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48화 (48/143)

〈 48화 〉 검거 ­ 3

* * *

­스윽!

궤적을 그린다.

클로에가 든 검이 허공을 베었다. 깔끔한 원을 그리며 그려지는 궤적. 마치 누가 보면 캠퍼스에 붓질하는 듯이 부드럽게 그려진 선은 그대로 세상에 그 흔적이 새겨진다.

그 궤적을 따라 새겨지는 푸른 선.

그 선이 대머리 상인의 팔에 닿았다.

찰나의 순간에. 그걸 뒤늦게 깨달은 대머리 상인은 선이 닿은 팔을 바라본다.

“어?”

대머리 상인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클로에와 상인의 거리는 다 큰 성인 남자가 던진다고 해도 닿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멀리 떨어진 거리였다.

그래서 방심한 걸까.

마력을 가진 자들이 보통과는 다른, 비상식적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 있는 거리라는 편견이, 아주 작은 방심을 만들었고.

­촤아아아악!

“…어?”

대머리 상인의 팔이 잘렸다. 어깨부터 시작해서 팔꿈치까지. 마치 케이크를 베어먹는 듯이 간단하게 나이프로 잘린 듯이 툭 팔이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팔은 마치 계속해서 달린 것처럼 손가락이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대머리 상인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것처럼 멍청한 표정으로 땅에 떨어진 팔을 보며 자신의 잘린 어깨 아랫부분의 팔을 바라봤다.

­뚝, 뚝!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핏방울.

그때야 팔이 잘렸다는 것을 인식한 듯, 아주 깔끔하게 잘린 어깨 부분에서 솟구치는 핏줄기. 움찔거리며 신경이 반응하는 선홍색 근육. 그리고 매끈하게 잘린 새하얀 뼈가 드러난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실에 대해, 뒤늦게서야 인식한 대머리 상인의 표정이 공포에 물든 것을 시작으로 표정이 바뀌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악!”

머리를 새하얗게 물드는 고통에 대머리 상인의 비명이 조용한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바라보며 클로에가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골목길. 대머리 상인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곳에서 클로에는 검을 든 채로 천천히 상인에게 다가갔다.

“시끄럽습니다.”

­삭!

마치 날아다니는 벌레를 향해 손을 휘두르는 것처럼.

클로에의 손이 또다시 사라졌다.

또다시 허공에 그려지는 검은 선. 그 궤적이 이끄는 대로 푸른 선이 궤적에 따라 허공을 가르며 세상에 그 흔적을 새기며 대머리 상인의 반대쪽 팔에 닿는 순간 그 팔마저 피를 뿜으며 잘려나갔다.

­촤아아아아악!

“끄으으으으윽!”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 대머리 상인의 눈이 뒤집히며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명은 더 비명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이제는 인간의 비명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신음을 내뱉으며 잘린 양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범벅이 된 채로, 바닥에 쓰러진 채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런 대머리 상인을 보며 클로에가 천천히 다가갔다.

“이런. 죽겠네요.”

눈이 뒤집히고, 땅에 쓰러진 채로 움찔거리는 반응만 겨우 내는 남자를 싸늘하게 보면서 클로에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마력이 검에 깃들기 시작했다.

치료술은 아직 배우는 도중이지만.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마력을 검에 흘려 푸른 빛으로 물든 검을 든 채로 그대로 대머리 상인의 어깨에 찔러넣었다.

­푸욱!

“끄으으윽!”

검에 의해 어깨가 찔려진 고통에 겨우 비명을 지르며 반응을 내는 대머리 상인이지만, 자세히 보면 잘린 팔에서 흐르는 피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치료되면서 극심한 고통에 의식을 놓치려는 찰나, 그의 몸을 치료하는 마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잃어가는 정신이 돌아온다.

대머리 상인은 클로에가 내린 형벌에서 도망치지 못한 채, 강제로 의식을 차렸다.

“끄륵, 끄르륵…!”

“그만 화가 나서 곧바로 베어버렸습니다만, 다행히 쇼크사는 하지 않았군요.”

겨우 2번 베이는 정도로 죽이기엔 자신의 분노가 가라앉혀지지 않는다. 클로에는 싸늘한 눈으로 벌레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는 것을 기다렸다.

“어, 쿨럭! 어째……!”

“뭐라는 겁니까.”

­퍽!

쇠로 보완된 구두가 대머리 상인의 얼굴을 찍었다.

“으으으윽!”

클로에의 구두로 인해 얼굴이 박살 났다. 그러면서도 어깨에 쑤셔 넣은 검을 통해 주입되는 마력으로 대머리 상인의 얼굴이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사, 살려주… 쿨럭!”

“누가 죽인다고 했습니까? 지금도 보세요, 치료하고 있잖습니까.”

꾸욱.

어깨를 찌른 검이 조금 더 파고들었다.

찔러진 부위에서는 피가 솟아나지 않았다. 검이 들어가면서 그 부분을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클로에는 대머리 상인의 말을 흘려들으며 상인의 어깨에서 칼을 뽑았다.

“으으윽!”

검이 뽑히면서 오히려 새겨진 상처에 또다시 고통을 지르며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상인을 무시하며, 클로에는 어쨌든 기초적인 치료를 통해 죽지 않는 걸 확인한 후, 검으로 상인의 가슴팍을 베었다.

­촤아아악!

“끄으윽!”

피부에 닿지 않고 옷만 자를 수도 있었지만, 클로에는 이왕 하는 거 피부마저 얇게 베어 상인에게 고통을 준 후 품 안에 있는 작은 상자를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푸른 보석이지만, 클로에의 눈에는 그 보석 속에서 느껴지는 일렁이는 마력이 느껴졌다.

마정석. 그것도 성인 남자의 주먹 크기만 한 마정석. 상급이다. 품질 역시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대충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상급의 품질로 보였다.

거기에 그 속에 봉인된 마력.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봉인도 되어 있는 물건. 이렇게 가까이에서 살펴봐야지 느껴질 정도로 은밀하게 봉인되어 있다. 더군다나 느껴지는 마력의 힘.

“귀족급. 적어도 작위 소유의 마력…….”

클로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노예 상단의 주인이 가질만한 물건이 아니다.

마정석.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신비의 돌. 그 용도는 다양하다. 너무나도 다양해서, 위험한 물건.

때에 따라서는 나라나 영지의 주인이 직접 관리할 정도로 위험한 물건. 단 그 경우는 실제로 얼마 없다. 그 정도의 품질의 마정석이 쉽게 시중에 풀리지도 않고.

작은 크기의 마정석의 경우에는 돈이 많은 상인이라도 구할 수 있다. 마정석의 파편이라고 알려진 작은 마정석인 마석이라고 불리는 물건의 경우에는 모험가가 자주 애용할 정도.

그러나 이건 말이 다르다.

이 정도의 물건. 절대 일개 상인이 들고 다닐만한 것이 아닌데.

클로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정석에서 느껴지는 마력. 이 정도면 상위 귀족의 힘이 분명했다.

“백작……? 후작급? 설마 공작급이나 왕족의 것은 아닐 테고.”

느껴지는 마력으로 봐서는 클로에가 아는 다른 귀족의 마력을 떠올려 봐도 딱히 짐작 가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남부 지방의 물건은 아니란 소리.

그류튀스의 귀족의 물건인가? 이걸 훔쳐서 도망치고 있는 건가?

실제로 이 정도 품질의 마정석이라면 그런 탐욕이 생겨도 이상하지는 않고,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주인, 레오릭 프란츠의 말이라면 이 마정석보다 더욱 중요하게 봉인되고 있는 물건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물건 때문에 그류튀스에서 넘어온 것이 아니라는 소리. 물론 이 물건을 몰래 반입했다는 것 자체가 목이 잘릴만한 죄이긴 했다. 여기가 수도였다면 반역죄라고 불려도 이상한 것도 없을 정도로.

힐끔.

클로에의 시선이 대머리 상인의 가슴에 올려진 마정석에서 상인의 얼굴을 향했다.

겁에 질린 얼굴. 공포에 가득 찬 눈동자. 그런 상인의 얼굴을 보며 클로에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났습니까?”

“흐, 히익……!”

클로에의 목소리에 눈물과 콧물, 침과 땀, 피로 흠뻑 젖은 대머리 상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이 없는 채로, 바닥을 구르며 제대로 된 말이 나올 리가 없겠지. 겁에 질려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모양새에 클로에의 구두가 다시 대머리 상인의 얼굴을 찍었다.

­콰직!

“어디서 났습니까? 숨긴 물건은 뭡니까?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사, 살려 주세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아까부터 살려달라는 소리만 반복하는 상인에게 클로에는 가슴에서 솟아오른 짜증을 참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상태론 제대로 대답을 얻는 것도 힘들 것 같다. 조금 더 괴롭히고 싶다는 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 집단의 우두머리인 상인을 데리고 주인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생각한 클로에는 곧바로 대머리 상인을 데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다리까지 자르는 게 더 가벼워지려나?”

“히, 히이이이익!”

마치 짐덩이 그 자체를 보는 듯한 눈초리. 그런 클로에의 시선에 대머리 상인이 기겁하며 공포에 질렸을 때, 클로에는 피식 웃으면서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 상인의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질질 끌려고 했다.

“그러기 전에 이 마정석의 봉인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물건.

당장은 안전해도 이 물건을 들고 도시 내를 돌아다니는 건 위험했다. 클로에가 손을 뻗어 마정석을 주우려는 찰나.

­키이이잉!

마정석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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