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클로에 1
* * *
“으음….”
눈을 뜨자 거기에는 익숙한 천장이 있었다.
고풍스러운 디자인. 주변에 장식된 가구들은 박봉이라고 할 수 없는 기사 월급으로도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의 명품.
클로에는 평소 쓰던 침대보다 몇 배 더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는.”
자신의 주인, 레오릭 프란츠의 방이다.
그걸 자각하자 곧바로 몸 상태를 확인했다. 마력에 의해 깔끔하게 사라진 손가락도, 벗겨진 피부나 찢어진 근육과 부서진 뼈들까지. 전부 깔끔하게 완치되어 있었다.
“아프지 않아…….”
마력에 의한 치료술은 완벽하지 않다. 완치되지 않은 병도 있고, 치료술 자체가 너무나도 고난도 기술이라 마력 조작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클로에 자신도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주인인 레오릭님의 지도가 없었다면 아직도 남은커녕 자신에게 생긴 작은 상처 하나만 겨우 치료했겠지. 그 정도로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친 손을 바라봤다.
“역시 레오릭님…….”
단순히 마력이 많고, 강하다고 해서 가능한 기술이 아니다. 마력의 크기도 크기지만 주인의 마력 제어 능력에 감탄이 나왔다.
“내가 뭐?”
“꺄앗!”
갑자기 들린 소리에 클로에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침 햇빛이 마치 후광처럼 비추고 있는 그녀의 주인, 레오릭 프란츠가 있었다.
* * *
“레, 레오릭님!”
“아, 멈춰. 멈춰. 아무리 치료했다고 해도 잃어버린 피까지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그…… 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일어서려고 하는 클로에에 그대로 누우라고 손짓했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지만,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클로에의 곁에 다가갔다.
음. 신중하게 치료했지만, 역시 치료라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기술이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치료가 되는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막말로 결손난 신체 부위까지 복원하는 치유 능력이다. 물리적 결손이 아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제대로 원인을 파악 못 하는 병까지 치료한다. 물론 그 대상은 대부분 귀족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로 심각한 상처나 후유증을 걱정해야 할 정도가 아닌 이상 찬찬히 회복하는 게 좋겠지.
“몸 상태는 괜찮고?”
“네. 제가 부족해서 또다시 레오릭…… 사장님에게 또다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불충을 용서해주십시오.”
“음, 뭐. 이거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공작급 마력이었으니까.”
“공작급!”
클로에의 날카로운 눈이 크게 떠졌다.
대충 높은 작위의 마력이라고 파악은 했겠지만 설마 진짜로 공작급이라고는 몰랐나 보군.
이 세계에서 공작급이란 사실상 왕족과 똑같이 최상위 마력. 물론 마정석에 저장시켜 터트리는 방식을 이용한 이상 마력의 격 자체는 떨어지긴 했지만, 그 폭탄을 단순한 기사 하나가 마력을 완벽하게 제어한 것으로 피해 없이 막아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칭찬해줘야 마땅하겠지.
사건의 결말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는 거로 하고. 뭐부터 이야기할까. 그래.
“일단 잘했어. 클로에. 역시 나의 첫 번째 검이다.”
“……가, 감사합니다.”
클로에가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직설적으로 칭찬하는 건 처음인가.
“상위 귀족의 마력이 담긴 마정석 폭탄을 완벽하게 제어해 주변에 아무런 피해를 남기지 않은 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동 중이었던 노예 상단의 주인인 상인을 제압한 일. 훌륭하다.”
“이 영광을 프란츠에게!”
클로에는 침대 위에 상체만 반쯤 일으켜 세운 후, 약식의 경례를 했다. 약간 상기된 얼굴을 보니 기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조금 씁쓸하다.
“이에 대해 공을 세웠으니 상을 줘야겠지. 트리스탄 가문에 토지를 하사하마.”
“토지를 말입니까?”
“내성의 땅이다. 중심가에 있으니 지리적으로는 좋은 곳이지. 영지민들 사이에서 현재 유행하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무슨 가게를 하든 어떤 건물을 짓든 문제는 없겠지.”
“그런, 그런 땅은 이미 대부분…….”
“하하하.”
가신이 공을 세웠으면 상을 준다. 당연한 일이다. 그럼 그 상이 뭘까.
돈과 명예. 혹은 아기씨. 마지막으로는 땅이다.
프란츠 영지는 프란츠 가문이 자리 잡은 프란츠라는 제일 큰 도시와 프란츠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하위 작위를 가진 귀족의 도시. 그리고 대도시 사이의 작은 도시나, 마을 몇 개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히 이런 큰 영지는 이미 내려준 이상 그걸 빼앗고 다시 다른 가신에게 넘겨준다는 건 반역죄 같은 대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하지 않는 법. 그럼 주로 가신에게 넘겨주는 땅이 뭐냐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지와 영지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이 경우 프란츠 영지 근처에 직접 세금을 걷으며 지배하고 있는 소도시나 마을. 혹은 아직 주인이 없는 땅을 건네준다.
두 번째는 바로 도시 내의 땅이다.
일종의 부동산 산업 같은 건데, 이렇게 하사한 땅의 경우 준다기보다는 빌려준다는 것에 가깝다. 만약 죄를 범하거나, 하사한 땅에서 지은 건물에 얻는 수익을 이용해 방자하게 논 후, 자신의 몫을 못하게 되면 다시 회수해간다.
다만 지금 내려준 건물은 조금 다르다.
“이건 내 땅이다.”
“레, 레오릭님의 땅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차남이다.
장남인 아이단 형님에게 대부분 물려준다고 해도, 내가 얻는 것이 없진 않다. 그리고 애초에 내 기사에게 상을 주는데, 아버지나 형님 땅을 주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런! 과분합니다, 레오릭님!”
“또 말투가 돌아왔네. 뭐, 됐나. 그래 봤자 네가 제대로 일하지 않게 되면 회수할 땅이야. 당연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겠지?”
“……물론입니다. 클로에 트리스탄. 주인님의 첫 번째 검으로서 다시 한번 더 목숨을 걸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진지하게 말하는 건 좋지만, 그 목숨을 거는 것이 나에겐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좋아. 그럼 점수로 넘어가 볼까.
“진작에 100점이 됐지만, 최근 바빠서 소홀히 한 건 미안하군.”
갑작스럽게 바뀐 이야기에 클로에의 표정이 당황스러워지는 것이 보였다.
역시 방금 깨어난 탓에,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데굴데굴 바뀌는 것이 귀엽네.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시작한 약속에 내용을 바꾸는 건 좀 치사한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네? 레오릭님, 무슨…… 꺄앗!”
그녀에게 다가갔다.
부드러운 침대 위 상체만 일으켜 앉은 클로에에 다가가자 클로에가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은 하녀의 도움으로 얇은 옷으로 바뀌었다. 역시 클로에 하면 와이셔츠지. 최대한 비슷한 옷을 만들어서 입히니 잘 어울렸다. 비서는 정장이야, 정장.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클로에.”
“네, 네?”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클로에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만약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이대로 바로 거사를 치르겠지만.
“감점이다.”
“……네?”
갑작스러운 내 말에 클로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걸까.
명석한 클로에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날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한번 없어진 손가락과 부드러운 피부다. 처음 봤을 때, 그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얼굴에 상처가 났었다. 흉터가 날 정도의 큰 상처였다. 내가 아니었다면 이 얼굴이 흉하게 바뀌었겠지. 감점이다.”
“자, 잠깐…… 레, 레오릭님? 갑자기 무슨……!”
“가슴에 상처가 났었지. 부드러운 젖의 반이 날아갔고, 유두가 잘렸었지. 감점이다.”
“머, 멈춰주십시오! 레오릭님!”
“팔에 상처가 났었다. 근육까지 훼손됐었지. 내가 아니었으면 그 팔은 더 움직이지 못했겠지. 감점이다.”
“레, 레오릭님!”
“손가락이 날아간 건 기억하나? 당연히 감점이다.”
“아, 아아……!”
속사포처럼 쏟아낸 말에, 클로에의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감점. 감점. 감점.
계속된 감점.
감점이라는 말을 들릴 때마다, 클로에의 표정이 죽어가고 있었다.
“레, 레오릭님……! 제발, 멈춰주십시오! 죄송, 죄송합니다!”
오우야. 갑자기 피폐 후회 집착이 생각난다.
텅 비어버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클로에의 뺨을 쓰다듬었다.
“뭐가 죄송하지?”
“그, 그건!”
내 말에 머뭇거렸다.
뭐, 클로에로선 이해가 안 되겠지. 갑자기 감점이라니.
나는 그런 클로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쪽!
“아……!”
클로에의 따스한 입술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대로 볼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을 혀로 핥는다.
“너는 누구의 것이지?”
“레, 레오릭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신체는 누구의 것이지?”
“물론 레오릭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명령하마.”
“네!”
방금까지 잠들어 있었고, 갑자기 흘린 눈물에 엉망이 된 클로에의 얼굴을 쓰다듬어줬다.
“이제부터 내가 입맞춤한 부위에 그 어떠한 상처도 금지한다.”
“……그, 그건.”
잠깐 멈칫거린 클로에를 바라봤다.
평소 가슴까지 내려오는 은빛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나누어 새끼 꼬듯이 땋은 것이 지금은 길게 풀어 내리고 있다. 그런 클로에의 머리카락을 손바닥 위에 올려 입맞춤을 했다.
“레오릭님…….”
“이제부터 그 누구에게도 머리카락을 잘리는 것을 금한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볼에 입맞춤한다.
“이제부터 네 볼에 흉터를 새기지 마라.”
눈꺼풀 위에 키스했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눈의 상처를 금한다.”
귓불에 키스했다.
“내가 너를 놀릴 때마다 반응하는 네가 참 귀여웠다. 귀의 상처를 금한다.”
코.
“내가 너의 향기를 맡듯이, 너 역시 나의 향을 맡아야지. 코의 상처를 금한다.”
입.
“내 이름을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나에겐 필요하다. 입의 상처를 금한다.”
“레, 오릭님…….”
눈물을 글썽거리는 클로에가 나를 보고 있다.
다시 한번 입에 키스한다. 이번에는 클로에 역시 내 목에 손을 둘렀다.
츄.
“다치지 마라. 나를 위해서라면.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내가 속삭였다.
“레오릭님.”
눈동자가 마주친다.
“레오라고 불러라, 클로에.”
“……레오, 님.”
털썩!
키스하며, 조금 더 다가가자 그녀가 그대로 몸을 눕혔다.
나의 침대 위에 새하얀 와이셔츠만을 입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 바라봤다.
“사랑한다. 클로에.”
“사랑합니다…… 레오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