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검거 4
* * *
마정석에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걸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클로에는 그 순간 판단을 해야 했다.
키이이이잉!
이 현상, 마정석에 봉인되어 있던 마력이 터져나가려는 증상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엉망진창인 마력의 흐름.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부서지려고 하는 마정석. 그러나 이 마력이 터질 때까지 아주 잠깐의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다. 클로에 자신이라면 이 짧은 시간에 곧바로 몸을 뒤로 빼 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 혼자라면.
키이이이잉!
끓어오르는 마력의 양을 가늠한다. 이 정도의 마력. 질도, 양도 평범하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폭발의 범위는 골목길은 물론 주변의 다른 건물들이나 거기에 사는 영지민들도 피해가 확실한 상황.
거기에 이대로 안전한 범위까지 물러나야 한다면 이 노예 상단의 주인인 대머리 상인을 놓고 가야 했다. 터지려고 하는 마정석 바로 아래에 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지.
다른 상단의 사람들이 이 일의 배후를 알고 있을지는 모른다. 대부분이 노예로 구성됐으니 그들은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될 놈은 대머리 상인 이놈이 제일 유력했다. 그러니 살려야 한다.
클로에의 생각은 짧았고, 판단은 빨랐다.
“으으으윽!”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한 마정석을 향해 손을 뻗어 붙잡았다. 닿자마자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는 마력의 반응. 그리고 손에서 느껴지는 반발력까지.
대놓고 노렸다. 이건 마력 보유자가 접근하면 자동으로 발동하게 되는 형식임이 틀림없다. 그것도 이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야 발동되는 조작 방식.
“큭…!”
클로에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하는 일은 레오릭 프란츠가 했던 테스트와 다르지 않다. 손에서 폭발하는 마력을 억제하고, 그 힘의 방향을 아무도 없는 허공으로 돌려 흘린다.
하지만 흘리는 것에 필요한 난이도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마정석을 감싼 손가락 끝 마디가 날아갔다. 손바닥의 피부가 타버리고, 팔의 뼈가 부서진다. 폭발하려는 마력을 억제하는 것도 아닌, 그저 손에 닿는 것만으로 이 정도의 위력. 귀족도 아닌 기사의 신체로는 가지고 서 있기마저 어렵다고 판단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는 내구성에서도 보통의 인간과 다르다. 몬스터보다 단단해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죽는다.
이 위력. 터지려고 하는 마력을 피부 너머에서 전해지는 위력이 느껴진다.
이게 터지는 순간, 강화된 신체도 버티지 못하고 터져서,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주인을 보지 못한다. 그런 생각이 얼핏 머릿속에 스쳤으나 클로에는 그런 생각마저 지웠다. 지금 당장 생각에 쓰이는 리소스마저 부족했다.
빠직.
신체에 금이 간다. 골절되고, 부서졌다. 그 짧은 시간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대미지를 파악한 후 클로에는 결정을 내렸다. 이 정도면 괜찮다. 대머리 상인에게 말했듯이, 경애하는 주인의 치료술은 자신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심장과 뇌만 무사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렇게 판단하고, 강화에 사용하는 마력조차 일부분을 제외하고 빼돌리기 시작했다.
빠직.
클로에의 전신에 피어오르는 마력이 원을 그려냈다.
신체가 기둥처럼. 기둥을 중심으로 클로에의 마력이 원을 그린다. 그리고 원은 일종의 길처럼 마정석의 마력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의 반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결국 중요한 것은 굳이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막무가내로 터지려고 하는 마력의 흐름에 직접 건들 필요는 없다. 이 마력의 방향만 비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발상이다.
그분이 말했다.
이 시대의, 기사들의 마력 제어 기술은 세련됐다고. 전장에서 실전을 거듭해 연구된 기술은 굳이 더 손 될 필요도 없이 완성된 기술들이다.
단지 그런데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건 다양성이라고.
발상. 상상. 망상에 가까운 번뜩임. 장난삼아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저 흘리지 말고, 고민해라. 허황한 꿈이라고 비웃지 말고, 진짜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해라.
척!
마력의 반발력에 신체가 밀려 나가는 것에 굳이 저항하지 않고 물러섰다. 현재 강화된 부분은 머리와 심장, 그리고 척추를 비롯해 서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구조만 최소한의 강화. 굳건하게 선 채로 클로에는 손에 든 마정석을 허공으로 비틀어 올린다.
마력의 반발력에 의해 손가락 몇 개는 사라졌고, 피부는 진작에 까져 팔을 구성하는 붉은 근육과 새하얀 뼈까지 드러났다.
그런 팔인데도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클로에는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을 그린다.
힘을 제어하려고 하지 말고,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그저 밀어낸다. 누군가의 제어 하에 터지는 마력도 아니다. 그저 응축된 마력의 폭발. 이 정도라면 클로에는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 한다.
방식 자체는 기사단에서 수련하던 기존의 흘리는 방식과 비슷했다. 그 중심을 신체를 기반으로 삼아 그저 원을 끝없이 그려내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일 뿐.
[태극]. 그분은 그렇게 말했다. 발음조차 어려운 이상한 단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도 그분이 흘린 듯이 말했던 그 단어. 클로에는 신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의 말처럼 태극의 제어법. 그 단련을 멈추지 않았다.
고오오오오오!
푸른 마력이 허공으로, 하늘로 방사되고 있다. 원의 형태로 그려지며 거대한 소용돌이가 밤하늘을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최후의 한 톨까지. 모든 마력이 방사됐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
무아지경으로 마력의 흐름을 바꾸던 클로에는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력까지 전부 쏟아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잔잔해진 주변과 금이 가버려 망가질 대로 망가진 텅 빈 마정석을 본 후에야 드디어 끝이 났다고 인식하고, 클로에는 하늘을 바라봤다.
자신이 해낸 푸르게 물든 하늘. 주변의 건물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고, 대머리 상인도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 정신만 잃었다는 것을 보고 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때야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클로에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마력 탈진과 체력의 소비. 거기에 뒤늦게 느껴지는 고통까지. 더 버티지 못해 끝내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진다. 쓰러지면서 의식마저 희미해지는 순간 몸을 감싸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마지막으로 희미해지는 눈에 힘을 줬다.
“수고했어”
불투명해진 시야가 금색으로 물들었다. 마지막에 들린 따뜻한 목소리와 푸근한 감촉. 자신을 감싼 그분의 손길에 클로에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 * *
적어도 공작급.
공작부터는 왕족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이 세상에서는 최상급 마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정석에 저장한다고 마력의 순수성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어떤 미친놈이 만들었을까. 이런걸. 영지 내에서 이게 터지면 한 채, 두 채의 문제가 아니다. 구역 하나가 박살 날 뻔했다.
“마력 보유자가 접근하면 그에 반응해서 터지게 했다.”
금이 간 채로 텅 비어버린 마정석을 바라봤다. 그 속에 담긴 마력으로 인해 그 기능을 상실해 그저 단순한 돌이 돼버린 마정석.
거기에 그려진 회로는 마력이 터지면서 휘말려 사라졌지만, 느껴지는 흔적을 보고 대충 추론이 가능했다.
“감히.”
감히.
프란츠가 목적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프란츠에서 이딴 짓을 해?
뿌득!
시야가 금빛 마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분노로 제어가 흐트러졌다. 그걸 자각하면서도 도저히 참지 못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빛이 세상을 물들기 시작했다.
“고문이든 뭐든.”
다 알아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걸 막는 놈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알겠습니다.”
뒤늦게 나타난 지크가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란츠에게 남아 있는 다른 가신들도 분노한 레오릭 프란츠의 모습에 아무 말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아무 피해 없이 막아냈다.
결과만 보면 그렇지만.
“…….”
내 품에 잠들어 버린 클로에를 바라봤다. 안경테에 담긴 내 마력을 이용했다면 반발력으로 인해 그 주변 일대가 휩쓸린다고 판단했겠지. 자신의 마력만 이용해 마정석의 폭발을 흘리며 하늘로 방향을 틀었다. 그로 인해 영지민은 물론 건물들도 무사하고, 대머리 상인조차 상처 없이 잡아냈다.
훌륭하다.
그렇게 칭찬해야 했다.
마정석의 폭발은 알아차렸으나, 클로에의 마력을 느끼고 천천히 지켜봤다. 만약 클로에가 해결하지 못했다면 내가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기사로서 자신의 분부를 완수했다.
귀족으로서 칭찬하고, 상을 내려야 하겠지만.
“하아.”
클로에의 남은 손가락은 겨우 5개. 피부도 벗겨지고, 근육도 상했다. 전신의 뼈는 부서지고, 자잘한 상처까지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다.
전신이 피로 젖은 클로에의 몸에 천천히 금빛 마력이 스며들며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래. 100점이라, 100점.”
100점이 넘은 지 꽤 됐지만, 형수님 일도 있고 미뤄둔 것이 있었다.
“이거 참.”
성은을 내려줄 때가 됐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몸을 함부로 굴리다니. 감점이라도 해야 하나?
“임신한 후에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이면 혼 좀 내줘야겠는데.”
클로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피식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