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47화 (47/143)

〈 47화 〉 검거 ­ 2

* * *

분하다.

클로에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국, 그녀는 노예 상단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직접 서류를 확인했고, 한 번 견학까지 했다. 상대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고, 얼마나 획기적인 방법으로 숨겼다는 것은 결국 변명일 뿐이다.

귀족의 검, 귀족의 방패. 경애하는 주인님의 도구. 이런 하찮은 일에 직접 나서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클로에 트리스탄에게 있어서 자신의 명예와 충성, 그 모두가 모욕당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클로에?”

“…미안. 잠깐 딴생각을 했네. 그럼 미리 준비한 대로 나는 출구 쪽 골목에 갈게.”

“응. 그럼 부탁할게.”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기의 기사, 세린에 괜찮다고 미소지었지만, 거짓된 웃음인 걸 간파됐다.

세린이나, 세린의 부대도 결국 성문에서 그들에게 수상한 걸 찾아내지 못했다는 실책이 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세린의 얼굴도, 그녀의 뒤에 있는 그녀의 부대원들도 결코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세린이 있으니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클로에는 레오릭 프란츠의 직속 부하로 세린과 그녀의 부대에 대해 참견할 권한은 없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레오릭 프란츠.

프란츠 가문의 차남. 숨겨진 비밀 무기. 단순히 마력만이라면 장남이자 후계자인 아이단 프란츠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한 풍운아.

재야에 숨어 여태까지 겉으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활동을 시작한 레오릭 프란츠의 행보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측근의 기사를 뽑는 방식부터 시작해, 그의 직속 부하로 편성된 연구팀이라는 존재와 그 팀이 만들어낸 카메라는 그들의 일반적인 상식에서 나올 수 없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그런 그의 최측근 기사. 호위 기사이자, 레오릭 프란츠의 검.

클로에 트리스탄의 눈동자가 푸르게 타올랐다.

“그분이 직접 나섰습니다.”

“으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클로에나, 세린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부대의 기사들의 문제다.

레오릭 프란츠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애초에 기대조차 안 했다는 뜻이다. 너희들이 이걸 못 느꼈다고 해도 이해가 될 정도로 대단한 솜씨다.

그분의 손이자 발이자 검이 될 자신보다, 한낱 적의 수단을 칭찬한 것이다. 굴욕. 이보다 더한 모욕이 기사에게 있을까? 아니,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분노하기엔 충분했다. 클로에는 이를 악물었다.

­뿌득!

“이 이상 실수를 저지르는 건, 프란츠 가문의 명예 이전, 저희 스스로 명예를 위해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실책을 만회하라.

클로에의 입가에 피가 한 줄기 흘렀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 역시 속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으니까.

클로에의 말은 간단했다.

노예 상단의 전력은 충분히 파악했지만, 기사들이 눈치채지 못한 방법으로 다른 수단을 숨겼을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그건 변명이 되지 못한다.

적들의 예상치 못한 수단 때문에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희의 솜씨로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저런 비겁한 짓을 하다니……. 이런 변명을 하는 기사는.

프란츠에 필요 없다.

“명예가 아닌.”

클로에가 검을 들었다.

최근에는 관리만 한 채로 방에 보관 중인 그녀의 애검을 꺼냈다.

그에 맞춰 세린을 비롯한 모든 부대의 기사들 역시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기사도를 추구하기 이전의 문제입니다.”

명예나 기사도나. 기사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최소한의 역할을 완수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 역할조차 완수하지 못한 기사를, 기사라 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클로에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사도를 추구하기 이전,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진다고 해도 제일 우선해야 할 것은 경애할 주인이 내린 명령.

그 주인을 위해 기사는 죽어서라도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

“모든 것은 프란츠를 위하여.”

클로에의 전신에 푸른 마력이 감돌기 시작했다.

“발검!”

­챙!

세린의 말이 끝난 것과 동시에 그들의 몸속에 웅크린 채 대기하고 있던 마력이 그들의 몸을 감쌌다.

“작전 개시!”

세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대지를 박차며 순식간에 움직였다.

마치 빛처럼, 도시의 골목길과 건물의 벽과 옥상을 박차며 순식간에 이동하는 그 모습들은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하기엔, 괴물같은 모습이지만.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클로에 역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계획된 위치로 이동하며, 클로에는 검의 손잡이를 꾹 쥐었다.

* * *

전투의 묘사.

그들의 목적. 혹은 사실은 이 녀석도 착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런 변명은 필요 없다.

세린과 세린의 부대원들은 착실하게 적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기습. 압도적인 전력 차이. 결국, 단순한 노예에 불과한 저들이 저항 따위 가능할 리가 없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온갖 비명이 난무하면서도, 기사들은 착실하게 적이라고 정한 표적들을 착실하게 제압해낸다.

그 과정에 노예들에 살이 베이고, 뼈가 부러지는 상처가 생기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명령받았기에, 그렇게 행동한다.

분노조차 다스리며, 오로지 효율적으로 적들을 제압해낼 뿐이다.

“제, 젠자앙!”

­챙!

그 과정에 저항하는 놈이 하나둘이 있으나 결국 허무하게 제압된다. 결국은 노예. 결국은 모험가 수준의 마력. 그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분노한 기사들 앞에선 결국 제압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머리 중년 상인은 재빨리 숙소에서 도망쳤다.

­타타탓!

“허억, 허억…!”

뒷골목의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면서 대머리 상인은 거친 숨을 토했다.

어떻게, 어떻게 눈치챘지?

마력을 숨기는 것은 방법이 완벽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확인까지 끝내고, 여태까지 들킨 경우가 없었다.

실제로 프란츠 외성을 통과하면서 기사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그래! 기사들에게는!

‘레, 레오릭 프란츠!’

그자다!

그 귀족이 원인이구나!

겉모습은 평범한 청년이었고, 갑자기 나타났을 때도 무슨 낌새를 눈치챈 것 같지 않았다. 실제 노예를 구경할 때도 노예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그것이 있는 곳에 신경을 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젠장!”

그 겉모습 전부가 연기였던가.

여자 노예는 어디 있느냐, 그류튀스의 구릿빛 피부의 미녀는 이라면서 호색의 모습도 다 거짓된 모습, 그저 놀기 좋아하는 귀족 남자의 탈을 쓴 채로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니!

프란츠 가문의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저런 남자가 있었다니. 그것도 후계자가 아닌 단순한 차남이라니.

대체 어떤 가문이란 말인가.

“도망쳐야……!”

그곳으로……, 아니!

그 물건을 내버려 두고 도망쳐봤자, 결국 죽은 목숨.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도망쳐서 추격자가 없어질 때까지 숨어 살아야 한다!

“크흑!”

대머리 상인은 품에 있는 비장의 물건을 생각해내면서 외성의 성벽으로 달렸다.

조금만 더 달리면……!

­뚜벅!

“우아아악!”

어두운 골목길.

대머리 상인만 달리던 길의 끝부분.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에 대머리 상인은 기겁하며 멈췄다.

“누, 누구냐!”

꿀꺽.

침을 삼키며 외치는 대머리 상인의 말에,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사람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며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너, 너는…!”

그림자 속에 나타난 사람은 은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안경으로 감싼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저 모습, 본 적이 있다.

오늘 오후, 갑자기 나타난 귀족과 함께 그 뒤에 있던 여자.

단순한 여자는 아닌 것 같았지만.

­달그락!

여자의 허리에 달린 검집의 소리에 대머리 상인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인이지만, 그래도 이 분위기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지 않았다.

“기, 기사냐! 젠장! 빌어먹을!”

그런 대머리 상인을 나타난 여기사, 클로에 트리스탄은 푸른 눈동자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정말 치욕스러운 날입니다.”

클로에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며 뚜껑을 열고는 눈에 거친 안경을 조심스럽게 수납했다.

“이렇게 치욕스러운 날은 처음입니다.”

그 상자……. 안경집을 다시 품에 넣은 채, 클로에 트리스탄은 품에 넣은 상자를 옷 위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경애하는 주인님이 하사한 물건.

오늘은 이것을 낄 자격이 있을까.

아니, 없다.

이를 악문 채로 클로에는 대머리 상인을 노려봤다.

“그것도 하필이면 애타게 경애하는 주인님의 앞에서.”

“젠장……!”

­달그락.

클로에가 허리에 달린 검의 손잡이 손에 올렸다.

그 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대머리 상인의 등 뒤에서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 여기서 죽을 수는……!”

공포와 분노.

그것을 눈동자에 비추는 대머리 상인을 바라보며 클로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걱정 마십시오.”

“……뭐?”

­스릉.

차가운 소리가 울린다.

“저희의 위대하신 황금 사자의 후예. 그 분께서는 아주 자애롭습니다.”

푸른 마력이 클로에의 몸 주위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짙게 부풀어오는 기척.

그것은 마력이 없는 대머리 상인조차 알아차릴 정도의 전조.

주변의 모든 물건이 그 힘의 여파에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저의 주인님께서는 마력 제어에 아주 능숙합니다. 그 어렵다는 치료술마저 자연스럽게 펼칠 정도로.”

클로에 트리스탄의 주위를 감싸는 푸른 마력의 빛.

조용하고 어두운 골목길이 점점 밝아진다. 푸른 마력 빛으로 감싸는 골목에서 클로에 트리스탄은 검을 완전히 든 채로 대머리 상인을 가리켰다.

“설사 사지가 잘려나가고, 몸에 구멍이 난다 해도, 머리와 심장만 무사하다면 살려주실 겁니다.”

그러니 편하게 눈 감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평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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