남아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도 있다. 그들 대부분을 불러 갑옷을 입힌 채 방어진을 펼치고 있다.

“강화!”

“강화!”

마력으로 신체와 갑옷, 방패를 강화한다.

짐을 둘러싼 기사들에게서 푸른 마력의 일렁이며, 순식간에 거대한 벽으로 짐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머지 일원들도 대피해.”

“하, 하지만.”

머뭇거리는 다른 가신들에게 진심으로 말한다.

“막지 못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진지하게 말한 내 말에 결국 나머지 인원도 대피하기 시작했다.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 끝에 대부분 사람이 여관에서 물러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상자를 둘러싼 채로 방어막을 펼친 기사들과 나.

“으음. 이 정도의 압력은 오랜만이군.”

“허어.”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리는 기사들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눈에 마력을 집중해 상자를 바라봤다.

내 눈에도 상자 안의 마력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이…….”

서서히 표정이 바뀌는 기사들.

나 역시 피부가 저릿하게 느껴지는 마력 파동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건 좀.

내 예상보다 더 위험한데.

만약을 대비해 팔목에 찬 마정석에 손을 올린 채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잠깐의 침묵이 여관에 내려왔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상자에서 점점 마력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덜컹!

마력의 파동만이 뿜어져 나오던 상자가, 덜컹거리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 깃든 무언가가 깨어났다.

본능적으로 마력의 제어를 시작한다. 금빛 후광이 몸에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덜컹!

혹시나 해서 방어진을 전개했지만, 그 이유는 저것이 만약 마정석처럼 터지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 흐름을 보면 터지는 것보다는, 안쪽에 깃든 무언가가 눈을 떴다고 생각하는 게 옳겠군.

“아.”

드디어 덜컹거리는 상자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마력의 기척을 느끼는 기사들과 나는 알아차렸다.

안에 깃든 무언가가 눈을 떴다.

­스으으!

상자에서 푸른색 마력이 스며든다.

안개처럼,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상자에서 마력이 흘러넘치듯이 바닥으로 쏟아지며 천천히 퍼지기 시작한다.

푸른색 마력.

기본적인 마력의 색.

정말로?

아니. 저건, 위험하다.

“전부 물러나!”

푸른색 마력에 멈칫거린 기사들이 내 외침과 동시에 물러났다. 순간의 머뭇거림에, 실패한 기사가 나타났다.

“큭!”

거대한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엄청난 속도로 물러나는 기사들. 그러나 갈수록 물러나는 속도가 느려진다.

원인은 어느새 발목까지 차오른 마력의 늪.

“……이건, 큭! 잠겼습니다!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고, 마력으로 강화해도 신체를 붙잡는 힘이,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합니다!”

재빠르게 자신이 당한 현상에 관해 설명하는 기사. 물러나는 속도가 느려지고, 제대로 된 거동이 힘들어진다.

“알겠으니까, 이거나 붙잡아!”

계속해서 설명하려는 그 기사의 몸통에 마력을 뻗어, 염력처럼 그를 감싸며 빼내려고 힘을 줬다.

­철썩!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윽!”

격이 높을수록 마력에 그 특징이 나타난다.

프란츠의 황금빛 마력. 보랭의 하늘색 마력. 뮐러의 남색 마력.

그렇다면, 이 푸른색 마력은.

“젠장!”

­철썩!

이것은 기본적인 마력의 빛이 아니다.

그와 같은, 비슷한 색으로 착각했다. 곧바로 물러나야 했다.

방심했다.

기사를 붙잡은 마력. 기사 역시 황금빛 마력을 붙잡은 채로 몸을 물러나려고 하지만, 점차 차오르는 마력에 거동이 힘들어진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마력을, 제대로…!”

“집중해!”

금빛이 타오른다.

팔찌에 달린 마정석을 허공에 던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거대한 태양. 극도로 압축된 금빛 마력이 거대한 구체를 형성한다. 평소에 마정석에 저장해 놓은 나의 마력에 추가로 마력을 보태어 만든 인공 태양.

있을 수 없는 온도에 일순 불타오를 것 같은 착각이, 착각이 아니다.

­치이이익!

물처럼 넘쳐 흐르며 땅에서 차오르던 마력이 멈칫거렸다. 마치 거대한 온도에 기화되는 듯이 바닥의 마력이 출렁거리며 그 기세가 멈췄다.

그 타이밍에 맞춰서 발목이 잡힌 기사를 그대로 끌어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됐어. 물러나라.”

“…큭, 알겠습니다.”

내 말에 주먹을 쥐는 기사들은 그대로 건물에서 물러난다. 다행히, 내 금빛 태양에 놀랐는지 물처럼 주변에 차오르던 마력의 진행이 멈췄다.

­고오오오오.

거대한 태양이 계속해서 내 뒤에서 타올랐다. 그것을 유지하며 상자를 바라본다.

­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소금기.

일정 이상 마력의 격이 높아지면 그 혈족은 고유의 마력을 가진다. 황금의 프란츠. 하늘의 보랭. 철벽의 뮐러. 각자를 상징하는 특징이 그 마력에 깃든다. 제일 처음 눈에 뛰는 변화는 바로 마력광.

그렇다면. 마력의 격이 더욱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철썩!

내 발목 아래까지 도달한 마력이 마치 물처럼 들어왔다가, 쓸려나간다.

밀물과 썰물. 그것이 떠올랐다.

달이었나? 태양이었나.

어쨌든 중력으로 인해 생기는 밀물과 썰물. 조석이었던가.

그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색 마력은 마치 바닷물처럼 밀려오고, 쓸려간다.

마치 실제 바다에 있는 것 같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 상자 안에서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푸른빛…… 아니. 마치 깊고 깊은 심해를 보는 것 같은 어두운 검정이, 거기에 있었다.

어둡다. 어두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철썩!

아.

나는 지금 바다에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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